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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스인가? - 호메로스에서 플라톤까지 그리스고전읽기
자클린 드 로미이 지음, 이명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저자의 그리스 사랑은 H.D.F. 키토 못지않다. 저자에게 그리스는 역사의 시작점이며, 통찰과 은유의 황금시대였다. 그리스는 다른 민족을 힘으로 징벌하지 않았고 종교와 사상, 민족 등 모든 '다름'에 대한 관용이 넘치는 무대였으며, 시민들 사이의 평등을 통해 자유를 구현한 시대였다. 구체적 사실로부터 추상화를 끌어낸 이상적인 전형(Idea)의 집결지였다.
이것은 수사가 아니다. 저자의 감탄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원형질에 대한 찬미이다. 저자의 심미안은 그리스 문화 전반을 능란하게 직조하여 마침내 구축한 조각상의 아름다움에 바치는 헌사가 아니다. 타당한 분석과 근거는 제시되지만 그것들은 '사후적'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발견된다. 조감도의 이데아는 가상 현실이 아니며 다만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이것은 광활한 공간에 부분들이 하나 둘씩 솟아올라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인과(因果)의 그물망으로 맺어진 전체로서의 관계가 법칙성을 내재한 자유에서 비롯했다는 사고이다. 그곳은 페리클레스가 장례식 추도사에서 "헬라스의 학교"라고 지칭한 타인의 모범이 되는 세계이지, 내전의 야수성을 몸에 붙인 제국, 곧 현실정치(realpolitik) 속의 아테나이가 아니었다.
다프네의 아름다움에 열정적으로 도취되어 일방적인 구애를 펼친 나머지, 자신의 애정을 상대방의 공포로 변질시켰던 아폴론의 사랑은 월계수의 비극으로 끝났다. 저자의 그리스 찬미는 정반대로 다프네가 깨달은 아폴론의 신적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단단한 껍질 속에 갇힌 열정이 제 발로 합일의 대상을 찾아나설 수 없는 반쪽의 펜던트와 같다.
<일리아스>에서 각 개인의 세세한 차이가 제거되고 인간 일반의 가장 본질적인 감정이나 반응이 드러나는 것은 단지 인물들의 성격을 단순화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사실 인물들 모두가 공통으로 가진 조건, 즉 `죽기 마련인` 존재라는 점을 끊임없이 환기함으로써 영웅은 위대한 존재인 동시에 유한한 존재라는 점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43)
헤로도토스는 참주 정치가 끝난 뒤의 아테네 체제를 규정하기 위해 `발언의 평등`을 뜻하는 단어를 사용했다. "누가 발언을 원하는가?"라는 저 유명한 물음에 아테네의 모든 자유가 집약되어 있다고 이야기한 후 에우리피데스는 표현을 달리해 이렇게 결론짓는다. "이보다 더 나은 평등을 상상할 수 있을까?" 133)
소크라테스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는 종교에 관한 일반적인 관용을 불허한 징표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와 도덕의 차원에서 이례적이었던 상황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당시 아테네는 전쟁에 패하고 난 직후였다. 아테네에서 관용은 종교적 영역에서 추구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그 관용은 다른 영역에서 추구되어 나타났는데, 바로 인간관계의 영역이다. 144-5)
헤로도토스는 지난 사건들을 서로 잇는 연관성을 강조하면서 그 사건들을 망각에서 구하려 했다. 첫 번째 목적은 기억이고, 그 다음은 과거에 속한 사실들을 연결하는 데 있다. 거기서 투키디데스로 옮겨 가면 엄청난 비약을 발견한다. 기억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과거를 이해할뿐만 아니라 되풀이되어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 연관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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