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서의 철학사 - 존재에 관한 인간 사유의 역사
훌리안 마리아스 지음, 강유원.박수민 옮김 / 유유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종교는 인간에 의해 수용되고 신에 의해 무상으로 주어진, 하나의 확실성이다. 그것은 계시된 것이다." 예술 또한 "인간 자신의 의미를 찾게 해주는 어떤 분명한 확신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러한 확신에 근거하여 인간은 자신의 삶 전부를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확실성을 스스로 쟁취하거나 직접 만들어내지 않으며, 이 신념 자체를 정당화되거나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자기 고유의 증거를 갖지 못한다." 반면 철학은 "근본적이고 보편적이면서도 자율적인 확실성이다. 다시 말해서 철학은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그것은 자신의 타당성을 지속적으로 드러내면서 증명한다. 철학만이 입증을 추구한다. 철학은 항상 자신의 확실성의 근거를 갱신한다."(20-1)


"최초의 인간은 주변 사물에 대해 궁금해했으며, 그러고 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궁금해했다." 철학은 인간과 동떨어져 단독적으로 있는 듯한 사물에 대해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 시작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완전히 새로운 태도이며, 신화적인 태도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관상적 태도라 부를 만하다." 이러한 관점은 역사상 처음으로 희랍에서 등장했으며, 그때부터 "철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생겨났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사물만이 참이나 거짓일 수 있다. 사물들의 진리에 대한 이러한 깨우침의 가장 오래된 형식이 경이驚異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철학의 뿌리다."(23-4)


"철학사는 철학자들의 견해들에 관한 박식한 서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실재 내용을 제대로 상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사는 틀림없이 철학이다." 각각의 철학 사상은 "선행하는 모든 체계들을 필요로 하고 포함"하기 때문에, 철학은 "모든 철학 체계들의 참된 역사로 이루어진다." 다른 관점에서 봐도 "각각의 철학 체계는 최고 실재, 즉 완전한 진리를 오직 자기 자신의 밖에서만, 다시 말해서 그 체계를 계승하려는 철학자들의 사유 속에서만 성취한다. 모든 철학함은 과거의 총합에서 유래하여 미래로 나아가며, 그리하여 철학사를 진척시킨다. 요약하자면 이것이 철학은 역사적이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다."(25-6)


희랍인들이 보기에, 세계는 늘 현존해왔고, 따라서 "모든 물음은 이 세계를 상정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출발한다." 자연으로 해석되는 이 세계는 "구체적인 실재가 등장하거나 생겨나는 하나의 근원적인 원리"이자, "변화할 수 있으며 대립자들로 규정되기도 하는 많은 사물"을 담고 있는 양극성의 세계이다. "존재, 이론, 로고스"로 특징지어지는 희랍 사유는 세계를 질서 있고 법칙에 종속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것이 코스모스cosmos라는 개념이다. 이성은 그 세계의 이러한 법칙적 질서에 편입되어 통제되고 인도받을 수 있으며, 인간사에서 이러한 법칙적 질서의 구체적인 형식은 폴리스에 사는 인간들의 정치적 공존"으로 나타난다.(32-3)


"퓌시스physis(자연)는 철학의 첫 단계 전반의 주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사상가들을 퓌시올로고이physiologoi(자연철학자들)라 불렀다."(35)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무엇이 참된 사물인지, 다시 말해서 사물은 그것들의 수많은 현상들 뒤에서 영원히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궁금해했다." 즉, 사물의 존재 자체에 스며들어 있는 다수성과 모순을 넘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물의 영원하고 불변하는 근원들을 탐색한 것이다." 여기서 등장한 "철학의 최초 물음이 '이러한 모든 사물은 참으로 무엇인가' 또는 '모든 사물을 출현시키는 원천인 자연[본성]이란 무엇인가'이다. 희랍 철학의 역사는 이 물음에 대한 다양한 답변들로 이루어져 있다."(37)


