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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사상의 세계 ㅣ 살림 클래식 1
벤자민 슈월츠 지음 / 살림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갑골문을 살펴보면, 고대 중국에는 조상숭배와 자연 만물의 정령에 대한 관심이 널리 퍼져 있었다. 산 자가 숭배하는 조상들은 "생사의 장벽을 초월하는 가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식되었고, "공동체에서 가족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했다."(36) 선조들은 산 자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존재였기에, 후손들은 "그들이 속하는 계보의 적절한 제의 행위"를 중요하게 여겼다. 신성한 것과 인간적인 것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이 지점에서 우리는 종교적 의식은 물론 "사회적 행위, 에티켓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정들을 포괄하는 후대의 범주, 예禮의 맹아를 발견"할 수 있다.(39)
누구나 혈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상숭배는 일종의 "만인평등의 종교"였으며, 따라서 정치 지배를 합법화하는 궁극의 원천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왕족 계보의 지도자들이 혈통 정당성의 원천을 "자연의 신명한 위력에서 찾아야 하는" 당연한 이유가 존재했던 것이다. 평화와 조화의 정신, 제례의 예절 등을 앞세우는 공동체의 중심 가치는 "질서"이며, 이 우주적 가족 질서는 "명확하게 정의된 역할과 신분, 신성한 의례와 체계로 결속된" 사회, 정치적 모델로 작동했다.(53) 왕은 지배 영역 전체를 순수巡狩하면서, 지역 신들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고, 통치 권력의 정당성을 자신의 조상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통치하는 제帝의 권력"에서 이끌어낸다.(57)
주周의 창건자들은 물리적 하늘인 "천天과 상제上帝의 결합"을 열망했다. 이제 최고신은 어떠한 왕족의 계보에도 속하지 않으며, 왕을 대하는 하늘의 태도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행동 기준에 근거"(74)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하늘은 왕조의 성쇠를 결정하는 "최고의 도덕 의지"이자 "역사의 신"으로 자리잡았고, 자연과 조상 숭배는 "세심하고 경건한 제사와 의례의 수행을 통해 통치자의 덕을 측정하는 판단 기준"의 하나로 남았다.(77) 천天을 자의적이지 않은 지고의 활동 의지로 보는 관점은, "상商의 멸망에 관한 의지를 드러내고 주를 선택하여 천명을 계승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유신론적 측면"을 드러낸다.(81-2)
공자는 <논어>에서 제의와 의식儀式, 윤리를 포괄하는 객관적 규정들과 도덕을 포괄하는 내면적 삶의 관계를 고찰한다. 공자에게 예는 "가장 구체적 차원의 행위에 관한 모든 객관적 규정"이자, "인간과 영령들을 한데 묶어주는 기능"을 담당한다. 예가 공동체의 접합체 역할을 하는 이유는, 사회 안에서 "역할, 신분, 계급, 지위에 의해 상호 연결된 개인들의 행위"와 관계하기 때문이다.(106-7) 예는 삶을 규정하는 법칙이지만, 모든 상황을 포괄하지는 못한다. 여기서 "'올바름'이나 '적합함'으로 번역"되는 의義가 도입되는데, 의는 예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삶의 광대한 고유 상황들에 적용되는 올바른 행위"를 가리킨다.(124)
인仁은 "사회적 덕성과 예를 본연의 정신에 맞게 수행하는 능력"을 포괄한다.(118) 인은 도덕적 역량일 뿐만 아니라 자기 수양을 철저히 실천하려는 "실존적 목표"이기도 하다. 공자는 누구에게나 인의 성취 방법, 즉 "군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다"고 보았다.(121) 예는 생득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서 내면화하는 덕목이며, 인과 관련된 덕성들을 성취하려는 부단한 의지를 통해서 표출된다. "인은 예에 적절한 정신을 주입하며, 예의 잠재적인 역량에 생명을 불어넣는 능력이다."(126) <논어>에는 학습하지 않는 사람은 "인의 최고 실현을 성취할 수 없다는 점이 암시된다."(129)
"공자의 학습과 지식의 개념이 갖는 뚜렷한 함의는 사회, 정치적 삶에 관한 것이다."(150) 통치자는 마땅히 "참된 지식을 획득"해야 하고, 참된 지식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학습과 지식이 없으면 도는 회복될 수 없다."(151) 이처럼 스스로를 기르는 인간에게 본이 되는 것이 바로 '천天'이다. 하늘은 인간들에게 "과거에 실현된 적이 있는 하늘의 질서에 관한 지식을 부여"하고 "그 질서의 실현에 착수하는 능력"을 부여한다. 또한 하늘은 "군자가 불행과 절망에 처해서도 인을 통해 깊은 평정심과 고요를 성취할 수 있게 해준다."(197-8) 공자에게 하늘은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행하지는 않지만, 모든 길을 예비해 둔 '만물의 주관자'이다.
