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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테크노퓨달리즘 - 클라우드와 알고리즘을 앞세운 새로운 지배 계급의 탄생
야니스 바루파키스 지음, 노정태 옮김, 이주희 감수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서문
자본주의의 매개체인 ‘시장market’은 디지털 거래 플랫폼으로 대체되었다. 디지털 거래 플랫폼은 마치 시장처럼 보이지만 차라리 (봉건시대의) 영지fiefdom라 이해하는 편이 타당하다. 자본주의의 엔진인 이윤은 봉건시대의 할아버지라 할 수 있을 지대rent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특히 플랫폼과 클라우드에 더욱 폭넓게 접속하려면 내야 하는 어떤 유형의 지대가 있다. 나는 그것을 ‘클라우드 지대cloud rent’라 부른다. 그 결과 전통적인 자본의 소유자들은 오늘날 진정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여전히 노동자의 임금 노동으로부터 이윤을 뽑아내지만 예전과 달리 지배자가 아니다. 전통적인 자본가는 클라우드 자본을 소유한 ‘신흥 봉건 영주owners of cloud capital’라는 새로운 계급의 가신이 되었다. 그조차 되지 못하는 우리 대부분은 새로운 지배 계급의 권력과 부에 무임금 노동으로 봉사하며, 기회가 주어질 때 간간이 임금노동을 할 수 있는, 자본주의 이전 계급인 ‘농노’로 전락하고 말았다. 13)
1장. 헤시오도스의 탄식
모든 혁명적 기술이 그렇듯 철은 역사의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어떤 방향인가?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철은 우리의 쟁기뿐 아니라 영혼까지 단단하게 만들었다. 철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영혼은 망치에 맞으며 불에 달궈졌다. 우리는 새로운 욕망을 품고 대장간의 물통에 들어가는 쇳조각처럼 새된 소리를 낸다. 부와 재산이 늘어가는 만큼 미덕은 시험대에 오르고 가치는 파괴된다. 제우스는 언젠가 기술로 인한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류를 신의 손으로 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헤시오도스에게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인류가 기술의 노예가 되고, 기술을 동원해 서로를 옥죄는 대신, 기술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훔쳐낸 작열하는 불꽃은 기술의 힘을 의미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우리가 세상을 불태우지 않고 우리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불을 훔쳤다. 프로메테우스가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신념이었다. 19-20)
아버지는 두 분야에 대한 헌신적인 마음을 품고 있었다. 용광로, 야금술, 기술 전반에 대한 사랑이 그것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에 대해서도 헌신적이었다. 나는 《공산당 선언》의 그 유명한 첫 줄을 읽으면서, 그 두 가지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결코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신분적인 것, 모든 정체적(停滯的)인 것은 증발되고, 모든 신성한 것은 모독당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침내 자신의 생활상의 지위와 상호 연관들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버지는 기술 옹호론과 기술 공포론 중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빛이 두 개의 모순된 본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듯이 자연의 모든 것에는 서로 대립하는 양면이 깃들어 있다. 강화된 철과 증기기관, 서로 연결된 컴퓨터 역시 인간을 해방시킬 수도 있고 노예로 만들 수도 있는 힘을 동시에 갖고 있다. 둘 중 어느 쪽이 지배적인 힘이 될지를 결정할 힘은 우리, 집단으로서의 우리의 손에 있다. 그러니 정치가 중요한 것이다. 21-2)
2장. 자본주의의 몰락
