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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백성 사이의 漢 ㅣ 현대의 고전 4
히하라 도시쿠니 지음, 김동민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한대漢代 사상은 가혹한 권력 집행으로 국가 기반이 급속도로 무너진 진秦의 전철을 피하면서도, 확고한 지배체제를 수립해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여 전개되었다. 동중서董仲舒는 제국의 통치 이념으로 '파출백가罷黜百家, 독존유술獨尊儒術'을 내세워, 유학을 점지하였고, 한무제武帝는 이를 전격적으로 수용하여 제국의 사상이 나아갈 길을 예비하였다. 유가가 이상으로 삼은 봉건제도의 경제적 기반은 농민이었기에, 지식계급의 농민 보호는 "자기 자신을 보존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현실적 요구였으며, "'백성의 부양을 받는食於人' 지배계급을 인정하는 유가의 이론은 정치권력의 입장에서는 매우 적절"한 통치 기제였다.(35)
한대 유학자들이 통치 이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전으로 삼은 텍스트가 바로 <춘추春秋>이다. "노나라의 역사서에 지나지 않는 <춘추>에 대해 공자가 독자적인 견해와 비판정신을 가지고 필삭을 가했다고 해석한 것은 <맹자>부터이고, 나아가 이러한 해석을 기초로 해서 <춘추>에 경서經書로서의 권위를 부여하는 데 이른 최초의 문헌은 <순자>라고 일컬어진다. 경서로서의 <춘추>를 조술하여 부연 설명한, 넓은 의미에서의 해석서로는 <공양전> <곡량전> <좌씨전> 등 세 가지가 있다."(147) 이들은 성인으로 추앙받은 공자의 권위로 윤색된 <춘추>를 빌어 한漢이 주周를 계승한 후계자라고 주장하면서 왕조의 정당성을 내세웠다.
한나라가 유교를 채용한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명분名分'이다. "포악한 진나라를 토벌하여 멸망시키고" 그것을 대신했던 한나라 입장에서는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없애고" 법치를 부정함으로써 진나라와는 상반된 지배 원리를 표방해야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대의 유교는 이미 법가 이론을 포괄하면서도 위정자의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적은 적절한 타협 대상이었다. 한대 사상가들은 국가의 권위와 유교의 권위를 환치시켜, 백성들을 "국가 의지에 대한 복종이 곧 유교적 당위라고 착각하는 상태"에 빠뜨렸으며, 강고한 권력 집행을 "'유술儒術 또는 유가의 옛 의리'로 치장"하여 국가 운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데 기여하였다.(38-9)
그러나 유가는 법가와 달리 "군주권의 팽창을 무제한적으로 용인하지 않았으며, 군주권의 억제를 위한 이론도 준비했다." 동중서는 '하나로의 통일을 중시한다大一統'는 이념 아래, 군주권이 "천명天命에 의해서 그 권위가 확립"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백성은 아직 선이라고 할 수 없는 성性을 하늘에서 부여받았기 때문에 왕으로부터 성을 완성하는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며, "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의 성을 완성하는 것을 임무로 삼는 자"로 규정된다.(43-4) 여기서 "군주권은 '천天'이라는 관념에 의해 주체성을 상실한다. 천명에 의해 이뤄지는 한 군주권은 하늘의 제약 아래 놓여 있을 수 밖에 없다."(45)
천天 관념을 거부하는 통치자의 횡포와 전단專斷을 저지하기 위해 준비된 사상이 '재이설災異說'이다.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각종 이상 현상 중에서 "작은 것을 '재해災', 큰 것을 '이변異'이라고 칭"하는데, 재이설은 이러한 변괴를 군주의 행위와 결합시켜 해석한다. "정치가 그 마땅함을 잃어버리면 민중의 불평과 원망이 "사악한 기운을 발생시켜서" 인간세계의 음양은 조화를 잃는다. 이것이 곧바로 자연계의 음양에 감응해서 그 정상적인 활동을 방해하여 뒤틀리게 만든다. "음양이 뒤틀리면 요사스러운 기운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재이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다." 따라서 군주는 "하늘에 순응해서 덕을 닦고", 선정을 베풀어 음양의 조화를 도모해야 한다.(48-9)
동중서에게 재이는 군주의 전단을 견책하는 수단이며, 과거의 사실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 "전한 말기에 접어들면서 그것이 갑자기 주술적인 예언으로 기울기 시작했다."(55) "<춘추>는 행위를 평가할 때 외적인 사실과 결과를 무시하고, 내적인 심의心意만을 문제삼는다. 의지의 선악만을 따지는 이러한 '특이한 논단筆法'을 한마디로 말하면 바로 '마음을 따져서 죄를 결정하는 것原心定罪'이다." 즉, "<춘추>는 과거의 행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예측되는 장래의 행위에 대해서도 그 심의의 선악을 살펴서 포폄을 가한다." 나쁜 의지를 품고 있다면 "'아직 그러한 행위가 발생하기 전에未然之前' 예방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예언의 성격이 덧붙여진 것이다.(56)
선악을 미리 판단하는 사유는 필연적으로 형벌 주관주의를 불러온다. <춘추공양전>의 원심정죄론에는 범죄의 환경원인론環境原因論이 깔려 있다. 이는 "환경이 나쁘기 때문에 죄가 발생하며, 특히 생활의 빈곤은 범죄의 온상이 되고, 의식이 풍족해야 예절을 알기 때문에 위정자는 민중을 위해 좀더 좋은 환경을 준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고방식이다."(151) 원심정죄론은 덕치德治를 염두에 둔 사상이지만, '국가 권력의 남용'과 '법적 안정성의 결여'라는 부작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만다. "범죄자의 내부 심리에 개입해서 엄형중벌嚴刑重罰의 방향으로만 일방적으로 유추 해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국가주의자가 주장한 '춘추의 의리'였다."(153)
일찍이 맹자는 "인의의 덕을 통해서 난세를 통일하고, 천하에 평화를 가져오려고 했던 왕도주의를 정치사상의 중핵"으로 삼으면서 "왕도王道와 패도覇道를 확실하게 구별했다."(217) 맹자가 처한 현실이 "패도 그 자체였기 때문에 더욱더 왕도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환담이나 왕충 같은 공양학 학자들은 패자를 왕자의 대립개념이 아니라 왕자의 낮은 단계로 상정하고, 패도를 문장으로는 인정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인정"하는 논리를 수용했다.(241) 이들은 위정자에게 윤리적 의무를 심어 왕도로 이끌고자 노력했지만, "판단은 군주의 의지를, 평가는 국가의 이해를 기준으로 결정"(207)되는 절대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을 군주는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