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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를 읽다 - 유가를 중국 사상의 주류로 만든 순자를 공부하는 첫걸음 ㅣ 유유 고전강의 14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유유 / 2019년 5월
평점 :
1. 순자에게 공정한 평가를 돌려주자
"공자는 서주西周 봉건제도의 왕관학 전통을 이어받아 특히 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예와 법을 서로 관련되면서도 대립적인 두 가지 힘으로 간주했습니다. 법과 형벌을 사용하면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죄를 지으려 하지 않지만 마음속에는 수치심이 없고 자발적인 극기克己의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로써 규제하면 진심으로 정당한 행위 법칙을 준수합니다. 확실히 예는 법보다 근본적입니다. 예는 외적인 것이지만 예의 작용은 누가 외적인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의 내적 원리를 인지하고 이해하게끔 만드는 데에 있습니다. 윗사람을 존중하는 그의 내적인 천성을 일깨워서, 그가 예의 배후에 있는 정신을 이해하고 더는 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또 무의식적 습관 때문이 아니라 진실로 윗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게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입니다. '예'와 '예의 근본'을 강조하고 예가 사람의 내적 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려면 확실히 성선의 가설을 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32-4)
# 왕관학王官學 : 군자의 도리와 치국 방법의 전수에 중점을 둔 고대의 귀족 교육 체계
"맹자의 시대는 장자의 시대와 대단히 가까웠습니다. 기원전 4세기 말부터 3세기 초에 해당하는 그 시대에는 수많은 유세객의 온갖 의견이 쏟아져 나왔지요. 기준이 될 만한 답도 없고 고정된 상하관계의 틀도 없어서 모두가 의견을 발표할 수 있었고, 또 모두가 미망 속에서 분주히 답을 찾아 헤맸습니다." "당시 유세객은 누구에게 자신의 의견을 들려주었을까요? 안팎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군주들이었습니다. 아무리 귀에 거슬리고 황당한 의견이라도 그 시대의 군주들은 참고 듣는 법을 익혀야 했습니다. 만약 듣지 않거나 두루 경청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면 좋은 의견과 주장을 제공해 줄지도 모르는 인재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불안하고 위기감이 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든 각국의 군주 앞에서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갖고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유리하고 이치에 맞는지, 또 다른 사람의 의견에 비해 얼마나 뛰어난지 과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웅변'의 풍조가 생겨났습니다."(40-3)
"하지만 전국시대 말기, 웅변의 풍조는 이미 막바지에 다다랐고, 유세객의 활동도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이미 칠웅은 나란히 경쟁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진나라가 열국列國 가운데 가장 강대하고 무시무시한 위치를 점유했지요. 또한 이에 상응해 진나라의 부상에 관한 한 견해가 점점 더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진나라가 강대해질 수 있었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진효공秦孝公이 상앙商鞅을 등용해 ‘변법’變法을 시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상앙의 변법의 핵심적인 의의는 어떤 구체적인 법을 제정한 데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법의 지위를 봉건 종법의 규범을 능가하는 위치까지 끌어올린 데에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왕자가 법을 어겨도 서민과 똑같이 죄를 지은 것”王子犯法與庶民同罪이라는 말이 그 정신을 대표합니다. 그렇다면 전국시대의 그 형세에서 치국治國의 가장 훌륭한 답이 이미 검증된 셈이 아니겠습니까? 웅변의 유행과 확장은 이 시점에 이르러 법가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43-5)
