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제 - 전쟁과 대운하에 미친 중국 최악의 폭군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전혜선 옮김 / 역사비평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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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매우 강렬한 감정이어서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 질시는 강렬한 감정이지만 오래 지속되기 쉽다. 이것은 기억과 망각의 관계와 같아서 기억은 되새김질이 필요하지만 망각은 시간의 도움만으로 스며드는 이치와 비슷하다. 공감을 유지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이성의 뒷받침을 의미하고, 집단적으로는 제도의 구현을 의미한다. 측은지심이 사려분별로 넘어가는 과정은 반복과 더불어 성찰을 통한 도약이 필수적이다.

고대 중국의 남북조 시대는 상시적인 전쟁으로 삶과 죽음이 한 가지에 있는 시대였다. 외부의 침략만이 아니라 내부의 반역으로도 왕조가 수시로 전복됐기 때문에 공감의 토양은 번번히 씼겨나갔다. 천자나 귀족은 손에 움켜쥔 권력만큼 자신을 불사랐으며, 평민은 그 화염 속에 소모되는 일회용품에 불과했다. 오늘날에는 '시대의 제약'이란 변명에 불과하니 그저 인간을 갈고닦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줄 따름이다.



중국 중세 사회는 고대적 사회생활의 규칙이 무너진 뒤 계엄령으로 간신히 사회 치안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어서, 아직은 새로운 규칙이 어디에서도 성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최고 권력을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손쉽게 쥐게 된 소년 천자가 비행을 일삼는 원인이 바로 그런 환경에서 비롯되었는데, 북주의 경우에는 군벌의 단결력이 강하고 이른바 일당 전제정치를 행했기 때문에 비행 천자가 생겨날 여지가 없었다. 26)

(북제를 정복하여) 북주의 국력이 갑자기 강해진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와 동시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나쁜 풍조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는 오랫동안 지속된 긴장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더 이상 이웃 나라에 두려운 존재가 없다는 안도감이 점차 자신의 욕망을 끄집어내고, 나아가 방종과 타락으로까지 이르게 했을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기란 어려운 일이므로 안팎으로부터의 적당한 자극과 심신 단련이 필요하지만, 방탕으로 흐르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지는 법이다. 28)

전쟁이란 정말 골치 아픈 일이다. 마치 투기나 도박과 같아서 한 번 이기면 다음에도 꼭 이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졌을 때는 다음 번에야말로 이겨서 본전을 되찾으려고 벼르며 다시 시도하게 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수양제가 일으킨 수•고구려전쟁은 천자 자신도 경솔했지만, 그 이상으로 치적을 뽐내려 한 상급 장교들이 들고일어났기 때문에 시작된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 전쟁이 생각지도 못한 실패로 끝나면서 어떤 이는 전사하고 어떤 이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뒤에 남은 장교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다시 한번 전쟁을 일으켜 지난번에 받은 치욕을 되갚아 불명예를 만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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