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1920년대 후반 사회 전반적으로 불안심리가 고조되며 반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던 탓이라고 지적한다. 콜레라, 티푸스, 결핵 등 전염병의 유행이 사회 불안을 부채질하듯이 사회규범이 붕괴되면 이런 ‘변태적인 범죄자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무튼1920년대에서 1930년대 초 사이에 있었던 ‘엽기적인 범죄, 연쇄살인이나 대량살인의 발생에는개인적 문제 외에도 사회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조선사회는 한편으로는 외세의 침략과 왕조의 몰락, 다른 한편으로는일제 침략과 그 침략에 대한 항쟁이라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또한 기존의 사회규범이 무력화되고 반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진 것도 ‘연쇄살인‘이나 ‘대량살인‘의 발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P1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 저거 봤어? 바람을 막으려고 시체를 쌓아올렸어."
그가 속삭였다. 나는 망연자실해서 신음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차량에 사람의 시체로 만든 바람막이가 있었다. 나는 천천히 지나가는 끔찍한 광경에 놀라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시체들의 얼굴은 피로 얼룩져 있고 맨발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열 번째 차량이 막 지나갔을 때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네다섯 구의 시체가 잘못 쌓아진 짐 더미에서 미끄러져 철로 옆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열차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열차에서 내린 한 무리의 장교와 하사관이 알아보려고 그쪽으로 갔다. 무슨 호기심에서였는지 나도 열차에서 뛰어내려 장교에게 다가갔다. 나는 경례를 하고 더듬거리는 말투로 그들이 죽었는지 물었다. 장교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서 내가 위치를 이탈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내가 당황한 것을 알고 꾸짖지 않았다.
"그런 것 같군." 그는 슬픈 듯이 말했다. "동료들과 묻는 것을 도와주게." 그런 다음 그는 돌아서 걸어갔다. 할스도 내 옆에 와 있었다. 우리는 열차에서 삽을 가져와 제방 위 멀지 않은 곳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라우스 하사와 다른 일행들은 신분증을 찾기 위해 시체들의 옷가지를 뒤졌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불쌍한 녀석들은 민간인 신분이 아니었다. 할스와 나는 두 구의 시체를 쳐다보지 않고 구덩이로 옮기기 위해서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우리가 흙으로 덮고 있을 때 출발 신호가 울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추워졌지만 역겨움 때문에 추위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 P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나를 좋아하는 것으로 만족되지 않는 것은
제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인가요?


인간이 너무하네.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태어난 게 아니네.


빈 그릇을 들고 태어나버렸네.


너무 너무하네. - P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기.호모 속인 호모 하빌리스나 호모 루돌펜시스(1972년 리처드 리키 팀이 케냐의 루돌프호수에서 발견한 170만~250만 년 전 초기인류)는 아직 살아있는 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진화가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동물의 사체에서 골수와 뇌를 꺼내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골수와 뇌에 함유된 풍부한 단백질과지방은 초기 호모속의 몸집을 키우고 뇌 용량을 늘이는 데 기여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동물성 지방에 다량 함유되어 있는 지방산인 DHA (탄소수 22개, 이중결합 6개의 오메가-3계열의 고도불포화지방산,
docosa hexaenoic acid)와 아라키돈산(탄소수 20개, 이중결합 4개의 고도불포화지방산, arachidonic acid)이 뇌의 크기뿐만 아니라 활성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모속이 식물성 식품에서 동물성 식품으로 음식 자원을 변경한 초기에는 신체가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1974년 리처드리키 팀에 의해 케냐의 쿠비포라에서 발굴된 인류 화석 KNM-ER1808은 이를 입증하는 흥미로운 증거이다. 170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화석에는 육식동물의 간을 지나치게 많이 먹어 생기는비타민 A 과다증을 앓을 때 나타나는 종양의 흔적이 있다. 이를 통해 이때의 호모 에렉투스의 식성이 동물성 식품에 크게 의존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것은 당시의 호모속이 과잉의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을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은 진화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 P39

