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특강
제프리 잉햄 지음, 홍기빈 옮김 / 삼천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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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이전에 한 나라의 부富란 "대개 자국의 군사력이라는 '눈에 보이는 손'이 가져오는 결과로 여겨졌다. 물론 나라마다 기후, 토지의 비옥도, 천연자원 같은 부존자원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이런 것들이 가져다주는 이득은 다른 지역을 정복하기만 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즉 경제적 권력이란 군사적 권력에서 비롯되는 결과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18세기 중반이 되면, 천연자원이 보잘 것 없는 네덜란드가 중상주의에 가장 충실한 에스파냐를 제치고 선두국가의 자리에 올라서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에 스미스는 국가의 부가 "상업에 기초한 경제 발전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고 주장했다." 이제 부는 "무수한 개인들이 스스로 자기 이익을 쫓아 움직이는 과정에서 그 결과물로 창출되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경제에서 부의 성장과 분배가 어떻게 벌어지는가 하는 두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두고 완전히 다른 설명이 필요하게 되었다."(17-8)


상업 사회의 세 가지 생산요소인 토지, 자본, 노동의 분화는 "지주, 자본가, 노동자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3대 신분'의 토대를 만들어 냈다. 3대 신분이 서로 맺고 있는 상호 의존관계의 근원은 지대, 이윤, 임금 사이에 나타나는 교환 관계들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세 가지는 생산, 소득, 지출이라는 '순환적 흐름' 안에 엮여 있다. 자본으로 쓰이는 자금은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 지급되고, 노동자들은 받은 임금을 지출하여 생산물을 소비하며, 다시 이것이 자본가의 이윤을 낳음으로써 더 많은 자본이 생겨나게 된다."(19-20) 중상주의의 교리에 따르면 "국가의 권력을 드높이기 위해서는 상업을 추구하기보다 귀금속 화폐를 축적해야 한다." 여기에 반대한 스미스는 "자신의 분석 체계 안에서 화폐를 2차적이고 수동적인 위치로 끌어내려 버렸다." 스미스가 보기에 "화폐란 시장 교환을 촉진하기 위한 매개체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22)


스미스는 자연가격과 시장가격을 구별한다. "자연가격은 재화의 생산에 들어간 여러 비용의 합과 정확하게 일치하며, 시장가격은 특정 시점에서 나타나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나 희소성에 따라 결정된다. 이 두 가격은 단기적으로는 서로 불일치하는 일이 빈번하지만, 경쟁을 벌이는 시장에서는 장기적으로 두 가격이 서로 수렴하게 되어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지대와 임금, 이윤은 부의 총량을 창출하는 데 저마다 기여한 가치와 동일한 크기를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손'은 효율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당하고 정의로운 것이기도 하다."(25-6) 그러나 마르크스가 보기에 "자본주의적 생산의 최고 목적은 인간의 참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사용가치'를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란 오로지 '교환가치'를 지닌 상품을 생산하여 그것으로 화폐적 이윤을 실현하는 일에만 매달리게 하는 경제체제이다."(28)


마르크스는 이윤, 지대, 임금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은 자연적 현상이 아닌 사회적인 범주로서, 오로지 권력과 강압에 기초한 사회적 생산관계를 통해서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스미스가 주장한 대로 "모든 가치의 궁극적인 원천이 노동에 있다면, 자본 또한 그것을 만들어 내는 데 투하된 노동으로 구성될 것이다. 자본은 겉으로는 물질적 생산수단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 실체는 남에게 양도되고 전유당한 노동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이란 단지 물질적 생산요소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자본은 사실상 잉여가치로 구성되어 있으며, 잉여가치란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생산관계가 갖는 불평등성이 낳은 결과에 다름 아니다."(35-6)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화폐-상품-화폐1(M-C-M1)의 순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함으로써 다른 생산양식과 구별된다는 사실을 올바르게 확인시켜 주었다."(42)


베버는 자본주의란 "순이윤을 합리적으로 계산하는 관료적 기업이 이끄는 산업 생산에 인간의 필요와 욕구 충족을 맡기는 경제라고 정의했다." 공동체와 가정경제에서는 경제활동이 "정서적 유대, 가족적인 의무, 전통적 사회규범과 얽혀 있기에 이윤을 추구하고 계산하는 엄격한 합리성이 교란되기 쉽다. 따라서 영리기업의 형태가 일반화되어 노동과 생산 활동을 가정경제와 공동체 내부 경제로부터 분리시킨다면, 이러한 자의적이고 실질적인 고려 사항들을 합리적 계산에서 따로 끄집어내어 분리할 수 있게 된다."(44-5) 베버는 "전통적 엘리트의 쾌락주의와는 전혀 다른 청교도들의 금욕주의는 이윤의 재투자와 기업의 확장을 부추기면서, 이런 실천이야말로 지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빛나게 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선물을 제대로 관리하고 사용하는 것은 심지어 '소명'(calling)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52)