"파르메니데스를 통해 철학은 형이상학과 존재론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단순하게 사물들을 논의하려고 하지 않았고 본질의 측면에서 본 사물들, 즉 '있는 것들'로서의 사물들을 논의하려고 했다. 있음, 에온eon, 온on은 파르메니데스의 위대한 발견이다."(48) 누스Nous(지성)는 '있음'을 대상으로 '있는 것'의 길(진리)와 '있지 않은 것'의 길(막다른 길)을 탐구한다. 감각은 '사물들'을 대상으로 '있는 것과 있지 않은 것'의 길(의견의 길)을 탐구한다. 우리는 파르메니데스의 사유에서 "두 세계의 분리, 즉 진리의 세계와 가상들의 세계의 분리가 시작되었음을 본다. 후자의 세계를 참된 실재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류다. 이 분리는 희랍 사상에서 결정적인 것이 된다."(53)


기원전 5세기 초 새롭게 시작된 철학의 특징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인간 자신에 대한 탐구에 주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 시대의 이상형이 "잘생기고 뛰어난 재능을 지닌 품위 있는 사람, 즉 우리가 칼로스 카가토스kalos k'agathos라고 불렀을 만한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완벽한 시민, 즉 폴리테스polites가 이상형이 되었다." 이제 희랍 사유의 중심에 "퓌시스가 아닌 개인의 본질의 전개라는 의미에서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행복)가 들어섰다." 이 새로운 개념의 결과는 모든 사람이 누스를 가지며 누스는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이라는 '민주정'의 수립이었으며,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는 폴리스에서 "파이데이아paideia, 즉 정식 교육"을 수행하였다.(74-5)


플라톤은 "사물들이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86) 플라톤이 명명한 이데아는 "사물들의 참된 존재를 포함하는 형이상학적 존재자들이다." 이데아들은 "전통적으로 있음에 요구되었던 술어들을 가지며, 감각이 지각하는 사물들은 있음을 가질 수 없다. 이데아들은 단일하고, 변화하지 않으며, 영원하다. 이데아들은 비존재를 포함하지 않는다."(90-1) 인간은 이전에 "자신이 관상했던 이데아들에 관한 아남네시스anamnesis(상기)"를 사물들에서 촉발한다. 그러므로 "앎은 우리 바깥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다." 에로스eros는 "아름다움의 이데아 자체를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우리를 이데아의 세계로 이끈다."(92-3)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포이에시스poiesis는 희랍어로 '제작, 생산'을 의미한다. 프락시스praxis는 실행인데, 이 실행의 목표는 실행 자체이지 실행과 무관한 어떤 것이 아니다. 프락시스는 자신 안에 목표를 가지기 때문에 포이에시스보다 우위이며 자기-충족적―아우타르케이아autarchia(자족)―이다."(113) 포이에시스가 본질적으로 자기-충족적이지 않은 것은 "그 목표가 자기 바깥에, 즉 생산물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프락시스는 목표가 생산물, 에르곤ergon이 아니라 활동하는 과정, 활동성 또는 에네르게이아energeia이다." 신의 존재 양상인 테오리아theoria(관상)는 프락시스의 한 유형으로서, "사물들의 총체성 속에서 사물들의 존재를 보고 깨닫는 활동이다."(120)


