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 엘리트, 반엘리트, 정치적 해체의 경로
피터 터친 지음, 유강은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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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양적 역사 분석을 통해 우리는 세계 각지의 복잡한 사회들이 반복적이고,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한 정치적 불안정의 파동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 파동은 수천 년에 걸친 인류 역사 내내 작동하는 동일한 일군의 기본적 힘에 의해 초래된 것이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대부분 악의 속임수나 부패한 개인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 대신 우리는 정부기관과 갤럽 같은 기관들이 만들어낸 사회학적 조사, 그리고 임금과 세금, 국내총생산(이하 GDP)에 관한 널리 합의된 빅데이터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런 데이터는 사회과학자들이 학술 저널에 발표하는 통계 분석에 반영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설명이 왜 더 복잡한지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 모든 데이터와 분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잡계 과학이 필요하다. 역사동역학은 수학 모델을 활용해서 우리 사회, 즉 복잡한 사회 체계의 각기 다른 ‘구동 부품들’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그물망을 추적한다. 12-3)


# 역사동역학cliodynamics :그리스 신화의 역사의 무제muse[뮤즈] ‘클리오Clio’와 변화의 과학인 동역학dynamics을 합친 것이다


1부. 권력의 역사동역학

1장. 엘리트, 엘리트 과잉생산, 위기로 가는 길


모든 사람이 더 많은 권력을 얻고 싶은 야망을 품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권력 지위보다 지망자가 더 많게 마련이다. 불가피하게, 권력 지위를 얻으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좌절한 엘리트 지망자들이다. 엘리트 과잉생산은 엘리트 지망자들의 권력 지위 수요가 공급을 대대적으로 압도할 때 늘어난다. 1980년대를 시작으로 미국 슈퍼리치(최소 1,000만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천만장자)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1983년 천만장자는 6만 6,000가구에 불과했는데, 2019년(데이터를 구할 수 있는 최근 연도)에 이르면, 그 수가 69만 3,000가구로 열 배 이상 증가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부유층 수의 증가가 그렇게 나쁜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메리칸드림의 일부인 이 뉴스에는 두 가지 부정적인 면이 존재한다. 우선, 초부자 계급의 확대는 나머지 인구의 부침과 고립된 채 이루어지지 않았다. 슈퍼리치의 수가 증가하는 한편, 전형적인 미국 가구의 소득과 자산은 실제로 감소하고 있다. 20)


다음 문제는 한결 미묘하다. 사회 피라미드의 상층부가 너무 무거워지면, 우리 사회의 안정에 암울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엘리트 지망자 게임, 줄여서 지망자 게임에서는 매번 의자 수를 줄이는 대신 참가자 수를 늘린다. 게임은 권력 지위(공직 같은)를 나타내는 의자 열 개를 가지고 의자 뺏기 게임과 똑같이 시작한다. 첫 번째 게임에서 열한 명(엘리트 지망자)이 의자를 차지하려고 겨룬다. 열 명이 기성 엘리트가 되고, 패자는 좌절한 지망자가 된다. 다음 판에서는 참가자 수를 늘리는데, 결국 두 배, 그리고 세 배까지 늘린다(의자는 그대로 열 개다). 승자 수는 그대로이지만, 좌절한 지망자 수는 처음의 한 명에서 열 명, 스무 명으로 늘어난다. 게임이 진행되는 가운데 혼돈과 갈등의 정도가 높아진다고 상상해보라. (아이 생일파티에서는 이 게임을 하는 걸 추천하고 싶지 않다.) 기묘한 증폭 효과도 생긴다. 지망자 수를 두 배에 이어 세 배로 늘리면, 좌절한 지망자의 수는 열 배, 스무 배로 늘어난다. 20-1)


게임 이론에서 참가자는 주어진 규칙 안에서 승리 전략을 고안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세계에서 사람들은 항상 규칙을 왜곡한다. 예를 들어, 당신은 의자에 가까이 가면 속도를 늦추거나 아예 바로 옆에 서서 음악이 멈추기를 기다리면서 경쟁자들을 밀칠 수 있다. 축하한다. 당신은 이제 막 반엘리트counter-elite(대항엘리트)가 된 셈이다. 게임에서 성공하기 위해 기꺼이 규칙을 어기는 사람인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남들도 재빨리 상황을 파악해서 의자마다 금세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오래지 않아 당신은 난투극에서 이기기 위한 비법을 얻게 된다. 권력 지위의 수는 지난 수십 년간 변함이 없었지만, 지망자 수는 전반적인 자산 소유자 수와 나란히 증가하고 있다. 증폭 효과 때문에 좌절한 지망자 수는 이미 인상적인 자산 소유자 수의 팽창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급증했다. 참가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규칙을 어길 가능성이 커진다. 게임 규칙—민주적 선거를 좌우하는 사회규범과 제도—이 느슨해지는 것이 놀랄 일인가? 21-2)


