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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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도전을 받게 되었을 때, 그 전에 전혀 도전받은 적이 없었다면, 훨씬 지나치게 앙갚음을 하는 법입니다. 비록 그 상대가 검은 보닛을 쓴 몇 명의 여자라 하더라도 말이지요. p.150

당신은 이런 일을 할 능력이 없고, 저런 일은 해서는 안 됩니다! 대학 연구원과 학자들만이 잔디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인들은 소개장 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열망을 품은 우아한 여류 소설가들은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처럼 그들은 경마장의 울타리에 몰려든 관중들처럼 그녀에게 계속 소리를 질렀고, 그녀가 치를 시험은 오른쪽이나 왼쪽을 돌아보지 않고 울타리를 넘는 것이었지요. 만약 당신이 욕설을 퍼붓기 위해 멈춰 선다면 당신은 파멸이라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지요. 비웃기 위해 멈추어도 마찬가지라고 말입니다. 망설이거나 더듬거린다면 당신은 끝장이다. 오로지 뛰어넘는 것만을 생각하라. 나는 그녀의 등에 내 온 재산을 건 것처럼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새처럼 그것을 가볍게 넘었습니다. 그러나 그 너머에도 울타리가 있고 또 그 너머에도 있었지요. 박수 소리, 고함 소리가 신경을 마모시키고 있었으므로 그녀가 지구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최선을 다했지요. pp.142-3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요. 그리고 여성은 그저 이백 년 동안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성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일말의 기회도 없었던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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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사상의 세계 살림 클래식 1
벤자민 슈월츠 지음 / 살림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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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을 살펴보면, 고대 중국에는 조상숭배와 자연 만물의 정령에 대한 관심이 널리 퍼져 있었다. 산 자가 숭배하는 조상들은 "생사의 장벽을 초월하는 가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식되었고, "공동체에서 가족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했다."(36) 선조들은 산 자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존재였기에, 후손들은 "그들이 속하는 계보의 적절한 제의 행위"를 중요하게 여겼다. 신성한 것과 인간적인 것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이 지점에서 우리는 종교적 의식은 물론 "사회적 행위, 에티켓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정들을 포괄하는 후대의 범주, 예禮의 맹아를 발견"할 수 있다.(39)


누구나 혈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상숭배는 일종의 "만인평등의 종교"였으며, 따라서 정치 지배를 합법화하는 궁극의 원천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왕족 계보의 지도자들이 혈통 정당성의 원천을 "자연의 신명한 위력에서 찾아야 하는" 당연한 이유가 존재했던 것이다. 평화와 조화의 정신, 제례의 예절 등을 앞세우는 공동체의 중심 가치는 "질서"이며, 이 우주적 가족 질서는 "명확하게 정의된 역할과 신분, 신성한 의례와 체계로 결속된" 사회, 정치적 모델로 작동했다.(53) 왕은 지배 영역 전체를 순수巡狩하면서, 지역 신들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고, 통치 권력의 정당성을 자신의 조상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통치하는 제帝의 권력"에서 이끌어낸다.(57)


주周의 창건자들은 물리적 하늘인 "천天과 상제上帝의 결합"을 열망했다. 이제 최고신은 어떠한 왕족의 계보에도 속하지 않으며, 왕을 대하는 하늘의 태도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행동 기준에 근거"(74)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하늘은 왕조의 성쇠를 결정하는 "최고의 도덕 의지"이자 "역사의 신"으로 자리잡았고, 자연과 조상 숭배는 "세심하고 경건한 제사와 의례의 수행을 통해 통치자의 덕을 측정하는 판단 기준"의 하나로 남았다.(77) 천天을 자의적이지 않은 지고의 활동 의지로 보는 관점은, "상商의 멸망에 관한 의지를 드러내고 주를 선택하여 천명을 계승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유신론적 측면"을 드러낸다.(81-2)