"실체usia는 질료hyle와 형상morphe/eidos이라는 두 요소의 합성물로 해석된다. 질료는 하나의 사물이 무엇으로 구성되느냐에서, 그 무엇에 해당하는 것이며, 형상은 하나의 사물을 그것 자체이게 하는 것이다."(129) 질료와 형상은 잠재태와 현실태의 관계를 보여준다. 잠재태는 자신이 품은 가능성 안에서 현실태로 나아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운동이란 '가능한 것인 한에서 가능태를 실현하는 것'이다. 즉, "잠재적인 것이 가능성으로 남아 있지 않고 자신을 실현한다면 거기에는 운동, 구체적으로 말하면 생성이 있게 된다."(130-1)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세계의 절대적인 계기로서, 운동/생성을 가능하게 하지만 (기독교 사상의) 창조자는 아니다."(133)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는 형이상학 자체에 관한 관심이 사라지고, 윤리학의 물음들에 집중한다. 폴리스의 붕괴와 제국의 도래라는 혼란기를 맞아 고대인들은 "자립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사람, 완전한 평온과 균형 속에서 필수적인 삶을 사는 사람, 철학자의 삶의 방식―아리스토텔레스의 관상적 삶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 삶―을 구현하는 사람을 규정하는 특징들을 발견"하는 데 힘쓴다.(156) 여기에는 행복을 극단까지 몰고 나아가 거기에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한 퀴니코스 학파, 금욕주의와 덕을 통해 일상의 온건하고 평화로운 쾌락을 추구한 퀴레네 학파, 인간 이성을 우주의 본성에 합치하고자 한 스토아주의, 철학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에피쿠로스주의가 있다.


플로티누스는 범신론과 반反유물론으로 특징지어진다. "이 체계의 존재론적 위계질서의 원리는 일자이며, 이 일자는 존재이기도 하고 좋음이자 신이기도 하다. 모든 사물들은 일자로부터 유출된다. 유출된 것 중 첫째는 정신의 세계이자 이데아들의 세계인 누스다. 누스는 자신에 대한 상기, 즉 반성을 전제하며, 그에 따라 이원성을 전제한다. 둘째는 누스의 반영인 영혼이다. 존재의 가장 낮은 층위는 물질이며, 이 물질은 거의 비존재다."(174-5) 세계 존재는 무無가 아니라 일자로부터 산출되는데, 이는 "공空을 수용하지 않고도 창조를 생각해내려는 시도다. 이것은 유대-기독교 사상에 의해 도입된 창조 이념에 맞닥뜨렸을 때 희랍 정신이 보인 특징적인 반응이었다."(176)


"기독교는 세계와 인간의 현존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 전적으로 새로운 이념을 도입한다. 바로 창조라는 이념이다."(183) 성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핵심은 '신과 영혼'이다. 첫째, "그의 사변의 핵심은 신이고, 그의 형이상학적 노고들도 신을 향한다." 둘째, 그의 정신 철학은 "내밀함 속에서 스스로를 고백"한다. 셋째, "지상에 살고 있는 이러한 정신이 신과 맺는 관계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신국의 이념으로 이끌고, 이는 역사 철학으로 이어진다."(199-200) <고백록>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다가가려는 최초의 시도"로서, 데카르트가 인도한 "근대의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자아와 함께 혼자 남았을 때,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시 심대한 영향력을 갖게 된다."(207-8)


"9세기가 시작되면서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성과로서 학교들이 등장하며, 그 학교들에서 일구어낸 특별한 지식으로서 스콜라주의가 함께 등장한다." 중세 대성당들이 막대한 익명의 노동으로 세워진 것처럼, 스콜라주의도 "개별자의 인격이 강조"되지 않고, 중세 말까지 공동의 토대 위에서 진행된다.(216-7) 스콜라주의는 철학과 신학의 복합체이며, 그것은 "추구(quaerere)라는 근본적인 통일 안에서 믿음과 이해가 동등하게 강조되어야만 하는, 안셀무스의 명제인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fides quaerens intellectum)이다. 중세 스콜라주의는 이 두 요소 사이에서 움직이며, 이러한 추구 안에서 결합된다."(219-20)


스콜라 학파에 따르면 "천지창조는 무無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이며, 더 정확하게는 무無와 주재자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hihilo sui et subjecti)이다." '무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ex nihilo nihil fit)'는 중세 철학의 원리는 "신의 개입 없이는, 정확하게 말하면 천지창조 없이는 무로부터 아무것도 나올 수 없음을 뜻한다."(221-2) 세계는 신에 의해 자신의 현존을 유지하기 때문에, "세계에 대한 신의 활동은 지속적이며, 계속해서 매 순간 세계를 현존하게 해야 한다. 이는 지속적인 창조와 같다." 그러나 유명론자들은 "신이 세계를 창조할 때 세계에 부여했던 존재만으로 세계가 자체 존립하는 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223)