우리에게 트럼프 대통령을 안겨준—그리고 미국을 국가 와해의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회적 힘은 엘리트 과잉생산과 대중의 궁핍화다. 트럼프는 급속하게 늘어나는, 공직을 열망하는 초부유층 집단에 속한다. 그는 이미 굉장한 부자이고(천만장자, 어쩌면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억만장자인) 유명했지만, 더 많은 것을 원했다. 2016년에 이르면 대중의 궁핍화가 1992년보다 훨씬 심해졌고, 트럼프는 대통령 도전에서 이런 사회적 힘을 현명하면서도 무자비하게 활용했다. 결국 자신이 뒤처졌다고 느끼는 미국인의 대다수가 이 예상을 깨고 대통령이 된 후보—억만장자—에게 표를 던졌다. 여기에 더해 엘리트 과잉생산 게임이 분기점에 이르러서 많은 이들이 정치 캠페인의 행동 규칙을 내팽개친 상태였다. 후보자들은 언론의 관심을 끌고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앞다퉈 기이한 발언을 늘어놓고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은 반면, ‘진지한’ 후보자들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떨어져서 탈락했다. 24-5)


2장. 한 걸음 뒤로: 역사의 교훈들


우리의 분석은 불안정을 낳는 네 가지 구조적 추동 요인을 가리킨다. 대중의 동원 잠재력으로 이어지는 대중의 궁핍화, 엘리트 내부 충돌로 귀결되는 엘리트 과잉생산, 쇠약한 재정 건전성과 국가의 정당성 약화, 지정학적 요인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엘리트 내부의 경쟁과 갈등은 위기가 다가옴을 보여주는 믿을 만한 예측 지표다.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드는 추가 요인 하나를 언급해야겠다. 해체 단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단계가 항상 암울하지는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오히려 집단적 폭력 수준은 리듬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한 세대는 전면적인 내전을 벌이지만, 이 폭력으로 상처 입은 다음 세대(‘아들들’)는 불안한 평화를 유지한다. 폭력에 직접 노출되지 않은 채 자라는 그다음 세대(‘손자들’)는 할아버지들의 실수를 되풀이한다. 이런 동학 때문에 대략 50년(두 세대)에 걸쳐 폭력이 되풀이되는 주기가 만들어진다. 이 주기는 구조적 조건이 어떻게든 해결될 때까지 지속되면서 다음의 통합 단계로 이어진다. 34-5)


13세기는 중세 프랑스의 황금시대였다. 프랑스 왕이 직접 다스리는 영토는 13세기를 거치면서 세 배가 되었고, 1300년에 이르면 프랑스는 군사, 정치, 문화적으로 서유럽을 지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1300년 무렵 프랑스 왕국의 광채가 빛을 잃기 시작했다. 황금시대는 도금시대로 바뀌었다. 엘리트의 부는 지속된 반면, 보통 사람의 생활 상태는 악화되었다. 대중의 궁핍화를 낳은 근본 원인은 1300년 전 두 세기 동안 서유럽의 인구가 대대적으로 증가한 것이었다. 인구 폭발이 농민에게 토지를,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모든 이에게 식량을 제공할 수 있는 중세 경제의 역량을 압도했다. 인구 대다수가 기아 경계선에서 살았고, 1315년에서 1322년 사이에 흉작과 가축 감염병이 잇따르면서 체제가 궁지로 몰렸다. 수백만의 죽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 듯, 인구 재앙은 사회 피라미드의 상층부를 너무 무겁게 뒤바꿈으로써 사회적 안정에 더 미묘하면서도 파괴적인 또 다른 영향을 미쳤다. 35-6)


1250년 이후 귀족의 수는 인구 전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많은 하위 귀족은 두 명 이상의 아들에게 토지를 나눠줘도 모든 상속자에게 귀족 지위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소득을 안겨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널리 퍼진 재산을 가진 부호들은 외딴곳에 있는 재산을 일부 사용해서 장남을 제외한 아들들을 중간 귀족으로 만들어주었다. 사회적 상향 이동 비율도 증가해서 부유한 농민과 성공한 상인들이 귀족으로 올라섰다. 기근과 감염병이 닥쳤을 때, 엘리트들은 재난을 견딜 만큼 유리한 위치에 있어서 평민보다 사망률이 낮았다. 이 모든 추세가 결합되어 생산적 계급에 비해 귀족의 수가 증가해서 사회 피라미드의 상층부가 너무 무거워졌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귀족의 경제적 운이 역전되었다. 1300년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엘리트 수가 적고 값싼 노동력이 풍부해서 귀족들이 유리한 경제적 상황을 누린 반면, 14세기 중반에 이르면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36)


