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K. 헌트의 경제사상사 - 애덤 스미스부터 21세기 자본주의까지 비판적 관점으로 본
E. K. 헌트.마크 라우첸하이저 지음, 홍기빈 옮김 / 시대의창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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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란 "생산, 교역, 상업에 필요한 각종 재료와 물질을 일컬으며, 연장, 장비, 공장, 원자재, 가공 중인 재화, 재화의 운송 수단, 화폐 등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물질적인 생산수단은 모든 경제 시스템에 다 있지만 그것이 자본이 되는 것은 오로지 상품 생산과 사적 소유에 필수적인 사회적 관계가 존재하는 맥락 안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자본은 단순한 물리적 대상물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복합적 집합도 지칭하는 말이다." 자본주의를 낳은 "최초의 자본축적이 가능했던 네 가지 중요한 원천은 (1) 급속히 늘어나고 있던 무역과 상업의 총량, (2) 공업의 선대제, (3) 인클로저 운동, (4) 대규모 인플레이션 등이었다. 그 밖에도 최초의 자본축적에 있어서 몇 가지 다른 원천이 있었고 그 중 몇 가지는 상당히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종종 망각 속에 묻어버리곤 하는데, 식민지의 약탈, 해적질, 노예 무역 등이 그것이다."(76-7)


초기 중상주의 시기에는 "대부분의 생산을 노동자가 수행했는데, 이 노동자는 아직 스스로의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했다. 자본가는 주로 상인이었고, 그들의 자본이란 일반적으로 화폐와 팔아야 할 재화의 재고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중상주의 시기에 저작을 남긴 경제사상가들이 이윤의 원천을 교환, 즉 판매와 구매 과정에서 찾았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상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윤을 발생시키는 것은 교환이지 생산이 아니었다."(87) 중상주의 저작들의 공통점은 "첫째, 상품의 '가치' 또는 '자연적 가치'는 그 상품이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일 뿐이다. 둘째, 시장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힘이다. 셋째, 중상주의 저술가들은 종종 '내적 가치intrinsic value', 즉 사용가치야말로 수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며 따라서 시장가치를 결정하는 데서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논하고 있다."(89)


17세기 중반부터 "거의 모든 중상주의 저술가들은 국가가 국내 경제에서 독점권을 부여한다든가 여타 형태의 보호와 정실주의를 행하는 것을 비난했다(국제적 상업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이러한 관행을 적극 옹호했다). 구매자와 구매자, 판매자와 판매자, 또 구매자와 판매자가 모두 서로를 적으로 삼는 경쟁 시장에서는 가격이 자유롭게 오르내리면서 제대로 된(즉 시장을 균형 상태에 이르게 하는) 수준을 찾아가도록 할 때 사회의 편익이 극대화된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생각이었다."(102) 대표적으로 1714년, 버나드 맨더빌은 <꿀벌의 우화>에서 "낡은 도덕률로 보자면 가장 경멸받아 마땅한 악덕들이 만약 모두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최대의 공공선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이상한 모습의 역설을 제시한다. 이기심, 탐욕, 소유욕이 강한 행동 등은 모두 근면을 장려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경제를 번성시키게 된다고 그는 주장했다."(104)


후기 중산주의 시기로 오면 상업의 확산으로 경쟁이 증가하면서 가격 격차만으로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생산과 판매과정에 대한 자본가의 통제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늘어난다. "18세기의 경제사상가들은 (노동 분업으로) 늘어난 생산성을 놓고 중요한 두 가지 원칙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기 시작했다. 첫째, 자연 자원은 오로지 노동을 투하하여 사용가치를 가진 생산물로 변형시킨 뒤에야 비로소 교환가치를 가진 상품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둘째, 전문화와 노동 분업이 증가하게 되자 상품의 교환이라는 것을 사실상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상이한 전문화된 노동의 교환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106) 한편, 프랑스의 중농주의자들은 "비효율적인 소규모 농업 대신 대규모의 자본주의적 농업을 장려"하면서, 길드 폐지와 규제 제거, 정부 수입을 "농업에 대한 단일의 전국적 조세로 충당해야 한다"는 정치적 개혁을 주창했다.(110)


18세기 중반 글래스고를 포함한 영국의 많은 상업 및 공업 도시들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매뉴팩토리manufactories'라고 부르는 장소에서 상당한 양의 생산이 이루어졌다." 매뉴팩토리란 "자본가가 건물, 생산 장비, 원자재를 소유하고서 일을 할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장소로서, "공장에서는 기계화된 조립 라인의 기술이 사용되었지만, 매뉴팩토리에서는 (여전히) 구식의 수공업 생산 기술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매뉴팩토리에서 "자본가가 노동을 효과적인 분업 과정들로 나누고, 그 결과 노동생산성이 크게 향상된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애덤 스미스는 "세 가지 소득 범주―이윤, 임금, 지대―가 그가 살던 시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3대 계급―자본가, 지주,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얻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자유로운' 노동자―에 조응한다는 사실의 의미와 중요성을 최초로 깨달은 경제학자이기도 했다."(125-6)


스미스는 3대 계급 중에 "오로지 노동만이 가치 또는 부를 창조하는 유일한 계급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134) 그는 "계급 분화의 가장 주된 기초가 토지 및 자본의 소유권이라고 보았다. 또 그는 자본가의 권력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몇 개의 원천에서 나온다고 보았는데, 자본가의 부,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그들의 능력, 정부에 대한 그들의 통제력 등이 그것이었다."(137) 노동가치론에서 어떤 상품의 교환가치는 "그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의 양 그리고 생산에 사용된 간접노동(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생산수단을 생산한 노동)과 직접노동(그렇게 생산된 생산수단을 사용하여 그 상품을 생산한 노동)을 생산과정의 상이한 시점에서 어떻게 상대적으로 배분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하지만 스미스는 "생산수단의 통제권을 자본가가 장악하고 토지 및 천연자원을 지주가 독점하면 교환가치 또는 가격이 임금, 이윤, 지대라는 세 구성 요소의 총액이 된다고 여겼다."(138-9) 


