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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정신의 역사 - 서양은 어떻게 인문학을 부흥시켰는가
루돌프 파이퍼 지음, 정기문 옮김 / 길(도서출판) / 2011년 7월
평점 :
르네상스기에 본격적으로 재개된 그리스, 로마의 고전 문헌 연구와 비판작업은 흔히 생각하듯이 중세와의 단절이나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의 탈피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이성과 신앙의 조화라는 스콜라 철학의 변주-신의 섭리를 밝히는 작업으로서의 과학의 역할- 내지는 인간의 위상에 대한 다양한 접근-에라스뮈스의 인간의 주체적인 자유 의지와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 대변되는 절대적 복종-들이 상충하면서 거대한 사유가 유럽 곳곳에서 자유롭게 끓어올랐다.
이러한 사유들이 중세를 넘어 새로운 이름을 얻은 것은, 신앙이든 철학이든 그것을 행하는 주체로서 인간의 존재를 자각한 점이며, 여기에 헬레니즘 문화의 재발견이라는 의의가 스며 들어 있다.
무엇보다 고대 문헌을 수집, 번역하고, 주석을 달고 비평을 하는 모든 작업이 학문 탐구의 정신에 매료된 비균질적인 개인들의 열정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점도 르네상스의 인간주의(humanitas)를 대변해준다.
때로는 민족주의를 자극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륙의 보편주의를 뒷받침하기도 하면서, 서구의 인문주의는 고대를 향한 끊임없는 구애와 헌사의 벽돌을 모아 지금도 여전히 '고귀한 순박함과 온화한 위대함'의 성전을 지어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