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의 정치 - 여말선초 혁명과 문명 전환 나루를 묻다 4
김영수 지음 / 이학사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조선이 무너진 자리에 세워진 근대 국민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조선 체제의 폐단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비판할 뿐, 조선 건국의 시대적 요청이 무엇인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당대의 성리학이 세기말의 혼란을 극복하려는 혁신적인 처방이었다는 것도 믿기 어려울 따름이다.

여말선초는 단순히 부패한 권력의 청산기가 아니라 사회의 작동 원리를 바꾼 체제의 변환기였다. 그렇게 조선은 혁명을 통해 탄생했지만 혁명을 버림으로써 안정을 이룩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파괴한 정신(정몽주)의 숭고한 제단 앞에서 제도와 규율로서 혁명성을 씻어냈다.

그것은 정념을 이성으로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이성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열정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었다. 이성은 단일화를 추구하지만 열정은 다양성 안에서 번식한다. 평민의 목소리를 변조한 양반의 정밀한 분석은 생명력을 소거한 뒤 되살리려는 헛된 담화였다.

조선의 멸망이 절제되지 않은 이념적 경직성의 최후를 보여준다면, 고려의 멸망은 제한되지 않은 사적 이익 추구의 결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두 체제의 붕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상의 측면이든, 물질의 측면이든 다양성이 씻겨나간 토양은 황폐화된다는 평범한 진리이다.


사서를 중심으로 육경을 재편하고, 학문의 탐구와 일상의 실천을 통해 학문과 인격의 완성을 도모했던 것은 바로 주자의 방법론이었다. 주자는 유학에 형이상학적 체계성을 부여했다. 그것은 유학의 형이상학화를 의미했지만, 실제적인 목적은 불교 철학에 대항하여 철학을 현세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주자는 거경궁리居敬窮理의 학문적 방법론을 통해 개인의 인격을 완성함은 물론이고, 그것을 국가 전체의 철학으로 확장시키고자 했다. 58)

이 시대(공민왕 5~14/1356~1365)는 고려 역사상 가장 비참한 시대 가운데 하나였다.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으로 서경(평양)과 개경이 함락당하고 폐허로 변했다. 왜구는 전 연안 지방을 휩쓸고 내륙으로 진출하여 마침내 개경까지 위협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요동 지역의 신흥 세력은 취약한 동북부 지방을 노리고 두 차례 국경을 넘었다. 고려가 쇠잔해지자 원은 공민왕을 제거하기 위해 두 차례 국경을 넘었다. 또한 해마다 기근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관리들은 이 혼란 속에서도 백성들에 대한 수탈을 멈추지 않았다. 전쟁과 기근, 부패한 정치 이 모든 재앙들이 일시에 고려인들을 엄습했다. 고려인들이 품었던 희망을 생각해볼 때 역사에서 희망은 부서지기 쉬운 것이다. 141)

정몽주의 제문은 고려 정신의 태내에서 새로운 유형의 정신과 인간이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첫 번째 기록이다. 불교 역시 인간과 세계의 근거에 대해 1000년 동안 한반도인들의 질문에 답해왔으며, 수다한 헌신자들을 배출해왔다. 그러나 그 근거를 역사와 정치 속에서 동시에 발견하려는 질문은 정몽주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출가가 시사하는 바처럼, 역사와 정치는 어떤 의미에서 진리로부터 버림받은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성리학은 이에 대해 처음으로 체계적인 반론을 제기했다. 187)

여말선초의 성리학자들의 최대의 정신적 과제는 세속성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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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세속`이야말로 오히려 인간이 진리를 발견하고 완성할 수 있는 유일하고 진정한 공간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정치를 현세적이자 초월적인 삶의 중심에 놓으려는 시도였다. 364)

개혁 반대자들은 고려 중기 이래의 `사전제`를 정당한 것으로 인식했다. 공양왕 2년 9월 개혁파가 공사公私의 토지 문서를 불사르자, 왕이 "조종의 사전법이 과인의 대에 이르러 갑자기 혁파되니 애석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사전제는 이미 사회 원리로 정착되었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토지의 `사유`가 아니라 그 사유권을 불법으로 혼란시키는 `겸병`이 문제였을 따름이다. 따라서 당대의 특권계급들은 개혁파의 공전제를 오히려 불법적인 소유권 침해로 인식했다. 605)

성리학적 세계관은 정치체제에서도 강한 개성을 표출하고 있다. 그 핵심적 특징은 요컨대 체계적이고 이성적인 `질서`에의 희구이다. `천리`는 질서의 정점에 서 있으며, 인간의 내면은 물론이고 세계 전체에 공기처럼 편만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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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 존비, 적서, 남녀, 장유에 따른 계서적 신분 구성, 중앙집권적 관제, 가부장적 종법제, 정전제를 모델로 한 전제, 도통에 의한 진리의 계열화 등이 모두 천리의 원리와 이미지를 따르고 있다. 그것이 근엄하고 엄격하며 때로는 억압적인 조선의 정치적 풍경을 만들어냈다. 680)

조선은 제도를 통해 추구될 수 없는 부분까지 공공화하고자 했다. 정치가 정신적 영역까지 포괄하고자 했기 때문에 조선의 정신세계는 형식화될 위험을 내재하고 있었다. 또한 종교적 정신으로 정치를 이해함으로써 야기될 편협성과 폭력성을 회피하기 어려웠다. 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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