공자는 <논어>에서 제의와 의식儀式, 윤리를 포괄하는 객관적 규정들과 도덕을 포괄하는 내면적 삶의 관계를 고찰한다. 공자에게 예는 "가장 구체적 차원의 행위에 관한 모든 객관적 규정"이자, "인간과 영령들을 한데 묶어주는 기능"을 담당한다. 예가 공동체의 접합체 역할을 하는 이유는, 사회 안에서 "역할, 신분, 계급, 지위에 의해 상호 연결된 개인들의 행위"와 관계하기 때문이다.(106-7) 예는 삶을 규정하는 법칙이지만, 모든 상황을 포괄하지는 못한다. 여기서 "'올바름'이나 '적합함'으로 번역"되는 의義가 도입되는데, 의는 예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삶의 광대한 고유 상황들에 적용되는 올바른 행위"를 가리킨다.(124)


인仁은 "사회적 덕성과 예를 본연의 정신에 맞게 수행하는 능력"을 포괄한다.(118) 인은 도덕적 역량일 뿐만 아니라 자기 수양을 철저히 실천하려는 "실존적 목표"이기도 하다. 공자는 누구에게나 인의 성취 방법, 즉 "군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다"고 보았다.(121) 예는 생득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서 내면화하는 덕목이며, 인과 관련된 덕성들을 성취하려는 부단한 의지를 통해서 표출된다. "인은 예에 적절한 정신을 주입하며, 예의 잠재적인 역량에 생명을 불어넣는 능력이다."(126) <논어>에는 학습하지 않는 사람은 "인의 최고 실현을 성취할 수 없다는 점이 암시된다."(129)


"공자의 학습과 지식의 개념이 갖는 뚜렷한 함의는 사회, 정치적 삶에 관한 것이다."(150) 통치자는 마땅히 "참된 지식을 획득"해야 하고, 참된 지식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학습과 지식이 없으면 도는 회복될 수 없다."(151) 이처럼 스스로를 기르는 인간에게 본이 되는 것이 바로 '천天'이다. 하늘은 인간들에게 "과거에 실현된 적이 있는 하늘의 질서에 관한 지식을 부여"하고 "그 질서의 실현에 착수하는 능력"을 부여한다. 또한 하늘은 "군자가 불행과 절망에 처해서도 인을 통해 깊은 평정심과 고요를 성취할 수 있게 해준다."(197-8) 공자에게 하늘은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행하지는 않지만, 모든 길을 예비해 둔 '만물의 주관자'이다.


묵가는 어떠한 의식적 활동도 통제할 수 없는 "비인격적 질서로서의 세계 개념"을 배격하고, "신과 인간의 집요한 의지와 노력으로 성취되는 세계"를 지향한다. 묵자가 보기에 인간 사회의 질서는 "하늘, 귀신,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의도적인 협력을 통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218-9) 이기적인 성향을 지닌 '자연 상태'의 인간들을 치유하는 방법은, "천하의 보편 이익이 이루어진 후에야 개인들의 진정한 이익이 달성"된다는 공리주의적 관점을 주입하는 것이다.(226) 묵자는 예악의 '마술적' 기능을 부정하여, 예의 실천이 실행자의 '정신적 미덕'을 강화하거나 영혼을 고양시키지 못한다고 보았다.


묵자는 과학 기술적 혁신을 '발전'의 관점보다는 "전쟁, 무절제한 사치, 과시와 같은 문명의 병리 현상"들과 연계해서 보았다. 현존하는 경제적 과학 기술과 생활 공예의 전통만으로도 인류의 적절한 생계를 보장하기에 적합하다. "문제는 '생산력 증가'가 아니라 '분배'의 과제이다."(242) 그러나 인류의 '보편 이익', 곧 겸애兼愛가 경제적, 정치적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묵가의 핵심적인 특징은 '조직화의 충동'으로서, 하늘의 의지와 합일을 이룬 천자를 중심으로 하는 위계 질서이다. "백성들은 반드시 유능한 지도자聖王에 의해 인도"(250)되어야 하며, 성왕은 '이기적이지 않고, 인식하지 않으며, 영원히 밝은' 하늘의 의지를 따라야 한다.