엘리트 지위를 유지할 만한 수입이 부족한 귀족들은 국가에 고용되려고 하는 한편, 농민들로부터 더 큰 비율의 자원을 뽑아내는 식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국가는 가난해진 귀족 전부를 고용할 수 없었다. 귀족이 너무 많았고, 정부 자체도 재정 파산으로 치닫고 있었다. 대규모 인구 증가로 추동된 물가 상승이 국가 세입을 갉아먹었고, 왕실 재정을 한계점까지 압박했다. 농민들로부터 더 많은 수입을 뽑아낸다는 것은 지주들이 잉여를 챙기는 것을 넘어서서 농민들의 생존에 필요한 자원까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지주의 억압은 그 자신의 경제적 토대를 훼손했다. 농민들이 도망치거나 굶어죽거나 헛된 반란을 일으켜 죽는 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이 두 전략이 실패로 돌아가자 귀족들은 서로를 먹잇감으로 삼기 시작했다. 엘리트 과잉생산 게임은 최후의 폭력적 단계로 들어섰고, 엘리트 간 충돌이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졌다.4 1350년대에 내부 질서의 와해가 왕국의 심장부까지 다다랐다. 36-7)


100년 전쟁이 끝난 뒤, 프랑스는 한 세기 동안 통합 단계를 누렸다. 1450년 전의 한 세기는 왜 그토록 황량했고, 그다음 세기는 왜 그렇게 찬란했을까? 그 답은 프랑스를 내전으로 떠민 힘들이 1450년 무렵에 작동을 멈추었다는 것이다. 대중의 궁핍화는 기근과 감염병, 내전으로 “처리되었다”. 이런 요인들이 누적된 결과로 프랑스 인구가 절반으로 줄었다. 이제 농민들에게 땅이 풍부했고,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노동자 실질임금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지대가 곤두박질치며 임금이 상승하자 부의 펌프가 사실상 막혔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으로, 크레시와 푸아티에, 아쟁쿠르, 그밖에 잘 알려지지 않은 많은 전투에서 벌어진 수많은 인명 손실로 수만 명의 ‘잉여’ 귀족이 사라졌다. 1300년에서 1450년 사이에 전체 인구가 절반으로 준 한편, 같은 시기에 귀족 수는 4분의 1로 감소했다. 사회 피라미드의 상층부가 너무 무거운 상황이 끝이 나고, 아래쪽이 넓고 위는 좁은 한층 더 안정된 형상을 회복했다. 38)


2부. 불안정을 추동하는 요인들

3장. “농민들은 혐오스럽다”


1976년에 공립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평균 비용은 연간 617달러였다. 1976년에 중위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한해 대학교 학비를 벌려면 150시간을 일해야 했다. 2016년에는 공립 대학교 평균 학비가 8,804달러였다. 중위 임금 노동자가 이를 감당하려면 500시간을 일해야 했다. 세 배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것이다. 중위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중위 노동자는 1976년에 비해 2016년에 주택을 사기 위해 40퍼센트를 더 일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중위 임금 대신 고졸 노동자 평균 임금—1976년에서 2016년 사이에 절대적 액수로 감소했음을 유념할 것—을 놓고 똑같은 계산을 해보면, 대학 학비를 내기 위해 일하는 노동 시간이 거의 네 배(정확히 말하면 3.85배)다. 2016년에 ‘노동계급’(저학력) 부모는 1976년에 비해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네 배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했다. 결국 지난 몇십 년간 저학력 계층에서 고학력 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대폭 잠식되었다는 뜻이다. 59)


복리와 그 반대인 궁핍화에는 다른 차원들도 존재한다. 생물학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이 그것이다. 생물학적 복리를 보여주는 가장 민감한 지표 중 하나는 인구 집단의 평균 신장이다. 영양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은 에너지 섭취이지만, 식사의 질(가령 신선한 채소 섭취) 또한 신장에 영향을 미친다. 성장을 방해할 수 있는 환경의 압력에는 높은 유행병 빈도(감염을 막으려면 에너지가 소요된다)와 고된 노동(특히 아동과 청소년 시기에) 등이 포함된다. 15~20세의 청소년은 폭풍 성장기를 겪으면서 성인의 신장에 도달하고, 일단 20대 초가 되면 성장이 멈춘다(그리고 결국 아주 느리기는 해도 키가 줄기 시작한다). 따라서 1960년에 태어난 아동의 키는 1975년에서 1980년 사이에 경험한 환경 조건에 의해 어느 정도 정해졌다. 그리고 이 조건은 대체로 부모 세대가 받는 임금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 결과, 1970년대 말 전형적인 미국인의 실질임금이 증가를 멈췄을 때, 그 자녀들의 평균 신장도 증가를 멈췄다. 59-60)