호모 에렉투스에게는 150만 년 전부터 아포이 엡시론 4(APOE epsilon-4) 유전자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아포지단백질(apolipoprotein)를 이용해 혈중의 지방과 단백질을 간으로 이동시켜 혈액 내 지방의 농도를 낮추는 데 관여한다. 결국 인체는 수십만 년에 걸쳐 유전적인 변화를 겪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을 수있도록 적응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키가 170센티미터 정도로장대해지고 뇌 용량이 1,000시시로 커진 호모 에렉투스는 죽은 동물의 청소부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잡아먹는 종으로 발전했다.
사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더 복잡한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좋은 도구를 제작하는 기술을 갖춰야 하는데 그러려면 머리를 써야 한다. 도구 제작과 관련된 뇌 영역은 소뇌와 대뇌 피질 부위로사람은 이 면적이 유인원의 3배에 이른다. 호모 에렉투스는 다른유인원이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결코 만들 수 없었던 날카로운 아슐리안 주먹도끼를 만들었다. 이 같은 도구의 제작과 사용은 사람의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사냥의 성공을 위해서는 협력과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뇌의 영역 중 전두엽이 언어와 관련 있는데, 호모 에렉투스는 두개골에 전두엽인 브로카 영역이 있었다. 이를 보아 호모 에렉투스는 언어를 사용한 것으로 여겨지고, 언어 사용은 협동하여 사냥하는 데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와시번과 랭카스터는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채집을 하는 초기 수렵채집인의 생활이 그 후 남녀의 역할을 결정하고 남성 우위의 사회를 만드는데 크게 관여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 P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초의 인류는 약 250만 년 전 동부 아프리카에 등장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이다. 이들이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하면서여러 종들이 생겨났다. 유럽과 서부 아시아에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아시아 동쪽에는 호모 에렉투스, 시베리아에는 호모 데니소바, 그리고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는 호모 솔로엔시스가 살았다. 인류의 요람인 동아프리카에서도 진화가 계속돼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에르가스터 등 다양한 인류가 살았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30만 년 전쯤 동아프리카에 처음 등장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처음 29만 년 동안은 동물을 사냥하고 식물을 채집하며 먹고 살았다. - P19

첫 번째 울트라메가 혁명 농업혁명
사피엔스는 빙하기가 끝나고 온화한 기후의 홀로세 Holocene 가 시작되던 1만 년 전쯤 큰 변화를 맞았다. ‘야생 식물에서 씨앗을 얻어 이를개간한 땅에 뿌린 후 물을 대고 잡초를 뽑는 경작을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농업혁명(또는 신석기혁명)이라고 부르는 첫 번째 울트라 메가혁명 Ultra Mega Revolution이다. 수렵채집인이었던 인류는 농부와 목축인이되었다. 인간은 개를 시작으로 양, 염소, 소, 돼지, 말, 낙타와 같은 야생동물을 길들이고 사육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로써 인간은 위험한 사냥을 하지 않아도 단백질 원이 되는 고기와 우유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 - P20

드디어 인류는 수렵과 채집의 방랑 생활을 끝내고 한곳에서 도시와국가를 이루며 문명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수렵채집 공동체는 기껏해야 수백 명 정도였지만 최초의 도시에는 수만 명이 모여살았다. 초생달 지대에 자리 잡은 수메르문명 최대 도시였던 우르크Uruk에는 전성기에 5~8만 명이 살았고 전체 인구는 80만~150만 명에달했다. 최초의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지구에 등장한 지 249만년만의 일이고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지 29만여 년만의 일이다. 한곳에 정착하게 되자 출산율이 크게 증가하면서 인구는 빠르게 증가했다. 또한 다른 동물들에 비해 늦게 사육을 시작한 말이나 낙타와 같은 동물의 힘을 빌려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문자, 수학, 법, 바퀴와 같은 세상을 바꾸는 발명을 이룩했다.
농업혁명과 함께 인류는 경작지를 만들기 위해 삼림 벌채하고 경작지에 물을 대는 관개 활동을 통해 자연환경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 P21

전반적으로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던 수렵채집인들에 비해 농부가 된 인류는 주로 농사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경작은 소수의 작물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이용 가능한 식품의 다양성은크게 좁아졌고, 그 결과 수렵채집인으로 살았던 조상들에 비해 영양의 질이 저하되었다. 또한 때때로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에따른 흉작으로 많은 사람들은 기아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인간의 키도 10센티미터 이상 줄어들었다.‘ 더욱이 인구 밀도가 높고 위생 환경이 좋지 않은 도시에 몰려 살면서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과 오염된 식수로 인해 기생충과 전염병은 증가했다. 이 때문에 유발 하라리 YubalHarari는 사피엔스 Sapiens」에서 농업혁명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는커녕 도리어 불행하게 만든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고 주장한다." - P22

1760~1840년경에 걸쳐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제1차 산업혁명은 석탄을 에너지로 바꾸는 증기기관과 같은 기계가 발명되면서 시작되었다. 기계는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 원자재를 빠르고 값싸게 상품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은 증기기관차와 철도, 증기선을 이용해 아주 멀리까지 공급되었다. 석탄이 핵심 에너지원으로 사용되었다. 황산, 염화나트륨 등과 같은 다양한 화학물질이 대량생산되면서 다른 발명품의 도입을 가능하게 했고, 시멘트가 발명되면서 대규모 건설도 효율적으로 이루어질수 있게 되었다. 1880년경에 이르면서 제1차 산업혁명은 서유럽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제 인류는 동물의 힘이 아니라 기계의 힘을 빌려 생산 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인간의 노동생산성은 획기적으로증가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제2차 산업혁명은 미국이 중심이 되어,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새로운 운송수단과 전기, 전신, 라디오를 발명했다. 대량생산방식이 도입되면서 인간의 노동은 더욱분업화되고 노동생산성은 더욱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기술 변화는 천연자원의 사용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공산품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제2차 산업혁명으로 인류는 철과 같은 천연자원 뿐만아니라 합금이나 플라스틱과 같은 새로운 합성자원을 만들어 사용하고, 석탄에 이어 석유를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경제사적 관점에서 볼 때 1·2차 산업혁명은 농업에 기반을 둔 봉건주의 체제를, 제조업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로 바꾼 획기적인 혁명이었다. - P23