베버가 보기에 "국가와 자본가계급 사이의 '역사적 동맹'은 아주 느슨한 것이기에 자본가계급은 국가의 내부와 여러 국가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작동될 수 있다.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는 애초부터 초국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이어서 어느 한 국가나 국가 간 동맹의 통제 아래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개 자본가들은 자기들 행동의 결과가 어떻든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이윤을 추구하는 데서 자유를 제한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따라서 베버는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국가가 제공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도, '국민국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세계 제국이 들어서면 자본주의도 존속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상당히 심오하면서도 놀라운 혜안을 덧붙이고 있다. 즉 자본주의는 국가와 자본 누구도 상대편을 복속시키지 않는 글로벌 경제체제로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56)


"마르크스는 이윤 저하에 따른 자본주의 자체의 붕괴라는 파국적인 전망을 제시했지만, 이와 달리 슘페터는 '파괴적' 국면에서 나타나는 이윤 저하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종말을 의미한다고는 보지 않았다. 혁신 기업가들이 끊임없이 채산성 높은 혁신을 창조적으로 모색해 낼 것이기 때문이다."(64-5) 슘페터는 이 과정에서 신용화폐를 발행하는 은행 시스템의 중요성을 맨 처음 강조한 학자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은행은 다시 돈을 갚겠다는 약속 말고는 사실상 아무런 기반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허공으로부터 신용화폐를 생산한다." 은행의 신용창조 기능은 화폐자본을 무한정 팽창시키는 능력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화폐의 팽창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역동성의 근원이 되며, 동시에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공황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 논점은 슘페터의 제자 하이먼 민스키가 '금융 불안정성 가설'로 더욱 발전시키게 된다."(66-7)


케인스가 보기에 "현대자본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경제활동이 최적화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만성화되면서 이를 회복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붕괴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장기간 지속되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화폐가 '불안감'을 달래 주는 방어벽으로 쓰이게 될지, 아니면 생산에 투자되거나 소비로 지출될지가 '야수적 본능'(animal spirits), 즉 낙관과 자신감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개인의 심리적 문제가 아니다."(74-5)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야기하는 "유효수요의 부족이란 완전고용을 유지할 만큼 구매력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의미로, 케인스는 이러한 난관은 자본이든 노동이든 개인 행위자들이 쉽사리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가 "이따금씩 정부의 '보이는 손'으로부터 신중하게 계획된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78)


모든 형태의 재산과 재화, 서비스의 가격은 "시간에 따라 변동하는데, 이는 불확실성을 낳고 다시 가격 변동에서 차액을 기대하여 벌어지는 순수한 금융적 거래, 즉 M-M1을 내포하는 투기적 시장을 만들어 낸다. 이렇듯 이중적 성격을 지닌 자본은 생산의 원천이자 투기적 금융자산이기도 하다." 각종 자산을 유가증권 형태로 거래하는 "금융자산 시장은 자본으로 하여금 이윤이 남지 않는 활동에서 빠져나와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본주의에 탄력성과 역동성을 부여하는 본질적 원천이 된다. 하지만 케인스가 경고한 것처럼, 자본이 생산이나 소비 또는 이 두 가지 모두에서 대대적으로 빠져나와 화폐의 형태로 축장될 경우엔 경제 전체가 급속히 힘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불확실성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벌어지는 순수한 투기 행위는 자산 시장에 일상적으로 거품과 불안정성을 가져와 재화나 서비스 생산에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87-8)


# 자본주의의 기초 시장들

1. 화폐와 화폐자본 시장 : 금융 자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조정되고 가격(이자)이 결정된다.

2. 노동시장 : 임금 수준이 결정된다.