생물학적 복리를 보여주는 또 다른 매우 유용한 지표는 기대수명이다. 케이스와 디턴이 사망률 증가를 기록한 첫 번째 인구 집단은 45~55세의 노동계급 백인 남성이다. 이 집단의 추세가 역전된 것은 1990년대 말이다. 사망률 증가를 추동한 요인은 케이스와 디턴이 “절망사”라고 뭉뚱그려 언급하는 원인들의 결합이다. 절망사는 자살, 알코올 중독, 약물 남용으로 인한 죽음이다. 모두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회피하는 방법이다. 자살은 가장 빠른 탈출구이지만, 약물 과용과 알코올성 간경변으로 인한 사망도 마찬가지로 자초한 죽음이며 다만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다. 특히 인상적인 사실은 저학력 남성에게서 절망사가 네 배 증가한 반면, 고학력 남성의 경우 별로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2005년, 중년 이전 세대의 절망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30대와 40대 미국인의 사망률은 부모 세대의 사망률보다 빠르게 높아졌다. 나이 든 세대가 젊은 세대보다 사망률이 낮은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62-3)


4장. 혁명군


'프레카리아트'라는 용어를 대중의 의식에 주입한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은 학위 보유자들을 프레카리아트 집단의 하나로 본다. 〈이 집단은 부모와 교사, 정치인들에게서 경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대학에 진학하는 이들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이내 복권을 산 것임을 깨달은 채 미래 없이 빚만 잔뜩 지고서 사회로 나온다. 이 파벌은 더 적극적인 의미로 위험하다. 그들은 포퓰리스트를 지지할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또한 낡은 보수주의 정당이나 사회민주주의 정당도 거부한다. 그들은 직관적으로 새로운 낙원의 정치를 추구한다. 낡은 정치 스펙트럼이나 노동조합 같은 조직에서는 이런 정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고학력 프레카리아트(또는 역사동역학의 용어로는 좌절한 엘리트 지망자 계급)가 사회 안정에 가장 위험한 계급임을 알 수 있다. 고급 학위를 가진 젊은이의 과잉생산은 1848년 혁명에서부터 2011년 아랍의 봄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격변을 추동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76)


1991년 로스쿨 졸업생의 초봉 분포를 보면 가장 흔한 연봉을 반영하는 3만 달러가 최고점이었다. 분포의 왼쪽 ‘꼬리’ 부분은 짧지만 2만 달러 이하는 없었다. 오른쪽 꼬리 부분은 더 긴데, 9만 달러가 최대였다. 2020년 졸업생은 왼쪽 혹이 약간 납작해지고 대다수가 4만 5,000~7만 5,000달러의 연봉을 보고해서 전체 연봉의 50퍼센트를 차지했다. 하지만 오른편 봉우리는 이제 19만 달러로, 전체 분포의 20퍼센트 이상이었다. 연봉이 19만 달러인 오른쪽 봉우리의 20퍼센트는 기성 엘리트층에 순조롭게 진입하는 중이다. 왼쪽 혹 부분에 있는 4만 5,000~7만 5,000달러 소득자들은 곤란한 상태다. 2020년 로스쿨 졸업생의 절반이 16만 달러 이상의 빚을 지고 있음(네 명 중 한 명은 20만 달러)을 감안하면, 이 개인들 가운데 엘리트 계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그 대신 대다수가 빚과 가차 없이 쌓이는 이자에 짓눌릴 것이다. 미국 로스쿨 졸업생 대다수가 프레카리아트 성원이라는 것은 이상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77)


2004년 출간된 선견지명이 담긴 책 《치팅컬처: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에서 데이비드 캘러헌David Callahan은 1980년대를 시작으로 무제한 경쟁과 폭발적 불평등, 승자독식 사고방식을 촉발한 문화적 전환이 낳은 결과를 분석한다. 그는 대기업 스캔들과 도핑을 하는 운동선수, 표절하는 언론인,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학생 등에 관해 서술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동학은 지망자 게임이 마지막 단계로 나아가면서 벌어지는 현상과 완전히 일치한다. 극단적 경쟁은 가장 뛰어난 후보, 그 지위에 가장 적합한 후보를 선별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의 규칙, 즉 사회가 어떻게 기능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다스리는 사회규범과 제도를 갉아먹는다. 이런 경쟁은 협력을 파괴하고 능력주의의 어두운 면을 끄집어낸다. 또한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창출한다. 그리고 실패한 엘리트 지망자들 가운데 일부는 급진적인 반엘리트로 돌아서서 자신들을 길러낸 부당한 사회질서를 파괴하려고 한다. 77-9)


