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의 역사
마크 마조워 지음, 이순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유럽은 오랫동안 발칸을 안개에 가려진 이교도의 땅이자, 폭력에 물든 변방으로 취급해 왔다. 주류 사학자들은 오스만제국을 "기원, 전통, 종교가 유럽과 확연히 다른 곳"이며, "유럽 문명이 태동한 지역을 통치하는 '아시아족', '유목민', '야만인'들"의 점령지라고 외면했다. 오스만제국이 유럽에 편입된 것은 "제국이 쇠락하는 것이 분명해지고 러시아가 부상하는 것에 대한 우려감이 팽배해진"(p.30) 근대의 길목에서였다.

발칸을 일군 농민들에게 오스만제국은 안전지대라는 의미에서, 20세기 유대인들의 피난처였던 합스부르크 제국과도 같은 존재였다. "앞선 세기의 기독교인 지주들은 날이 갈수록 농민들을 가혹하게 다루었는데, 오스만제국이 싹쓸이를 해준 것이 바로 이 지배계급"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훗날의 발칸 국가들의 모습은 "자체 귀족층이 없는 '농민 민주주의', 다시 말해 유럽의 다른 지역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 형태를 띠게 되었다."(pp.60-1)

오스만제국 시절에도 발칸 인구는 태반이 기독교도였는데, 이것은 "기독교도들이 높은 세금을 물고 있었고, 이들이 대규모로 개종할 경우 제국의 재정이 허약해질 것"(p.101)을 우려한 술탄이 개종에 별 열의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교회는 오스만제국의 방임 아래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가톨릭 공세를 피해 착취와 부패에 물들어갔고, 이는 "농민들이 '그리스' 교회에 착취당했다는 감정을 갖게 되어 결과적으로 발칸 민족주의가 태동하는 원인이 되었다."(p.107)

프랑스 혁명과 더불어 "1789년 나폴레옹이 오스만 이집트를 침공한 것은 발칸 기독교도 지성인들의 정치적 생각을 급진적으로 바꿔놓았다."(p.134) 리가스는 "국민이 언어나 종교에 관계없이 주권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여, 아직 윤곽도 잡히지 않은 '국가Nation' 개념을 오스만 왕조와 정교회 앞에 놓았다. 그러나 "'루마니아'나 '불가리아'라는 말은 1830년도까지도 일부 지식인과 운동가들에게만 의미 있는 말이었고,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도 그 점에 있어서는 다를 바 없었다." 그때문에 "신생국 지도자들은, 오스만의 세계관에 푹 젖어 있는 농촌 사회에서 국가를 새롭게 창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pp.156-7)

"종교의 시대가 끝나고 이데올로기의 시대"(p.186)가 오는 발칸을 지배한 것은 민족주의였다. 19세기 민족주의는 독일과 이탈리아 같은 신생국들을 "더 크고 합리적인 경제 통합체"(p.20)로 묶어준 반면, 발칸에서는 국가의 난립을 자극했다. 발칸의 신생국들은 저마다 "중세나 고전시대로 돌아가 자신들의 국가적 뿌리를 캐내려" 노력했고, "자국 역사가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그 시기[오스만제국]를 지워버리라고 주문했다."(p.37) 아울러 그들은 유럽 국가군에 끼기 위해서 "제국주의 압제에 항거하는 민족주의 투쟁과 저항을 벌였다는 그럴싸한 기록"(p.38)을 찾아나섰다.

그러나 발칸의 승리는 "강대국들의 힘을 빌려서야 결실을 맺은 무기력한 것"(p.143)이었기에, 정치가들은 "영토 확장에 대한 꿈"으로 훼손된 야망을 충족시키고자 했다. 발칸의 신생국들은 제1차 세계대전 후 "강대국들에게서 분배받은, 다시 말해 자국 영토 외곽에 놓인 '회복 안 된' 이웃사촌들의 땅이나 역사적 땅은 모두 자국 땅이라 고집했다." "대중적 실지(失地) 회복 운동은 여론을 결집시켰고, 국경 침입을 일삼는 비정규군의 자금 조달원이 돼주었으며, 강대국들의 조언이나 소망에 반하는 무모한 행위를 하도록 발칸의 군주들을 윽박질렀다."(p.165)

강대국들은 발칸 민족에게 자결권을 심어준 것이 아니라, 민족 순혈주의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망만을 남겼다. 이는 "강요된 개종, 대량 처형,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도주"를 초래했으며, 신생국들은 "유럽에 남아 있던 오스만 지방들을 민족성 원칙에 따라 일소하려는 노력"(p.192)을 경주했다. 이 작업에는 이념이 중요하지 않았다. 국가 현대화에 몰두한 진보세력들도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실시, 활발한 사회적, 경제적 개혁을 펴서 나라를 20세기로 진입시킨다"(p.197)는 명분 하에 소수 민족을 탄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강대국들의 의지 아래 "1929년 이후 발칸의 모든 나라에는 민주주의 대신 우익 독재정권"이 수립됐지만, 이들은 "농민의 불안정 고용이라는 난국을 타개해야 하는, 다시 말해 급진적인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부르주아지 정치인과 이들을 계승한 보수적 정치인들에 대한 이런 환멸이 결국 1945년 이후 소련의 감시하에 좌파가 이룬 경제 소생 계획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p.209)

발칸의 비극은 그들이 "국가 건설을 위한 기나긴 투쟁으로 20세기를 거의 다 소진"하는 동안, 세계가 요동치면서 "국가라는 생각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었다는 점이다."(p.226) 발칸을 위협하는 것은 더 이상 제국의 도전이나 주변국의 적개심이 아니라 자신들의 뒷덜미를 잡아채는 "국제 경제"이다. 서유럽은 오랫동안 "발칸의 폭력을 원시적이고 비현대적이라고 몰아세우면서"(p.238) 야만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했다. 이제는 "국제 경제"가 제국의 가면을 건네받아 발칸을 갈아넣은 맷돌을 열심히 돌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