묵자와 공자는 문명적 규범의 성취가 "성인, 군자, 현자들의 의도적이고 부단한 도덕적 노력을 요구한다는 점을 확신한다." 도가의 관점에서 보면, "유가의 군자와 묵가의 현자는 모두 유위有爲를 통해 인간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세계를 떠돌며 자신을 기만하는 호사가好事家들이다."(297) 본래 중국 사상에서 '질서'란 부분으로 환원 가능한 전체가 아니다. "질서는 부분들에서 건립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유기적 패턴이다." 질서는 다수의 개별 요소와 관계들로 구성되지만, 언어적 이해의 차원을 초월하는 "모종의 파악 불가능한 통일 원리가 이 질서의 핵심에 존재한다."(302)


노자는 인위적 규범의 무용함을 역설하지만, 정치 질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는 복희服羲같은 도가 성왕이 "문명의 병리 현상을 되돌릴 수 있다고 암시한다."(327) 성왕은 모든 문명 사업을 최소한으로 축소하여, 백성들을 단순한 삶으로 침잠하게 한다. 이러한 "성왕의 문명 거부 정책은 그 자체로 유위함"(329)이며,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의 모순이다. 장자가 보기에 문명을 지향하는 인간의 병리 현상은 '선천적'인 질병이므로 성왕도 이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 장자의 진인은 노자의 '원시주의적' 해결 방안조차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 세계를 아름다움과 추함으로 구분하는 문명의 시각을 거부하고, 온전히 세계를 그 자체로 긍정하는 신비가이다.


공자 사후, 공자의 이상은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세상에는 이미 "부국강병을 국가의 주요 목적으로 선포한 진秦의 법가 재상 상앙商鞅과 자주적 군사 과학의 수립에 열중해 있던 군사 이론가 손자孫子 및 전기田忌" 같은 이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394) 이런 상황에서도 맹자는 "역사를 주관하는 하늘의 섭리"와 "도덕적 권고를 통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군자의 능력"을 확고하게 믿었다. 맹자의 논점은 "목적 그 자체로서의 인의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 능력이 전제되어야만 선한 사회적 결과가 성취된다는 것"이며, "선한 사회의 달성이 전적으로 선한 인간들의 타고난 도덕 성향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402-3)


맹자는 지식[知]과 사유에 대한 자발적인 노력[學]을 통해 감각적 욕구를 향한 '본성'을 제어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순자는 "인의를 향한 타고난 자연적 경향이 없다고 주장한다."(447) 순자는 자연 상태의 인간들이 분출하는 강렬한 욕망을 통제하는 것은 "교육과 도덕적 설득으로 내재화되는 예의 법칙들"이 아니라 "물리적 강제력에 의존하는 외적인 형법과 제도들"이라고 말한다.(451) 공자와 맹자는 무력의 적극적인 역할을 약화시키려 노력했지만, <시경>과 <서경>의 구절들을 보면 군주의 덕은 "그들의 의로운 형벌에서도 나타난다."(495) 사회 질서에서 무력의 역할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은 상당히 오래된 전통이다.


다행히도 하늘은 "선을 향한 본유 성향들을 제공하지 않았지만, 인간 상황을 이해하는 지적 능력인 "천심天心"은 마련해 주었다."(456) 여기서 엄청난 지적 노력으로 예의 정신을 '내면화'하는 데 성공한 군자의 역할이 중요시된다. 군자는 예를 임의적으로 창안하지 않고, 끈기 있는 사유를 통해 예를 '발견'한다. "예는 광대한 우주적 패턴의 일부이며,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공리주의적 장치를 초월한다."(461) 순자는 "예는 인생에서 우리의 기쁨을 장식하는 수단이요, 죽은 이에 대한 장례에서는 우리의 슬픔을 장식하는 수단"(凡禮, 事生, 飾歡也. 送死, 飾哀也)이라고 말하면서 예약을 배척하는 묵가 및 법가와 분명한 선을 긋는다.(459)