스미스의 가격론에는 "두 가지 중요한 약점이 있었다. 첫째, 임금, 이윤, 지대라는 가격의 3대 구성 요소는 그 자체가 가격이거나 또는 상품의 가격에서 도출되는 것들이다. 상품의 가격을 설명하는 이론이 한 상품의 가격을 그저 다른 상품의 가격으로 설명하는 식이라면 이것을 일반적 가격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한 상품의 가격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상품의 가격을 알아야 한다면, 이는 즉시 그 다른 상품의 가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낳는다."(143) 둘째, 스미스의 가격론이 내놓는 이런저런 결론은 "사실은 모든 가격의 전반적 수준에 대한 것일 뿐이며(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화폐의 구매력에 대한 것일 뿐이며), 다른 상품들 사이의 상대적 가치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145) 후대의 경제학자들은 스미스의 가격순환론을 벗어나기 위해, 시장이 변동해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뉘메레르numeraire(상품 간 교환비율을 결정하는 기준 상품, 예를 들면 은)를 찾고자 노력했다.


1790년대에 노동자 조직이 급속히 확산되고, 사회경제적 불만이 증대되자 상류계급은 대단히 불편해 했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프랑스혁명의 기억이 생생했고 그래서 단결된 노동자의 힘을 두려워했다. 그 결과는 1799년의 단결금지법Combination Act으로 나타났는데, 이 법은 노동자가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그 밖에 고용주들의 자유로운 행동을 제약하는 규제를 도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단결하는 것을 모조리 불법화했다."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지지자들이 강렬하게 벌였던 또 하나의 운동은 "1795년에 생겨난 스핀햄랜드Speenhamland 빈민 구호 시스템을 철폐하는 것이었다. 이 시스템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직인법의 전통을 이어) 기독교적인 가부장적 윤리의 산물이었다. 빈곤에 처한 이들이 일자리가 있건 없건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의 취지였다." 이들은 어떤 형태의 구호에도 반대했는데, "이들의 논리는 맬서스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었다."(177-8)


맬서스의 <인구론 1판>에는 "책 전체를 관통하여 반복되는 두 개의 지배적인 주제가 있었다. 첫째는 제아무리 개혁가들이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부유한 소유자와 가난한 노동자라는 현재의 계급 구조는 필연적으로 다시 출현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한 계급 분열은 자연법에서 빚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맬서스는 생각했다." 그의 인구론에 속속들이 파고든 두 번째 주제는 "끔찍한 빈곤과 고통은 모든 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피할 길 없이 당해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더욱이 빈곤과 고통을 경감시키려는 시도는 의도가 아무리 선하다 해도 결국 상황을 개선시키는 게 아니라 더 악화시키고 만다는 것이다." 맬서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추동하는 동기는 성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며, 이 욕망은 결코 포만 상태가 되도록 충족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욕망이 억제되지 않는다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다."(185-7)


맬서스가 교환을 사회적 조화라는 관점에서 지지하는 이유는, "소유권이라는 기성의 법률과 현존하는 소유권의 배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노동력밖에 없는 노동자는 "노동력의 구매자를 찾아내어 아무리 적은 임금이라도 받는 것이 굶주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따라서 모든 교환은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에게 혜택을 가져다주는 것이며, 특히 소유자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분리가 불가피한 것임을 받아들인다면 더욱 그러하다."(196) 맬서스는 "지주의 지대 또한 그들이 생산에 기여한 바에 대한 보상이라고 옹호했으며, 그 과정에서 당시 널리 받아들여지던 생각, 즉 지대는 독점에서 얻는 수익 또는 일종의 불로소득이라는 생각을 논박하는 데 힘을 쏟았다."(200) 맬서스가 경제학 이론에 기여한 점은 공급과잉glut 또는 불황의 이론으로서, 그는 "공급과잉의 궁극적 원인은 과도한 이윤이 결국 (유효수요를 감소시켜) 자본축적률을 지속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상에 있다고 보았다.(209)


리카도의 "지대 결정 이론은 두 개의 전제 위에 서 있다. 첫째, 모든 토지는 비옥도가 차이가 나며 따라서 모든 토지를 가장 비옥한 것에서 가장 덜 비옥한 것까지 한 줄로 정렬할 수 있다. 둘째, 지주에게서 땅을 세내어 경작하는 자본주의적 영리 농업가들의 이윤율은 그들 사이의 경쟁으로 인해 항상 균등화된다."(222) 리카도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받아들였고, 그 가장 중요한 귀결, 즉 인구 증가는 결국 노동자의 임금을 생계 수준으로 내리누르는 경향이 있다는 명제도 받아들였다. 따라서 지대를 발생시키지 않는 최열등지에서의 이윤은 그 토지에서의 총 산출에서 그 토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먹여살릴 만큼의 곡물을 뺀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윤은 임금을 지불하고 난 뒤 남은 몫이다." 여기서 "비옥도가 더 떨어지는 토지가 경작지로 들어올 때마다 순 생산물이 감소하는 한, 또 곡물로 표현된 임금률이 동일하게 유지되는 한, 이윤율은 감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227)


리카도는 국제 무역에서 "교역되는 모든 상품을 한쪽 나라가 다른 쪽 나라보다 더 효율적으로 생산한다고 해도 자유 무역을 행하면 결국 두 나라 모두 혜택을 본다는 주장을 일관된 논리로 전개한 최초의 경제학자였다. 그는 또한 나라 사이에는 자본의 이동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별개의 국제무역 이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267) 공급과잉을 부정하는 리카도의 주장은 단순하다. "자본가가 스스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생산하는 이유는 오직 이를 시장에 가져가 자신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과 바꾸기 위해서이다. 이 교환은 화폐에 의해 매개되지만 화폐 그 자체를 원하는 이는 없다." 화폐란 "다른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어떤 유용한 속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화폐를 그 자체로 축장하고 하는 이는 없다. 그러므로 생산은 그 자신의 수요를 창출한다. 어느 자본가든, 자신이 생산한 상품의 가격에 해당하는 양만큼 다른 상품에 대한 수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262)