런던 정경대 리처드 립시Richard Lipsey 교수에 따르면 인류는 지금껏24개의 범용기반기술GPT: General Purpose Technology을 만들어냈다.  - P34

립시교수는 범용기반기술은 고도화되면 될수록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궁극적으로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린다고 주장한다. 립시 교수에 따르면 인류의 첫 번째 범용기반기술은 동물사육기술과 경작기술이다. 이것이 일반 년 전의 농업혁명을 만들어냈다. 이후 바퀴, 글쓰기청동기, 철기, 인쇄술과 같은 범용기반기술이 발명되었고 18세기 중업에 시작된 산업혁명 기간에 범용기반기술이 집중적으로 발명되었다. 대표적으로 증기기관, 공장제도, 철도, 기선, 내연기관 전기자동차, 비행기, 대량생산 기술 등이다.
이렇듯 앞선 두 번의 울트라 메가 혁명기에는 여러 범용기반기술이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면서 종전 제도를 무너뜨리고 사회 전체를 변혁시켰다. 현재 진행 중인 세 번째의 울트라 메가 혁명인 디지털혁명 역시 컴퓨터, 인터넷, 인공지능, 로봇, 바이오테크놀로지, 나노테크놀로지 등의 핵심적인 범용기반기술이 경제 전반의 생산을 획기적으로높이고 사회 전체를 변혁시키고 있다.
커즈와일은 수확가속의 법칙 때문에 21세기 100년 동안 발생할 기술적 변화는 지난 2만 년에 걸쳐 발생한 기술 변화만큼의 크기가 될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1만 년 전쯤 농업혁명이 발생하였으니농경사회의 시작부터 산업사회까지의 발전 단계를 두 차례 반복해서 겪을 것이라는 의미다. 100년이면 너무 긴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향후 10년은 어떤가? 향후 10년 동안의 기하급수적인기술 변화는 최소한 지난 100년 동안의 기술 변화에는 견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P32

경제사적 측면에서 보면 흑사병은 농업사회를 산업사회로 바꾸는게임 체인저였다.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자 노동력이 부족해졌다. 이는 농노들의 임금과 권리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 왔고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을 찾을 필요성을 만들었다. 또한 중세사회의 종식과 함께 사람들은 자유롭게 사고하고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6백 년 전 흑사병이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 팬데믹은 인류 역사의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은 사람들로하여금 집에 머물 수밖에 없도록 하면서 모여서 일하고 공부하고 쇼핑하고 놀던 일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대신 온라인 재택근무와온라인 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온라인 쇼핑과 온라인 엔터테인먼트도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원격 서비스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원격의료 서비스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규제의 틀을 벗고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뿐만 아니다. 디지털화는 경제, 사회, 문화, 정치를 포함한 모든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고 세계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가히 혁명적 상황이다.
이렇게 새로운 일상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인공지능, 빅데이터B%data, 클라우드 컴퓨팅, 디지털 플랫폼, e-비즈니스, 핀테크, 사물인터맛이 등과 같은 디지털 기술이다. 만일 코로나 팬데믹이 10년 전에만 발생했어도 세계는 속절없이 당하기만 했을 터였다. - P35

산업사회 이전까지는 일부의 사람들만 이를 읽고 쓸 수 있었다. 이후 보통교육이 일반화되자 대다수의 사람들이 읽고 쓰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제 소수가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시대뿐만 아니라 과거와지식과 정보를 교환하게 된 것이다.
디지털혁명으로 인류는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를 만들고 있다. 디지털혁명이 만들어낸 첫 번째 단계의 초연결사회는 20세기 말인터넷 보급과 WWW의 확산과 함께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컴퓨터를 통해 전 세계의 지식과 정보를 몇 번의 클릭만으로 탐색하고 서로 이러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지식과 정보를 암기하는 능력보다는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지식과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이 중요한 세상이 된 것이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디지털사회는 더욱 빠르고 손쉬운 초연결사회가 되었다. 이제는 컴퓨터 대신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빠르고 간편하게 세상과 연결이 가능하다. 게다가 스마트폰은 1970년대의슈퍼컴퓨터보다 100만 배나 더 성능이 좋은 ‘울트라 슈퍼컴퓨터‘이다.
디지털혁명이 만든 초연결사회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제 2차원의 초연결사회가 3차원의 메타버스 초연결사회로 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로블록스 Roblox와 같은 메타버스에서 게임과 온라인 콘서트를 즐기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에 맞춰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는 페이스북 Facebook이었던 회사명을 메타 플랫폼스Meta Platformis로 변경하고 2차원적인 SNS를 3차원의 메타버스로 바꾸고 있다.  - P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