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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문명
루이스 멈퍼드 지음, 문종만 옮김 / 책세상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중세의 공간은 "상징과 가치를 기준으로 구성됐다.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는 교회의 뾰족탑이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뾰족탑은 교회가 인간의 희망과 공포를 지배하듯 더 낮은 건물들 위에 군림했다. 공간은 일곱 가지 미덕, 12사도, 십계명, 삼위일체 등을 표현하는 상징 형식들로 분할되었다." 중세의 또 다른 특징은 "시간과 공간을 상대적으로 독립된 두 체계로 이해한 것"이었다. "제프리 초서는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의 전설을 동시대 이야기처럼 그렸다. 중세 예술가들은 시간의 경과라는 분명한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고 그리스도의 삶을 당시 이탈리아의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 양 묘사했다." 사건들을 연결하는 끈은 "우주적이고 종교적인 질서였다. 공간의 진정한 질서는 신이, 시간의 진정한 질서는 영원성이 부여했다."(44-6)
이처럼 기독교인들은 본래부터 "규칙적 기도와 헌신을 통해 영원성 속에서 정신의 충만을 도모"해왔다. 그러나 기계식 시계의 발명으로 시간 준수라는 오래된 개념은 "시간 절약, 시간 계산, 시간 배분으로 거듭 확대"되었고, 그 가운데 "인간 행동의 척도이자 근간이었던 영원성은 점차 힘을 잃어갔다."(38-9) 시계는 "시간이라는 아주 특별한 생산물을 '생산'하는 기계로 인간의 경험에서 시간을 분리해냄으로써 수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독립적 세계, 즉 특별한 과학의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싹틔웠다."(39) 린 손다이크에 따르면, "1345년 경 한 시간을 60분으로, 1분을 60초로 나누는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이런 분할된 시간이라는 추상적 사고방식은 점차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41)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추상과 계산이라는 새로운 사유 습관이 도시인의 삶에 깊이 배어 들었다." 미다스나 크로이소스 같은 "전설 속 인물들이나 드물게 추구했을 법한 ‘획득의 경제economy of acquisition’가 일상의 생활양식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생활양식은 '필요의 경제economy of needs'를 대체했고, 삶의 가치는 화폐 가치로 환원됐다. 상업의 전체 과정이 점점 더 추상적 형식으로 굳어져가면서 상품이 아닌 상품 가격, 상상의 산물인 선물 투기, 미래를 획득하리라고 가정된 이익에만 모든 관심이 쏠렸다."(52) 자본주의적 추상은 과학적 추상보다 앞서 나타났고 전형적인 과학적 방법의 모든 절차적 합리성을 강화"했는데, 과학 권력과 화폐 권력은 모두 "추상, 측정, 양화量化의 권력"이었다.(54)
중세 질서의 붕괴는 두 가지 현상을 낳았다. "하나는 익숙한 과거의 전통과 자기 원칙을 내팽개치고 약탈자, 발견자, 개척자의 삶을 살도록 인간을 떠미는 현상이었다. 다른 하나는 격동 속에서 강제로 사회를 조직화된 모듈로 만드는 군대의 교관, 군인, 회계사, 관료의 방법이 사회적으로 확대되는 현상이었다." 새로운 경제 체계에서 "가장 유용한 덕목은 절약, 선견지명, 방법을 적용하는 솜씨였다. 발명은 상상력과 의식儀式을 대신했고 실험은 신중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대체했으며 연역적 논리와 학문의 권위는 사례를 통한 입증으로 갈음되었다."(76-7) 새로운 질서의 이상적 인간형은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로빈슨 크루소였다. 이제 자연 세계는 "공간, 시간, 질량, 운동, 양의 관점에서 질서 정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단순화 과정"을 거쳐나갔다.(84)
감각을 극대화하여 실용성을 추구하는 "과학의 수단들은 질의 영역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질적 성질들은 주관적이고 보이지도 않고 측정될 수도 없었기에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돼 묵살되었다. 직관과 느낌은 기계적 과정과 기계적 설명에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87) 17세기를 지배한 "시계 제작, 시간 절약, 지리상의 발견, 수도원의 규칙성, 부르주아 질서, 기술 장치, 프로테스탄트 금욕주의, 마술, 그리고 특별한 질서, 정확성, 자연과학의 명확성, 이 모든 것은 서로 분리된 활동이었고 각각은 사소한 의미만 가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기계의 방대한 영향력을 지원하고 기계 이용을 확대하는 복잡한 사회적·이념적 연결망을 형성했다." 사실상 이들은 "장기적 기후 변화로 들어서는 문턱에서 계절의 변화를 알렸던 것이다."(99)