3. 생산 관련 시장 : 생산재(생산수단) 시장과 최종 소비재 시장

4. 금융자산 시장 : 모든 형태의 재산 소유권은 시장에서 판매 가능한 자산asset이라는 사실에 기초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체제의 역동성(과 불안정성)을 발생시키는 화폐의 주요 기능은 무엇일까? "화폐는 어떤 나라든 자본주의 경제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두 가지 조건을 마련해 준다. 첫째, 대규모 몰인격적 시장에서 가격 매커니즘을 통해 수요와 공급이 조정될 수 있도록 안정된 가치 척도를 제공한다. 화폐가 없는 물물교환은 교환을 양자 간의 거래로만 제한하게 만드는데, 이렇게 되면 거래되는 재화의 가치가 구체적인 거래마다 달라지게 마련이므로 교환 영역의 범위가 일정 정도 이상으로 확대될 수 없다. 둘째, 장기적인 대부 계약은 자본주의적 경제 관계의 기본 골간이거니와, 이는 가치가 안정된 화폐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본주의가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대부 행위가 광범위하게 벌어져야 하는데, 이를 성공적으로 창출하기 위해서는 대부자들 사이에 자기들이 받을 이자의 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102)


베버는 자본주의의 발흥에서 "국가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기념비적 동맹'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니와, 자본주의 신용화폐야말로 그 동맹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109) 자본주의의 특징은 "개인들 사이에 계약으로 맺어지는 채권-채무자 관계(예컨대 은행 대출이나 신용카드 계약)를 화폐화시키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항시적으로 내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은행 시스템은 개인들의 채무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불 수단인 국가가 발행한 화폐로 바꾸어 놓는다. 국가가 발행한 화폐는 세금 납부의 의무를 완전히 청산하는 데 쓸 수 있는 화폐이다. 이렇게 사적인 부채를 공적인 화폐로 바꾸어 놓는 것은 은행 시스템과 국가의 복잡한 연계, 국가와 채권자(국채 소유자), 채무자들(납세자) 사이의 복잡한 연계를 통해서 달성된다. 그리고 이 관계들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중앙은행이다."(115)


# 자본주의 사회의 화폐 시장의 특징

1. 민간 신용과 은행 시스템의 '화폐 승수' : 청산되지 않은 채무의 존재가 화폐 공급을 가능하게 한다.

2. 신용화폐의 궁극적 기초가 되는 국가 채무 : 현실적 권력을 가진 주권 국가가 채무 이행을 약속한다.

3. 중앙은행의 중추적 역할 : 불변의 가치 척도가 존재한다는 허구를 지탱한다. 즉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고 실질 이자율을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유지한다.

4. 국가, 화폐시장, 납세자의 삼각관계 : 화폐와 생산, 즉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여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위험을 회피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러 집단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투쟁을 벌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가격은 이러한 경제적 권력을 얻기 위한 투쟁의 결과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145) 시장의 역동성은 불평등한 행위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투쟁의 결과로서, 완전경쟁 모델은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이 벌어진 이후에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가상의 '완벽한' 상태"에 불과하다.(148)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학파는 '사회주의 계산 논쟁'에서 자본주의의 우위를 주장한다. 미제스와 하이에크의 논지에 따르면, 우리는 "생산과 소비를 조직하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가질 수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경제생활이 복잡해지고 규모가 늘어나게 되면 이러한 인지적 문제가 더욱 날카롭게 대두되며, 여기에 조화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시장에서 지속적인 흥정으로 얻게 되는 성찰과 적응의 조정뿐이라는 것이다."(149-50)


20세기에 들어서자 "대량 소비 시장은 수요를 좀 더 자극하려는 목적에서 질적으로나 상징적인 위신에 있어서나 더욱더 세밀하게 분화되었다." 그리하여 19세기 말 "베블런이 '티 내기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고 부른 지위 경쟁 과정이 오늘날에는 더욱 광범위한 '사치의 민주화'로 전환되었다. 이제 가계 지출 가운데 '필수적이지 않은' 재화들에 쓰이는 비율이 더욱더 늘어나기 시작했다."(158-9) 대중들이 사치재를 구매하는 돈이 은행 시스템에서 융통되면서, "총수요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의 지출과 부채뿐 아니라 이를 보조하는 중요한 부속물로써 개인의 '적자 금융'이 등장하게 되었다." 경쟁적인 적자 금융은 리스크가 높은 대출의 비중을 늘렸고, 이에 따라 개인 파산과 지급불능 사태도 해마다 급속하게 늘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현대자본주의에서 경제 전체가 불안정성에 빠져들게 된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160-1)