오늘날 이데올로기적 차이는 엘리트 내부 충돌에서 무기로 활용된다. 기성 엘리트 성원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경쟁하는 지망자들을 앞지르기 위해서도 그렇다. 다시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엘리트 과잉생산을 해결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전형적인 방식은 대량 학살이나 투옥, 국외 이주, 강제적 또는 자발적인 하향 사회 이동을 통해 잉여 엘리트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패자들을 상대적으로 온건한 방식으로 처리했다. 지금 우리가 접어들고 있는 듯 보이는 이데올로기 투쟁의 두 번째 단계의 사회적 논리는 더욱더 급진화를 추동한다. 경쟁 파벌들이 벌이는 투쟁에서 기꺼이 비난을 고조하려는 세력이 온건한 세력에 승리를 거둔다. 패자들이 옆으로 밀려나는 가운데 전장이 이동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급진적으로 보였던 이념이 이후의 이데올로기 투쟁을 위한 전장이 된다.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의 좌파와 우파 양쪽 끝 모두에서 동일한 논리가 작동한다. 87)


5장. 지배계급


미국의 대통령과 사회과학자, 공적 지식인 등이 미국이 금권정치 국가라는 생각을 표현한 바 있다. 나도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용어를 중립적 의미로, 즉 단지 경제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국가의 약칭으로 사용한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에서 권력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대기업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은행, 로펌 등 대규모 소득을 창출하는 자산의 소유주와 경영자들이 그 주인공이다.18 몇몇 대기업 부문은 공공정책에 미치는 영향력과 응집력이 너무 큰 탓에 지난 시기에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나 FIRE(금융finance, 보험insurance, 부동산realestate) 부문, 에너지(석유와 가스, 전기) 부문, 실리콘밸리, 대규모 식품회사Big Food, 대규모 제약회사Big Pharma, 의산복합체medical-industrial complex, 교산복합체education-industrial complex 등 갖가지 별칭을 얻었다. 경제와 행정의 두 권력 네트워크는 아주 철저한 방식으로 일심동체를 이루지만, 경제 네트워크가 지배적인 관계다. 98)


정치학자 마틴 길런스Martin Gilens는 소규모 연구 조교들의 도움을 받아 방대한 데이터 집합을 수집했다. 1981년에서 2002년 사이에 2,000건에 육박하는 정책적 쟁점이었다. 각 사례마다 제안된 정책 변화와 그 제안에 관한 찬반을 묻는 국민 여론조사를 연결시켰다. 데이터 집합을 통계 분석한 결과, 빈곤층의 선호가 정책 변화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함이 드러났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는 아니다. 놀라운 것은 평균적 유권자 효과가 전혀—무無, 0— 없었다는 것이다. 정책 변화의 방향에 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유층의 정책 선호였다. 이익집단이 추가로 영향을 미치기도 했는데, 기업 중심 로비가 가장 영향력이 컸다. 통계 모델에 상위 10퍼센트와 이익집단의 선호를 포함시키면, 보통 사람의 영향력은 통계적으로 0과 구별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 시민들이 언제나 지는 쪽이라는 말은 아니다. 일반 시민들이 부유층과 견해를 같이하는 정책 쟁점이 많이 있으며, 이런 정책 변화는 쉽게 실행된다. 101)


6장. 왜 미국은 금권정치인가?


미국 남북전쟁 전의 지배계급은 잉글랜드 지주 계급의 직접적인 파생물이었다. 버지니아와 남북 캐롤라이나, 조지아에 정착한 이들은 잉글랜드 내전에서 패배한 찰스 1세를 지지하는 파벌인 왕당파Cavaliers였다. 그들은 귀족적 생활방식과 계약하인indentured servants[주인이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가는 경비와 숙식을 제공해주는 대신에 정해진 기간 동안(주로 4~5년) 하인으로 봉사하는 제도]을 함께 들여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하인은 수입된 아프리카인, 즉 평생 노예가 된 이들로 대체되었다. 대영 제국에 맞선 혁명전쟁에서 승리한 뒤, 승자들은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기 시작했다. 남부 농장주들과 북부 상인들은 대체로 자신들에게 익숙한 문화적 형태의 거버넌스를 베꼈다. 초기 아메리카공화국은 군주(그 시점에 이르러 군주는 대영 제국에서도 어쨌든 명목상의 인물로 전락하는 중이었다)가 없기는 했지만 영국을 본뜬 과두제였다. 그 결과 미국은 금권정치를 ‘문화적 유전자형’의 일부로 물려받았다. 107-8)


