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탄생
오카다 히데히로 지음, 이진복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저자가 생각하는 역사의 기준은 (시간을 규정한) 역(歷)법의 발명과 기록 수단인 문자의 보유이다. 지중해 문명과 중국 문명만이 이 기준에 합당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여타의 문명은 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비로소 역사를 체현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중해 문명의 역사를 선과 악을 대변하는 유럽과 아시아의 '대결' 구도로, 중국 문명의 역사를 천명(天命)을 받은 통치권력의 세습 혹은 교체라는 '정통'의 계승 구도로 본다. 양자는 역사 서술의 전제(世界觀)가 완전히 다른 모형이었다.

저자가 제시하는 이 '대립'과 '정통'의 대립항은 범주가 다르다는 점에서 단순화의 경향을 띤다. 신이 선택한 선한 세력이 곧 '정통'일 수 있으며, 왕조 교체기에 나타나는 오행 순환의 역성혁명 주장은 '대립'을 정당화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칭기스칸의 정벌기는 완전히 다른 두 문명의 조우가 아니라 대륙의 실질적인 지배자였지만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린 유목민의 함성이 되살아난 것이며, 또한 유목민과 정주민의 공존이라는 오래된 선先역사의 재서술이기도 하다.


시간의 <세밀함>과 <오묘함>의 감각은 집단과 문화마다 대단히 다르다. 시간 그 자체는 물리적인 것이지만 시간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문화인 것이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 양쪽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도 자연계에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문화의 범위에 속하는 것이다. 역사는 문화이고 문화는 인간의 집단에 의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집단마다 각각 <이것이 역사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31)

원 왕조는 동아시아의 대부분을 통합하는 대제국을 세웠지만, 가장 중요한 지역은 물론 몽골 고원이기 때문에 중국은 원 왕조 식민지의 하나에 불과했다.
...
원 제국은 1368년 중국을 상실했을 때 멸망한 것이 아니다. 몽골인들은 결코 명을 <정통>의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다. 칭기즈 칸 자손의 왕가는 중앙 유라시아 도처에 살아남아 있고, 몽골 고원에서도 원 왕조(북원)를 자칭하는 왕가가 17세기까지 존속했고, 최후 칸의 아들은 만주인의 군주에게 항복하여 몽골 제국의 통치권을 청 왕조(1636~1912)에 인계했다. 102-3)

세속적으로 <몽골 제국은 네 개의 한국으로 분열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몽골 제국에는 창립자 칭기즈 칸 시대 이래 이미 많은 올루스가 있었고, 칸이라고 해도 지배권이 직접 미치는 것은 자신의 직할 올루스뿐이고 그외의 올루스 내정에 개입할 권리는 없었다.
이처럼 잡다한 몽골인의 올루스로 이루어진 몽골 제국을 통합하고 있었던 것은 위대한 칭기즈 칸의 인격에 대한 존경과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세계 정복의 신성한 사명에 대한 신앙이었다. 192-3)

육상 운송의 비용은 수상 운송에 비해 훨씬 높고, 그 차이는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커지게 된다. 해양 제국은 항구를 요소요소에 확보하는 것만으로 육군에 비해 적은 해군력으로 해상권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대량의 물자를 낮은 비용으로 단기간에 수송하는 무역을 통해 큰 이익을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몽골 제국이 아닌 몽골 제국 밖에 남아 있던 나라들에 의해 이른바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는 원인이었다. 21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