12세기까지 널리 받아들여진 실재론은 "보편자들이 사물들(res)이라고 주장했다. 실재론의 극단적 형식을 지지한 사람들은, 보편자들이 그것들의 항목 아래 있는 모든 개별자들 안에 현전하며 그 결과 개별자들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고 우연적 차이들만 있다고 믿는다." 13세기에 등장한 온건 실재론자들 역시 개별자가 참된 실재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개별자의 실재성은 '개별화의 원리(principium individuationis)'에 따라 그 종種으로부터 획득된 것이다. 성 토마스는 "하나의 개별자는 양으로 규정된 질료(materia signata quantitate)"일 뿐이며, 질료를 수량화하는 '개별화의 원리'에 따라 질료 안에 있는 보편적 형상이 개별화한다고 보았다.(226-7)


오캄에게 "이성은 인간에게만 관련된 것이다. 이성은 인간의 특성이지 (전능한) 신의 특성이 아니다." 중세 말에 이르면 "신은 더 이상 인간의 중대한 이론적 주제가 아니게 되고, 인간은 신으로부터 분리된다." 이제 인간은 이성의 탐구로 결실을 얻을 수 있는 영역들에 관여한다. 그것은 "첫째가 인간 자신이고, 둘째가 당시 놀라운 질서가 발견되고 있었던 세계이다."(232)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의 자연학은 "운동과 원인들 자체를 이해하고자 했으나, 근대 자연 과학은 운동과 원인들에 관한 수학적 상징들에 만족한다." '자연의 책은 수학적 기호들로 쓰인다'고 말한 갈릴레오처럼 우리는 "운동 중의 변화량만을 측정할 뿐, 운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앎은 추구하지 않는다."(229)


아랍 철학(이슬람 스콜라주의)의 "주요 주제는 쿠란에 대한 이성적 해석이며, 서구와 마찬가지로 종교와 철학의 관계들"이다.(254) 아비센나(이븐 시나)가 도입한 지향intentio 개념[영혼 밖에 존재하는 대상을 향하는 제1지향(intentio prima)과, 영혼 안에 존재하는 대상을 향하는 제2지향(intentio secunda)]은 "성 토마스의 철학에 깊은 각인"을 남겼다.(256) 아베로에스(이븐 루슈드)는 정신을 "입증의 인간, 개연성 있는 추론들에 만족하는 변증법의 인간, 그리고 수사학과 이미지들에 만족하는 설득의 인간" 세 부류로 구별한다. 따라서 쿠란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하나의 사물은 신학적으로 참이면서도 철학적으로는 거짓일 수 있으며, 이는 역으로도 성립한다."(257-8)


성 토마스는 철학과 신학을 분명히 구별한다. "신학은 신적 계시에 토대를 두며, 철학은 인간 이성의 활동에 토대를 둔다." 다만, "신은 그 자체로 진리이고 그의 계시는 의심받을 수 없지만, 올바르게 사용된 이성 또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한다." 성 토마스는 "믿음의 대상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부분적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태도는 "믿음과 신학을 주제로 하는 논제들에 이성을 적용하는 이른바 자연 신학"으로 이어진다. "철학적 이론과 계시된 교리 간의 부조화는 그 이론이 오류"임을 뜻하고, 이런 의미에서 철학은 계시에 종속되지만, "참된 앎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은 철학적 이성 자체다."(278-9)


"성 토마스와는 반대로 스코투스는 의지주의자다." 그는 "의지는 필연성과 관계가 없다"(voluntas nihil de necessitate vult)고 말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의지가 지성에 우선한다고 주장한다."(295) 스코투스의 의지주의는, "신과 이성을 분리하고 인간의 이성적 사변의 영역에서 신을 없애는 태도로 전환된다." 여기서 "신의 죽음이라 불릴 만한 여정이 시작되고, 이러한 여정의 국면들은 근대 역사의 국면들이 된다." 아울러, 학문을 "사물들에 관한 학문이 아니라 기호들 또는 상징들에 관한 학문"으로 보는 태도는, "르네상스 시기의 수학적 사유의 정점을 위한 길을 예비한다." 이제 근대 철학은 "진리에 대한 갈망보다는 오류의 두려움에 의해 더욱 고무될 것이다."(296-7)


