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대우고전총서 21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박찬국 옮김 / 아카넷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헤겔의 사유는 모든 개체를 아우르는 '완전한 체계'(System)의 추구로 요약된다. 헤겔 이후의 사상가들은 그가 남긴 바벨탑이 불가능을 추구했던, 몰락한 이상의 흔적임을 받아들이고 두 갈래의 길을 떠나는데, 한 쪽은 반성과 재생의 가능성을 긍정하고, 폐허의 잔해물을 고고학자의 섬세함과 상상력으로 탐구하여 새로운 방법론을 발견하려는 무리들이었고, 다른 쪽은 폐허란 생(生)의 소멸을 의미하므로, 완전히 다른 지역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사상의 탑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 무리들이었다.

 

니체는 후자의 길을 탐색하고 개척했지만 전자의 길이 버릴 수 없는 물음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니체가 혼돈의 디오니소스를 갈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며, 아폴론을 질시하는 이유는 그것이 은폐의 장막이기 때문이다. 그는 혼돈의 찬양자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아폴론의 평정을 도외시하지 않았다. "삶과 세계는 미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된다"는 그의 말 속에는 아름다움은 혼돈의 와중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관조의 평온 속에서만 머무르는 것도 아니라는 조화의 요청이 담겨 있다.

 

'없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부정은 '있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자의 무리들이 외치는 원초로의 회귀와 타락한 현실의 해체는 오직 타락한 현실이 '있기'에 가능한 언명이다. Chaos가 Cosmos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Chaos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 역시 Cosmos가 선사하는 질서에 대한 자각이 '있기'에 가능한 언명이다. Cosmos를 '없음'으로 돌리는 것은 니체의 주장처럼 본질을 관통하는 음악에 담긴 시의 언어가 아니라 침묵으로 모든 것을 전달하는 '염화시중의 미소'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이심전심은 언어를 폐기한다. 언어가 폐기된 자리에서는 이심전심도 소멸한다. 음악은 열정에서 태어나지만 언어로 대변되는 인간 정신의 형상화를 거쳐야 비로소 세계에 내려앉는다. 신적 정신은 몰아(沒我)이자 자신을 향한 관조이기 때문에 전달하는 영혼이 아니라 머무르는 영혼이다. 머무르는 영혼은 생(生)이 있더라도 그것을 잊은 상태이므로 태풍의 눈처럼 광폭한 비바람을 외부에 분출하면서도 고요함에 머무르고 있으니, 언제나 홀로 존재한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기에는 너무나 유한하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