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의 사상 - 시라카와 시즈카, 고대 중국 문명을 이야기하다
시라카와 시즈카.우메하라 다케시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1장 한자의 주술 - 복문, 금문


시라카와 : 은이라는 나라는 대통일을 이룬 왕조가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인지라. 그러니까 씨족 세력을 통합한 정도예요. 그리고 여기저기에 자기의 왕자를 파견해서 분자봉건分子封建이라는 방식으로 통합을 위한 정치력을 얻었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각 부족이 불만을 갖고 분리하면 곧바로 붕괴되고 마는 구조지요. 국가라고 할 수 없는 형태였지요.

우메하라 : 그래서 신이 절실하게 필요했겠군요.

시라카와 : 그렇지요. 절대적인 신이 없으면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을테니까요. p.37

 

시라카와 : 신성왕조는 이러저러한 이민족들에 대한 지배를 포함해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신이 되어야만 하는 거지요.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신과 소통하는 수단이 바로 문자였다고 할 수 있지요. ... 갑골문의 경우, 신에게 "이 문제에 대해 해답을 주세요"라는 식으로 묻는데, 신이 직접 답을 하는 게 아니라서 자기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물어서 "신도 승낙했다"고 선언하는 것이지요. p.26


시라카와 : 나무를 세운다는 것은 기둥을 세우거나 굿을 할 때 장대를 세우는 것처럼, 신을 부르는 방법이기 때문에 매우 의미가 깊어요. 이렇게 종횡으로 묶은 나무 매듭에 축사祝詞를 넣은 그릇을 붙여요. 여기는 신성한 장소야, 이 공간은 신성한 장소야, 라고 말하는 거지요. ... 이것이 현재의 '재才'예요. 여기에 봉분을 한 무덤을 덧붙이면 '존재存在'의 '재在'가 되지요. 여기에 사람이 살게 되면 '존存'이 돼요. 따라서 '존재'라고 하는 것은 '신성화한 땅과 사람'이라는 의미예요. 그저 있다는 뜻이 아니에요. 신에 의해 '축복받은 것', '정화된 것'이라는 의미지요. p.42


2장 공자 - 광자의 행로


시라카와 : ('儒'자를 보면) 위에 비(雨)가 있어요. 아래에 而는 사실 사람의 모습으로 머리카락을 묶지 않은 사람의 모습을 뜻해요. 보통이라면 머리카락을 묶고 비녀를 꽂아 머리를 정리하지요. 거기서 夫라는 글자가 생겼어요. 그런데 而는 비녀를 꽂지 않은 특이한 모습이에요. 儒는 복장이나 모습도 달랐어요. 이들이 기우제를 맡았기 때문에 儒의 본래 의미는 '비를 기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비가 내리면 '濡'가 되는 거예요. 따라서 유가는 이처럼 무축巫祝 출신이에요. p.114


시라카와 :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로는) 먼저 무리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교조로서 행동하지 않았어요. ... 그리고 스스로 성인이라고 칭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면 반드시 부정했어요.

또 누군가 인간으로서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은 무엇인지 물으면 공자는 이념적으로는 중용中庸을 지키는 인간이 가장 좋다고 대답해요. 중용이 가장 좋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중용을 잃지 않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 물으면 '광견狂狷'의 무리가 좋다고 대답해요. '광'은 진취적인 사람이에요. '견'은 죽어도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는 식의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에요.

우메하라 : 그것은 '중中'과는 반대가 아닙니까?

시라카와 : 광견의 무리가 좋다고 대답하지만, 지혜로운 자가 좋다고는 말하지 않아요. ... 공자는 몇 번이고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그러나 번번이 실패하고 제齊나라에서 도망치거나, 또는 위衛, 송宋, 진陳, 채蔡나라에서 초나라까지 도망쳐야 했어요.

...

우메하라 : 무녀의 사생아, 그리고 실패한 혁명가라면 광견이 맞겠군요.

시라카와 : 그래서 공자를 깨달은 인간의 부류에 넣어서는 안 되지요. (웃음) pp.72-3


시라카와 : 만약 그가 성공했다면 한 사람의 정치가로 삶을 마쳤을 거예요. 그런데 그는 마지막까지 실패했고, 방랑을 해야 하는 참담한 삶을 살아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삶 자체가 하나의 사상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유교라는 사상 체계가 만들어지게 되었지요. 즉 그의 인격적인 구심력이 많은 제자를 불러 모았어요. 유교의 사상이라는 것은 실제로 그 제자들에 의해 구성된 것이에요. 핵심이 되는 부분은 공자가 말한 것이지만, 그것을 유교적인 체계로 조직한 것은 그의 제자들이지요.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지요. 본인들은 그런 대단한 것을 말하지 않았어요(웃음). p.104


3장 <시경> - 흥興의 정신


시라카와 : 문자를 통해서 살펴보면, '興'이라는 글자의 윗부분은 '同'이라는 글자를 써요. 이렇게 술을 따르는 대롱(筒) 모양의 용기예요. 이것을 양손으로 쥐고 양손으로 바치는 것이 '興'이라는 글자예요. 그리고 양손으로 술을 따르는 것 또한 '興'이라는 글자예요. 술을 땅에 붓는 거지요.

왜 이런 일을 하는가 하면, 어떤 곳에서 어떤 행사를 하게 되어 의례를 거행하는 경우에, 먼저 그 토지의 신을 안심시키고 진정시켜야 해요. 토지의 신을 진정시킬 때에 '同'이라는 잔에 술을 따르고 모두 술을 땅에 부어서 토지의 정령을 달래는 거지요. 그렇게 하면 토지의 정령은 그 행위 때문에 잠에서 깨요. '興'이라는 것은 '잠에서 깬다',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의미가 있잖아요. 잠에서 깬 토지의 정령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듣게 되지요. 토지의 정령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흥'이에요. 따라서 '흥'이라는 것은, 노래를 통해서 어떤 것이 지니고 있는 내적인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의미하지요.

... 얼핏 보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를 통해 주제를 끌어낸다는 의미가 있어요. '흥'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주제를 끌어낸다는 의미를 지니는 거지요. 원래는 토지의 정령을 불러 깨우는 것이 '흥'이지만, 그것을 확대해서 수사법에 적용시킨 거예요. pp.198-9


시라카와 : 당시의 사람들은 자연 그 자체를 영적인 세계로 여겼고, 그러한 영적인 세계의 다양한 발신發信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 세계가 '주呪'의 세계예요. ... <시경>에도 이 '흥'적 발상법을 가진 노래는 거의 대부분 주술적인 노래예요. p.203


시라카와 : (은나라는 아직 신화를 갖고 있어서 신화적인 세계관 아래에서 제정일치적인 정치를 하던 신성왕조였는데) 주나라는 그것을 무너뜨렸어요. 그렇지만 주나라는 은나라의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신화 체계를 갖고 있지 않았어요. 따라서 우리는 천명에 의해 왕권을 쥐었다는 것 이외에 왕권의 근거를 보여줄 것이 없었지요. 그래서 천명을 받았다고 말했던 거예요. 정치의 이념으로 천명이 주장되었기 때문에 <시경> 속에서는 주술적인 관념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구요.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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