어떤 산업보다 "광업은 근대 자본주의의 초기 발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이미 16세기에 광업은 자본주의적 착취 패턴을 확립했다." 기술 발전이 가져온 "광산 굴착, 새로운 탄층으로의 작업 확대, 갱도에 찬 물 빼기, 광선 운반, 갱내 환기를 위한 복잡한 기계류의 설치, 새로운 용광로의 풀무 작업에 수력 사용을 늘리는 등의 일은 애초에 광부들이 소유한 것보다 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노동은 하지 않고 자본만을 투자하는 부재 소유absentee ownership 동업자들이 생겼다. 그 결과 노동자들이 소유한 지분은 점차 부재 소유자들에게 넘어갔고 노동자들이 공유했던 이익은 단순한 급여 형태로 전환"됐고, 마침내 "기술 혁신과 자유노동의 기초를 놓았던 광업의 협력적 길드의 토대는 무너졌다."(123-4)
15-16세기에 이르면, "광업은 전쟁의 원천을 제공하고 자본의 초기 축적을 가능하게 했으며 군사 비용을 조달하는 핵심 산업이었고 무기의 산업화를 강화함으로써 금융가들의 배를 불렸다. 전쟁과 광업의 불확실성은 투기적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증가시켰고, 금융이라는 기생 권력이 창궐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었다."(126) 전쟁은 "개인적 매력 없이도 여성을 얻고, 지식 없이도 권력을 획득하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또 유용한 기술을 습득하지 않고도 노동의 보상을 가로채서 누릴 수 있는 수단이었다." 아울러 "근대 전쟁의 조직화는 군대의 실제 규율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임무를 떠맡았다. 상명하달식 명령 체계는 기계적 복종을 요구했다."(134-5) 군대는 "산업의 순수한 기계적 체계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 형식이었다."(142)
돈을 규율의 주요 수단으로 삼았던 "용병 부대는 언제나 명령에 불복종하거나 항복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전투는 옛날식 축구 시합처럼 조심스럽게 정해진 규칙 아래서 진행되는 흥미로운 의례와 비슷해졌고 위험성도 줄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기계적 체계는 군대에 절도와 통일성을 부여했다. "군사훈련은 군인들을 마치 한 사람이 행동하는 것처럼 단련했고, 규율은 마치 한 사람이 반응하는 것처럼 만들었으며, 군복은 마치 한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145-6) 산업화가 진척되고 "개별 국가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국가 간의 경쟁은 계급 투쟁을 압도했다. 한때 왕조의 전유물이었던 전쟁은 프랑스혁명 이후 전 국민을 동원하는 주된 산업적 과업으로 재탄생했다. 이런 변화를 든든히 뒷받침한 것은 민주주의라는 이념의 부산물인 '징병제'였다."(275)
"원기술 시기eotechnic phase에 풍력과 수력이라는 에너지원과 목재와 유리라는 물질이 단단히 묶여 있었고, 구기술 시기paleotechnic phase에 석탄이라는 에너지원과 철이라는 물질이 강하게 결속되어 있었듯이, 신기술 시기neotechnic phase에 전기는 폭넓은 산업 분야에서 특별한 물질들과 짝을 이룬다. 대표적으로는 새로운 합금, 희토류 금속, 초경량 금속 등이다."(329) 전기가 지역, 산업 중심지, 공장을 하나로 연결하고 수많은 관련 업무와 제도를 창출하면서 "신기술 수단들이 존재하고 공통 언어가 통용되는 곳이면 어디서든, 한때는 아티카의 가장 작은 도시에서나 가능했던 정치 집단과의 직접 접촉이 일상화"되었다. 이제 목소리와 이미지를 통한 이차 접촉은 "점점 더 넓은 지역에서 대중적 사회 통제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344)
"처음부터 기계의 가장 지속적인 정복 대상은 빠르게 유행에 뒤처지는 기구도, 빠르게 소비돼버리는 상품도 아닌, 바로 삶의 양식이었다. 즉 삶의 양식을 기계를 통해서, 그리고 기계의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철커덕거리며 돌아가는 기계는 한 명의 교사였다. 기계는 한편으로는 비굴한 예속 상태를 강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성의 해방을 약속했다. 기계는 이전의 기술 체계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상상과 도전의 가능성을 열었다. 기계가 질서·체계·지성이 자연의 어디에 깃들어 있는지를 보여주자마자, 그때까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환경과 사회적 관습은 즉시 효력을 상실해갔다." 인간은 "인간 개성의 한 측면을 기계의 구체적 형식에 투사함으로써, 개성의 모든 다른 측면에 영향을 주는 독립적 환경을 창조했다."(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