"따라서 순자의 핵심 사상도 공자나 맹자와 많이 달랐습니다. 그는 예가 인위적인 것이지 자연적인 공통의 천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맹자는 성인의 지혜가 사람마다 내면에 갖고 있는 예의 정신적 질서를 정리하고 통합해 외부에 제도화하는 데에 있다고 주장했지요. 그런데 순자는 보통 사람이 넘어설 수 없는 성인의 차별점은 초월적 지혜로 예를 창조해 내는 데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순자에 따르면 성인이 창조한 예는 보통 사람의 천성에서 비롯되지 않았을뿐더러 거꾸로 보통 사람의 천성을 다스리고 바로잡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예가 보통 사람의 천성에 위배되는 까닭은 예의 구속과 훈련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보통 사람의 천성은 ‘악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그 ‘악한 천성’을 제한해야만 비로소 훌륭하고 질서 있는 예의 환경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예는 성인이 만들어 내는 것이며, 보통 사람은 배움을 통해 예의 바르게 변하여 성인에 가까워지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갖춥니다."(47-8)
2. 유가의 변모
"'분分은 순자의 사상에서 핵심 개념입니다. 분은 사람이라면 응당 주어지는 신분과 그에 상응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분을 이해하고 지킨다면 사회에는 당연히 영속적인 질서가 생기고 나라도 다스리기 쉬워질 겁니다. 반대로 가정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집단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사람들이 분을 안 지키고 분을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순자는 생각했습니다." "순자가 보기에 묵가의 문제점은 가정, 국가, 천하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법도(어떠한 신분과 지위도 그에 상응하는 권리와 행위를 수반하는데, 이것 역시 ‘예’입니다)가 있는 것도 모르고 실제적인 공리와 실용만 중시하고 있어 마땅한 상하 신분 차이조차 무시한 데에 있었습니다." "순자는 법가 역시 인위적으로 제정한 법령만 중시하고 그 배후의 더 크고 높은 총체적 원칙은 소홀히 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니 그런 법령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수도 없고, 사람마다 당연히 가져야 할 ‘본분’分을 확립할 수도 없다는 것이지요."(60-3)
"순자의 「비십이자」非十二子의 초점은 사실 자사와 맹자이며, 이 두 명 중에서도 시간상 순자와 더 가까웠던 맹자가 초점 중의 초점입니다. 순자는 그들이 고대의 선왕을 추종한다고 하면서도 흉내만 낼 뿐 그 원리는 몰랐다고 비판합니다. 또한 멋대로 자기 능력을 과신해 원대한 목표를 추구했으며,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잡다해서 전혀 가다듬어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문제의 핵심은 큰 줄기統를 몰랐던 데에 있다고도 합니다. 순자에 따르면 그들이 옛날 자료에 근거해 만든 오행(다섯 가지 옳은 행위), 즉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의 학설도 부적절하고 진리를 왜곡한 것이었습니다. 이 학설은 난삽하기만 하고 제대로 된 설명이 없는데도, 그들은 논리의 허점을 가리고 꾸미기에만 열중하며 “이것은 공자의 진정한 사상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바로 자사가 그런 주장을 했는데, 그는 공자의 손자여서 더더욱 그 주장에 힘이 실렸을 겁니다. 맹자도 이에 맞장구를 치며 세속의 무지한 유자들을 미혹시켰습니다."(67)
"이어서 순자는 자기가 생각하는 공자와 염옹의 도리를 이야기합니다. 〈방법과 책략을 아우르고, 말과 행동을 같게 하고, 여러 부류를 통일하면서 천하의 인재를 모아 옛날 일을 알려 주고 가장 옳은 이치를 가르친다. 若夫總方略, 齊言行, 壹統類, 而群天下之英杰, 而告之以大古, 教之以至順.〉 “아우르고”總, “같게 하고”齊, “통일해야”壹 합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는 통합의 원리가 있어야 하고, 백성의 말과 행동은 가지런하고 일치해야 하며, 사회질서에는 고정적이며 변치 않는 신분의 차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천하의 능력 있는 사람을 다 모아서 상고시대 선왕들의 사적을 배우게 하고, 궁극적이며 절대적이라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되는 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순자는 어지럽고 복잡한 현상을 선호하지 않았고, 인재가 개성을 발휘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더더욱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어지럽고 복잡한 것은 효과적으로 엄밀하게 분류해 통일된 원리 원칙으로 귀납해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69-70)
"유가는 특수한 이중성을 보유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기존 전통의 내용을 개량한 새로운 왕관학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주의 새로운 환경과 혼란에 대응해 나타난 ‘제자학’諸子學 중 가장 일찍 성립된 학파였습니다. ‘주례’周禮로 돌아가자는 그들의 주장은 단순한 계승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춘추시대의 변란에 대한 대응에서 비롯되었는데, 그들은 백성이 편안히 살도록 해 주려면 정신적인 측면에서 기존 전통을 부흥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책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왕관학과 제자학이라는, 시대적으로도 내용적으로 다른 이 두 가지 지식의 조류가 유가에서 기묘하게 통합된 것입니다. 그러나 전국시대로 넘어오면서 주나라의 봉건제도는 더 심각하게 쇠퇴했고, 주나라의 전통문화도 점점 더 홀시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유가의 이중성도 바뀌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왕관학을 계승한 부분은 갈수록 약화되었고, 상대적으로 제자학 부분은 우후죽순처럼 출현한 다른 학설들과 경쟁하면서 갈수록 강화되었습니다."(93-4)