하지만 대기업 금권정치가 남북전쟁에서 전쟁 전 지배계급을 무너뜨렸을 때, 이런 대륙 팽창 과정이 거의 완성되었다. 멕시코나 캐나다는 미국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북아메리카는 거대한 두 해자—대서양과 태평양—에 의해 어떤 잠재적 위협으로부터도 보호받는 거대한 섬이다. 미국에 존재했던 군사정치는 남북전쟁으로 파괴되었다. 남북전쟁 당시 미국 직업군인 장교의 압도적 다수가 패자 쪽에서 싸웠기 때문이다. 1914년 전에 관료 기구는 사라져가는 소수로서, GDP에서 연방 정부가 점유하는 비중은 2퍼센트에 불과했다. 어쨌든 변변치 않은 수준의 행정 기구는 금권정치가 철저하게 지배했다. 1828년에서 1900년 사이에 악명 높은 ‘엽관제’ 덕분에 대부분의 연방 관리들이 선거에서 승리한 당에 의해 교체되었다. 그리하여 미국 금권정치의 부상은 대부분 그 역사적 선조들과 지리적 환경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금권정치가 계속 생존하고 21세기에 개화한 것은 대체로 두 번째 원인, 인종과 종족 때문이다. 108)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시기의 민주당은 노동계급의 당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덧붙여야 한다. 민주당은 백인 노동계급의 당이었다. FDR은 자신의 의제를 밀어붙이기 위해 남부 엘리트들과 악마의 거래를 해야 했다. 이로써 남부는 사실상 FDR 행정부가 구축한 노동, 기업, 정부 삼자 교섭의 예외가 되었다. 특히 남부의 인종분리주의 체제는 고스란히 남았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흑인 노동자까지 포함하는 식으로 사회계약이 점진적으로 확대되자 금권정치인들이 미국이 거의 북유럽 국가가 되어 다른 두 이익집단, 즉 노동자와 국가가 자신들의 권력을 제약한다고 불만을 품으면서 활약할 여지가 생겨났다. 그들은 공화당을 활용해서 자신들의 의제를 밀어붙이면서 노동자 보호를 해체하고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인하하고자 했다. 이런 의제는 처음에는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와 리처드 닉슨 같은 정치인들의 행동으로 전환되었고, 나중에는 로널드 레이건의 ‘남부 전략’으로 바뀌었다. 109-11)


대략 193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미국의  ‘대압착’은 이례적이고 희망찬 사례들 가운데 하나다. 유혈 혁명이나 국가 붕괴, 파괴적인 감염병이 전혀 없었고, 제2차 세계대전은 순전히 해외에서 벌어졌다. 내부 혁명과 외부 경쟁—나치 정권과 냉전기의 소련에 맞서—의 위협은 분명 미국 지배계급이 올바른 조합의 개혁을 채택하는 문제에 집중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런 개혁은 부의 펌프를 중단하고 불평등의 추세를 뒤집었다. 하지만 진보의 시대부터 뉴딜을 거쳐 ‘위대한 사회’에 이르기까지 미국 지도자들을 움직인 유일한 동기가 공포였다고 생각한다면 부당한 판단일 것이다. 전후 시기에 이르러, 대다수 엘리트들은—엘리트들 사이의, 그리고 엘리트와 보통 사람들 사이의—사회 협력을 장려하는 가치들을 내면화한 상태였다. 그들은 재정 정책과 정부 조치를 활용해서 국가가 경기 하락에 대처하는 것을 옹호했다. 그리고 국가가 경제생활을 인도하는 데서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사고를 받아들였다. 117)


3부. 위기와 여파

7장. 국가의 와해


국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죽는다. 어떤 국가는 폭력 사태 속에 사라지고 어떤 국가는 조용히 허물어지다가 신음 소리로 명이 끊긴다. 기원전 27년부터 서기 68년까지 로마를 지배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는 네로가 중얼거리면서 끝이 났다. “내 안의 훌륭한 예술가가 죽는구나!” 중앙 권력이 갑자기 파국적으로 해체되는 국가 붕괴는 역사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최근의 생생한 사례는 쿠바 혁명인데,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가 비행기를 타고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도망친 1959년 1월 1일에 기정사실이 되었다. 같은 식으로 권력이 내파內破된 최근의 사례(최소한 이 책을 쓰는 시점에서)는 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공화국이 붕괴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국가가 내파하는 ‘네로의 순간’은 5,000년 전 최초의 국가들이 진화한 이래 줄곧 존재했고, 다시 생길 게 분명하다.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의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들에 이런 일이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122-3)


소련 해체 이후 지배 파벌로 떠오른 경제 엘리트(올리가르히)는 모든 주요 매스미디어를 소유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 엘리트들을 통제했다. 두 번째 집단에는 행정 엘리트(관료 집단)와 군사 엘리트(국가안보기관과 군 장교들을 포함하는 이른바 실로비키siloviki)가 포함된다. 이어진 권력 투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끄는 행정/군사 엘리트 동맹이 금권정치인들을 물리쳤다. 갑작스러운 혁명 같은 건 없었다. 이 과정은 점진적이어서 올리가르히들이 잇따라 망명길에 오르거나(베레좁스키와 구신스키), 투옥된 뒤 망명하거나(호도르콥스키), 권력 위계에서 종속적인 지위로 좌천되었다(포타닌). 올리가르히들이 패배한 것은 응집력 있는 지배계급이 되지 못한 채 자신들의 집단적 이해관계를 증진시키는 대신 서로 싸우느라 에너지를 소진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강압 기구를 통제하는 것이 중요함을 과소평가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는 어떤 정당성도 없었고, 국민들이 그들의 도둑정치 방식을 진심으로 혐오했다. 133)