1960년대 미국 광고업계를 다룬 미국 드라마 <매드맨Mad Men>을 보는 시청자들은 드레이퍼가 저러고 사는데 왜 회사가 월급을 주고 있는지 의구심에 사로잡힙니다. 드레이퍼는 엄청난 양의 버번 위스키를 마셔대고, 끝없이 쉬고 쉬고 또 쉬면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수평으로 누워 보내다가, 암호같고 앞뒤가 안 맞는 소리나 하기 일쑤인 사람이죠. 하지만 저러다가 자기 인생 자기가 망치겠다, 내지는 곧 잘리겠구나 싶을 때, 드레이퍼는 흔해 빠진 초콜릿, 뻔한 철강 제품, 2류 레스토랑 체인점처럼 그 수많은 것들을 다시 상상해서 마법처럼 활기를 불어넣어요. 갑자기 제품들은 감정을 자극하는 무언가, 욕망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드레이퍼가 보여주는 이러한 두 가지 면모를 보고 있으면 전후 자본주의가 어떻게 힘을 가지게 되었는지 상상하게 됩니다. 자본주의는 새로운 시장을 발견했어요. 반짝거리는 새로운 산업적 기반 위에서 말하자면 우리의 ‘주의attention’를 사고파는 시장을 찾아낸 거죠. 34-5)
전쟁은 비즈니스와 정부를 깊숙한 곳에서부터 뒤엉켜놓았어요. 그런데 물자와 기술을 무한정으로 요구하던 전쟁이 끝나버린 지금, 거대 복합 기업conglomerate의 성장을 지속하는 일도 어려운 주제가 되었어요. 갤브레이스는 이 복합체를 일컬어 ‘테크노스트럭처technostructure’라 불렀습니다. 그들의 최우선 목표는 본인들의 일자리를 지키고 뭔가 일하는 것처럼 바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어요. 즉, 전쟁이 끝났는데도 거대 기업 체제가 축소되는 것을 막는 것을 넘어 그 크기를 키우고자 했다는 거죠. 여기서 돈 드레이퍼가 등장하는 거예요. 돈 드레이퍼의 특기가 뭐였는지 기억하세요? 테크노스트럭처가 우리의 날것 그대로의 감정, 우리의 주의와 관심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지닌 무한대의 가능성에 눈을 뜨게 하는 것이었죠. 물건을 만들어내는 제조력이라면 이미 완전히 테크노스트럭처의 손아귀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드레이퍼의 도움을 받아 그 제품들을 필요하다고 느끼는 욕망을 찾아낼 수 있었죠. 38-9)
테크노스트럭처는 대중의 욕망과 기대를 한껏 부풀려 놓았지만 사실 그건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비재를 아무리 구입한다 해도 채울 수 없는 것이었죠. 우리의 소망이 충족되지 않는 건 안타까운 일이죠. 그런데 우리의 채워지지 않는 꿈, 우리의 좌절된 욕망 등이 다른 이에 의해 대량생산된 것임을 깨닫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이잖아요. 우리의 대량생산된 갈망이 충족될수록 우리의 만족감은 더욱 줄어듭니다. 테크노스트럭처가 우리의 정념을 휘저어놓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갈수록, 그 허전함을 채울 수 있는 상품이 주어질 때 느끼는 공허함은 커지죠. 젊은 반항아들은 그들의 욕망을 비롯해 모든 것을 계획하는 테크노스트럭처의 대담함을 거부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불만은 그들만 느끼고 있던 게 아니었어요. 1950년대와 60년대는 자본주의가 자발적인 질서의 자연적 체계라고 믿는 자본주의의 독실한 신자들에게 악몽과도 같았습니다. 어느 곳에 눈을 두건 세상 모든 곳이 중앙의 계획으로 돌아가고 있었죠. 49)
한마디로 서구는 닉슨 쇼크와 같은 파국을 맞이할 심리적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반자본주의적인 젊은이들과 자유시장의 광신도들이 모두 죽어가는 구체제를 끌어내리기 위한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거죠. 하지만 결국 글로벌 플랜을 허물어뜨린 건 히피 좌파도 자유지상주의 우파도 아니었어요. 테크노스트럭처의 뜻에 따라 잘 움직여온 요소들의 작동이 글로벌 플랜을 망가뜨렸습니다. 역사상 가장 안정적인 자본주의 체제가 서 있던 자리에, 볼커 같은 이들은 열과 성을 다해, 끝없이 부풀어 오르는 적자, 부채, 도박에 토대를 둔 가장 불안정한 체제를 세워놓았습니다. 그들의 손에 의해 브레턴우즈 체제는 질서정연하게 해체되었고 곧 새로운 국제 체제가 완성됐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제화나 금융화라고 하는 그것 말이에요. 저는 그것을 ‘자본주의의 글로벌 미노타우로스 단계’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어쩌면 그런 작명은 모든 것을 그리스 고전과 빗대어 말하는 것을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50)
3장. 클라우드 자본