3. 유가는 쓸모가 있는가
"주공은 종법상으로 방계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적장자인 무왕의 아들을 대신해 천자가 되었지만 그것은 참람한 짓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친형제인 관숙을 죽이긴 했지만 관숙은 다른 형제인 채숙蔡叔, 곽숙霍叔과 함께 상나라의 잔여 세력을 이끌던 무경武庚과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그를 죽인 것은 포악한 짓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신하로서 천자의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당시 형세에 대응해 어쩔 수 없이 행한 일이었고 다시 그 자리를 성왕에게 돌려주었으므로 역시 예에 어긋난 짓은 아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사이 천하는 아무 일 없이 평화로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공 같은 성인 혹은 대유大儒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 명의 대유는 국가의 존망이 달린 중요한 시기에 혈연적 신분 관계까지 뛰어넘어 천자가 되어서 막대한 책임을 지고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순자의 마음 속에서 주공은 ‘유자 중에 가장 위대한 자’儒之最大者이자 유자의 극치였습니다."(105-6)
"유자와 유가는 공자 시대에는 특수한 왕관학 훈련을 받은 ‘사인’士人을 가리켰습니다. 그들은 예와 정치의 도를 잘 알아서 군주와 대부를 보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자는 주공 같은 과거의 군주도 대유라고 하여 역시 유자로 간주하면서, 유자가 군주같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진소왕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지위와 권력을 갖고 옳은 방식으로 권력을 이용해 위기를 해결하고 백성을 복되게 하는 사람은 공자의 개념에서는 유자가 아니라 ‘성인’이었습니다. 이때에 와서 유자는 일종의 특수한 태도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바뀌었습니다. 본래 사인의 신분과는 무관해져 군주도 유자가 될 수 있고 유자도 군주를 맡을 수 있다는 인식에 이르렀습니다." "군주는 법가의 학설을 받아들여 ‘법가적 군주’가 될 수 있었으므로, 순자는 당연히 유가의 주장을 받아들여 ‘유가적 군주’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순자는 군주가 유가를 지지하고 수용하게 하려고 애썼던 것입니다."(114-5)
"군자 혹은 유자의 능력은 선택적이며 어떤 포인트가 있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물건을 팔거나 측정 도구를 능숙히 다루는 일은 당연히 농부, 상인, 장인보다 못합니다. 진정한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서 검은 것은 희다 하고 틀린 것은 맞다 하며 입으로만 상대를 이겨 먹는 점에서도 혜시와 등석 같은 명가에 못 미칩니다. 군자와 유자는 일반적인 책사나 유세객이 아닙니다. 말을 위한 말을 일삼고 군주 앞에서 다른 사람을 압도하며 부귀를 취하려 하지 않습니다. 유자는 그런 일에 능하지 못합니다. 나아가 더 깊은 의미에서 보면 유자는 그런 일을 경시합니다." "사람의 덕과 능력을 비교해 그 높고 낮음에 따라 벼슬과 지위를 분배하고, 만물과 사물의 변화에도 그 기본 성격에 맞춰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유자가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에 관해서는 말 잘하는 신도나 묵적 같은 이도 유자 앞에서 감히 입을 열지 못합니다. 분석 잘하는 혜시와 등석 같은 이도 역시 유자 앞에서 방자하게 궤변을 늘어놓지 못하지요."(119-20)
"개인적인 관점에서도 유가는 효용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유가는 배움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순자는 맹자처럼 “사람은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요순과 성인은 특정한 역사의 시공간적 조건에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공로를 세운 비범하고 위대한 인물이 아닙니다. 전국시대의 유가는 요순과 성인을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요순이 상징하던, 사람들이 가장 대단하다고 상상한 성취는 안으로 인의와 덕성을 갖추고 밖으로 인의를 실천해 천하를 복되게 할 만큼 충분한 권력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리 요순이어도, 다시 말해 아무리 대단한 성취를 이룬 사람이어도 우리와 그들 사이에 결코 넘을 수 없는 경계선은 없다고 생각한 점입니다. 맹자가 보기에 범인과 성인 사이의 접점은 공동의 선한 인성이었습니다. 순자가 보기에 그것은 배움이었고요. 누구나 배움을 원하고 배움의 방법만 알면 사인에서 군자로, 또 군자에서 성인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127-30)