"원자적 개인주의, 이기주의적 공리주의, 시장에 대한 의존, 이윤을 통한 산업화 자금의 융통, 계산적인 합리주의라는 다섯 가지의 측면이 19세기 말과 20세기에 효용과 사회적 조화를 말하는 신고전파 이론의 지적인 기초가 되었다. 훗날 경제학자들이 스미스와 리카도의 저작에서 불편하게 동거하고 있던 노동가치론의 관점을 제거하고 사회적 조화와 시장의 사회적 혜택 등의 개념을 따로 떼어내고자 진력하며 내놓았던 생각들은 대부분 벤담, 세, 시니어의 생각을 가져온 것이었다."(288) 밴담의 효용의 원리는 "모든 인간 행동은 쾌락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온다."는 말로 집약된다.(290) 벤담은 저축이 반드시 신규 투자로 이어지지 않으며, 이 경우 생산은 줄어들고 실업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부와 소득의 큰 불평등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부자에게서 빈자로 화폐를 재분배하는 정부 조치는 사회의 효용 총량을 늘려준다."(296)


"세는 노동이 가치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거부하면서 오로지 효용만이 가치를 창조한다고 주장했다." 세는 생산과정을 "자연의 원자재를 인간의 노력을 사용하여 쓸모 있는 재화로 전환시키는 일련의 과정으로 보는 대신, 생산과정 안에는 상이한 '생산적 인자productive agencies'가 존재하며 이들이 하나로 합쳐져서 재화를 생산하는 것이 생산 과정의 본질이라고 단언했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 노동의 지출을 한편으로 자본, 토지, 재산의 소유권을 다른 한편으로 하여 비교할 때, 양쪽은 효용의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무런 질적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299-300) 세의 저작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이 있다. 그것은 "자유 시장은 항상 모든 자원―노동을 포함―이 완전히 사용되는 균형점, 즉 노동과 산업 생산 시설이 모두 완전고용 상태에 달하는 균형점에 이르도록 자동적으로 조정되게 되어 있다는 믿음이었다."(303)


"시니어는 정치경제학의 이론들 사이에 그토록 많은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경제학자가 단순히 부를 분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후생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적 후생을 고찰하게 되면 즉시 규범적 또는 윤리적 명제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런 명제는 사회적 갈등을 빚고 있는 다양한 집단의 태도를 반영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비과학적인 윤리적 전제를 제거하면 "정치경제학은 가치가 배제된 중립적인 ‘순수 과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보았다.(312-3) 시니어는 이론화 과정의 기초 자체에 이미 가치의 문제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이론가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그가 어떤 사회적 쟁점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문제들에 대해 어떤 유형의 해결책을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하는지도 결정한다."(314) 가치 중립적 명제라는 말 자체가 이미 가치 지향적인 '사회적' 발언이다.


윌리엄 톰프슨과 토머스 호지스킨은 오언의 협동조합 운동과 노동가치론의 계급 갈등적 시각을 결합한 이론가들이다. "톰프슨은 부의 분배야말로 사회의 다양한 성원들이 얼마나 많은 쾌락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341) 자유 교환 논리를 받아들인 톰프슨이 "보수적인 자본주의 옹호론의 공리주의를 반박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노동자가 자본주의 하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판매한다는 주장을 부인했기 때문이다."(345) 그가 보기에 굶주림의 위협은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할 위협과 마찬가지로 강제적인 것이다. 톰프슨은 경쟁적 개인주의보다 협동적 사회주의가 낫다고 보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모든 동기를 자기 이익의 합리적 추구로 환원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하는 톰프슨 자신의 공리주의적 심리학과는 전혀 양립할 수 없"었고 그 결과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빠져들고 말았다.(358)


"호지스킨은 자본이란 본질적으로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의 생산물을 수탈하는 강제적 권력을 내포하는 사회적 관계라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는 자연이 정한 법령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호지스킨은 노동의 산물인 "자본을 생산하지 않은 이가 소유하는 것은 비자연적이며, 또 대부분의 사회악의 근저에 도사린 문제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호지스킨에게 이상적인 사회란 "일도 하지 않으면서 소유권으로 소득을 얻는 게 가능하지 않은 사회였다. 자본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노동하는 이들뿐이며, 이들도 자신들의 생산활동을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자본만 소유할 수 있을 뿐이다. 오직 이런 사회에서만 상품의 가격에 이윤과 지대를 계산에 넣어야 하는 필요가 비로소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만 자연가격과 사회적 가격이 일치한다." 즉, 호지스킨의 시스템은 "자본가가 없는 경쟁적 자본주의였다."(367-9)


효용가치론적 접근을 일관되게 전개한 최초의 경제학자는 바스티아다. 그는 "교환은 정치경제학이다. 교환은 사회 자체이다. 교환이 없는 사회 또는 사회가 없는 교환이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384) 바스티아의 접근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노동은 그저 서비스의 한 유형에 불과하며 지주와 자본가가 수행하는 다른 종류의 생산적 서비스와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었다."(387) 밀은 바스티아와 달리 사적 소유가 자연이나 하나님이 만든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밀은 정치경제학의 핵심을 교환에 두는 것을 거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환은 생산물 분배의 근본적 법칙이 아니다. 이는 도로와 교통수단이 운동의 본질적 법칙이 아니라 단지 그 법칙을 현실에 발현시키는 기계적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점을 혼동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실수를 저지르는 것으로 보인다."(401)


밀은 노동자가 단결하면 '파업의 경험'이 가능해지며, 이는 "임금과 노동의 수요·공급의 관계라는 주제를 노동자계급에게 교육시키는 최고의 교사"라고 말했다.(409) 밀은 극심한 빈부의 차이 때문에 당대의 자본주의적 계급 구조를 도덕적으로 거부했으며, 이것이 궁극적으로 폐지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인류가 고용주와 피고용인이라는 두 개의 세습적 계급으로 나뉜 상태가 영구적으로 유지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밀이 관심을 두었던 으뜸가는 질문은 자본주의가 모종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사회로 진화하는 사회적 변화의 방향과 속도였다.(415) 그러나 밀의 직접적인 목적은 자본주의의 개혁을 증진하는 것이었다. 바스티아처럼 현존하는 소유권이 신성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에 반대하여 밀은, "사회는 충분히 숙고하여 공공선에 합치한다고 판단을 내린다면 어떤 특정한 소유권도 바꿀 수 있고 아예 폐지할 수도 있는 완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418)