돈 드레이퍼는 우리가 필요로 하지도 않고 사실 원치도 않는 걸 우리에게 팔고자 애써온 사람입니다. 돈은 기성품처럼 찍어낸 욕망을 우리 안에 심어놓을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죠. 하지만 그건 일방통행에 지나지 않았어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혹은 시내와 고속도로에 세워진 커다란 간판을 통해서, 돈은 우리의 무의식에 갈망을 이식했을 겁니다. 그냥 그런 거였죠. 하지만 돈의 집에 알렉사가 설치된다면 그건 늘 양방향으로 작동할 거예요. 알렉사의 부드러운 목소리 뒤로 우리의 영혼과 클라우드 시스템 사이에 정보가 끊임없이 오가죠. 철학자들의 표현을 빌자면, 알렉사는 우리를 가장 변증법적인 무한 운동으로 포획하는 셈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요? 알렉사를 들여놓은 우리는 그 물건을 우리에게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훈련시키죠. 그렇게 시작하지만 머잖아 AI 어시스턴트는 우리가 가늠할 수도 규제할 수도 없는 무언가가 되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게 될 겁니다. 61-2)
일단 우리가 알렉사의 알고리즘을 훈련시키고, 우리의 버릇과 욕망에 대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나면, 알렉사는 우리를 훈련시키기 시작해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일단 우리의 변덕에 맞춰 좀 더 섬세하게 선별되어 사용자의 취향에 맞는 비디오, 글, 음악 같은 걸 제공하면서, 조금씩 옆구리를 찔러 나가는 거죠. 일단 그런 식으로 우리를 길들이고 나면, 우리는 AI의 인도에 점점 더 순응하게 되어 있어요. 말하자면 알렉사는 우리가 AI를 더 잘 훈련시키도록 우리를 훈련시키죠. 그 다음 단계는 더욱 무섭습니다. 우리의 취향에 맞출 수 있는 능력을 뽐내고 나면, AI는 우리를 이끄는 차원으로 나가거든요. 우리의 변덕과 입맛에 맞춰 섬세하게 조율된 이미지, 텍스트, 비디오 경험을 하게 되는 거죠. 머잖아 AI는 우리가 AI를 훈련시키게 할 거고, 우리는 AI를 훈련시키고, 그렇게 훈련하고 훈련되는 무한반복이 벌어질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알고리즘으로 짜여진, 클라우드에 기반한, 명령하는 자본의 본질입니다. 62)
클라우드 자본이 전례 없이 강력한 명령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건 클라우드 자본의 특수한 본질을 파악하는 핵심 요소가 되지 못해요. 클라우드 자본의 특수성은 그것이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그리고 명령의 힘을 부리는 방식에서 나옵니다. 지금까지 자본의 재생산은 어떤 노동시장을 통해 이루어져 왔죠. 물론 공장, 사무실, 창고 등등도 있었지만요. 팔았을 때 이윤을 낳는 물건을 만드는 건 임금노동자들이었어요. 노동자들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제품을 생산하고, 임금을 받으며 남는 이윤으로는 더 많은 기계가 도입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자본이 축적되고 재생산되는 방식이었어요. 반면 클라우드 자본은 임금노동과 무관하게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 있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거의 모든 인류에게 클라우드 자본의 재생산에 기여하라고 명령할 수 있거든요. 그것도 공짜로 말이에요! 우리는 노동자들이 ‘클라우드 프롤레타리아’가 되어가는 동안, 우리 모두는 ‘클라우드 농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71-2)
“아마존 닷컴에 접속하는 순간 자본주의와는 작별하는 겁니다. 거기서 수많은 구매와 판매가 이루어지지만, 여러분이 접속해 있는 그곳은 시장이라고 할 수 없는 영역이에요.” 이곳은 마을 시장이 아니에요. 극도로 자본주의적인 디지털 시장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요. 제아무리 추잡한 시장이라 해도 그곳은 사람들이 만나고 상호 교류를 하면서, 납득 가능한 수준으로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하는 곳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아마존은 심지어 독점 시장보다 더 나쁜 형태라 할 수 있어요. 독점 시장에서도 구매자들은 서로 이야기할 수 있고, 집단을 결성할 수 있으며, 어쩌면 독점자에게 가격을 낮추거나 품질을 높이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 소비자 운동을 조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제프의 영토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죠. 그곳을 다스리는 규칙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불편부당하다고 여겨지는 그 원리원칙이 아니거든요. 모든 사람들은 제프가 기준을 정하고 그의 선택에 따라 조절하는 알고리즘에 따라야만 합니다. 76-7)
4장. 클라우드 영주의 등장과 이윤의 종언
