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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ㅣ 히스토리아 문디 3
키스 W.휘틀럼 지음, 김문호 옮김 / 이산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은 가상의 존재를 창조해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대 근동지역에서 지배적 점유에 대한 실체가 불분명하거나 여러 토착민들과 뒤섞여 있던 유대 종족의 위치를 급격히 격상시킨 후 그 외의 모든 배경을 장막 뒤로 쓸어넣고 가려버린 행위를 가리킨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말미암아 시작되고 서유럽 기독교 국가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바탕으로 전개된 이러한 일련의 주장은 현재 팔레스타인 지방의 이스라엘 점령을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구한 역사에 근거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은혜에 힘입은 정당한 정착임을 역설하기 위한 것이다.
이 작업은 과거를 발굴하고 정립하는 학문적 행위가 현재의 정치, 사회적 위계관계를 구속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는 분명한 증거를 보여주는데, 여기에 사용되는 주요 방법이 '분류'와 '명명'이다.
'분류'는 이 지역의 역사적 시기를 선이스라엘기와 이스라엘 정착기, 다윗왕의 제국 건설기 등과 같은 용어로 정리하여, 여타 종족들의 부침을 여기에 종속시키는 경향을 말하며, '명명' 또한 이스라엘이라는 전체 명칭과 12지파와 같은 하위 명칭으로 고대 근동 지역을 구획짓고 호명하는 방식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신라 중심의 삼국시대라는 시대분류 속에 발해나 가야의 역사가 외면되는 현상과, 간도와 만주라는 명칭 사이의 미묘한 차이와 '소수민족 정착지'가 아닌 '잃어버린 고토'라는 호명이 주는 울림을 생각해보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즉, 근대 이후의 발명품인 '국민국가'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개개인이 자발적이고 뿌듯한 마음으로 내면화할 수 있도록 문화적 정당화라는 세련된 논리구조를 밑돌로 다져넣은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문명과 (훗날의 명칭이긴 하지만) 에게해 문명 그리고 페르시아 문명 사이에 교역과 점령의 교차로 역할을 해야했던 이 지역은 태생적으로 장구한 시간에 걸쳐 거대 문명이 발달할 수 있는 조건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부분적인 정착과 파괴, 비자발적인 유랑과 약탈, 종족간의 혼합과 대립이 순환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따라서 유대민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성경이라는 비역사적 텍스트 외에는 제대로 된 역사적 기록도 고고학적 유물도 빈한한 상황 아래에서 승자의 필체로 눌러쓴 현재의 모습은 일견 당연하지만, 중립과 객관적 서술의 외형을 띤 학술적 대공세에 감춰져 있는 이면의 욕망을 찬찬히 되새김질 해야하는 이유 또한 적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