마르크스는 "모든 상품에 공통적인 요소로서 직접 양적으로 비교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인 사회적 관계의 일부를 이루는 유일의 요소는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라고 보았다.(443) 인간 노동의 생산물은 "오직 시장에서 화폐와의 교환이라는 목적으로 생산"되었을 때만 상품이 된다. 따라서 "생산물이 상품의 형태를 취하는, 즉 직접적으로 교환을 위해 생산되는 생산양식이야말로 부르주아적 생산의 가장 일반적이고도 가장 맹아적인 형태"라고 마르크스는 말한다.(448) 마르크스에게 중심적인 질문은, "잉여가치, 즉 M’이 M을 넘는 초과분을 발생시킨다고 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특징을 과연 유통영역 안에서 해명할 수 있는가이다."(453) 그가 생각하기에, "잉여가치의 원천은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즉 잠재적 노동)과 노동력으로 생산되어 실현된 노동을 체현하고 있는 상품(즉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사용가치를 소비한 것)의 가치 사이의 차이일 수밖에 없다."(458)


자본주의는 "상품 생산 사회에서 하나의 소수 계급의 사람들―자본가―이 생산수단을 독점한 탓에 대다수의 직접 생산자들―노동자―이 생산수단이 없어서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 없을 때 존재한다. 노동자는 다음의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굶든가 아니면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든가. 자본주의는 이렇게 필연적인 것도 아니며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이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 진화해온 독특한 생산양식으로서, 지배계급이 상품 생산자로부터 잉여가치를 전유하는 능력을 통해 피지배계급을 통치하는 생산양식이다."(459)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의 메커니즘을 가장 신랄하게 비난한 것은 "인간의 인격적 발전을 좌절시키고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제반 활동을 시장의 소외된 상품으로 만드는, 이러한 노동계급의 비하와 철저한 비인간화였다."(501)


# 경쟁과 축적의 네 가지 결과

1. 경제적 집중 : 강자가 약자를 분쇄, 흡수, 합병한다.

2. 이윤율 저하 경향 : 이윤율 계산의 기초는 자본(생산수단+노동력)이지만,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노동력뿐이다. 자본축적이 커질수록 생산수단의 가치가 노동력의 가치보다 빠르게 증가해서 이윤율이 하락한다. (이윤 총량은 오히려 증가할 수도 있다)

3. 소비재와 자본재 부문 간의 불균형과 공황 : 호황기에 노동 수요가 급증하면, 자본가는 생산성을 높여 고임금을 억제하려고 한다. 이에 따라 생산기술이 발전하면 잉여 노동 인구가 늘어나는데, 늘어난 생산량과 실업으로 인해 줄어든 총수요가 불균형을 이루어 공황을 초래한다. 

4. 프롤레타리아트의 소외와 비참의 증대 : 인간은 노동을 통해 감각과 지성을 개발하고, 생산물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실현을 달성한다. 그러나 노동력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 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의 소외를 맛보게 되고, 자본축적이 증가할수록 이러한 비참함은 증가한다.


제번스, 멩거, 발라가 경제 이론에 도입한 '한계주의marginalism'는 "인간 본성을 오로지 효용의 합리적 계산을 통한 극대화에만 있다고 보는 공리주의적인 비전을 미적분학으로 풀어서 정식화했다. 일반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도록 경제 이론을 수학으로 정식화하는 경향이 바로 여기에서 진짜로 시작되었다."(517) 제번스는 자연적 조화가 존재한다는 공리주의적 신념에 따라 "시장 자본주의의 자연적 상태가 계급 갈등이 아니라 사회적 조화라고 확신했다." 그는 경제학에서 모든 인간들은 다 형제라고 말했는데, "이 사회적 조화의 '형제애'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을 오로지 교환 당사자로만 본다면 누구나 다 본질적으로 평등하고 똑같게 보이기 때문이다."(524) 이처럼 이들의 공리주의는 자신을 기만하면서 주관성(쾌락, 가치부여, 심미안 등)을 객관성(계량화)으로 치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미스, 리카도, 마르크스에서 "지대, 임금, 이윤은 전체 사회에서 계급에 따른 소득분배의 구성 요소이기도 하지만 개별 기업의 생산물을 구성하는 비용 요소이기도 하다. 이것을 비용의 구성 요소로 보아 합산한 것이 스미스의 '자연가격' 또는 마르크스의 '생산가격'이다." 그러나 "효용가치론의 관점은 가격 결정 과정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하며, 수요와 공급은 효용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소비재 가격의 궁극적인 결정 요소는 효용이다. 토지, 노동, 자본 등의 '생산요소'의 가격 또한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된다. 이 세 생산요소의 공급은 그것들의 소유자의 효용 계산에 따라 결정되며, 그 수요는 그 세 가지 요소가 소비재 생산에서 얼마나 큰 생산성을 갖는가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소비재에서 소비자들이 얼마나 큰 효용을 얻는가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효용가치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임금, 지대, 이윤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소비재의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533-4)


발라는 경제가 균형 상태에서 출발한다고 가정하지만 거기에는 "완전경쟁의 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신고전파가 보는 완전경쟁의 그림에서는 모든 기업이 가격 수용자이다. 가격이 먼저 시장에서 확립되며, 기업은 그 뒤에 이 가격에 반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 새로운 가격은 어떻게 확립되는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오늘날까지 이 문제로 대단히 골치를 앓아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발라는 경매인 또는 '호가자呼價者'가 존재하여 모든 사람에게 모든 상품의 가격을 알린다고 가정해야만 했다."(555) 발라는 "사회주의를 혐오했지만 '시장의 무정부 상태'(비록 이는 사회주의자들이 사용하는 표현이지만)의 문제를 피하는 수단으로 결국 호가자와 중앙 계획 기구 모델을 선택했다." 발라 이론의 문제는, "어느 한 가격이라도 변한다면 그때마다 이 변화가 한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다른 시장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557-8)


