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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
일레인 페이절스 지음, 하연희 옮김 / 루비박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기독교인은 무신론자와 쉽게 친구할 수 있지만, 여호와의 증인과는 만남이 다소 껄끄럽다. 상대가 통일교 신자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고, JMS나 신천지 교인이라면 짙은 경계심을 비칠 것이다. 종교의 역사에서 이단은 이교도 혹은 무신론자들보다 더욱 강한 증오의 대상이었다. '무신론자는 모르고 죄를 짓지만, 이단은 알면서 죄를 짓기 때문에 그 형벌이 더욱 무거운 법이다.'
1945년 이집트의 라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문서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정통 가톨릭과 영지주의 교파간의 대립과 견해 차이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영지주의는 대체로,
1. 외부에서 얻는 보편적인 깨달음보다 자신의 내면에서 길어올린 깨달음을 중시한다.
2. 문화 전승처럼 진리에 대한 지식도 누적되면 이전(사도들)보다 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막달라 마리아를 베드로보다 탁월한 사도로 간주한다(여성성을 존중한다).
4. 육신의 부활이 아닌 영적인 부활을 믿으며, 깨달음이 곧 부활이라는 견해도 있다(인도불교의 영향).
5. 영지를 부여받은 사람은 모두 교회의 가르침을 뛰어넘으며 교회의 계급적 권위를 초월한다.
6. 주교(후대의 교황)로 대표되는 하나의 권위에 대항하는 정치적 목적도 깃들어 있다.
다양성은 건강함의 지표이지만 분열은 곧 에너지의 분산을 초래하기 때문에 통일을 향한 열망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신성을 깨우친 자들만이 진정한 지식의 향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견해와 무지한 자들도 오직 믿고 복종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견해 사이의 대립은 당연하게도 후자의 압도적인 승리와 전자의 철저한 소멸로 귀결되고 말았다.
저자는 잊혀지고 탄압당한 것이 곧 위대한 진리라는 음모론이나 신비주의적 통념에서 벗어나 영지주의가 사상의 발전 단계에서 주변의 다양한 영적 운동들과의 교류를 통해 빚어진, 다소 엘리트적이고 나름 순수했지만 종종 불온한 진리를 추구했던 교리운동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