쿠자누스는 앎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감각senus을 통해 얻는 앎은 이미지들만을 제공한다. 둘째, 독일 관념론자들이 '오성Verstand'이라고 번역한 라티오ratio(이성)는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그것들의 다양성에 따라 이해한다. 셋째, 독일 관념론자들이 '이성Vernunft'이라고 부른, 지성intellectus은 우리를 신의 진리로 이끈다. 그러나 이 진리는 무한자가 불가해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해시키며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무지를 알게 된다. 이것이 참된 철학이며, 최고의 앎은 '박학한 무지(docta ignorantia)'다." 쿠자누스에게 "신은 대립자들의 합일(coincidentia oppositirum)로서 나타난다."(324-5)


쿠자누스가 볼 때 "안다는 것은 더 이상 사물 자체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유사한 것을 취하는 것이다." 즉, "인간 정신의 진리는 신의 정신의 진리의 모상이며 닮음이다." 그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신에 관심을 갖는다." '신의 전개(explicatio Dei)'인 쿠자누스의 세계에서 "무한자의 단일성은 세계의 다수성과 다양성 안에서 해명되고 현현된다." 이 세계가 최상의 세계라는 쿠자누스의 생각은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적 낙관주의에 차용"되고, 세계는 질서이자 이성이라는 원리는 "헤겔에 의해서 공언"된다. 세계가 공간과 시간 속에서 무한하다는 생각은 "거의-무한적인 것을 자연학적, 수학적 감각 세계로 확장"하면서 근대 형이상학의 토대를 이룬다.(327-8)


데카르트 철학은 "자신이 가진 유일한 것인 자신의 의심, 즉 깊은 불확실성과 함께 출발한다."(352) 엄밀하게 말하면, "데카르트 증명의 출발점은 신이라는 명석 판명한 개념과 함께 받아들이는 자아의 실재성이다. 나의 유한성 및 불완전함은 나 자신 안에서 내가 발견한 관념인 신의 무한성 및 완전함과 대조된다. 내 안의 긍정적인 것을 무한성으로까지 끌어올리고 모든 한계들을 제거함으로써 나는 지적으로 나 자신을 신에게까지 끌어올린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 신의 모상을 가지며, 이 모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신적 앎에 도달하게 한다."(358-9) 데카르트 이후로 관념은 실재와 합치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실재 자체로 간주된다."(360)


스피노자는 "실체 또는 신은 현존하는 모든 것이며, 만물은 신의 작용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신은 '만물의 근원'인 동시에, '생겨나고 싹트는 사물들 자체'다. 스피노자도 신의 현존을 필수적으로 정초하지만, 신격의 입지도 자연 자체에 귀속된다. "스피노자에게 존재는 신에 의해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그저 신의 존재다."(382-3) 이 세계는 목적론적 결말을 갖지 않으며, "모든 것은 필연적이고 인과적으로 규정적이다." 인간은 자신의 본질이 자유롭지 않음을 알게 되지만, 그러한 앎을 가져다주는 '이성은 자유'다. 스피노자에게 "사물들의 존재를 구성하는 것은 하나의 욕구이자 분투"이며, 인간의 본질은 (지속적인 현존을) "욕구하는 것"이다.(385-6)


