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고전 연속 강의 2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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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지중해 세계와 폴리스 시대

1강
생물학적 진화가 멈춘 4~5만 년 이후로 인간의 행위는 전적으로 학습의 산물이며, 문명을 잉태하는 기술은 도구와 그 도구를 가능하게 하는 관념의 복합물이다. 문명의 요소들은 신석기 농업 혁명 이후에 출현한다.

2강
고대 희랍은 지중해라는 압도적인 생활 조건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배로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는 지역들이 발전하였고, 농경만으로는 인구 증가에 대응할 수 없어서 주변 지역에 대한 탐사와 식민지 개척을 벌였다.

3강
강대국 페르시아가 희랍의 폴리스 연합에 패한 페르시아 전쟁은 해전의 주역으로 활약한 경장보병 출신 시민들의 정치적 발언권을 강화하였고, 아테나이의 제국주의를 촉진하여 펠로폰네소스 내전을 불러왔다.

4강
아테나이는 대내적으로는 민주정을 행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 행태를 일삼았다. 패권의 강성은 문화와 예술의 탁월한 성취를 이룩한 반면에 희랍 세계의 결속력을 약화시켰고 공통의 심성구조를 파괴했다.

5강
헤게모니를 구성하는 요소는 첫째, 군사력의 우위, 둘째, 시장의 형성, 셋째, 문화의 전파력이며, 에게 해를 장악한 아테나이의 헤게모니는 스파르테 중심의 라케다이몬 동맹 세력에게 구조적 불안감을 심어줬다.

6강
페리클레스는 아테나이 민주정에 대한 자부심을 '헬라스의 학교'라는 말로 표현하면서, 개인적인 이익과 손해와 무관한, 유기적인 공동체로서의 폴리스 사상을 천명했지만, 내전의 장기화는 이를 점차 파괴했다.

7강
역병의 창궐은 아테나이인들의 마음에 극단적 허무주의를 심어, 종교적 정신과 사회적 의례를 무너뜨렸다. 소피스트들은 규범의 상대성을 주장하였고, 생명을 경시하는 세태는 케르퀴라의 대량학살로 이어졌다.

8강
투퀴디데스의 정의에 따르면 전쟁은 '잔혹한 교사'이며, 사람의 마음을 그들이 처한 환경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언어의 의미가 변질되고, 권력욕이 규범을 대체하며, 고상함과 순박함은 조롱거리로 전락한다.

9강
델로스 동맹의 권위를 무시하는 멜로스 섬의 초토화 작전은 온건한 제국의 종결을 의미했다. 여기서 유능한 지도자와 현명한 다수의 조화 및 현실 정치에 충실하면 제국은 타락 혹은 실패하는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10강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는 기병대를 활용한 새로운 전쟁 기법을 도입하여 헬라스를 정복하고 페르시아마저 무너뜨렸다. 플라톤은 존재론적 허무주의의 극복을 주창하지만 대세는 안심과 회의주의로 기울었다.


2 로마와 중세 가톨릭 제국 시대

11강
포에니 전쟁과 같은 장기전으로 공화정의 기반인 소농이 몰락하고 원로원의 토지겸병이 가속화된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개혁이 실패하자 하층민의 불만을 흡수한 일인자들은 내전을 벌여 제정시대를 열었다.

12강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는 로마가 제국으로 가는 길목에 벌인 정복 전쟁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갈리안인들에게 살육과 식민화였던 이 원정은 카이사르가 수여한 평화와 전공으로 치장되어 그의 위상을 높였다.

13강
팍스 로마나의 오현제를 거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통치의 효율을 위해 동로마 제국을 세웠다. 직업군인 체제의 확립으로 농민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대지주 아래 편입되면서 도시의 몰락과 중세화가 진행된다.

14강
서로마를 점령한 게르만 족의 독립 왕국에서는 지주들이 기존의 로마 제국 시절보다 낮은 세금을 거두어 저항을 막고, 직업군인과 결합하여 농노를 착취하는 지주-전사 연합 체제를 형성하여 중세 봉건제로 나아간다.

15강
<고백록>은 자신의 삶이 하느님이 부여한 목적을 성취하는 과정임을 안 자아가 과거를 회상하는 기록이며, <신국론>은 시작과 끝을 주관하는 하느님의 섭리를 기반으로 한 목적론적 역사 신학의 관점에서 쓰여졌다.

16강
중세는 개인의 삶 전체를 규율하는 교회의 권위 아래 영주와 쌍무계약으로 맺어진 전사조직과 장원과 도시로 구성된 경제체제의 복합물이다.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희랍의 사유를 전파하여 변화의 기운을 싹틔웠다.

17강
14세기에 속권을 옹호하는 논의가 확대되면서 교황권을 약화시켰다. 소小빙하기와 흑사병의 만연은 농노 확보를 위한 전쟁을 유발하여 전사 계급의 몰락을 촉진하고, 무기의 발달은 중앙 집권적 국가를 예비했다.

18강
화약과 대포는 중앙 집권을 촉진하여 인공물로서의 영토국가 개념을 이끌어냈고, 종교개혁은 국민국가와 민족주의를 고양하였다. 30년전쟁은 종교에 대한 회의를 확산시켜 시대정신의 자리를 과학에 넘겨주었다.

19강
비코는 <새로운 학문>에서 자연학에 대한 형이상학의 우위를 말하면서, 문명 세계에 존재하는 신의 섭리를 증명하려 했으며, 부단히 변화하는 '자연법'을 근간으로 신과 영웅 및 인간의 시대가 순환한다고 보았다.

20강
비코는 인간의 역사적 활동(factum)을 통해 만들어진 시대정신인 진리(verum)를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았으며, '자연'탐구 대신에 '인간(사회)'를 연구하여 그 면면에 흐르는 순환법칙인 역사철학을 알고자 했다.


