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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지음, 허승일.박재욱 옮김 / 까치 / 2006년 9월
평점 :
운명은 신의 품 안에 있을 때면 ‘정해진 수순’이자 ‘불변의 절차’이지만, 시간의 막을 거쳐 인간 앞에 내려오면 ‘불시에 들이닥치는 변덕스러움’으로 뒤바뀐다. 최초의 민주주의, 위대한 비극 공연들, 논리와 이성을 확신한 소피스트들의 향연장이었던 그리스 아테네의 운명은 영광과 찬미의 황금으로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미다스의 손처럼 불행의 씨앗을 품은 찬란함이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놀라운 업적을 자신들의 능력과 결부지어 생각했다. 거기에 깃든 다시 찾아오기 힘든 행운과 신중한 사색의 몫을 고려하지 않았다. 페르시아 전쟁의 위대한 승리는 아테네를 올림푸스 산까지 팝콘처럼 튀어올렸고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그곳에서 내려오기를 거부하며 투표권을 행사했다. 사태가 최악을 넘어서 몰락에 이를 때까지도 말이다.
집단은 개인의 합집합이지만 개인의 결정과 판단력, 선함의 총합은 아니다. 개인은 가끔 마음을 바꾸고 체면을 중시하지만 집단은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수시로 결정된 상황에 구속당하며, 명예-설사 그것이 불명예스럽다 할지라도-외의 덕목을 폐기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익과 명분을 모두 추구하는 대중의 함성은 지도자들이 어느 길로 들어서더라도 열광하거나 비난할 준비가 되어있다.
민주주의는 이처럼 허술하고 시끄러우며 분쟁이 끊이질 않고 더디게 나아간다. 자신들이 쌓아올린 성과물에 쉽게 취하고, 평화로움의 권태를 이기지 못하며, 상대방에 대한 인내보다는 억압의 유혹에 자주 마음을 빼앗긴다. 민주주의는 의식하지 않는 공기와 같아서 나무를 심고, 폐기물을 줄이는 등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어느 순간 스모그로 돌변해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한다.
“한동안 사람들은 시칠리아에서 탈출한 병사들의 설명을 듣고서도 그 재난의 규모를 의심했다. 결국 진실을 받아들인 후, 분노와 공포에 휩싸인 아테네인들은 “마치 자신들은 원정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처럼”(8.1.1) 시칠리아 원정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정치가들에게, 그리고 성공을 예언했던 점술가들에게 분노를 쏟아부었다.” 385
신민(臣民)은 태어남으로써 완성되지만, 시민(市民)은 교육함으로써 길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