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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리처드 오버리 지음, 류한수 옮김 / 지식의풍경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목 Russia's War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본 저서는 소련의 시각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결정지은 독소 공방전의 전모를 살펴보고 있다. 스탈린은 자신의 조국이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여전히 각지에 암약하고 있는 반反혁명 세력들과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체제 전복 위협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판단하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항상적 동원 상태를 유지하는 '군사적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매진했다.
그는 사방에서 밀려드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군수 산업화'와 '농촌 집단화'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밀고 나아갔다. 그에게 자신의 신념을 오염시키고, 음모를 꾸미는 모든 집단은 박멸하고 말살해야 할 병균과 다를 바 없었다. 음모와 숙청, 테러와 기아, 추방과 강제 노동이라는 국가 테러에 짓눌린 인민들은 자신들이 일군 국가가 정교해질수록 더욱 그 그물에 걸려 미동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했다.
그때 히틀러가 밀고 들어왔다. 저질 인종 유대인과 오염 국가 볼셰비키를 절멸시키기 위한 십자군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실체와 가상을 넘나드는, 결코 끝나지 않을 싸움이었으며, 오직 '절멸시키려는 자'와 '살아남으려는 자'가 각자의 인민들을 국가 체제 안에 갈아넣어 만든 대규모 살육전이었다. 양자 모두 굴복을 생각하지 않았고, 꿈에서도 패배를 떠올리지 않았다. 자욱한 포연은 가시지 않았고, 생명은 다시 피어나지 않았다.
소련은 압도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독일의 침략을 이겨냈다. 그것은 지속적인 병력의 충원, 자본주의 국가의 원조, 군사 전략의 현대화, 군수 산업의 본격 가동 등이 맞물린 결과였다. 소련은 공식 집계로만 2700만 명을 희생시키고 살아남았다. 인민들은 '소비에트 연방'과 '공산주의'가 아니라 '러시아'와 '조국'을 위해 싸웠지만, 전후에 국가 '사회주의'에서 '국가' 사회주의로 이행해 나아가는 길에는 파멸을 이겨낸 인민의 자리가 없었다.
경제가 탈바꿈하지 않았더라면, 1941년에 붉은 군대는 광대한 농민 인력에 의존하는 허약한 군이었을 것이다. 1930년대에 공업에서 일어난 변화로 1941년 독일의 침입 후에 이루어진 총동원이라는 요구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계획 입안자, 과학자, 공학 기술자, 숙련 노동자들이 배출되었다. 현대화 강행으로 인해 드러난 약점들이 무엇이든 간에 그 정책이 없었더라면 소련이 독일의 공격을 견뎌 낼 수 없었을 것이다. 53)
소련과 벌이는 전쟁을 히틀러는 페어니히퉁스크리크(Vernichtungskrieg), 즉 말살전으로 규정했다. 그가 볼 때, 소련은 독일 문명과 유럽 문명의 주적인 유대인, 볼셰비키, 슬라브 족의 순수 집약체였다. 123)
1942년과 1943년 소련의 군사적 소생은 난타당한 공업 경제의 회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소련의 전쟁 수행 노력은 오직 1941년에 독일군의 공격을 받은 지역에서 기계, 설비, 인력이 극히 경이로운 대탈출을 했기에 구원을 받았다. 235)
(서방의 원조 중에) 아마도 틀림없이 가장 결정적인 이바지는 무리한 하중이 가해지던 소련 철도망에 대한 공급일 것이다. ... 그 같은 규모로 외국의 원조를 받았기에 소련은 자체 생산을 기계류, 물자, 또는 소비품보다 전선용 장비 공급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서구의 원조가 없었다면, 침공을 받은 뒤 더 궁색해진 경제로 더 부유한 독일 경제가 전쟁 내내 이룩한 그 어떤 것도 능가하는 엄청난 양의 탱크, 대포, 비행기를 생산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270)
스탈린에게 1945년의 승리는 하나의 역설이었다. 소련의 정치 선전이 여러 해 동안 틀림없는 암흑의 세력이라고 주장한 적에게 거둔 완전한 승리와 스탈린이 동일시됨으로써 소련 국민 수백만 명에게 그를 신성에 접근하는 그 어떤 것으로 바꾸는 개인 숭배가 일어났다. 387)
전쟁 수행 노력은 단지 자신들이 속해 있는 체제에 반항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만 지탱되지 않았지만, 소비에트 국가, 그 지도자, 당의 산물도 아니었다. 두 요소가 상대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독일의 공세가 부과한 상호 필연성으로 말미암아 한데 결합되어 불안정하게 공생하면서 작동했다. 대가를 더 적게 치르고, 더 인간적으로 덜 억압하고, 무수한 사람들이 죽지 않고도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는 데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소련이 치른 전쟁의 비극이었다. 고통받은 한 민족의 희생이 승리는 가져왔지만 해방은 가져오지 못했던 것이다. 상실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승전의 순간에.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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