법가의 "공리주의적 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전혀 없을지 모르는 국력의 증가이다."(503) 상앙은 패업을 이룩할 수 있는 부강한 국가의 건설이라는 역사적 목표에 집중하여, "형법과 보상에 관한 통합 체계와 함께 백성들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유도하는 장치들을 제공한다." 한비자가 보기에 상앙의 사회 재편성 모델은 "군주에 의해 실행되어야 하고, 군주는 관료제도를 통해서만 이를 실행할 수 있다."(511) 즉, 효과적으로 관료제도를 구성하고 통제하는 술術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한비자는 여기에 군주의 '위세'라는 권력의 신비로운 원리를 추가하여 법가 프로그램을 완성한다. 


"완전히 실현된 법가 이상향에서, 군주는 법과 술의 비인격적 기제들을 통해 사회를 통제한다."(520) 한비자는 '현자'나 '성왕'의 역할을 경멸하여, 제도적으로 이들의 역할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했지만, "오류에 찬 사적 이론들의 수요를 최종적으로 제거해 줄 진정한 행동과학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참된 이론을 소유한 상앙이나 자신과 같은 현명한 개인들"이라고 보았다.(521) 진정한 현자와 개명한 군주에 의해 탄생한 법가의 이상향은 인간적 개성의 변덕이 야기하는 유위有爲가 소거된 채 작동하는 공동체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법가의 이상향은 도와 합일된 진실로 '자연적'인 체계이며, 이는 도가의 무위자연이 성취된 사회와 일맥상통한다.


"공자는 자신에게 기성 군주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대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한비자는 자신의 방법들[術]을 시행할 수만 있다면 완전히 새로운 사회 질서를 창조할 수 있다는 숭고한 자신감을 표명한다. 순자도 선한 군주들과 현자들이 사회 질서를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신념을 가졌다. 심지어 노자조차 성왕의 무위적 영향에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중국의 고대 사유는 "엘리트들의 사회 형성 능력에 대한 높은 신뢰와 사회, 정치적 질서의 관념에 대한 낙관적인 해석"(626)을 내면에 간직한 채, 의미 있고, 창조적이며, 고통스러운 중국 사상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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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 한국사회를 움직인 대법원 10대 논쟁 김영란 판결 시리즈
김영란 지음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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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과 실질은 대립하는가? 법法이라는 형식은 현실이라는 개별 사태를 최대한 포괄하려는 누적적 시도이지만, 언제나 현실에 후행한다. 그런 측면에서 새로운 사태를 기존의 형식으로 재단하는 일은 한계가 뚜렷하며, 둘을 화해시키려는 노력은 손에 닿으면 흩어지고 마는 신기루를 붙잡는 것처럼 지난한 과정이다. 새로운 사태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진단과 해석이라는 설명을 넘어 그 의의를 담아낼 수 있는 설명모형을 수립하고자 노력하는 일이며, 형식과 실질간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 부단히 미지의 영역으로 전진하는 일이다. 이는 형식과 실질이 균형 잡힌 속도와 크기로 함께 자라도록 돌보는 일이며, 기존의 판단 근거에 매몰된 정신을 깨우는 일이다. 


