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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의 함정 - 중산층 가정의 위기와 그 대책
엘리자베스 워런, 아멜리아 워런 티아기 지음, 주익종 옮김 / 필맥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맞벌이 가정은 소득 증가분을 뒤따르는 신규 소비 목록에 시달린다. 이것은 사치품의 구매와 같은 '하찮은 소비'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전업주부가 감당했던 육아와 교육, 안전과 (심리적) 안정 같은 유무형의 가치들을 구매해야 하는 상황 변화에서 비롯한다. 가정의 장기 보험 역할을 하던 전업주부들이 정기 소득을 올리는 직장맘으로 전환되면서, 맞벌이 가정은 평준화를 탈출하려는 욕구에 사로잡혔다.
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유자녀 가정을 주택 시장의 우량 고객으로 인도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교육과 안전을 위해 좋은 학군에 위치한 주택을 향한 입찰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주택 모기지 같은 장기 고정비의 증가는 경기불황에 따른 실업과 질병, 이혼 등의 돌발 사태 앞에서 소득의 상실분을 채우지 못하고 재정을 붕괴시켰다. 부모들은 무분별한 소비 생활을 즐기다 몰락한 실패자로 낙인찍혔다.
소득이 축소되면 소비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정이 맞벌이에 나서면서 모두가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평준화는 계단을 따라 올라와 더 조밀하게 생활을 압박했다. 채무자들을 둘러싼 과소비 신화는 무임승차자를 혐오하는 대중 심리를 자극하여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는 무기로 사용됐다. 이것은 비도덕적인 자들이 파산신청을 하고, 파산신청을 했으므로 비도덕적이라는 순환 논증이다.
우리는 도덕과 현실의 괴리를 기꺼이 수용하고 살아가면서도 도덕적 비난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도덕 원칙에 의거한 비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자신의 실수를 재빨리 수긍하거나 타인의 잘못을 비난하는 대열에 합류한다. 이러한 도피는 도덕이 그 자체로 위력적인 행동원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집단의 소속을 유지시켜주는 명분원리이기 때문이다. 이 비난은 대량 파산의 이면을 감추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집값을 훌쩍 넘어서는 모기지 대출과 한도가 넘쳐나는 신용카드를 남발한 금융기관의 공세이다. 성실한 근로와 건전한 재정상태를 입증해야만 차입이 가능했던 대출 심사는 경쾌한 광고와 끈질긴 신용대부 제안으로 변모했다. 금융권은 저신용자를 선호했는데,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들이 대출을 갚을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서였다. 연체가 시작되면 이자율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금융기관이 야수의 본성을 드러낸 것은 그들이 유독 이익에 집착하는 괴물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파산을 제한하고 대출을 완화하는 개정된 법의 방목장에서 마음껏 활보하는 사냥개였다. 파산자들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허수아비 때리기인 것처럼 약탈적 금융기관을 향한 도덕적 비난도 공허하기 짝이 없다. 행위의 원인과 결과가 멀리 떨어져 있는 현대사회의 복잡성은 냉혹한 판단을 쉽게 부추긴다.
실책에 대한 응징이 '눈에는 눈' 원칙에 따라 즉각적이고 동일하게 시행되면 불안 심리가 집단적으로 전염되어 개인들의 최선책-극적인 소비 축소와 저축-이 사회 침체를 야기하는 구성의 오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저자가 제안하는 공립학교 교육의 질 개선과 금융 재규제-이자율의 상한선 도입-와 같은 간명한 대책들의 현실화는 오직 정치 권력을 감시하는 다윗들의 연합 행동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