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국가 일본 살림지식총서 189
이성환 지음 / 살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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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 국가의 머리는 천황이었고 심장은 전쟁욕慾이었다. 어느 쪽이든 국민들의 피를 원한 것은 매한가지였으며, 그들이 전장에 흘린 피는 자신의 원통함을 더 많은 피로 씻어낼 것을 갈구했다.





근대 일본은 전쟁과 함께 성장,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군사적 발전주의라 하며, 이것이 바로 근대 일본을 전쟁국가로 규정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덧붙여 메이지유신 후 1945년 패전일까지 일본은 60년 간 28명의 수상이 있었다. 그 가운데 군 출신 수상이 15명이었고, 그들의 총 재임 기간은 30년 11개월이었다. 8)

(1929년 대공황에 따른) 경제적 상황의 악화는 워싱턴 체제하에서의 군비 삭감, 정당 정치를 중심으로 한 국내 민주주의의 진전, 미국 등 열강과의 경제 협력을 통한 국가 발전이라는 구도를 완전히 붕괴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워싱턴 체제의 붕괴와 함께 일본은 또다시 군사적 팽창주의로 회귀하게 된다. 59)

(한국전쟁 발발로 미국은) 일본 주둔 미군 약 8만 명을 우선 한국에 파견했는데, 그 하루 전 GHQ는 주일 미군의 한국 파견으로 생기는 국내의 치안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같은 규모의 병력으로 무장하도록 일본 정부에 지시했다. 8월 10일 경찰예비대라는 이름으로 7만 5천 명의 무장이 이루어졌고, 이것이 일본 자위대의 효시이다. 84)

미국은 아시아 공산 세력의 팽창을 저지하는 방파제로서 일본이 필요했다. 요시다 내각은 취약한 경제력을 핑계로 11만 명 정도의 무장에 합의했다. 이로써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면서 경무장을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한다는 `요시다 노선`이 확립되었다. 1954년 7월 1일에는 자위대법의 제정과 함께 방위청을 설치하고 보안대를 자위대로 재편했다.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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