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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 (양장) - 빈부격차는 어떻게 미래 세대를 파괴하는가
로버트 D. 퍼트넘 지음, 정태식 옮김 / 페이퍼로드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저자가 분석 대상으로 삼은 1950년대와 2000년대의 '포트클린턴'은 특정 지명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이지만, 당대의 생활상이 집약된 추상적 공동체를 가리키는 보편 명사이기도 하다. 포트클린턴의 과거가 현재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은 "인구학적, 경제적, 교육적, 사회적 그리고 심지어 정치적 측면"(12)에서도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1950년대의 포트클린턴 주민들은 "가족이든 아니든간에 모든 졸업생들을 '우리 아이들'로 생각했"(13)으며, "높은 절대적 이동성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같은 보조步調로 상승 이동했다." 이들의 물질적 상황은 대개 가난했지만, "공동체에 대한 (상호) 지원의 넓이와 깊이에 있어서는 부유했다."(21-2)
2000년대에 들어서자 공동체를 떠받치던 "부모와 선생님, 공동체 내의 비공식적인 멘토"는 "경제적 장벽과 이웃의 편견"으로 대체되었다. 현재의 포트클린턴은 "백만 달러에 육박하는 맨션과 노후화된 이동식 주택"이 명확히 구분된 지역에 들어서 있는 단절된 공간으로 바뀌었으며, 주민들은 더 이상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우리 아이들'로 여기는 정서적 유대감을 공유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아이들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는 이조차 매우 드물다."(51)
현재의 불평등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밀접하게 관련된 척도인 교육을 통해"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계급태생'(class origins)이라는 말로 집약된다.(35-6) 경제적 격차를 따라 그어진 계급 경계선은 자신의 일상생활을 "사회경제적 영역 외부의 사람들에게 노출"(61)하는 비율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이는 "중상위 계급 구성원들이 가난한 아이들의 삶에 대한 직접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 않기에, 기회격차가 벌어지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사실을 뜻한다."(66)
'이웃 간의 분리', '교육에서의 차별'과 더불어 '계급을 가로지르는 결혼의 감소' 역시 "사회 계층 이동을 위한 디딤돌이 제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65) 동일한 계급 배경을 지닌 상대방과의 혼인은, 광범위한 수준에서 인간 관계의 단절을 만들고, 이는 다시 길고 좁은 터널을 지나야만 도달할 수 있는 강고한 결속을 낳는다. "덜 교육받은 미국인들이 경험했던 경제적 전망의 급격한 하락"은 이들을 "신뢰가 떨어지는 배우자나 부모가 되도록 만든다."(110) 이들에게 경제적 행복은 "손에 닿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질 뿐이다.
이러한 기회격차(opportunity gap)는 "부분적으로는 지금의 풍요로운 아이들이 과거의 풍요로운 아이들보다 더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만, 대부분은 현재의 가난한 아이들이 과거의 가난한 아이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서 살기 때문이다."(50)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일차적으로 부모와의 '상호인지적 자극'(congnitive stimulation)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주 이야기하는 부모와 함께 자란 아이들"은 훨씬 향상된 언어 능력을 갖게 되며, 유아기에 방치된 아이들은 "뇌 발달 측면에서 바로잡기 힘들 정도로 심한 결핍"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164,7)
가정 외의 환경에서 주어지는 멘토링의 격차는 아이들의 분별력 격차(savvy gap)를 더욱 악화시킨다. 부자 아이들과 가난한 아이들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 중 하나는 "기회의 길에 자리잡고 있는 제도를 이해하고, 그러한 제도를 자신을 위해 작동하게끔 만드는 능력에서 뚜렷하게 대비되는 차이가 나타난다는 사실이다."(311) 가난한 아이들은 "대부분의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아무리 조심을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다"(316)는 말을 듣고 자라며, 끊임없이 자신을 실망시키는 이웃과 제도에 마주친다.
학교는 "조직"의 측면에서는 경쟁의 평준화를 위해 존재하고 다양한 학습이 벌어지는 공간이지만, "장소"의 측면에서는 계급격차를 확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학교는 "일종의 반향실反響窒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안에서는 아이들이 학교로 가지고 오는 강점과 약점들"이 서로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중산층 아이들은 학교에서 대부분 고무적이며 혜택이 많은 메아리를 듣게 되는 반면, 저소득층 아이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낙심하게 만드는 해로운 메아리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263)
한마디로, "뇌는 고립된 컴퓨터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유기체로서 발달"(165)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주된 사회화 과정을 '길거리'에서 겪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회를 잔혹하게 억압하는 일"(127)인지를 역설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등교육을 받은 부모들이 이러한 연구들을 직간접적으로 더 많이 학습하고, 자녀 양육에 적용"하기 때문에, 계급 차이를 확대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모든 사회경제적 계급의 부모들이 양육과 교육에 대한 지출을 늘려왔지만", 그 규모는 불균등하며, "지난 수십 년 동안 더 꾸준하게 불평등해졌다."(184)
기회격차는 단순히 개개인의 삶의 질을 주관하는 것을 넘어, 민주주의적 가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은 고등학교 이후의 교육을 받지 못한 동년배들에 비해 두세 배 정도 더 투표에 참여"하지만,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다른 사회적 참여의 장에서는 급속히 빠져나가고 있다. 이는 "정치적 목소리에서 나타나는 계급적 차이"를 증폭시켜, 가난한 자들의 "정치적 소외를 더욱 악화"시키고, 경제적 압력에 노출된 "'생기 없는' 대중이 갑자기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이데올로기적 극단주의를 표방하는 반민주적 선동 조작에 노출"될 위험성을 높인다.(343-4)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1) 근로소득 보전세제나 자녀세액 공제제도 같은 재정 지원으로 저소득층 가족 구조의 안정성 향상, 2) 부모의 육아 시간을 더 많이 보장하는 양육 휴가제 확대와 돌봄 서비스망 구축, 3) 가난한 지역의 학교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고, 해당 교사들의 고용 조건을 개선하며, 사회복지와 건강 서비스를 결합한 공동체 학교 연합 구성, 4) 방과 후 학교나 과외활동을 통해 가정 밖에서 멘토링을 해주는 롤모델 제공 등이다.
교육은 아이들의 가능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기르고, 제도는 어른들이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규율한다. 저자의 대안들은 '우리 아이들'로 표상되는 "공감과 선의의 동료애" 정신을 부활시켜야 하며, 구조 개선의 선행 조건인 "이타적 인간의 확산"을 위해 공동체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난한 아이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의 삶에 '얼굴을 내밀어주는' 의지할 만한 어른의 존재"(371)라고 말할 때, 저자는 그들의 인내와 헌신을 개발하는 것은 물질적 지원과 보상 같은 '객관적 정신'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