영국 철학은 대륙의 사상과 두 가지 점에서 구별된다. 첫째는 "엄밀한 형이상학적인 물음들과 덜 관련되고, 인식 이론(물론 형이상학이 항상 전제되는) 및 국가 철학과 더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둘째는 "선험적이고 수학적인 성향의 이성주의와 대조되는 감각론적 경험주의"의 방법론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영국 철학은 "앎의 원천으로서 감각 경험을 가장 우선"한다.(407) 이런 관점에서 프란시스 베이컨은 '손과 정신'이 동등하며 "물질적, 정신적 도구들"이 거기에 참된 효력을 더해준다고 보았다.(409-10) 홉스는 인간이 자유를 행사하는 방식으로 "권리 행사, 권리 포기, 권리 양도"를 꼽았으며, 권리의 상호 양도 개념에서 "정치 공동체의 이념"을 끌어낸다.(413)


"로크에 따르면 관념들은 대륙의 이성주의가 생각했던 것처럼 본유적인 것이 아니다. 영혼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빈 서판tabula rasa이다." 경험은 "감각들을 통해 얻는 외재적 지각 또는 감각과 심적 상태들에 대한 내적 지각 또는 반성"으로 나뉜다. "어느 경우에나 감각에 의해 들어온 자료들에는 반성이 작용한다." 우리의 정신은 단순 관념들을 결합하거나 연합하는데, 여기서 '추상화, 일반화'가 이루어진다. 로크의 경험주의는 "형이상학의 중대한 전통적 주제들과 관련한 앎을 제한"하며, 흄의 회의주의에서 정점을 이룬다. 훗날 칸트는 이러한 인식론적 불신에 대처하고자 "이성적 앎의 타당성과 가능성의 문제라는 난제를 정식화"한다.(419-20)


"이신론, 자유와 대의 정부를 옹호하는 정치 이데올로기, 관용, 경제 이론" 등의 경험주의 전통을 이어받은 계몽주의는 "역사와 사회 규범들을 재검토함으로써 기독교 신앙부터 절대 군주정에 이르는 모든 전통적 신념들에 대해 비판"한다. 계몽주의는 "모든 학적 지식을 집성하고자 했으며, 폭넓은 대중이 그것을 이용할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 신학적인 문제들을 말할 것도 없고, 엄밀하게 철학적인 문제들은 이차적인 것으로 격하된다."(428-30) 볼테르에 이르러, 역사는 더 이상 "사건들에 대한 단순하고 연대기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국민들의 습속과 정신"을 다루게 되며, "국민들은 각기 고유한 정신과 습속을 가진 역사 구성단위로 등장한다."(433-4)


루소는 "국가를 규정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이며, 개별자가 사회에 선행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국가를 추동하는 힘은 "모든 개별자들의 의지의 총합"인 '전체 의지(volonte de tous)'가 아니라,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의지의 총합인 '일반 의지(volonte generale)'다. 루소의 사유는 "민주주의의 원리이자 보편적인 참정권의 원리"를 천명하지만, "자신들의 의지를 실현할 권리가 있는 소수자들을 존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소수자들이 정치 공동체의 의지의 표현으로서 일반의지를 수용하는 문제"를 남긴다.(436) 루소의 영향을 받은 독일에서는 계몽주의의 차가운 이성에 대한 반동으로서 "중세와 독일 문화에 대한 새로운 존중의 태도가 출현한다."(438)


칸트는 "앎의 세 가지 양상들, 즉 감성(Sinnlichkeit), 반성하는 오성(Verstand), 그리고 이성(Vernuft)을 구별한다." 순수 이성은 '선험적 원리들'에 근거하며, 개별자의 이성이 아니라 "이성적 존재의 이성"이다. '실천 이성'은 '순수 이성'과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천 이성 또한 순수하며, 사변적이거나 이론적인 이성과 대립"한다. 따라서 칸트의 의도를 "온전하게 표현하려면 '사변적'(또는 이론적) 순수 이성과 '실천적' 순수 이성이라 할 수 있다."(468) 칸트는 전통적 사변 형이상학이 "어떠한 가능한 경험도 넘어서 있는 대상들―영혼, 세계, 신―에 대한 실재적인 앎을 선험적 사유로 얻으려는 시도"이기에 헛되며, 그러한 앎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476)


