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유럽유대인의 파괴 1
라울 힐베르크 지음, 김학이 옮김 / 개마고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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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는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의 척도가 아니라 "인간이 어디까지 무심해질 수 있는가?"의 척도이다. 히틀러와 그 휘하 사이코패스들의 광기만으로 500만이 훌쩍 넘는 유럽 유대인을 완전히 파괴할 수는 없다. 의지가 실행을 가능하게 한다면, 유대인들은 자신을 "본원적인 범죄자이자 그리스도의 살해자"로, "역병, 페스트 그리고 순수한 불행"으로 묘사한 마르틴 루터의 교수대에서 이미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한 힘은 모든 형태의 악을 하나의 파괴기계로 구현한 근대 문명이다. 유대인들은 "정의(定義) → 경제 기반 삭제 → 약탈 → 집중 혹은 체포 → 노동 착취 및 기아 조치 → 절멸" 과정을 통해 완전히 제거되었다. 이 과정은 지극히 정교한 관료제의 사슬을 통해 최대한 많은 이들을 살육의 현장에서 격리시키고, 개인이 감내할 수 있는 정신적 무게를 짊어지게 함으로써, 파괴에 기여하게 만든 효율적 이성의 산물이다.

이때의 "효율성"은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 참여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경제적 최선이 아니라 특정 체제가 목표로 삼은 과업을 완벽하게 수행하도록 해주는 절차적 최선이다. 홀로코스트는 인간이 "이념의 불꽃 앞에서 눈먼 이성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 장애는 안대를 찬 것처럼 허술한 방벽이지만, 현재의 통찰과 과거의 성찰이 없는 세계를 점령한다. 저자가 죽는 순간까지 파괴의 전(全)과정을 아우르는 작업을 남긴 이유이다.





나치의 학살은 무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학살은 오히려 순환적 경향의 정점이었다. 이는 반유대인 정책의 세 주역이 추구했던 목표에서 잘 드러난다. 기독교 전도자는, 너는 유대인으로서는 우리와 함께 살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후 세속 통치자는, 너는 우리와 함께 살 권리가 없다고 선포했다. 마지막으로 독일의 나치는, 너는 살 권리가 없다고 명령했다. 43)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기록들을 검토해보면, 그 즉시 독일의 행정관리들이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는 당혹스러운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독일의 관리들은 흔들리지 않는 방향감각과 기괴할 정도로 놀라운 문제해결 능력을 발휘하면서, 최종 목표에 이르는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아냈다. 44)

희생자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그다음 조치를 취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정의는 그 자체로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행정적 연속성을 낳는다. 포그롬과 파괴과정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그 행정적 연속성에 있다. 104)

(신분증, 이름, 공적 표식으로 이루어진 유대인 식별 체제는) 유대인들을 마비시켰다. 유대인은 경찰의 명령에 과거보다 빨리, 더욱 순종적으로 반응했다. 유대인의 별을 부착한 유대인들은 만인의 시선이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마치 독일인 전체가 그를 관찰하고 그의 행동을 감시하는 경찰력이 된 듯한 느낌을 가졌다. 266)

제국철도는 외부와 단절되고 그 자체로 완전한 구조로서, 보안경찰이 그랬던 것처럼 겉으로는 `비정치적`이었지만, 그것이 수행하는 역할로 보면 나치즘의 요약이었다. 슈페어의 군수부가 제국철도에 의존해서 물자를 수송했고, 독일군이 그에 의존하여 부대를 이동시켰으며, 제국보안청은 그에 의존하여 유대인을 이송했다. 그 모든 작전에서 제국철도는 불가결한 존재였다.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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