3 근대 국민국가 체제와 세기말

21강
30년전쟁은 국민군을 탄생시켰다. 국민군은 절대왕정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 요소로서, 막대한 유지비를 대는 군상 복합체를 구성하여 치안의 안정과 상업의 부흥을 가져왔고, 손쉬운 해외 정복사업에 동원됐다.

22강
종교의 권위(근본 범주, 이론 체계, 미래 예측)를 대체한 자연과학은 세계관을 전환시켰고 계몽주의를 통해 서구 전체로 확산됐다. 이것은 과학의 성과를 긍정하는 사회적 관계망과 제도적 뒷받침 속에서 가능했다.

23강
계몽주의는 사회운동의 원리로서의 이성이며, 과학에 근거를 두고 역사적인 통찰을 시도했다. 관념의 변혁을 원동력 삼아 물질세계를 깊게 탐구하고 보편적 시대정신을 발효하여 체계적 정신학을 수립하고자 했다.

24강
콩도르세는 인간 능력의 '완전가능성'을 확신하여, 공교육을 전인민에게 확대할 것을 주장했으며, 과학적인 원리와 실천으로 인간과 사회를 개조하고자 했다. 과학혁명과 계몽주의는 근대 제국주의의 밑바탕이었다.

25강
혈연 엘리트가 폐기되면서 근대 국민국가가 주요한 정치 행위자로 등장하고, 산업혁명이 확산되면서 '기계-사물'이라는 비인간 행위자가 경제 조직의 핵심 요소로 자리를 잡아 19세기 부르주아 전성기를 인도한다.

26강
인클로져 운동과 토지 병합으로 뿌리뽑힌 독립 자영농이 자유로운 노동자로 전환되고, 기술혁신이 가속화하면서 등장한 산업자본주의는 토지, 화폐, 노동을 상품화하고 이윤 추구의 마음을 '계발'하는 과정이었다.

27강
엥겔스는 1844년이라는 시간, 노동자계급이라는 행위자, 장소의 맨체스터를 엮어 산업혁명이 가져온 근대 산업도시의 실상을 해부하고, 프롤레타리아의 비참한 삶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제시한다.

28강
대도시의 공간 배치는 계급 구조에 대응하여 노동자계급과 중간, 상층계급이 서로 만나지 않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으며, 일련의 구획은 이윤이라는 말에 담긴 체계적인 배제와 은폐의 결과이다.

29강
노동자계급의 상태는 1) 임금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2) 계급간, 계급내 투쟁에 시달리며 3) 부작위에 의한 사회적 살인에 노출되어 있고 4) 질병과 죽음이 곁에 떠돌아 5) 냉혹한 계산에 따른 탈도덕화 현상을 보인다.

30강
근대화의 기본 심성구조는 '경쟁'이며 실존적 불안을 동반한다. 이윤 추구를 정당화하는 사상이 '온화한 상업론'이며, 인간의 정념이 파괴적인 방향으로 발현되지 않도록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상업활동을 장려하였다.

31강
프랑스 대혁명은 산업혁명과 함께 19세기를 부르주아에게 헌정했다. 제3계급은 혁명적 심성을 집단적 정체성으로 체현한 제4계급의 등 위에서 혁명을 일궜고, 주권의식과 역사적 주체성을 지닌 국민이 탄생했다.

32강
버크는 영국의 기성 체제를 지키려는 의도에서 혁명의 경거망동을 지적했고, 칸트는 혁명 이전에 보편사에 기여하는 세계시민 개념을 제시했다. 일련의 논의는 혁명의 성과를 제도화하는 헌법 논쟁으로 이어진다.

33강
인간의 주체적인 역사 활동을 강조하는 역사철학이 성립하면서, 계몽주의자 볼테르는 기계적 인과관계를 강조하였고, 헤르더의 인류의 도야를 위한 학교로서의 역사라는 관점은 헤겔의 세계정신으로 이어진다.

34강
<공산당 선언>은 계급을 역사의 행위자로 내세워 부르주아 혁명은 희비극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비희극으로 도식화한다. 대호황 속에 역사를 장악한 부르주아는 혁신을 지속해야 하는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35강
부르주아는 신분 질서의 신성한 후광을 지우고 유능한 개인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세웠다. 철도와 전신은 시공간을 압축하고, 기술에 지체된 의식은 대량 살상 무기의 위험성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36강
부르주아 헤게모니는 경제력, 합법적 폭력, 이데올로기적 설득력으로 구성된다. 1870년대에 독점기업이 등장하고, 청교도 정신을 강조하던 부르주아가 상속에 의존하는 유한계급으로 변질되면서 소비가 중요해졌다.

37강
대호황과 규모와 직종에 따른 노동자들간의 구분과 차별, 문화적, 민족적, 종교적 차이는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방해했다. 부르주아의 유산계급화와 러시아혁명은 계급적대를 낳았지만 수정주의 논쟁으로 귀결됐다.


4 제1,2차 세계대전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38강
19세기 말, 국가가 주체적 행위자로 부상하면서 제국주의적 다툼을 전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싹튼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극적으로 소모된 것은 인간 생명이었으며,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퇴장했다.

39강
제1차 세계대전은 군사력, 경제력, 프로파간다가 집약된 총력전의 양상을 보였다. 전쟁의 목표는 무역이나 영토 획득이 아니라 군사력을 과시하는 전쟁 그 자체에 있었고, 국가 교육을 받은 대중은 국민으로 거듭났다.

40강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역사는 미합중국의 세계 패권이 관철되는 과정이다. 마셜플랜을 기반으로 유럽의 질서를 재편하여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열었고, 미합중국이 전 세계를 관리하는 신식민주의 체제를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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