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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수수께끼
존 던 지음, 강철웅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저자는 '민주주의'가 담고 있는 의미의 내포와 외연을 둘러싸고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연구를 통해, '민주주의'의 함의가 단일하거나 균질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열정적인 정치적 참여로 출발했지만 곧 중우정과 동의어로 판명나면서 침묵의 세월에 묻혀야 했다.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은 '민주주의'의 부활을 알리는 극적인 신호탄이었지만, 두 개의 혁명 역시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다.
'민주주의'는 혁명의 열정이 오랜 경멸에서 건져내어 공론의 장에 올린 여러 실천방안의 하나에 불과했다. 고결함과 맹목이 공존하는 '단일한 마음들의 연합'이라는 '민주주의'의 속성을 우려했던 혁명 세력들은 대의제를 '민주주의' 부활의 대전제로 삼았다. 다수가 거의 언제나 자신들 바깥의 개인이나 소수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을 즐기며, 자신들의 취향이 자신들의 의견을 왜곡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성향을 버리려는 노력조차 회피한다는 사실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물론 이 결정은 회고적으로 정당화된 측면이 강하며, 최초에는 그저 참정권의 확대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공공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다른 방안들-이를테면, 갈등하는 이익집단이나 개인의 탐욕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사회 전체의 부와 안정을 추구한다는 환상-에 대한 믿음이 정당화의 주요 근거였다. 결과적으로 역사는 '대중의 반역'이라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공화정의 정신에 기반한 여타의 대안들에 대한 기대도 어긋난 예측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대의 모든 정체가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가장 매력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있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누구도 그 권리를 위해 노력하거나 희생해야 할 의무를 지우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이러한 허약함은 반민주적인 세력에게도 가장 매력적인 지점으로서, 그들은 권력 앞에서 흔쾌히 모든 것을 보장해준다고 공언(公言)하고 나서 곧장 아무 것도 보장하지 않는 공언(空言)으로 치환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시장경제가 평등을 해체하는 가장 강력한 메커니즘이라는 저자의 말은 절반의 진실이다. 시장경제는 개개인이 평등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동시에 평등을 추구하는 이성에게 물적 기반을 제공하며, 교육의 심화와 정신의 여력, 인간 관계의 확장을 도모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준다. 더구나 시장경제는 실행의 자유만이 아니라 실행을 촉진하는 '보이는 적대'로서의 역할도 겸한다. 시장경제의 자유의지는 그 반발을 억압할 수 있을 뿐 제거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의 수수께끼는 이론으로 해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실천으로 접근하는 삶의 방식(modus vivendi)의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