묵가는 어떠한 의식적 활동도 통제할 수 없는 "비인격적 질서로서의 세계 개념"을 배격하고, "신과 인간의 집요한 의지와 노력으로 성취되는 세계"를 지향한다. 묵자가 보기에 인간 사회의 질서는 "하늘, 귀신,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의도적인 협력을 통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218-9) 이기적인 성향을 지닌 '자연 상태'의 인간들을 치유하는 방법은, "천하의 보편 이익이 이루어진 후에야 개인들의 진정한 이익이 달성"된다는 공리주의적 관점을 주입하는 것이다.(226) 묵자는 예악의 '마술적' 기능을 부정하여, 예의 실천이 실행자의 '정신적 미덕'을 강화하거나 영혼을 고양시키지 못한다고 보았다.
묵자는 과학 기술적 혁신을 '발전'의 관점보다는 "전쟁, 무절제한 사치, 과시와 같은 문명의 병리 현상"들과 연계해서 보았다. 현존하는 경제적 과학 기술과 생활 공예의 전통만으로도 인류의 적절한 생계를 보장하기에 적합하다. "문제는 '생산력 증가'가 아니라 '분배'의 과제이다."(242) 그러나 인류의 '보편 이익', 곧 겸애兼愛가 경제적, 정치적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묵가의 핵심적인 특징은 '조직화의 충동'으로서, 하늘의 의지와 합일을 이룬 천자를 중심으로 하는 위계 질서이다. "백성들은 반드시 유능한 지도자聖王에 의해 인도"(250)되어야 하며, 성왕은 '이기적이지 않고, 인식하지 않으며, 영원히 밝은' 하늘의 의지를 따라야 한다.
묵자와 공자는 문명적 규범의 성취가 "성인, 군자, 현자들의 의도적이고 부단한 도덕적 노력을 요구한다는 점을 확신한다." 도가의 관점에서 보면, "유가의 군자와 묵가의 현자는 모두 유위有爲를 통해 인간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세계를 떠돌며 자신을 기만하는 호사가好事家들이다."(297) 본래 중국 사상에서 '질서'란 부분으로 환원 가능한 전체가 아니다. "질서는 부분들에서 건립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유기적 패턴이다." 질서는 다수의 개별 요소와 관계들로 구성되지만, 언어적 이해의 차원을 초월하는 "모종의 파악 불가능한 통일 원리가 이 질서의 핵심에 존재한다."(302)
노자는 인위적 규범의 무용함을 역설하지만, 정치 질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는 복희服羲같은 도가 성왕이 "문명의 병리 현상을 되돌릴 수 있다고 암시한다."(327) 성왕은 모든 문명 사업을 최소한으로 축소하여, 백성들을 단순한 삶으로 침잠하게 한다. 이러한 "성왕의 문명 거부 정책은 그 자체로 유위함"(329)이며,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의 모순이다. 장자가 보기에 문명을 지향하는 인간의 병리 현상은 '선천적'인 질병이므로 성왕도 이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 장자의 진인은 노자의 '원시주의적' 해결 방안조차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 세계를 아름다움과 추함으로 구분하는 문명의 시각을 거부하고, 온전히 세계를 그 자체로 긍정하는 신비가이다.