산업혁명 초기의 산업자본가는 "실제의 생산과정을 직접 감독하고 조정하며 지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들의 노력에서 중심적인 초점 또는 목적은 산업자본의 신속한 축적이었고, 이들의 주된 지적인 관심은 자본축적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노동가치론은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구별에 초점을 두면서 이러한 자본축적 과정에 대해 가장 유용한 지혜를 제공했다." 그러나 "산업화의 으뜸가는 형태로서 주식회사가 성장하고 또 이에 따라 산업의 집중이 증가하면, 산업자본의 축적의 성격과 산업자본가의 역할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가 생겨난다. 자본축적은 이제 체계화되었고, 제도화되었고, 정규화되었다." 산업자본가가 지주계급을 닮아가면서 "소유권을 신성한 것으로 인정하고 교환경제의 미덕을 높이 내거는 이론"이 필요해졌다. 바로 그 시점에 "효용 이론 또는 시장의 관점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의 모든 요소의 공통된 이익에 복무하기 시작한 것이다."(566-8)


"사고파는 상품의 수량을 조금씩 한계적으로 조정함으로써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신고전파 이론에서 가능한 이유는, 한 상품 대신 다른 상품을 쓸 수 있다는 대체 가능성substitutability 개념 덕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의 유일한 고려 사항은 "상품에서 얻는 한계효용이 얼마인가 그리고 그 상품을 얻는 비용은 얼마인가이다. 따라서 어떤 상품의 비용이 증가하면 소비자는 그 비싸진 상품의 소비 일부를 줄이는 대신 다른 상품의 일정량으로 그것을 대체한다."(591-2) 마셜은 소비재의 대체 가능성 개념을 생산요소에도 적용시킨 경제학자이다. 그에 따르면 "기업에서 생산요소의 대체 가능성은 가계에서 소비재의 대체 가능성과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생산요소의 사용 증가에서 수확체감이 나타난다는 법칙 또한 한 상품의 소비량 증가에서 한계효용 체감이 나타난다는 법칙과 유사하다. 마셜 이후로 기업의 극대화 이론은 가계의 극대화 이론과 분석적으로 거의 동일한 것이 되었다."(594)


각각의 생산요소가 그 한계생산물의 가치와 동일한 소득을 얻는 완전경쟁 시장에서 "모든 요소가 얻는 소득을 모두 합한 것은 총생산물의 가치와 정확하게 동일하다. 착취의 가능성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각각의 개인은 자신의 생산요소가 생산한 것과 같은 가치를 수취하며, 누군가가 수탈할 잉여는 존재하지 않는다."(618) 이 교환 체계에는 두 기계신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기업가entrepreneur로서, 극대의 이윤을 쫓는 이들의 지칠 줄 모르는 충동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돌아가게 만들고 그 결과로서 생산요소를 소비재로 변형하여 효용 극대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두 번째 기계신은 발라가 말하는 호가자이다. "일반균형 상태에서 수요와 공급의 힘이 자유롭게 작동할 때 그러한 균형적 정상가격 조합이 확립되며, 그러한 가격 조합에서는 각각의 개인이 자신의 생산요소가 창출한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만큼을 얻게 되고, 공황이나 비자발적 실업 따위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621-2)


"신고전파 분배 이론에서 자본의 가치는 자본의 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 자본의 생산성을 확인하기 위해 자본의 가치를 가정할 수는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자본의 가치가 자본의 생산성을 결정하는 꼴이 되지만, 신고전파 이론에서는 이러한 인과관계의 방향을 거꾸로 뒤집어야만 한다. 즉 자본의 생산성이 자본의 가치를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신고전파 한계생산성 분배 이론이 논리적으로 성립하려면(즉, 이론적으로 순환논증이 아니냐는 공격에서 벗어나려면), 생산에 사용된 자본의 수량을 자본의 가격과는 전혀 무관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해야만 한다."(625) 클라크 이후 "신고전파의 이론에서는 자본의 수량이 자본의 한계생산성을 결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이것이 다시 자본의 가치를 결정하도록 인과관계의 방향이 설정"되어 있다. 이들은 "실제로는 그런 척도를 전혀 찾아낸 적이 없"으면서도 그런 척도를 찾아낸 것 마냥 계속 이런저런 이론을 구축해왔다.(628)


19세기 후반 '테일러주의'로 대표되는 과학적 경영은 개인적 차원의 자본축적 양식을 대규모 주식회사 형태로 합리화, 정규화, 제도화했다. "이러한 제도적 변형으로 나타난 결과 중 각별히 중요한 두 가지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자본의 국제화였다. 두 번째는 자본가계급 구조의 변화이다. 자본가계급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지배력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축적 과정의 제도화로 인하여 자본가들의 대다수는 가만히 앉아서 부재 소유권absentee ownership만 보유하고도 지위를 영구화시킬 수 있었다. 자본가들의 대다수는 이제 순수한 금리 수취 계급이 되었으며, 그들 중 오직 소수만이 관리(경제와 정치 모두에서)의 기능에 종사하면서 전체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일종의 집행위원회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집행위원회는 이 새로운 기업 구조의 '관리자들을 관리함'으로써 그 기능을 수행했다."(644)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베블런의 근본적 비판은, 그것이 인간 본성과 사회제도에 대해 철저하게 몰역사적이고 단순화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652) 베블런은 "생산이란 하나의 사회적 과정이며, 여기서 인간들은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고 또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하며, 자연을 인간의 필요와 쓸모에 맞도록 변형시키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사회적으로 협동한다. 이러한 과정을 분리하는 것, 게다가 그 과정에 들어가는 상이한 요소를 오로지 토지, 노동, 자본으로 범주화하는 것은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시대에만 고유하게 나타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656) 따라서 소유권의 근거가 그 소유자의 생산적 노동에 있다는 "사적 소유의 관점은 보수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옹호할 때도 사용되며 또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공격할 때도 사용"되지만, 어느 경우든 옳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의 근저에는 소유의 기초인 생산과정을 개인이 수행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661)