1990년대 동안 우크라이나의 정치경제는 러시아와 비슷했다. 한 무리의 올리가르히들이 국가 소유 생산수단을 민영화하면서 집권했다. 하지만 1999년 이후 두 나라가 걸은 궤적이 갈라졌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올리가르히들이 전혀 타도되지 않았다. 대신에 경제 엘리트들이 절대권력을 잡았다. 우크라이나의 올리가르히들은 내부의 다른 어떤 견제도 받지 않은 채 나라를 통치했음에도 응집력 있는 지배계급이 되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몇몇 파벌을 결성해서 선거 정치와 반半합법적 자산 압류, 심지어 투옥 등까지 무기로 활용하면서 서로 싸웠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누구를 선출하든 간에 공직자들은 보통 사람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대신에 패배한 올리가르히들로부터 부와 권력을 빼앗는 데 집중했다. 우크라이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관해 정반대로 대립되는 생각을 가진 양대 진영으로 유권자들이 분열되면서 국가의 전반적인 기능장애가 한층 심해졌다. 134-5)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이래 30년 동안 국가 권력 구조는 국민, 올리가르히, 미국의 식민지 총독들이라는 세 층위의 구성으로 발전했다. 우크라이나 시민의 다수는 정기적인 선거에서 투표했지만, 누구를 뽑든 간에 유권자들의 바람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 그 결과 모든 행정부는 선출되자마자 대중의 지지를 잃고 스캔들에 휘말렸다. 초기의 한 명(쿠치마)을 제외하면, 어떤 대통령도 연임에 성공하지 못했다. 다음 선거에서 좌절한 유권자들은 기존의 패거리를 내쫓고 다른 패거리를 선출했다. 2004년과 2014년 두 차례 혁명이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정치인들 또한 올리가르히들 자신이나 그들이 긴밀하게 통제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혔다. 변한 거라곤 다른 한 무리의 올리가르히들이 여물통 앞에서 배를 채운다는 것뿐이었다. 연구자들은 출신지에 바탕을 둔 네 개의 주요 네트워크, 또는 ‘패거리’를 확인했다. 남동부의 드니프로와 도네츠크, 중부의 키이우, 서부의 볼히니아가 각 중심지다. 136-7)


2014년 혁명의 가장 파국적인 결과는 돈바스의 두 지역인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 벌어진 격렬한 내전이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돈바스 민병대가 우크라이나군과 아조우 연대Azov Regiment처럼 공공연하게 네오나치를 표방하는 지원병 여단에 맞서 싸웠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쯤이면 돈바스 전쟁으로 이미 1만 4,000명이 전사한 상태였다. 현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정계에 진출한 것은 양대 올리가르히인 포로셴코(2014년에서 2019년까지 우크라이나 대통령)와, 그에게 대항할 후보가 필요했던 이호르 콜로모이스키Ihor Kolomoisky(드니프로[페트롭스크] 올리가르히 패거리)가 경쟁한 결과였다. 하지만 충돌이 2월 24일 전면전으로 확대되자 젤렌스키는 재빨리 전시 대통령으로 변신한 뒤 승전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엄중한 선택에 직면해 있다. 침몰하는 국가가 될 것인지, 군사정치로 변신할 것인지의 선택이다. 139)


8장. 근미래의 역사들


급진화 과정은 질병처럼 작동한다. 여기에는 세 종류의 개인이 관여한다. ‘순진한’ 유형은 역학 체계에서 쉽게 감염되는 사람들에 해당한다. 순진한 개인들은 급진적 유형의 개인(질병 모델에서 전염성 개인에 해당)들에게 노출되면서 ‘급진화’될 수 있다. 순진한 사람과 극단주의자 이외에 개인은 ‘온건주의자’(감염병 모델에서 ‘회복된 사람’에 해당)다. 이 집단은 급진주의와 폭력에 환멸을 느끼고 사회 성원들이 협력해서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옛 극단주의자들로 구성된다. 순진한 개인들은 능동적인 정치 프로그램이 없고, 극단주의자는 불안정을 증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온건주의자는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극단주의자가 많을수록(따라서 폭력의 비율이 높을수록) 순진한 개인이 급진화되기가 쉽다. 하지만 온건주의자들 또한 역할이 있다. 온건주의자의 숫자가 늘어나고 그들이 불안정을 억제하는 중도적 영향력을 행사하면 급진주의에 의한 ‘감염’이 감소한다. 145-7)


