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 - 우리가 몰랐던 또 하나의 유럽
토니 그리피스 지음, 차혁 옮김 / 미래의창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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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유럽의 모습을 포괄적이고 쉽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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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아시아네트워크 엮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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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흥미롭다.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진 책들이 수없이 쏟아진다. 그 "눈"들은 상당수가 비슷한 색의 안경을 쓰는데 하얀색을 추구한다. "눈"만 그런 사정이 아니라 우리네의 "귀"사정도 만만치 않다. 언제부터인지 혼미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아시아이다. 우리는 우리 이웃을 궁금해하는가? 동정하며 마음 아파하는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해 본 적은 있는가?

이책은 슬프다. 책에는 많은 "이름"들이 나오는데 기억을 더듬으면 저녁뉴스에 출연하셨던 인물들이다. 독재자로 살인자로 그러다 망명하기도 하는 인물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의 제국주의에 무릎을 꿇고 식민지로 눈물을 흘렸고 제나라 주권을 손에 쥔 후에도 냉전의 논리에 휩쓸리고 독재자로 인해 피를 흘렸다. 피를 먹고 자란다는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겪고 목숨을 잃기도 하던 시기가 있었으며, 지금도 진행중인 나라들이 아시아에는 있다. 최근에 국제뉴스로 알려진 미얀마가 대표적이다. 불행하게도 미얀마의 상황은 불투명해보인다. 유럽연합이나 미국이 경제제재조치를 취한다지만, 중국이 군부의 뒷배를 봐주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군부를 비난하지만, 그 사정이 다 그러할까. 우리나라를 예로 들자면, 대우인터내셔널이란 기업은 미얀마의 잇권사업에 뛰어들어 한몫 챙기고, 무기도 판매한단다. 이 모든 자금이 누구를 위해 씌여질지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애초에 정부에서 미얀마에서 벌이는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해서는 안되는 일일 것이다.

책을 펴면 아시아네트워크를 만들어 온 얼굴들이 보인다. 고맙고 든든한 얼굴들이다. 더많은 얼굴들이 함께했으면 한다. 대만에도 중국에도 몽고나 이집트나 시리아 그리고 이스라엘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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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4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14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19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앨런 2007-12-21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잘 받았다는 인사를 올린다는게 좀 늦어졌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올해도 얼마남지 않았네요.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복된 새해를 맞이하시길 ......^^
 
상식 밖의 세계사 지혜가 드는 창 5
안효상 지음 / 새길아카데미 / 199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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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는 중요하다고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나 잘못 알려진 것들을 드러내주거나, 또 중요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교과서나 역사서에서 잘 다루지 않는 것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 책의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또 쉬운 접근을 위해 67개의 장면으로 나누었고 책말미에는 읽는 이들을 위해서 30권의 읽을거리를 덧붙여주는 인심도 베풀었다. 책을 읽으며 또 다른 책을 만나는 것은, 읽는 이의 입장에선 늘 버거운 즐거움이다. 67개의 각기 다른 역사 속의 궁금증들. 물론 헤아릴 수 없는 왜?로 둘러싸인 게 역사지만, 그 중에서 언급된 67개 속에서 몇 장면을 들추어보면,

67-2. 태양신이 하사한 함무라비법전

세계사 시험에도 가끔 등장하던 그 법전이다. 그런데 태양신이 주었다고?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개방된 평야지대로 권력의 교체가 잇따랐다. 기원전 2350년경 셈족인 아카드인이 처음으로 통일왕국을 세웠으나, 얼마 못 가 아무르인이 이 지역을 통일했다.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그는 중앙집권적 체제를 정비하고 법전을 만들었다. 1901년 프랑스의 드 모르간이 이끄는 페르시아탐험대가 수사에서 발견했다. 이 돌기둥에는 함무라비왕이 태양신으로부터 법전을 받는 광경이 조각되어 있고, 282조로된 법률조문이 이란의 고대문자인 설형문자로 새겨져있다. 이 함무라비법전은 최초의 성문법전인데, 현재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모셔져있다.  

생각 하나---함무라비법전은 이란의 유물인데 왜 보관은 프랑스가 하면서 돈까지 벌까! 이란에 박물관이 없어서는 아닐것이고 역사의 위대한 유물들을 훔쳐 한 곳에 전시하면서 명성을 쌓고 싶은 문화대국(?)의 긍지때문이 아닌가 한다.

67-14. 당고조, 당태종은 중국사람이 아니었다.

