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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해부학 - 살인자의 심리를 완벽하게 꿰뚫어 보는 방법
마이클 스톤 지음, 허형은 옮김 / 다산초당 / 2010년 9월
평점 :
"악한 유전자"라는 것은 없고, 흉악 범죄자들의 과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별한 양상의 학대도 없으며, '반드시 악을 양산하는' 원인도 없다. 대신, "위험 인자" 메뉴라는 복잡한 재료가 존재한다. p468
악은 태어나는가, 길러지는가의 물음에 대해 저자는 위와 같이 대답한다. 선천적 악인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저자의 입장은 자신의 책을 수많은 연쇄 살인범의 잔혹하고 끔찍한 살인 행위들로 채우고 있다는 사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는 왜 도저히 갱생의 가능성이 없는 악마 중의 악마라고 해도 루시퍼의 재림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어렵게만 보이는 이 물음을 하나의 예를 통해 이해해 보도록 하자. 여기 11년 동안 최소 5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여자들을 강간, 고문하고 살해한 연쇄살인범이 있다. 그는 사이코패스 진단에서도 최상급인 40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고, 연쇄 살인범들이 통상적으로 갖추고 있는 청소년기의 3가지 징후(방화, 동물학대, 야뇨증)도 모두 확인되었다.
가석방 없는 3차례 종신형을 선고받은 그를, 수감 후 15년이 흘러 기자가 교도소로 찾아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혹시 지금은 피해자들의 가족들에게 일말의 미안함이나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을 갖고 있지 않느냐고.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나에게는 그 여자들이 모두 물건과 다름없었고, 여기서 나가게 되면 다시 똑같은 일을 저지르겠다고.
이쯤되면 이 연쇄 살인마는 갱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악마가 틀림없어 보인다. 여기서 시계를 돌려 그의 부모들의 삶을 살펴보자. 매춘부인 그녀가 임신 중에도 자주 마신 술의 알콜이 태아의 뇌를 손상시켰다면 어떻게 봐야 하는가? 폭력 성향이 강한 그의 아버지가 임신 중인 그녀를 수시로 구타하여 태아의 정서를 망가뜨렸다면 어떻게 봐야 하는가?
혹은 정상적으로 태어난 아이가 유아기에 부모의 부주의나 고의에 의해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면, 그래서 그 아이의 자아가 발현된 후부터는 완전한 사이코패스의 성향을 보였다면, 이런 경우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뇌의 특정 부위가 손상을 입으면 인격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철도 노동자 게이지의 사례를 통해 명확히 입증된 바 있다.
무조건적인 처벌은 악을 일상에서 음지로 몰아내는 일시적인 배제의 효과를 갖지만, 어설픈 자비심은 추가 범행의 여지를 넓혀서 불필요한 희생을 초래한다. 저자가 악의 등급을 분류하고 생물학적인 원인과 법적 제도의 개선을 병행하여 탐구하는 것은 범죄의 우발성과 계획성을 구분하고 초기에 악의 징후를 판별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