마크 미즈러키Mark Mizruchi는 2013년 저서 《미국 대기업 엘리트의 균열The Fracturing of the American Corporate Elite》에서 전후 시대에 통일되고 중도적, 실용적이었던 대기업 엘리트들(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고위 중역)이 최근 수십 년간 파편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경제 지도자들은 중도에서 멀어지고 공동선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줄었다. 이런 현상이 “미국 민주주의의 현재적 위기를 낳은 중요한 원천이며 21세기 미국이 처하게 된 곤경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기업 공동체 내부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점차 가시적인 징후 하나는 극단적 이데올로기 의제를 밀어붙이는 자선 재단의 부상이다.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는 초보수주의 재단들이 있다. 찰스 코크Charles Koch, 머서 일가, 세라 스케이프Sarah Scaife 등이 대표적이다. 돔호프는 이 재단들을 “정책 방해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정책 방해 네트워크가 추구하는 목표는 “모든 정부 프로그램을 공격하고 정부 공무원들의 동기를 모조리 의심하는 것”이다. 150-1)


오늘날 미국의 지배계급은 인류의 역사 내내 수천 번 반복된 곤경에 빠져 있다. 많은 평범한 미국인들이 지배 엘리트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 지배계급의 얼굴에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공화당의 기성 정치인들도 포퓰리즘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대기업에 대한 충성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엘리트 지위를 추구하다가 좌절한 수많은 학위 소지자들이 반엘리트를 키우는 온상이다. 기존 체제를 타도하는 꿈을 꾸는 이들이다. 대다수 자산 보유자들은 현 상태를 보전하기 위해 어떤 개인적 이익도 희생할 생각이 없다. 이런 현상을 전문적 용어로 ‘혁명적 상황’이라고 한다. 지배계급이 혁명적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경로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들의 전복으로 이어진다. 다른 하나는 일련의 개혁을 채택해 사회 체계의 균형을 바로잡으면서 대중의 궁핍화와 엘리트 과잉생산 추세를 뒤집는 것이다. 미국의 지배계급은 과거에, 그러니까 한 세기 전에 이를 해냈다.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을까? 162-3)


9장. 부의 펌프와 민주주의의 미래


부의 펌프가 차단된 균형 잡힌 사회 체계는—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끊임없이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불안정한 평형 상태다. 이런 불안정은 사회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의 하나인 “과두제의 철칙” 에 기인한다. 한 이익집단이 많은 권력을 획득하면 필연적으로 이 권력을 이기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전근대 사회와 현대 사회에서 이런 일반 원리가 작동하는 것을 본다. 예를 들어, 초기 러시아 제국은 모든 사람, 즉 농민과 귀족과 통치자가 복무하는 일종의 복무 국가service state였다. (표트르 1세는 복무 차르의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하지만 귀족이 다른 집단보다 권력이 더 많았고, 결국 귀족들은 자신들만 복무를 면제받는 식으로 삼자협약을 뒤집었다. 그러고는 부의 펌프를 작동해 농민을 억누르면서 기생 계급이 되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역사적 국가에서 거듭해서 이와 동일한 과정을 목격한다. 불안정의 물결이 언제나 반복되는 이유다. 172-3)


유감스럽게도,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은 과두제의 철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가지 뚜렷하고 분명한 징후는 20세기의 대부분 시기 동안 장기간에 걸쳐 소득과 부가 압착(대압착)된 뒤,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 내에서 경제 불평등이 다시 증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유럽은 또한 고급 학위를 보유한 젊은이가 과잉생산된다는 점점 극심해지는 문제를 겪고 있다. 한층 더 우려스러운 상황은 서구 민주주의가 ‘계급에 기반한 정당 체계’에서 ‘다수의 엘리트 정당 체계’로 이행하는 것이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면, 비록 민주적 제도가 사회를 통치하는 가장 좋은(또는 가장 덜 나쁜) 방식이기는 하지만 민주주의는 특히 금권정치인들의 전복 시도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적나라한 열정만으로는 지속적, 장기적인 효과를 내기에 부족하다. 물론 돈만 있는 것보다는 돈에 열정이 더해지는 게 더 낫지만 말이다. 금권정치인들은 계획을 짜고, 그 계획을 장기적으로 실행할 만큼 (말 그대로) 여유가 있다. 173-4)


누적적인 문화적 진화를 통해 우리는 인간 사회가 유례없이 높은—그리고 폭넓은 기반을 둔— 삶의 질을 달성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기술(제도)을 포함한 갖가지 놀라운 기술을 갖게 되었다. 물론 이런 능력은 종종 완전히 실현되지 않는다. 나라마다 시민들에게 복리를 제공하는 능력이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문화적 진화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런 변이가 필요하다. 사회들이 더 나은 사회적 조정을 이루기 위한 실험을 하지 않는다면 진화는 멈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기적인 지배계급이 사회를 망가뜨린다면 다른 대안—성공담—을 찾는 게 좋다. 그리고 우리의 통치자들에게 우리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복잡한 인간 사회가 순조롭게 작동하려면 엘리트—통치자, 행정가, 사상의 지도자—가 필요하다. 우리는 엘리트를 없애기를 원하지 않는다. 비결은 엘리트들이 만인을 위해 행동하도록 제약하는 것이다.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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