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 미국, 세계
피터 H. 스미스 지음, 이성형.홍욱헌 옮김 / 까치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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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라틴 아메리카의 관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으로 대변되는 영토 확장 및 군사적 개입
2) 달러 외교(dollar diplomacy) 전략을 통한 유럽 세력 제거 및 미국 종속화
3) 불간섭의 선린 정책(Good neighbor)으로 독재정권과 우호적 관계 유지
4) 급진적 정책이나 정권의 등장을 일체 허용하지 않은 냉전시대의 반공주의
5) 워싱턴 컨센서스를 기반으로 한 경제 블록 결성과 마약, 불법이민 문제 심화
6) 9/11 테러와 지경학(geoeconomics)에서 지정학(geopolitics)으로의 이동

라틴 아메리카에 미국이 남긴 발자취는 '이념(理念)과 이권(利權)의 혼재'라고 할 수 있다.

이념은 민주주의 제도의 이식이라는 지루하게 길면서, 뜻대로 되는 바는 적은 난상토론에 지친 온건한 양심이 효율적인 복종 체계를 갖춘 독재정권과 반공주의라는 격렬한 정열의 유혹 앞에 번번이 고개 숙인 결과물이었다.

이권은 강력한 권위자의 억압과 좋은 이웃의 선량한 미소 어느 쪽의 간판을 내세웠는지에 상관없이 결코 저버리지 않고 쉼없이 작동하던, 개인 혹은 집단 권력층의 이기적 욕망이며, 약자의 등허리를 짓누르던 배후의 실체였다.

이념과 이권은 눌어붙은 동전의 앞뒷면이고, 한 배에서 나와 한 몸을 가진 쌍생아이며, 시린 바람을 막아주는 이와 잇몸의 관계로서, 이성과 욕망은 정치적, 경제적 신념의 인도 아래 풀리지 않는 언약으로 맺어진 약혼 관계였다.

과거의 사실을 현재에 되살리는 작업의 전제조건은 역사가의 가치판단과 사실의 정교한 재구성을 엄격하게 분리하여야 한다는 점이며, 감성적인 동사와 형용사보다는 무미건조한 명사의 건축물이 신뢰감을 주기 마련이다.

무색무취한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저자는 일방적인 가치 판단을 배제한 채 방대한 사실(史實)을 추적하여 재구조화하는 작업을 탁월하게 수행하고 있으며, 시기별, 주체별로 사태를 분석하는 학문적 서술 역시 정교하다.

분량의 제한과 미국과의 관계라는 변수를 고려하고 있어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미시적으로 펼쳐 보여주지는 않지만, 사태를 압축적으로 담아놓은 문장을 세심하게 읽는 독자라면 진실에 다가서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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