형식과 실질 사이는 선 하나로 그은 경계선처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생존 최우선주의부터 공존 최우선주의까지 제각기 삶의 본능과 가치관이 살아 숨쉬며, 때로는 투쟁으로, 때로는 화합으로 생태계를 조성하는 너른 회색지대가 펼쳐져 있다. 저자가 정리한 10가지 쟁점 역시 두 개의 강고한 입장이 맞부딪힌다기보다는 각자의 의견 아래 별개의견과 보충의견이 달리고, 반박과 재반박이 허용되는 살아 있는 논쟁의 표본들이다. 숙고로 판결에 참여하고, 성찰로 쟁점을 되짚어보며, 집필로 노정을 공유하는 저자의 노력은 독자들 자신이야말로 민주사회의 일원으로 이 작업에 참여할 의무와 권리를 갖고 있다고 나직하게, 그러나 힘주어 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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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7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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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독일을 수놓은 상인(부르주아)의, 상인에 의한, 상인을 위한 전환기 삶의 여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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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30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30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술의 사상 - 시라카와 시즈카, 고대 중국 문명을 이야기하다
시라카와 시즈카.우메하라 다케시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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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한자의 주술 - 복문, 금문


시라카와 : 은이라는 나라는 대통일을 이룬 왕조가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인지라. 그러니까 씨족 세력을 통합한 정도예요. 그리고 여기저기에 자기의 왕자를 파견해서 분자봉건分子封建이라는 방식으로 통합을 위한 정치력을 얻었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각 부족이 불만을 갖고 분리하면 곧바로 붕괴되고 마는 구조지요. 국가라고 할 수 없는 형태였지요.

우메하라 : 그래서 신이 절실하게 필요했겠군요.

시라카와 : 그렇지요. 절대적인 신이 없으면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을테니까요. p.37

 

시라카와 : 신성왕조는 이러저러한 이민족들에 대한 지배를 포함해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신이 되어야만 하는 거지요.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신과 소통하는 수단이 바로 문자였다고 할 수 있지요. ... 갑골문의 경우, 신에게 "이 문제에 대해 해답을 주세요"라는 식으로 묻는데, 신이 직접 답을 하는 게 아니라서 자기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물어서 "신도 승낙했다"고 선언하는 것이지요. p.26


시라카와 : 나무를 세운다는 것은 기둥을 세우거나 굿을 할 때 장대를 세우는 것처럼, 신을 부르는 방법이기 때문에 매우 의미가 깊어요. 이렇게 종횡으로 묶은 나무 매듭에 축사祝詞를 넣은 그릇을 붙여요. 여기는 신성한 장소야, 이 공간은 신성한 장소야, 라고 말하는 거지요. ... 이것이 현재의 '재才'예요. 여기에 봉분을 한 무덤을 덧붙이면 '존재存在'의 '재在'가 되지요. 여기에 사람이 살게 되면 '존存'이 돼요. 따라서 '존재'라고 하는 것은 '신성화한 땅과 사람'이라는 의미예요. 그저 있다는 뜻이 아니에요. 신에 의해 '축복받은 것', '정화된 것'이라는 의미지요. p.42


2장 공자 - 광자의 행로


시라카와 : ('儒'자를 보면) 위에 비(雨)가 있어요. 아래에 而는 사실 사람의 모습으로 머리카락을 묶지 않은 사람의 모습을 뜻해요. 보통이라면 머리카락을 묶고 비녀를 꽂아 머리를 정리하지요. 거기서 夫라는 글자가 생겼어요. 그런데 而는 비녀를 꽂지 않은 특이한 모습이에요. 儒는 복장이나 모습도 달랐어요. 이들이 기우제를 맡았기 때문에 儒의 본래 의미는 '비를 기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비가 내리면 '濡'가 되는 거예요. 따라서 유가는 이처럼 무축巫祝 출신이에요. p.114


시라카와 :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로는) 먼저 무리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교조로서 행동하지 않았어요. ... 그리고 스스로 성인이라고 칭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면 반드시 부정했어요.

또 누군가 인간으로서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은 무엇인지 물으면 공자는 이념적으로는 중용中庸을 지키는 인간이 가장 좋다고 대답해요. 중용이 가장 좋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중용을 잃지 않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 물으면 '광견狂狷'의 무리가 좋다고 대답해요. '광'은 진취적인 사람이에요. '견'은 죽어도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는 식의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에요.