기업은 자본 권력이 생산수단과 노동 통제를 직접 수행하는 장소이다. "따라서 '거래 비용' 이론과는 달리 이 관료적 기업은 시장의 대안이 되기는커녕 경제적 합리성을 달성하기 위해 보조적 기능을 수행하는 장소가 된다."(191) 코스의 정리에서 보듯이, 현대자본주의 기업의 구조적 다양성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된다. "이는 기업 간부들과 경영진이 단순히 다양한 경제 조직의 비용을 계산하여 비교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조직 형태들을 실행에 옮길 권력이 있는가가 가장 절실한 문제이다."(189) 경쟁 악화에 따른 이윤율 저하와 과잉생산 그리고 일련의 디플레이션이라는 악순환을 겪은 대공황(Great Depression, 1873-1896)의 장기 침체 이후로, 현대자본주의의 대규모 주식회사들은 "내부적으로는 소유자들한테서 어느 정도 분리된 위계적 관료제의 경영 체제를 갖추게 되었고, 외부적으로는 과점체 또는 독점체로서 조직된 모습이 되었다."(198) 


경제와 관련한 국가의 역할을 다루는 논의에서 "신자유주의의 '공공재' 이론은 국가 활동의 수준과 범위가 경제적 비용-편익 분석으로 보면 최적의 수준으로 고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장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사실상 '한계효용성'에 따라 결정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국가가 경제에 뛰어드는 것은 그에 들어가는 비용과 거기서 얻게 되는 편익이 균형을 이루는 '한계 지점'에서 멈추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수많은 주장과 요구가 엇갈리며 경쟁하는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비용과 편익이 균형을 이루는 합의가 존재한다는 것은 대단히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아울러 국가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비용-편익 분석으로는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교육, 보건, 사회복지는 단지 '인적 자본'의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영향뿐 아니라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바람직한 인간의 욕망이다."(270-1)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사이에 필연적인 함수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도 경제적 자유주의, 정치적 자유주의, 민주주의라는 세 가지 요소가 제각각 별개이며, 이 세 가지가 역사적으로 우연한 기회에 서로 연결되었다는 사정에 대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서유럽에서 개인의 자유는 자본주의적인 소유권과 계약 자유의 기초였지만, 이는 결코 민주적인 것이 아니었다. 근대 초기 유럽에서 정치적 대표는 유산자들에게만 허용되는 것이었으며 다수의 대중은 정치적 대표권도 사유재산도 가질 수 없었다." 20세기 전반기에는 "대중민주주의를 따랐다가는 노동자들이 국가를 포획해 버리고 마르크스가 믿었던 것처럼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만연해 있었다." 20세기 중반에 실재했던 파시즘 체제는, "실로 대의제 자유민주주의라는 겉모습 말고도 다른 형태의 대중민주주의가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양립할 수 있음을 암시해 준다."(280-1)


"국가와 경제라는 두 영역 사이에 자율성이 심각하게 침식당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이는 곧 자유민주주의 대신에 권위주의적 국가 또는 부정 선거가 판치는 '명목적' 민주주의가 들어설 수 있게 된다는 신호"이다.(303)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출입 금지의 '붉은 테이프'가 높은 비용을 낳는다고 끊임없이 불평하지만, 시장 교환을 규제하는 기초적인 규칙들이 없다면 자신들의 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모든 형태의 평화적 시장 교환은 모종의 권위체(흔히 국가)를 전제 조건으로 한다. 이 권위체가 폭력을 예방하고 재산을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전반적으로 모든 소유권이 명확하게 확립되고 수호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시장 교환에 갖가지 위험이 따르게 된다. 시장 교환이 존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여러 가격을 확립하고 계산하는 데 필수적인 안정된 통화 시스템이지만 이는 시장이 생산할 수 없는 것이다."(181-2) 


"갖가지 자본주의적 활동에서 이윤을 실현할 수 있는 모든 기회, 바꿔 말하면 예상이 가능한 이윤은 모두 투기적 금융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다. 순수한 투기 활동은 상품 생산에 직접적으로는 아무것도 더해 주지 못하지만, 자본 및 금융시장에 화폐를 공급해 줌으로써 모든 자산에 유동성과 대체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다. 또 유동성과 대체 가능성은 자본주의에 탄력성을 부여하여 자본주의에 역동성을 더욱 강화시켜 준다. 자본은 화폐로 모습을 바꿀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서 무엇이든 어디서든 이윤의 전망이 더 커 보이는 쪽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261) 자본주의 발전의 "새로운 단계로서 '금융화'가 출현하고 있다는 논의가 있지만,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본주의적 활동의 길잡이가 되는 원리가 '유동성'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데서 나온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본주의는 "모든 자산들을 줄줄이 화폐로 바꾸었다가 다시 자산으로 되돌렸다가 하는 활동을 반복"하고 있다.(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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