공자 사후, 공자의 이상은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세상에는 이미 "부국강병을 국가의 주요 목적으로 선포한 진秦의 법가 재상 상앙商鞅과 자주적 군사 과학의 수립에 열중해 있던 군사 이론가 손자孫子 및 전기田忌" 같은 이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394) 이런 상황에서도 맹자는 "역사를 주관하는 하늘의 섭리"와 "도덕적 권고를 통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군자의 능력"을 확고하게 믿었다. 맹자의 논점은 "목적 그 자체로서의 인의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 능력이 전제되어야만 선한 사회적 결과가 성취된다는 것"이며, "선한 사회의 달성이 전적으로 선한 인간들의 타고난 도덕 성향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402-3)
맹자는 지식[知]과 사유에 대한 자발적인 노력[學]을 통해 감각적 욕구를 향한 '본성'을 제어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순자는 "인의를 향한 타고난 자연적 경향이 없다고 주장한다."(447) 순자는 자연 상태의 인간들이 분출하는 강렬한 욕망을 통제하는 것은 "교육과 도덕적 설득으로 내재화되는 예의 법칙들"이 아니라 "물리적 강제력에 의존하는 외적인 형법과 제도들"이라고 말한다.(451) 공자와 맹자는 무력의 적극적인 역할을 약화시키려 노력했지만, <시경>과 <서경>의 구절들을 보면 군주의 덕은 "그들의 의로운 형벌에서도 나타난다."(495) 사회 질서에서 무력의 역할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은 상당히 오래된 전통이다.
다행히도 하늘은 "선을 향한 본유 성향들을 제공하지 않았지만, 인간 상황을 이해하는 지적 능력인 "천심天心"은 마련해 주었다."(456) 여기서 엄청난 지적 노력으로 예의 정신을 '내면화'하는 데 성공한 군자의 역할이 중요시된다. 군자는 예를 임의적으로 창안하지 않고, 끈기 있는 사유를 통해 예를 '발견'한다. "예는 광대한 우주적 패턴의 일부이며,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공리주의적 장치를 초월한다."(461) 순자는 "예는 인생에서 우리의 기쁨을 장식하는 수단이요, 죽은 이에 대한 장례에서는 우리의 슬픔을 장식하는 수단"(凡禮, 事生, 飾歡也. 送死, 飾哀也)이라고 말하면서 예약을 배척하는 묵가 및 법가와 분명한 선을 긋는다.(459)
법가의 "공리주의적 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전혀 없을지 모르는 국력의 증가이다."(503) 상앙은 패업을 이룩할 수 있는 부강한 국가의 건설이라는 역사적 목표에 집중하여, "형법과 보상에 관한 통합 체계와 함께 백성들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유도하는 장치들을 제공한다." 한비자가 보기에 상앙의 사회 재편성 모델은 "군주에 의해 실행되어야 하고, 군주는 관료제도를 통해서만 이를 실행할 수 있다."(511) 즉, 효과적으로 관료제도를 구성하고 통제하는 술術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한비자는 여기에 군주의 '위세'라는 권력의 신비로운 원리를 추가하여 법가 프로그램을 완성한다.
"완전히 실현된 법가 이상향에서, 군주는 법과 술의 비인격적 기제들을 통해 사회를 통제한다."(520) 한비자는 '현자'나 '성왕'의 역할을 경멸하여, 제도적으로 이들의 역할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했지만, "오류에 찬 사적 이론들의 수요를 최종적으로 제거해 줄 진정한 행동과학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참된 이론을 소유한 상앙이나 자신과 같은 현명한 개인들"이라고 보았다.(521) 진정한 현자와 개명한 군주에 의해 탄생한 법가의 이상향은 인간적 개성의 변덕이 야기하는 유위有爲가 소거된 채 작동하는 공동체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법가의 이상향은 도와 합일된 진실로 '자연적'인 체계이며, 이는 도가의 무위자연이 성취된 사회와 일맥상통한다.
"공자는 자신에게 기성 군주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대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한비자는 자신의 방법들[術]을 시행할 수만 있다면 완전히 새로운 사회 질서를 창조할 수 있다는 숭고한 자신감을 표명한다. 순자도 선한 군주들과 현자들이 사회 질서를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신념을 가졌다. 심지어 노자조차 성왕의 무위적 영향에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중국의 고대 사유는 "엘리트들의 사회 형성 능력에 대한 높은 신뢰와 사회, 정치적 질서의 관념에 대한 낙관적인 해석"(626)을 내면에 간직한 채, 의미 있고, 창조적이며, 고통스러운 중국 사상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