우메하라 : 그것은 '중中'과는 반대가 아닙니까?

시라카와 : 광견의 무리가 좋다고 대답하지만, 지혜로운 자가 좋다고는 말하지 않아요. ... 공자는 몇 번이고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그러나 번번이 실패하고 제齊나라에서 도망치거나, 또는 위衛, 송宋, 진陳, 채蔡나라에서 초나라까지 도망쳐야 했어요.

...

우메하라 : 무녀의 사생아, 그리고 실패한 혁명가라면 광견이 맞겠군요.

시라카와 : 그래서 공자를 깨달은 인간의 부류에 넣어서는 안 되지요. (웃음) pp.72-3


시라카와 : 만약 그가 성공했다면 한 사람의 정치가로 삶을 마쳤을 거예요. 그런데 그는 마지막까지 실패했고, 방랑을 해야 하는 참담한 삶을 살아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삶 자체가 하나의 사상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유교라는 사상 체계가 만들어지게 되었지요. 즉 그의 인격적인 구심력이 많은 제자를 불러 모았어요. 유교의 사상이라는 것은 실제로 그 제자들에 의해 구성된 것이에요. 핵심이 되는 부분은 공자가 말한 것이지만, 그것을 유교적인 체계로 조직한 것은 그의 제자들이지요.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지요. 본인들은 그런 대단한 것을 말하지 않았어요(웃음). p.104


3장 <시경> - 흥興의 정신


시라카와 : 문자를 통해서 살펴보면, '興'이라는 글자의 윗부분은 '同'이라는 글자를 써요. 이렇게 술을 따르는 대롱(筒) 모양의 용기예요. 이것을 양손으로 쥐고 양손으로 바치는 것이 '興'이라는 글자예요. 그리고 양손으로 술을 따르는 것 또한 '興'이라는 글자예요. 술을 땅에 붓는 거지요.

왜 이런 일을 하는가 하면, 어떤 곳에서 어떤 행사를 하게 되어 의례를 거행하는 경우에, 먼저 그 토지의 신을 안심시키고 진정시켜야 해요. 토지의 신을 진정시킬 때에 '同'이라는 잔에 술을 따르고 모두 술을 땅에 부어서 토지의 정령을 달래는 거지요. 그렇게 하면 토지의 정령은 그 행위 때문에 잠에서 깨요. '興'이라는 것은 '잠에서 깬다',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의미가 있잖아요. 잠에서 깬 토지의 정령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듣게 되지요. 토지의 정령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흥'이에요. 따라서 '흥'이라는 것은, 노래를 통해서 어떤 것이 지니고 있는 내적인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의미하지요.

... 얼핏 보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를 통해 주제를 끌어낸다는 의미가 있어요. '흥'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주제를 끌어낸다는 의미를 지니는 거지요. 원래는 토지의 정령을 불러 깨우는 것이 '흥'이지만, 그것을 확대해서 수사법에 적용시킨 거예요. pp.198-9


시라카와 : 당시의 사람들은 자연 그 자체를 영적인 세계로 여겼고, 그러한 영적인 세계의 다양한 발신發信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 세계가 '주呪'의 세계예요. ... <시경>에도 이 '흥'적 발상법을 가진 노래는 거의 대부분 주술적인 노래예요. p.203


시라카와 : (은나라는 아직 신화를 갖고 있어서 신화적인 세계관 아래에서 제정일치적인 정치를 하던 신성왕조였는데) 주나라는 그것을 무너뜨렸어요. 그렇지만 주나라는 은나라의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신화 체계를 갖고 있지 않았어요. 따라서 우리는 천명에 의해 왕권을 쥐었다는 것 이외에 왕권의 근거를 보여줄 것이 없었지요. 그래서 천명을 받았다고 말했던 거예요. 정치의 이념으로 천명이 주장되었기 때문에 <시경> 속에서는 주술적인 관념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구요.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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