그러나 형이상학은 "절대자를 향한 인간의 본성적 경향으로서 계속 현존한다. 그리고 형이상학의 대상들은 칸트가 이념들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이러한 이념들은 "직관에 대해 열려 있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규제적인 효용"만을 갖는다. 그러나 이론 이성이 이를 증명할 수 없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영혼이 불멸할 것처럼, 자신이 자유로운 것처럼, 신이 현존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초월적 이념들의 "절대적이고 무제약적인 타당성"은 "실천 이성의 요청들로서 다시 등장한다."(477) 실천 이성이 절대적으로 자명한 요청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인간은 "그가 도덕적 인격인 이상 자유로우며, 그의 자유는 실천 이성의 요청"이기 때문이다.(479)


헤겔은 <정신 현상학>에서, "정신이 철학의 시원에 이르는, 정신의 내재적 변증법을 설명한다." 헤겔은 "단순한 서술과, 내가 사물들에 대한 개념들을 가지는(실재적 앎이 있는 학學의 상황) 개념적 앎을 구별한다. 그러나 절대적 앎은 여전히 요구된다. 절대적 앎은 모든 것을 포섭하는 앎이다. 절대적 앎이 되려면 그것은 어떠한 것도, 오류조차도 자기 외부에 남겨놓을 수 없다. 그것은 오류로서의 오류를 포함한다. 역사는 인간 정신의 모든 요소들, 즉 진리의 관점에서 볼 때 오류로 등장하는 요소들까지도 포함해야 한다."(517) 변증법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의 필연적인 이행이 있고, 각 단계는 이전 단계의 진리를 포함한다." 각 단계는 "보존됨과 동시에 극복된다."(518)


절대적 시원인 존재는 "순수한 존재, 절대적 존재다." 헤겔에 따르면 "존재는 무규정적 무매개성(das unbestimmt Unmittelbare)이다." 이 존재는 규정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아닌 것과 자신을 구별"짓지 않는다. "내가 존재를 생각하고자 할 때, 내가 생각하는 것은 무無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존재에서 무로 이행한다. 물론 이러한 이행은 존재 자체가 하는 것이지 자아가 하는 것은 아니다."(520-1) 존재는 무로 이행하고, 무는 존재로 이행하면서, 서로 대립하는 차원을 넘어 올라선다(아우프헤벤aufheben). "존재와 무가 서로를 배제하는 이런 방식은, 생성이라는 더 높은 차원의 통일로 보존되고 올라서는 존재 양상이다."(523)


"헤겔에서 체계는 매우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즉 체계는 진리가 현존하는 방식이다. 체계에는 자립적인 진리들이 없고, 그것 자체로 참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진리는 다른 모든 진리들에 의지하고 근거한다. 이런 구조는 선형적 구조―예를 들어 수학적 구조―라 불릴 만한 것과는 대조적인, 철학의 체계적 구조다."(529) 헤겔에서 "철학은 절대자에 대한 사상이 아니다. 오히려 철학은 자기를 아는 한에서 절대자다. 철학의 역사가 철학 자체의 본질적 부분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후의 철학은 모든 이전 철학들의 성과이며, 모든 원리들은 보존된다. "정신이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고투인가 (Tantae moliserat, se ipsam cognoscere mentem)."(531-3)


낭만주의가 생명을 향한 의지를 물리치면서 스스로를 파괴하고 난 후, "19세기에 철학은 형식적으로도 부정되는데, 이것은 철학함에 대한 기이한 혐오의 증거이다. 이 혐오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한때 아주 성공적이었던 독일 관념론의 마지막 국면들을 특징짓는, 변증법적 방법의 오용에 의해 생겨났다. 인간은 사물들과 실재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절박한 필요를 느끼고, 실재 자체를 받아들이기 위해 정신적 구축들과 단절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1830년에 유럽의 정신은 철학의 영역으로 들여와야 할 모형을 개별적 학문들에서 발견한다. 물리학, 생물학, 역사학은 앎의 모범적 양상들이 된다. 이러한 태도는 실증주의를 불러일으킨다."(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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