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종교 - 유럽 정신사에서의 로마서 13장
미야타 미쓰오 지음, 양현혜 옮김 / 삼인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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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3장은 얼핏 보면 신을 세속 권력의 제일근거로 규정하고, 군주들에게는 신의 나라의 일꾼으로서의 소명을, 신민들에게는 권위에 대한 복종의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인 사도 바울이 처한 정치적 맥락과 신앙인으로서의 자세가 해석자인 후대인들의 정치적, 신학적 입장과 맞물리면서 두 개의 대립항을 산출해내는데, 하나는 국가 (권력)이 신성한가 아닌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 (권력)이 복종의 대상인가, 구성의 대상인가의 문제이다.

신이 세속 권력의 근거라는 명제는 곧바로 국가의 신성함을 정당화하는 해석으로 전용된다. 이러한 입장은 비잔틴 제국의 황제-교황주의와 중세의 왕권신수설로 정식화되는데, 이는 당대가 굳이 변론을 해야 할 정도로 국가의 신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는 역설적인 상황의 반증이기도 하다. 구약성서의 히브리 민족의 경우처럼 신이 국가 권력의 행사에 긴밀히 관여하는지의 여부를 놓고 따져보면, 신이 침묵하는 세계는 신이 창조하였으나 더이상 주관하지 않는 세계로 전락한다. 신의 외면은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한 것처럼 국가에게서 신성함의 빛을 박탈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가 권력의 신성함 여부는 복종의 수위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이 지상을 떠나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신앙의 '양심'에 의지하게 되자, 로마제국기에는 '박해의 종말론'이라는 수동적 저항권이 등장하였고, 중세에는 주군과 신하의 쌍무 계약이 주군의 신의 상실로 파기될 때 복종의 의무도 사라진다는 소극적 저항권이 성립하였다. 교회 권력과 세속 권력의 결별을 천명한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로는 국가를 구성하는 핵심 요인이, 신이 떠나버린 지상 세계의 자유로운 개인들간의 계약으로 대체되면서 국가의 정당성은 '공공 복리'에 헌신하는 선한 통치와 결부된다.

법률, 군사력과 함께 종교를 진리성과 관계 없이 유용한 지배도구의 하나로 파악한 마키아벨리나 법률에 구속되지 않는 절대적 공권력으로서의 '주권' 개념을 확립한 보댕에 이르면 로마서 13장을 둘러싼 논의의 위력이 점차 쇠퇴한다. 이제 인민의 의지와 결정이 '천부의 권리'로 옹호되거나 국가 권력이란 이의 위임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대세를 이루면서 인간 제도로서의 '국가' 개념이 확고히 자리를 잡는다. 국가를 유기체에 비유한 홉스나 독일 관념론자들처럼 국가 권력의 절대성을 옹호하는 논의도 이어졌지만, 이 역시 일방적인 복종을 당연시했던 신정국가 체제의 확고함과는 다른 것이다.

로마서 13장이 주로 지배 권력의 이데올로기 역할을 담당한 것은, 예수가 혁명보다는 죽음을 택했듯이 '복종'이라는 말의 표면적 압력을 살리고 '양심'의 논거를 부식시키는 권력의 의지가 더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의미는 해석의 양식에 따라 사상의 양지와 음지를 얼마든지 오간다. <맹자>를 절문하여 누더기만 남기거나, <노자>를 제황학의 교범으로 추앙하는 일을 경계하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니라, 국가 권력과 부대끼는 우리의 의지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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