중국의 역사는 한족과 이민족이 반반씩 이뤄놓은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예로, 5호 16국 시대에는 이민족과 한족은 문화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호한체제라는 정치문화형식을 발전시켰다. 화북을 통일한 선비족의 북위정권이 지나치게 한화정책을 취하자 6진의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6진의 하나인 무천진 군벌에 속하는 인물들이 수를 건국한 수문제 양견과 당고조 이연의 할아버지 이호 등이었다. 이씨 집안은 원래 대야씨 성을 가진 호족이었다. 수와 당은 고구려를 침략할 때도 수양제, 당태종, 당고종은 직접 전장에 나서 전투를 지휘했으며 당태종은 유목민의 군주를 가르키는 칸을 덧붙인 칭호 천가한이라 불리길 좋아했다. 이는 모두 유목민의 영향이다. 또 당고종이 당태종의 후궁이던 무조(측천무후)를 자신의 황후로 삼은 것이나 현종이 태자비인 양옥환(양귀비)를 귀비로 맞은 것 등은 북방유목민들 사이의 관습이었으며, 또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황제 측천무후의 등장도 여권을 존중하던 유목민의 영향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당제국의 국제성이야말로 유목민의 개방성에 연유한 것이다.

생각 둘---수와 당의 건국세력이 유목민(선비족)인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다양한 문화의 꽃을 피운 당의 바탕이 유목민의 호방함과 개방성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최근 중국에서 흘러나온 허무맹랑한 주장, 칭키츠칸이 중국인이라는 것을 믿어줘야 하는지? 아니라면 북방유목민이 지배세력이었던 그 시대를 흠모해서 칭키츠칸을 한족의 조상으로 긴급 영입하고자 하는 뜻인건지? 그들의 광대한 땅만큼 광대한 상상력의 탓인것인지................

 67-25. 다빈치가 한밤 중에 공동묘지에 간 이유

다빈치는 14세때 조각가로 유명한 화공인 베로키오 밑으로 들어가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화공길드는 토목, 건축, 회화 등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했다. 1482년 밀라노로 간 다빈치는 군사기술자, 측량과 지도제작, 기중기의 고안, 운하건설, 궁정오락연출, 비행기와 헬리콥터의 설계도를 작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해부도도 남겼는데, 매우 정확할 뿐만 아니라 인체에 대한 그의 철학적 성찰이 담겨있었다. 당시엔 해부가 엄청난 죄악으로 교회의 금지령 아래에 있었지만 그는 약 30구의 시체를 해부했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기위해 한밤 중에 묘지에서 시체를 파내어 촛불로 비추어가며 해부했다고 한다.

생각 셋---다빈치는 자신의 천재성의 크기에 비례하는 성실과 열정을 가진 흠모하기에 마땅한 사람이다. 몇해전 예술의 전당에서 다빈치 전시회가 있었다. 이 전시회에서는 다빈치의 노트가 자세히 공개되었었는데, 그의 수많은 해부도는 대단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여러 해부도는 다양한 인체를 대상으로 한 것도 놀라웠지만, 그 묘사는 사진으로 찍은 듯 했다.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시 태어날 대상에 대한 열정으로 그 시신들 앞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교차했을지. 서슬퍼런 교회법 아래에서도 예술에 대한 그의 사랑은 자신을 다독이는 힘이었을 것이다.

67-67. 오키나와는 독립왕국이었다.

극동 최대의 미공군기지를 보유하고 있는 오키나와는 사실 불과 100여년 전인 명치유신 무렵까지는 류큐라는 독립왕국이었다. 류큐왕국이 역사서에 등장하는 것은 1372년으로 명나라 홍무제의 요청에 응해 명나라에 조공했다는 기록이 있다. 류큐왕국은 3개의 정권으로 분열되어 존재하다가 1429년에는 통일정권이 수립되었고 16세기에는 동지나해 일대에 무역영역을 갖는 전성기가 시작된다. 번성하던 류큐왕국은 1609년 쓰시마 번의 침략을 받는다. 이에 류큐왕국은 이중조공외교로 유지되고 있다가, 1872년 명치 신정부가 류큐를일개 번으로 만들어버렸다. 1879년에는 오키나와 현에 편입되는데, 2차 대전때 미국의 본토침공작전으로 17만명의 목숨을 잃게 된다. 1945년 4월 니미츠(C.W.Nimitz)포고에 의해 미군정이 시작되고 거대한 미공군기지가 되었다가 오키나와는 1972년 5월에 일본에 귀속된다. 당시 미 닉슨대통령은 동맹국들의 책임분담정책을 펴는데 이때 교섭에 의해 귀속된 것이다. 오키나와 내에서는 독립론이 일어나 정당이 결성되기도 했지만 묵살되었다.

생각 넷---약소국의 비애다. 두 강국의 거래에서 약소국의 독립의지는 존재조차 없다. 우리나라도 일제시대 이후 주권을 회복하기까지 수많은 회담에서 강대국들의 거래탁자에서 좌지우지 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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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에릭 두르슈미트 지음, 강미경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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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에서 전쟁, 전투 또는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해가 있을까! 인간은 땅위에 발을 디디며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왔다. 따라서 전쟁은 인간사회의 모든 모순이 적나라하게 폭발하는 역사의 축소판으로 관심이 대상이 된다. 저자는 2차 대전 즉 히틀러로 인해 전쟁에 대한 탐구욕을 갖게 되었다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고른 10개의 전투(전쟁)가 담겨있다. 10개의 전투는 원칙에 대한 무관심, 승리에 대한 집착, 콤플렉스와 자신감부재, 열정과 책임감 상실,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실패에 대한 감정적 대응, 기술발전에 대한 무지, 사적 감정에 대한 집착, 정보에 대한 긴장감 결여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대한 무관심의 예이다. 읽다보면 지도자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더욱 큰 변수는 정작 '우연'과 '불확실성'이 함께 한다는 거다.

