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 이기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실천윤리
피터 싱어 지음, 노승영 옮김 / 시대의창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중요한 것은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수동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290)


'살 만한 삶'을 선택하려면 '살 만한 삶'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무엇인지 아는 방법에는 (간접) 배움과 (직접) 체험이 있다. 전자의 앎이 공식의 습득이라면, 후자의 앎은 체감의 납득이다. 유한한 우리는 어느 쪽을 택하든 제대로 알 가능성이 그다지 많지 않다.

사실 삶에서는 두 가지 방법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배움과 체험은 상호 교류의 관계이다. 공부의 깨달음은 배움의 체험을 뜻하고, 경험의 깨달음은 체험에서 배움을 뜻한다. 두 가지를 나누는 것은 이해의 방편이지, 대립자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이 반드시 "저렇게 살아야 한다"를 호출하지는 않는다. 싱어는 칸트의 의무적 도덕관을 엄숙히(!) 거부한다. 그의 윤리적인 삶은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이때 하고 싶은 것의 가치는 주관적인 판단 기준을 넘어서야 한다. 개인 내면의 평정이나 위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서 비롯해 가족과 친구, 타인과 생명체 전부에 이르는 보편성을 더디게 점검하는 방식이다. 궁극적으로 우주의 관점에 선 역지사지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윤리적 삶을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의 온갖 고통에 연민을 느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자 애쓴 위대한 전통에 참여하는 것이니까요." 348-9)


저자의 주장은 매혹과 설교, 허무와 전복의 경계 안에 서 있다. 헛된 삶도 헛되지 않은 삶을 인식하게 해주는 필연의 한 요소이다. 기적은 저자의 말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판단'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독자 개개인의 잠재적 윤리 안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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