4. 배우지 않으면 군자가 될 수 없다
"〈나는 온종일 생각만 해 본 적이 있는데 잠깐 배우느니만 못했다. 나는 발돋움해 멀리 바라본 적이 있는데 높은 곳에 올라가 드넓게 바라보느니만 못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 손짓을 하면 팔이 길어지지는 않지만 먼 곳에서도 잘 보인다. 바람을 따라 소리치면 소리가 커지지는 않지만 명확하게 들린다. 또한 수레와 말을 빌리면 걸음이 빠르지 않아도 수천 리를 갈 수 있고, 배와 노를 빌리면 물에 익숙하지 않아도 강을 건널 수 있다. 군자는 나면서부터 달랐던 것이 아니라 사물의 힘을 빌려 훌륭해진 것이다. 吾嘗終日而思矣, 不如須臾之所學也; 吾嘗跂而望矣, 不如登高之博見也. 登高而招, 臂非加長也, 而見者遠; 順風而呼, 聲非加疾也, 而聞者彰. 假輿馬者, 非利足也, 而致千里; 假舟楫者, 非能水也, 而絕江河. 君子生非異也, 善假於物也.〉" "순자는 배움의 가장 근본적인 장점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옛날과 오늘날의 지식을 통해 능력을 확장시켜 타고난 한계를 넘어 군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162-3)
"〈쑥이 삼밭에서 자라면 받쳐 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고, 흰 모래가 개흙 안에 있으면 더불어 모두 까매진다. 구릿대의 뿌리는 백지白芷인데, 그것을 구정물에 적셔 두면 군자도 가까이하지 않고 서민도 몸에 지니지 않는다. 이것은 그 바탕이 아름답지 않아서가 아니라 담가 둔 것 때문이다. 그래서 군자는 거주할 때 반드시 고을을 가리고 여행할 때도 반드시 가까이할 사람을 가림으로써 사악하고 편벽됨을 방지하고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蓬生麻中, 不扶而直; 白沙在涅, 與之俱黑. 蘭槐之根是爲芷, 其漸之滫, 君子不近, 庶人不服. 其質非不美也, 所漸者然也. 故君子居必擇鄉, 遊必就士, 所以防邪僻而近中正也.〉 환경의 중요성은 다양한 기초를 제공하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환경은 영향과 감화를 주기도 하지요. 그래서 군자는 반드시 신중하게 자기가 살 곳을 고르며, 다른 곳을 여행할 때도 역시 신중하게 가까이할 사람을 고릅니다. 그래야만 편벽되고 사악해질 위험을 피하고 언제나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165-6)
"배움은 변화시키는 것 말고도 한 가지 특성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축적’積입니다. 조금씩 쌓아 이루는 것이지요." "흙이 쌓이고 또 쌓이면 산을 이루고 그 위로 비바람 같은 기상 현상이 늘 펼쳐집니다. 마찬가지로 물이 고이고 또 고여 연못을 이루면 그 속에 이무기가 생깁니다. 선한 마음과 행동이 쌓이고 또 쌓이면 어떻게 될까요? 내면의 덕이 생겨 자연히 정확한 판단력과 성인의 정신이 갖춰집니다. 다리를 들어 앞으로 반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절대로 천 리 밖에 닿을 수 없습니다. 작은 물줄기가 쌓이지 않으면 강과 바다도 절대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또한 가장 빨리 달리는 준마도 한 번 뛰어 열 걸음이나 되는 먼 거리를 가지 못하지만, 느려 터진 말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가고 또 가면 열흘이나 걸리는 긴 여정을 주파할 수 있습니다. 조각을 할 때도 칼을 대자마자 포기하면 썩은 나무조차 새기지 못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새기고 또 새기면 가장 단단한 쇠와 돌에도 원하는 모양과 무늬를 새길 수 있습니다."(169-71)
"축적은 집중력과 인내심 그리고 집요함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변치 않는 굳은 의지가 없으면 배움으로 얻은 밝은 지혜가 있을 리 없고, 힘들게 몰두하는 정신이 없으면 크고 놀라운 공을 이루기가 불가능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호파가 물가에서 비파를 뜯으면 물고기가 깊은 곳에서 떠올라 들었고, 백아가 거문고를 뜯으면 꼴을 먹던 말이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고 합니다. 쌓은 것이 충분하면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들리게 마련이고 ,아무리 작은 행동이라도 눈길을 끌게 마련입니다(인내심을 갖고 쌓아 나가면 틀림없이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뜻입니다). 또한 옥이 있는 산에서는 풀과 나무가 유난히 무성하고 아름다우며, 진주가 있는 연못에서는 물가의 언덕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선행을 실천하면 틀림없이 반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배움을 수단으로 삼아 집중하고 계속 쌓아 나가면 결국에는 사람들을 더 훌륭하게 변화시켜 더 훌륭한 사회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순자가 고수한 신념입니다."(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