"부자들의 과시적 소비 행태를 기술하면서 베블런은 단지 재미난 일화를 늘어놓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금전적 문화는 무엇보다도 남의 질투를 유발하는 차별의 문화이다. 어떤 개인의 인간적 가치가 무엇보다도 금전이라는 질투 유발의 차별 시스템에서 측정된다면, 사회 안에 작동하는 가장 강력한 힘의 하나는 경쟁적 모방emulation이며, 이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보수주의를 확고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장치가 된다."(687-8) 사람들이 "모방적 소비 또는 소비주의라는 쳇바퀴에 갇히면 이들은 이제 얼마의 소득을 얻든 '만성적 불만족'의 삶을 산다." 이제 빈곤의 나락에 빠지지 않은 노동자들마저 비참함을 느끼게 된다. 베블런은 이 비참함이 "정신적 사실이라는 것 때문에 현실성과 절실함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말로 이는 정신적 사실이기 때문에 더욱더 실질적이고도 치유가 불가능한 문제가 되고 마는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한다.(691)


신고전파 미시경제학 이론에서 "소비자의 효용 극대화를 분석하는 한계효용 이론에서 무차별곡선indifference curve을 도입하게 되면 효용의 양을 객관적으로 측정하여 기수적基數的으로 수량화할 수 있다는 가정을 버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저 소비자가 상이한 상품에 대해 무엇을 무엇보다 더 좋아하는지처럼 각각의 재화에 대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호에 서열을 매길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는 효용을 그저 서수적序數的으로만 수량화하는 것(즉 서열 매기기)을 말하는 것으로서, 개인들 사이의 효용 비교는 요구하지 않는다."(762) 효용 가능 곡선 위에서 "아무리 생산을 변화시키고 상품 교환 수량을 변화시킨다 해도 누구든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게 되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의 이익을 해치게 된다."(769) 따라서 최초의 부의 분배 상태가 주어지면, 생산과 교환을 통하여 거기서 도달할 수 있는 극대의 수준까지 효용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 점이 바로 '파레토 최적Pareto optimum'이다.


# 효용 가능 곡선 : 생산량의 수준과 생산물의 구성이 균형 상태에 도달하여 그 결과 나타나는 교환이 위치하는 선


"후생경제학의 가장 기초적인 규범적 원리는 몇 가지 다른 방식으로 언명할 수 있다. 쾌락은 더 많은 편이 더 적은 편보다 윤리적으로 선하다(벤담이 말한 방식). 더 많은 효용이 더 적은 효용보다 윤리적으로 선하다(19세기 말 신고전파의 방식). 한 사람의 선호 순서에서 더 선호되는 위치가 덜 선호되는 위치보다 윤리적으로 선하다(오늘날의 신고전파 방식). 이 각각의 경우마다 어떤 사물의 쾌락, 효용, 선호도를 제대로 평가할 자격을 갖춘 유일한 판단자는 고립되고 원자화된 개인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후생의 크기는 오로지 그 개인과 소비 대상 사이의 관계로만 결정된다고 가정되기 때문이다. 개인이 가진 욕망에다 시장의 구매력을 가중치로 계산한 것이 사회적 가치의 궁극적인 기준이다." 후생경제학은 "개인의 욕망이라는 것 자체가 특정한 사회적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위치에서 생겨나는 산물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한다."(776-7)


파레토 최적을 정부 정책의 규범으로 삼는 관점은 정부를 그림자 같은 존재로 다룬다. "파레토 최적이 존재하는 한 정부는 전혀 언급되는 법이 없다. 그러다가 불완전성(이는 보통 완벽한 이 세상에 어쩌다가 일어나는 고립된 사건이라고 간주된다)이 생겨나면, 정부가 갑자기 무슨 기계신처럼 시장 위에 내려와서 그 시스템에 일종의 지복 상태를 회복해준다. 정부는 시장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는 불편부당한 존재로서, 이따금씩 무대 위로 내려와 파레토 최적을 회복하기 위하여 소비세를 부과하거나 보조금을 주는 존재다."(786) 신고전파 후생경제학에 따르면, "시장경제에서 어떤 개인이나 기업의 행동이 다른 개인이나 기업에 쾌락이나 고통을 일으킨다고 해도, 이 행동에 대한 가격이 시장에 의해 매겨지지 않는 경우는 모두 외부성의 개념에 해당한다." 이들이 환경오염 같은 외부성을 처리하는 방법은 "새로운 재산권을 창출하고, 그러한 권리를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790-1)


신고전파의 임금률과 총생산량 분석에서 "실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노동자가 자신들의 한계생산물의 가치보다 더 많이 받을 때에만 일하려 하기 때문이다."(819) 케인즈는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낮추는 것이 실업의 유일한 대책이라는 신고전파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실질임금은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통해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임금재의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천천히 떨어지게 만들면서 화폐 임금률을 더 빠르게 줄이면 된다는 것이었다(이는 대부분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추천하는 방식이다). 둘째, 화폐 임금률이 동일하거나 천천히 증가한다면 임금재의 가격을 더 빠르게 증가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케인스는 첫 번째 방법으로 임금을 줄이는 것은 노동자들이 절대로 받아들일 리가 없지만, 두 번째 방법은 그럭저럭 평화적인 가운데 용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824)


