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 논쟁자들 - 중국 고대 철학논쟁, 개정판 China Library 차이나 라이브러리 2
앤거스 그레이엄 지음, 나성 옮김 / 새물결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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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덕德 개념을 '도덕화'한다. 그는 전통적으로 "물리적 힘에 호소하지 않고 남을 움직일 수 있는 선악을 초월한 '위력'을 의미"하는 덕을, "도道에 따라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으로 재정의한다.(36) 국가는 덕을 실천함으로써 백성들의 존경을 얻는데, 그 수단은 무력이 아니라 의례儀禮이다. 공자는 "정치가 의례로 환원될 수 있다는 신념"(37) 아래 "인은 (형식성을 극복한) 의례로 회귀復禮하는 순간 성취된다"고 말한다.(52) 또한 "자신과 타인을 동일시"하는 서恕의 원리에 충실할 때 자아는 관습과 조화를 이룬다. 공자가 지향하는 원리들의 원천은 현상으로부터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섬기는 인간적, 사회적 접촉 속에 존재한다."(67)


묵가의 이론 체계에서 "하늘과 귀신의 기능은 신상필벌에 의해 진정한 도덕을 실시하고, 세상의 불의를 교정하고 보상하기 위한" 원리에 불과하다. 이들에게는 공자나 장자처럼 사유의 간극이 뚜렷한 사상가들마저 공통적으로 느꼈던 "천명에 대한 경외심과 복종"을 찾아볼 수 없다.(98) 겸애兼愛는 오늘날 평등주의적 함의를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묵가는 "위로부터의 정치"를 주장했다. 묵가는 "국가의 중앙집권화와 관료제도화를 환영"(92)했으며, 이익과 배분을 중시하는 공리주의 경향을 보여준다. "모든 행동을 이해利害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묵가에게 결과와 유리된 도덕은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한다."(101)


인간을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존재로 인식"한 여타 사상가들과 달리, 양가는 "출사出仕와 관련한 압력을 거부할 권리"를 최초로 주장했다. 양가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에게 이로운 것은 무엇인가?"이며, 더 나아가 "진정으로 나에게 이로운 것은 무엇인가?"이다. "자신의 본성性과 참된 자신眞에 충실하는 것, 그리고 소유에 구속되지 않는" 양가의 사유는 이후 도가에 전해지며, "서력 기원 초기부터는 불교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묵자는 "정의를 생명보다 높이 평가"했고, 양주는 "생명을 소유보다 높이 평가"했다.(116) 양주의 '위아爲我'를 'selfishness'가 아니라 'egoism'으로 번역하면, 두 논변은 배치되지 않는다.(121,5)


기원전 4세기에는 "논쟁의 기술에 매료되어 역설을 좋아하며, 용인할 수 없는 것을 용인하도록 만드는" 궤변론자들이 등장한다.(146) 혜시惠施와 공손룡公孫龍은 "이성에 대한 순수한 기쁨이라는 원천에 거의 근접"했지만, 중국 사상의 주류는 "유용한 목적을 상실한 문제 해결은 무의미한 경박함"(24)일 뿐이라는 말로 이들을 배척한다. 기원전 4세기 후반, 맹자와 장자에게서 발견되는 '내면에 대한 고찰'의 선구자가 송견이다. "공자와 묵자는 '행위行'를 사회적 행동"으로 국한했지만, "송견은 '마음의 행위心之行'에 주의를 환기시킨다."(182) 송견은 "개인의 자기 평가가 타자의 인정과 부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고 또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186) 


이때의 마음心은 신체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기氣를 다스려 몸이 순수한 우주의 기운, 곧 정精으로 가득 차도록 조절하는 "사유의 기관"이다. 마음은 "내면에서 덕을 성숙시켜 자동적으로 도道와 일치하게 만든다."(192-3) 기원전 4세기의 일상 어법에서 '성性'은 "충분히 보양되고, 방해받거나 외부로부터 손상을 입지 않을 경우 그 발전을 완수하는 삶의 과정을 의미했다." 인간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하는 맹자의 말은 "다른 성향들보다 도덕적 성향을 선호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우며" 이러한 선호가 "모든 사람들에게 적어도 맹아로 내재한다"는 의미이다.(245) 순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성性'이 "태어나면서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로 쓰인다.(234)


기원전 4세기 말부터 각 학파의 문제의식이 심화된다. '의례'에 천착하던 유가는 이제 "인성이 선한가, 선악의 혼재인가, 도덕적인 중립인가"라는 문제에 매달린다. 도덕과 정치를 공리주의의 잣대로 재단하던 묵가는 "논리적으로 난공불락인 공리주의적 윤리체계를 정립하기 위하여 궤변론자들의 도구를 사용한다." 생명 보호라는 양가의 입장을 받아들인 장자는 "인간을 죽음과 화해시킬, 우주 내 인간의 위상이라는 관점을 추구한다." 세 입장 모두 여전히 "하늘과 인간의 이분법"을 고수하지만, "하늘이 인간의 도덕성을 지지하는가라는 형이상학적 회의"를 품기 시작한 것이다.(203-4) 하늘과 인간의 결별은 무無도덕적 치국책을 제시한 법가에 이르러 완결된다. 


법가로 분류되는 이들의 공통점은, "좋은 정치라는 것이 유가와 묵가가 생각하듯이 개인들의 도덕적 탁월성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제도의 기능에 근거한다는 데 확신을 가진 점이다."(499) 법가는 "인구가 적은 사회에서는 정부가 없어서 도덕적 유대에 의한 결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탄없이 인정"한다.(506) 문제는 인구 증가에 따른 공동체 규모의 확대이다. 법가의 기준들은 완전히 형성되면, 자동적으로 작용한다. "군주가 해야 할 것은 단순히 인간의 행위와 기준의 표현을 비교하여, 거기에 맞는 보상과 처벌로써 대응하는 일일 뿐, 박애나 이기적인 고려들에 좌우될 필요가 없다."(510) 


이처럼 기원전 3세기에는 시대가 변했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도가와 법가는 "성왕들에 대한 호소를 관습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했고, 후기 묵가와 순자는 "시간의 흐름에 종속되지 않는 항구적인 원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401) 천명天命을 떠난 인간은 자신에 관한 사유로 복귀하여, 하늘과 땅을 잇는 삼재三材의 요소로 자신을 자리매김한다. 순자와 한비자에 이르면, 현실은 인간의 호오와 관계없이 주어진 것으로, "인간의 독자적인 목적을 위해 조작 가능한 것"으로 인식된다.(399) 그러나, 서구와 달리 하늘과 인간이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어서, 음양오행론을 바탕으로 "인간 도덕이 우주적 질서 속으로 통합되는 것을 보장하는 감응 체계"가 구축되기도 한다.


한제국기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유가의 감응론은 "하늘과 인간 사이의 위협적인 심연을 메웠다."(578) 이러한 우주론은 "'원형과학proto-science'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 말은 근대 과학의 엄격한 검증 가능성을 결여했다는 부정적인 의미와 함께 관찰 가능한 현상을 초월적인 존재들이 아닌 현상들끼리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종교와는 대조적인 과학이라는 적극적인 의미도 갖는다." 중국의 선택은 "세계 속에서 인간의 위상을 결정하는 문제와 인간의 목적들을 위해 세계를 조작하는 문제 모두에 대한 통합적인 해결책"이었다.(580) 법가의 엄격한 제도화마저 인간학으로 품은 중국의 사유 앞에는 인간을 탈피한 인과적 사유를 향한 노정을 가로막는 깊은 협곡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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