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1 - 의지 1889~1936 문제적 인간 5
이언 커쇼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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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서문에서 제기한 물음을 따라가면서 내용을 정리해본다.

"문명의 붕괴라는 이 참극은"

1) 독일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성장한 독일의 민족주의는 처음부터 권위주의 체제 안에서 싹을 틔웠고, 길들여졌다. 이것은 다양성이 가져다주는 혼란과 소음에 대한 거부감과 굳건한 위계질서가 발휘하는 효율성의 매력으로 독일을 경도시켰다.

2) 시대적 특징에서 비롯한 일인가?
당대에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은 정치적 권위를 강력히 뒷받침했다. 인간 정신의 보폭을 뛰어넘는 기술 발전은 다윈주의를 사회에 그대로 적용했고, 차이는 차별로 진화해 나갔다. 나약함을 제거한 민족 정신이 최고의 가치로 추앙받았다.

3) 유럽의 특성에서 비롯한 일인가?
하나의 대륙-영국을 포함한-에서 다수의 민족 개념이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종교 분쟁을 잠재운 자리에 더 강력한 분쟁의 기운이 피어났다. 제국과 제국을 꿈꾸는 국가들은 민족이 국민과 합치될 것을, 국민이 국가와 합치될 것을 요구했다.

4) 현대 문명 자체의 산물인가?
현대 문명이 반드시 산업 혁명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산업혁명이 전 지구를 잠식하면서 '필연'과 '법칙'은 '우연'과 '신화'를 대체했다. 불확실성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감추어졌으며, 문명의 숨통을 조이며 팽창하고 있었다.

5) 재현 가능성은 남아있는가?
세계가 존재하는 한 혼란과 분열은 쌍둥이처럼 원인과 결과의 자리를 맞바꿔가면서 현재를 낚아올릴 기회를 엿본다. 역사의 반복과 변주는 한 인간이 죽고 후손이 이어가는 생의 궤적을 따라 기억과 망각의 시소 위에 항상 머물러 있다.

저자의 질문에는 "히틀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가?"라는 항목이 빠져있다. 그는 세계를 말 그대로 파괴하고 짓뭉개놓은 영향력 면에서 유일무이한 인간이지만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악마라고 생각할만한 근거는 없다.



외곬, 확고부동, 모든 장애물을 쓸어버리는 무자비함, 영특한 냉소주의,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 큰 승부에 강한 도박사의 배포, 이런 요인 하나하나가 작용해서 히틀러의 권력을 빚어냈다. 이런 성격 특성들을 하나로 묶는 히틀러 내면의 강한 욕구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끝없는 자기 우월감이었다. 권력은 히틀러의 최음제였다. 33)

전후에 그전과는 달라진 상황에서 히틀러가 가장 확실하게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한 사회 안에서 다원주의는 부자연스럽고 건강하지 못하며 나약함의 징표이고 내부 분열과 반목은 민족 공동체의 대동 단결로 눌러서 몰아낼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민족의 단합으로 내부 불화를 잠재우고 분열을 극복하고 싶다는 것은 독일 제국의 민족주의자라면 강도는 저마다 다를지언정 누구나 품고 있던 열망이었다. 136)

메시아를 방불케 하는 하나의 `이념`에 대한 비타협적 몰입, 단순하고 수미일관하고 포괄적이며 흔들리지 않는 신념 체계는 히틀러에게 의지력과 운명에 대한 주인의식을 심어주었고 히틀러를 접한 사람들은 누구나 거기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히틀러는 넘치는 자기 확신을 강하게 표현할 줄 알았고 주변 사람들은 자연히 거기서 권위를 느꼈다. 모든 것은 흑백으로, 승리가 아니면 완전한 파멸로 그려졌다. 다른 길은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이데올로그와 신념을 지닌 정치인이 그렇듯이 히틀러의 세계관은 자신감이 더 큰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구조로 되어 있었으므로 상대가 아무리 `합리적` 주장으로 덤벼들어도 비웃거나 깔아뭉개면 그만이었다. 366)

(1930년의) 선거 기간 동안 프랑켄 중부와 남부에서만 1천 회가 넘는 집회를 열었다. 당국은 "재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의회의 무능력"에 실망하고 "정치판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대안 세력"에 이끌리는 유권자들을 파고드는 나치당이 약진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선거를 앞두고 마지막 4주 동안 독일 전역에서 모두 3만 4천 회의 집회가 계획되어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 운동은 다른 당은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478)

"하나부터 열까지 제정신으로 하는 짓이 아니지만 내 알 바 아니다." (유대인 가게 불매운동이 벌어진) 그날 한 독일인의 입에서 나온 이런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을 것이다. 663)

히틀러의 개인적 기질, 관료적 틀과는 거리가 먼 업무 스타일, 강자의 편에 서고 싶어하는 다윈주의적 성향, 지도자로서의 지위 때문에 유지해야 했던 초연함 같은 것이 뭉뚱그려져서 아주 특이한 현상을 빚어냈다. 굉장히 현대화된 선진국인데 중앙에서 조율하는 구심점이 없었고 국가 수반이 통치 기구에 깊이 발을 들여놓지 않는 이상한 나라가 생겨났다. 7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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