케인스가 거부했던 신고전파의 믿음은, "만약 자본주의 경제가 완전고용 상황에서 출발한다면 이자율이 자동적으로 이자와 저축을 동일하게 만들어주고 이에 따라 총수요는 총공급과 일치하게 되어 있다는 명제였다. 그가 신고전파의 시장의 자동조정 이론과 단절한 주요한 지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비록 그는 저축이 이자율의 영향을 받는다는 신고전파의 생각을 받아들였지만, 저축량을 결정하는 데 이자율보다 훨씬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총소득의 수준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둘째, 그는 이자율을 결정하는 것은 저축과 투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자율이란 화폐의 수요와 공급을 동일하게 만들어주는 가격이며, 투자 및 저축과는 상당히 다른 문제라고 케인스는 생각했다". 이 생각은 "시장에 자유와 경쟁이 주어지면 파레토 최적의 자원 배분이 생겨나게 된다는 주장 그리고 각 생산요소의 한계생산성이 분배를 결정한다는 주장을 함께 무너뜨렸다."(826)


# 하락의 나선형 악순환

화폐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는 이자율 r1에서 저축이 투자를 초과 → 총수요가 총공급보다 낮아짐 → 기업 생산물이 모두 팔리지 않아 재고 증가 → 개별기업의 생산량 축소 → 고용 및 소득 감소 → 총수요 더욱 감소 → 생산량 축소 ...


# 하락의 나선형 악순환에 대한 케인즈의 해결책

1. 화폐 공급을 늘려 이자율을 저축과 투자가 일치하는 수준으로 조정한다.

2. 이자율이 이미 너무 낮아 통화정책이 별 효과가 없는 경우라면, 과잉 저축분을 정부가 차입하여 공공 사업을 시행한다. 공공사업이 중간 및 하층 소득자에게 더 큰 혜택이 된다는 이유로 정치적, 현실적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 무익한 활동이라도 벌이는 것이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단 낫다.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 데 두 가지의 기술이 있다고 하자. 기술 A에는 많은 양의 노동이 들어가지만 노동시간은 생산과정의 후기 단계에 집중된다. 기술 B에는 적은 양의 노동이 들어가지만 노동시간은 생산과정의 초기 단계에 집중된다."(889) 신고전파 이론은 기술 A와 B 중 어느 쪽이 더 자본집약적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채, "오로지 이자율이 떨어지고 임금률이 오르면 이윤 극대화 기업은 항상 자본 집약도가 낮은 기술에서 높은 기술로 전환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러나 "똑같은 종류의 물리적 자본재를 똑같이 조합하여 똑같은 시간적 구조로 똑같은 조건에서 사용했는데도, 거기서 창출된 자본의 가치는 현행 이자율과 임금률이 얼마인가에 따라 천양지차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생산의 물질적 조건이 동일하다고 해도 상이한 상품 사이의 생산비용의 비율 또한 변할 수 있다."(892-3)


# 기술 재전환

1. 기술 A가 더 자본집약적인 경우 : 이자율이 아주 높고 이에 상응하는 임금률이 아주 낮을 때

2. 기술 B가 더 자본집약적인 경우 : 이자율이 점차 낮아지고 이에 상응하는 임금률이 올라갈 때

3. 다시 기술 A가 더 자본집약적인 경우 : 이자율이 아주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임금률이 올라가는 상황의 특정한 지점. 즉, 이자율 하락폭이 임금률 상승폭을 상회할 때 도달하는 특정한 지점.


기술 재전환을 발견한 스라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이한 노동량을 내포한 여러 '기간들'을 합산하여 이것으로 자본의 양을 표시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단일한 수량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산 방법에 아무런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품 사이의 상대 가격 변동 방향이 거꾸로 뒤집히는 현상은, 자본을 분배 및 상품 가격과 무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수량으로 보는 그 어떤 생각과도 화해가 불가능하다."(893) 여기서 "기술 재전환이라는 것이 과연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인가 아니면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일어나는 일인가의 문제가 나온다." 그러나 신고전파 이론의 기대와는 달리 기술 재전환이 불가능한 경우는, "두 기술 모두 자본재 생산 부문과 소비재 생산 부문에서 자본-노동 비율이 동일할 때만 나타난다. 그 이외의 모든 경우에서는 기술 재전환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이에 신고전파 경제 이론은 논리적 모순에 휘말려든다."(898)


여기에는 최고의 역사적 아이러니가 있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거의 항상 노동가치론을 가격이 노동가치에 비례한다는 명제와 동일시해왔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상품 가격과 노동가치의 엄밀한 비례 관계를 조정한 "수정 원리가 논리적, 이론적으로 성립 가능하다는 사실을 한사코 거부해왔다. 이들은 노동가치론은 모든 산업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동일할 것을 요구하는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 이론을 비웃고 거부했다. 이런 비현실적인 가정이 도대체 어떻게 실제의 경제 현실에 대한 기술이 될 수 있겠느냐며 한심한 것으로 치부했던 것이다." 그런데 스라파의 비판을 통하여 "형세는 완전히 반전되었다. 노동가치론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모두 동일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이를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신고전파 이론 쪽이 되어버렸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기술 재전환의 딜레마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모든 산업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동일할 때뿐이다."(898-9)


폴 새뮤얼슨은 "자신의 논문 <자본 이론에서의 우화와 현실주의: 대리생산함수>에서 신고전파 이론(그리고 이데올로기)을 구출하기 위한 멋진 시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스라파의 비판을 인정했지만, 단순하면서도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우화'―논리적으로 일관성을 가진―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 우화의 유비를 통해 J. B. 클라크의 '진리'를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901) 신고전파 이론의 열정적인 추종자들이 "그저 이론적으로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에서 (신고전파 이론을) 내팽개치기에는 이데올로기적 가치가 너무나 크다." C. E. 퍼거슨의 저서 서문을 보면, 신고전파 이론에 몸 바친 열정적 추종자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솔직한 이야기가 나온다. "신고전파 경제 이론에 의지할지 말지는 신앙의 문제이다. 나 개인은 이 이론을 믿는다. 하지만 현재로서 내가 다른 이들도 이 이론에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새뮤얼슨의 권위에 호소하는 것뿐이다."(904-5)


# 새뮤얼슨의 자유방임주의 비판 수용과 반론

1. 자유 시장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그러나 정부의 확장을 통해 혼합경제가 창조되어, 불안정성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었다.