전략의 아버지 클라우제비츠는 말했다. "전쟁에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지도자의 능력이고, 우연과 불확실성은 어떤 전쟁에서나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라고.

탕가전투(1914년 11월 5일)는 좋은 사례이다. 탕가는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지역에 있는 도시규모의 지역이다. 독일령 동아프리카 지역을 수비하는 포르베크대령(1차 대전 사상 가장 뛰어난 전술가 중 하나로 평가됨)은 인도에서 보내오는 친독일계의 정보를 통해 영국의 공격을 감지하고, 몇 안되는 독일교관으로 1천명의 원주민을 훈련시킨다. 그가 훈련시킨 부족은 잔인한 전쟁부족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의 모습을 갖주게 되었다. 한편 당시 영국은 대영제국이라는 자부심으로 빛나는 에이트킨 소장이 이끌고 있었는데, 그는 인도용병으로 주축을 이룬 병사를 함대에 실었다. 불행하게도 이 부대는 제대로된 훈련은 커녕 서로 의사소통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인도부대는 기관총을 너무 비싸고 병사를 게으르게 한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았다.(기관총은 1898년 아프리카에서 광신적 종교집단과 싸우던 영국인이 개발했으며 일명 맥심이라 불림) 1914년 11월 2일 탕가 앞 바다에 나타난 에이트킨 소장은 정찰도 없이 망그로브 늪지대에 부대를 상륙시키고, 4일에는 사전정찰도 하지 않고 진격을 한다. 결과는 3백명의 영국병사의 시체뿐. 그 와중에도 시내에 진입한 구르카부대(네팔에 사는 용맹한 부족으로 반월도를 주로 씀)는 반격하는 원주민병사들과 피비린내나는 전투를 치른다. 이때 가장 중요한 요소-불확실성이 등장한다. 늪지는 죽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데, 나뭇가지에는 시가모양의 바구니들이 빽빽하게 매달려 있다. 이 바구니에는 무서울정도로 공격적이고 거대한 크기의 아프리카벌을 치려고 걸어둔 것인데, 포격소리와 총탄으로 인해 벌집을 쑤셔 놓은 현상이 된 것이다. 벌통에서 쏟아져 나온 성난 벌들은 영국군을 공격했고, 그들의 화가 다 풀린 후에는 사상자가 독일군 70명, 유럽인 15명, 원주민 병사 54명인데 비해 영국군은 800명이 죽고 800명은 다치거나 행불자가 되었다. 패배한 영국함대는 몸바사로 돌아갔다.

이 책에 기록된 전투를 읽다보면 죽어간 군인이나 민간인이 숫자로 쓰인다. 그들은 전투시엔 일종의 무기가 되어 선다. 얼치기 지도자는 그들의 죽음을  되지도 않는 변명으로 자위하고 그 뒤에 숨는다. 지금도 우리사는 세상 어디에선 총성이 나고 폭탄이 터진다. 그리고 우리땅도 외면하고 싶지만 엄청난 무기들이 맞서고 있다. 현명하고 성실한 그리고 패배에서 교훈을 거두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이다.

덧붙인 글-읽다보면 화도 나지만, 다 읽고 나니 실패만큼 소중한 선생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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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엘리자베스 키스 외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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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포탈사이트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생소했기에 망설이다 구입한 책.

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얼마나 섭섭했을까 싶다.  그리고 번역하신 송영달님께 더욱 고맙다. 옮긴이 송영달님은 외국인의 눈을 통해 본 한국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일념으로 이 책을 번역하였다고 하며, 그가 소장한 귀한 그림까지 보여 주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목판화가로 자리매김한 화가이다. 그녀는 특히 그림을 그리기위해서는 "나의 특별히 사랑하는 한국"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녀의 저서에서도 밝힐 정도로 이 땅에 마음을 둔 사람이었다.  이 책에 실린 많은 그림들이 하나같이 사랑스럽고 애잔하다. 특히, 그녀가 아름다움을 강조한 원산은 내 마음도 동하게 한다. 전엔 북쪽의 땅과 풍광에 그리 마음이 끌리지 않았는데, 인상적인 한국의 풍광편에 실린 원산은 정말 근사하다. 더하여 동대문의 모습도 또 그 시대를 살아간 우리네 조상들의 모습도 놓칠 수가 없다.

예전 우리네 조상들의 모습과 이 땅의 모습이 외형은 많이 변하였지만, 어쩐지 옆에 있듯이 가깝게 느껴지고, 또 힘들고 고단한 시대를 만든 조상들을 원망하던 나의 생각도 스러졌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을 키스는 강인하고 용감한 사람들로 묘사한다.  그들의 마음과 행동에서 일제에 굴하지 않는 기백을 느낀게다.

책을 사랑하거나 그림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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