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 중국까지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이근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가 중국 사유에 천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회'와 '회귀'라는 방식을 통해 "틀 바깥의 사유 가능성"(12)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회'는 "사유의 낯설음이 무엇"인지를 체험하는 과정이며, '회귀'는 "유럽적 이성을 중국이라는 바깥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명"(15)하는 방식이다. 즉, 중국 사유는 유럽적 이성의 대립항이나 우열을 가늠하는 경쟁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바깥에서 '자아'의 한계를 검증하고 최종적으로 '자아'로 되돌아가는 노정을 확장해주는 '다른' 사유의 지평인 것이다.


그리스 모델은 '효율성'에 기반한다. "효율적이려면 모델의 [관념적인] 형태를 구성하고, 그것을 목적으로 설정"한 뒤, "그 목적을 근거로 행동에 착수한다." 이처럼 "유럽의 고전 사유는 지성과 의지 두 능력이 결합한 작용을 구상"(17)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이론과 실천의 불균형"이라는 난제(aporia)가 도출된다. "실천은 이론의 수준으로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구 사유에는 언제나 "매개자", "중간자"가 '요청'되며, 이것이 "모델화와 적용을 나누는 구렁을 메우는"(19) 역할을 한다.


그러나 모델과 적용을 "매개"로 연결하는 방식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전쟁이 대표적인 예인데,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실제 전쟁은 "결코 모델로서의 전쟁처럼 진행"되지 않으며, "이것이 바로 전쟁의 '본질' 또는 '개념'이다." 그는 모델화가 "전술에서 전략으로 올라갈수록 덜 작동한다는 점"(27)을 간파했다. 제식동작은 훈련이 가능하지만, 전투상황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결국 전략의 완성은 '천재적 능력'으로 무장한 위대한 장군을 필요로 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진행과정에서 모델화가 빗나가는 것을 '마찰'(fric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마찰은 계획한 행동을 세계에 던졌을 때 주변상황들로부터 닥쳐오는 저항이다."(29) 


중국 사유는 '모델화'와 '적용'이라는 구분을 파괴한다. <손자병법>은 전략가가 '지세', '지형'[形]으로 규정되는 상황에서 출발할 것을 권고한다. 이 상황은 "모델화한 상황이 아니라, 내가 이미 개입되어 있는 상황이다."(32) "전략의 원리는 상황 속에서 유리한 요인들을 탐지해내고 그것들을 활용"(34)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처럼 중국 사유는 "목적성에 대한 사유을 제거"하고, "목적을 고갈시키는 대신 성향[勢]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40)


한마디로 중국 사유는 "수단-목적보다는 조건-귀결의 관계"를 중시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상이 도가이다. 도가 사상은 "성향에 순응하고 성향과 함께 가는 것, 앞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보조하는 것, 즉 영광도 없고 심지어 주의를 끌지도 않으면서 겸손하게 둘째가 되는 것"을 말한다. 노자는 이를 한마디로 요약한다. "만물의 스스로 그러함을 도와줄 뿐이다. (輔萬物之自然)"(51) 


또한 중국 사유는 "자아-주체보다는 상황에서 출발"(54)한다. 유럽 사유는 "관념적 형상을 실재 속에 집어넣는" 과정에서 "항상 어느 정도의 인위성을 전제한다."(55) 그러나 "중국 사유의 중심 용어는 '변화'(變化)이다." 중국 사유는 "행동하기보다 변화시킨다."(60) 유럽이 존재와 인식을 '잠재태'와 '현실태'라는 대립 양상으로 파악할 때, 중국 사유는 사태를 하나의 흐름 안에 편입시킨다. "이런 운행은 그 자체로서 온전한 실재(운행의 도道)이다."(70) 길에 대한 유럽적 상상은 항상 "목적(telos) 관념과 결부"되지만, 중국의 도(道)는 "어딘가로 이끄는 길"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일이 가능한 길"이다. 여기에는 "운행이 있을 뿐 진보는 없다."(75-6)


우리에게 은폐되고 잠재되어 있는 전제는 저자가 반사유의 역할을 맡기고 탐색한 중국 사유이다. 그것은 하나의 흐름 안에 '형세'와 '변화'를 응축하여, 인위적 조작 가능성을 제거한다. 모든 사유의 궁극이자 원천인 '하늘'(天)은 "절대 고갈되지 않고 끊임없이 쇄신되도록 하는"(76) 원리이다. 하늘은 '조화'의 가치만을 추구하기에, 중국의 문사들은 "군주에 저항하기 위한 이상(ideal)으로 조화만을 강조하였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그 이외의 다른 이상은 생각"(139)해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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