2. (독)과점은 경쟁에 의한 효율성을 저해한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와 반독점 법률은 가격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다.

3. 사회가 반드시 소비해야 하지만 개인들이 효율적으로 생산하지 못하는 공공재가 존재한다. 이 공공재는 정부 선출 과정과 정부가 마련한 법령에 순종하는 방식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4. 외부성은 도처에 존재한다. 외부성을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자본가는 없다. 따라서 정부의 공적 개입이 필요하다.

※ 새뮤얼슨은 정부 개입이 신고전파의 3대 이데올로기를 이상에 가깝게 실현되도록 뒷받침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 속의 정부는 기득권의 이익에 복무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새뮤얼슨은 거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대공황과 1,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방임 자본주의라는 신념을 일정부분 포기한 케인즈 경제학과 '발전' 경제학이 도입되었지만, 신고전파는 군수경제와 이데올로기적 중요성에 힘입어 여전히 경제학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1912-2006)은 대공황의 책임 추궁을 오롯이 정부 정책의 어깨 위에 쏟아부음으로써 대공황을 설명하고 대공황 때문에 신고전파의 자유방임 정책이 겪어야 했던 신뢰의 위기를 해소했다."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1915-2009)은 신고전파 이론을 고도로 훈련된 신고전파 경제학자 이외에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더욱 중요한 업적은 전통적인 신고전파 이데올로기와 새롭게 나타난 케인스 경제학 및 발전경제학이라는 서로 상극으로 양분화된 상태를 극복하여 화해시킨 것으로서, 이것이 나중에 표준적인 정통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935-6)


한편, 제3세계의 저발전 국가들은 "자유 시장에만 의존하는 것으로는 자신들의 상황을 절대로 개선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여기서 소비에트 경제가 보여준 급속한 공업화의 예는 강력한 매력을 던지고 있었다." 아서 루이스W. Arthur Lewis(1915-1991)는 발전경제학 분야를 창조하여 저발전 국가에 "강제적 공업화의 매뉴얼과 같은 것을 제시"하고,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들에게 "안전하고도 이윤 좋은 투자기회를 보장할 수 있도록 그에 필요한 법률적, 경제적, 국가적 제도와 장치를 갖추도록" 하는 이론적 틀을 제공했다.(937) 루이스에 따르면 제3세계 나라들에 필요한 것은 바로 '더 많은 저축'이다. 그렇게 되면 "전통 부문에서 '무시할 만큼 적어서 제로 또는 심지어 마이너스'의 한계생산성으로 일하던 비생산적 노동자를 자본주의적 부문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이들의 한계생산성이 훨씬 더 높아져서 경제 전체의 생산을 증가시키고 종국에 가면 모든 이들의 경제적 후생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940)


오스트리아 및 시카고학파는 "리버럴 신고전파 학자들이 자유방임 이론으로는 현실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네 가지 주요 영역에 크게 괘념치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리버럴 신고전파와는 달리 정부 활동의 고유한 영역을 현존하는 시장 시스템을 보호하는 것(즉 사적 소유를 보호하고 계약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 이상으로 확장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958-9) 기술 재전환 문제의 증명과 관련해서 이들은 "자본주의의 존재 자체를 아예 부인한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애초부터 자본이라고 부를 만한 보편적 사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자본의 생산성을 계산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이미 오래전에 세, 시니어, 바스티아가 시작한, 노동과 자본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드는 작업 과정을 이들이 완성한 셈이다. 이들의 이론에서는 노동자도 자본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교환을 행하는 개인만이 있을 뿐이다."(961)


신고전파 경제 이론의 두 주요 분과(소비 이론과 생산 이론)를 보면 "소비란 단순히 사람들 사이의 교환만을 포함하는 반면, 생산은 '자연과의 교환'이다. 따라서 모든 경제활동은 교환일 뿐이다." 자본과 이자에 대한 오스트리아 및 시카고학파의 접근법에서는 "모든 상품에 현재의 가격과 미래의 가격이 존재한다. (지금 당장 사용되는 노동이나 미래에 사용되는 노동에 대한) 임금률도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이다. 투자란 자연 또는 다른 교환자와 현재의 재화를 미래의 재화로 교환하는 것일 뿐이다. 자본은 모든 미래 소비재의 현재 가치(그 개인이 그 소비재를 소비할 수 있는 미래 시점까지의 이자율로 할인한 가치)에 불과한 것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미래에 무언가 향유할 재화가 있다면 정의상 모든 개인은 다 자신의 자본을 가지고 있는 셈이며, 결국 모든 개인은 미래와 현재 사이에 걸쳐서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교환을 하고 있으므로 모두 다 자본가이다."(963-4)


# 자유방임주의 비판에 대한 이들의 대응

1. 시장의 불안정성은 정부의 지나친 개입 탓이다.

2. 거대 기업은 중대하고 유의미한 독점력을 갖고 있지 않다. 현존하는 독점력은 정부의 도움을 얻어낼 수 있는 경우뿐이다.

3. 정부가 공급해야 하는 유일한 공공재는 국방이다.

4. (환경 오염 같은) 부정적 외부성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창출하여 시장에 내놓는다.


제도주의 경제학자인 "에이레스는 베블런을 따라서, 대부분의 인간 활동과 가치는 두 개의 이분법적이며 적대적인 범주로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쪽 극단은 미신적이며 의식儀式과 결부된 의전적ceremonical 가치 및 활동이다. 이러한 가치 및 활동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위계적 구별을 창출하고 보존하는 것을 사회적 기능으로 삼는다. 이 이분법의 다른 쪽에는 기술적 가치 및 활동이 있다. 이러한 가치 및 활동은 에이레스가 '사회 전반의 생활 과정general life process'이라고 부른 것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제공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996) 제도주의 경제학자들은 "정치·경제·사회적 권력이 어떠한 제도들에 기반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권력이 시장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으며 어떻게 시장에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는가를 연구"한다. 이들은 경제를 "사회적 가치 평가 과정의 일부로 보며, 이 과정은 상품의 가격 결정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중요한 과정이라고 본다."(1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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