중앙은행의 돈 찍어내기 노다지는 서구의 은행들이 융단폭격을 당한 직후인 2008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정치인들과 중앙은행들은 당시 은행이 부도나서 사람들의 예금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했죠. 2009년 4월 G7의 중앙은행장들은 각국 대통령과 총리를 대동한 채 런던에서 정상급 회동을 가졌고, 은행을 물에 다시 띄우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한다는 합의에 도달했죠. 상식적인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몰상식한 결정도 있었어요. 부도 위기인 은행을 구하면서 은행을 그 지경으로 몰아가는데 책임을 져야 할, 범죄자라 해도 무방한 은행가들까지 구제해준 것입니다. 더 나쁜 건 은행가들을 위한 이런 사회주의적 조치가 시행되는 가운데, 노동자와 중산층에게는 가혹한 긴축 조치가 가해졌다는 거였어요. 이런 이중 잣대는 한 세대 내내 지속될 정치 불신을 낳을 수밖에 없거니와, 경제 그 자체만 놓고 봐도 치명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한 사회의 전체 소득이 낮아지는 추세를 부추기게 되죠. 86)
2008년 금융위기와 뒤따른 긴축정책은 마치 권투의 원투펀치처럼 투자를 쓰러뜨렸어요. 그러니 금융가들에게 갓 찍어낸 돈을 안겨준들 투자가 살아날 리 만무했죠. 긴축정책으로 고객들의 소득이 증발해버린 시점에 자본가가 되어 있다고 상상해 보자고요. 은행이 우리에게 마음껏 쓰라고 공짜로, 그러니까 금리 없이 돈을 빌려줬다는 가정을 하는 거죠. 당연히 그 공짜 돈을 받아들었지만 생산 라인을 늘리는 데 그 돈을 쓰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결론에 금세 도달하고 맙니다. 그럼 이 공짜 현금으로 무엇을 해야 하겠어요? 부동산이나 예술품을 구입하거나, 그보다 좀 더 좋은 게 바로 자신의 기업 주식을 매수하는 거죠. 이렇게 하면 내 회사의 주가가 올라가서 기분 좋을 뿐더러, 특히 그 회사의 CEO라면 본인의 입지도 튼튼해지고 주가와 연동된 보너스도 올라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말해 새로운 투자 없이 그저 이미 권력을 가진 이들의 손에 더 많은 권력이 쥐어졌을 뿐입니다.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진 거죠. 86-7)
이윤은 여전히 모든 자본가들이 꿈꾸는 야망의 목표였고, 모든 중간 공급자가 노리는 바였으며, 보다 안락한 삶을 떨치고 일어나도록 사람들을 끌어내는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체 파이를 키우는 힘, 축적을 통해 부 자체를 늘려주는 자본 축적의 원동력은 이윤과 갈라서고 말았죠. 제프 베이조스나 일론 머스크처럼 대담무쌍하며 재능 넘치는 기업가들이 엄청나게 비싸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 클라우드 자본을 쌓아올린 것도 이 시기의 일이었죠. 게다가 기존 사업가들은 사업을 확장하고자 할 때 은행에서 돈을 빌려오거나, 사업의 지분 중 상당량을 남에게 팔거나, 새로운 자본을 끌어들이기에 마땅할 정도로 큰 이윤을 창출해야 했어요. 하지만 클라우드 영주들은 이런 요소에 구애받을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2010년에서 2021년 사이, 제프 베이조스와 일론 머스크 두 사람의 서류상 자산, 즉 그들이 지닌 주식 가격의 총합은 100억 달러 이하에서 2백조 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었던 거죠. 92)
저는 자본주의를 진지하게 위협하는 요소는 조직화된 노동의 힘뿐이라는 잘못된 전제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시대에 벌어진 역사적 전환을 완전히 간과했어요. 인터넷 공유지의 사유화가 2008년 금융위기 때 중앙은행을 통해 쏟아져 나온 공적자금과 맞물려 새로우면서도 엄청난 힘을 가진 유형의 자본을 낳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놓친 거죠. 이 모든 역사적 변환은 그 누구도 기획한 바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어요. 클라우드 영주가 되는 미래를 상상했던 자본가는 없었습니다. 중앙은행 역시 클라우드 영주들의 자금줄 노릇을 하려고 의도했던 건 아니었죠. 클라우드 자본이 민주주의에 끼칠 수 있는 해악을 바라보았던 정치인도 없었고요. 이것은 자본주의가 왕부터 사제, 심지어 농민들까지 그 누구의 뜻과도 상관없이 출현했던 것과 마찬가지에요. 클라우드 영주들의 등장은 대다수의 시야 밖에서, 등 뒤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가장 강력한 역사적 주체들마저 놓칠 수밖에 없었죠. 97-8)
5장. 테크노퓨달리즘의 본질
아이팟ipod은 단지 훌륭한 휴대전화가 아니에요. 애플이 새로운 보물창고, 클라우드 지대를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천재적인 발상을 했어요. ‘서드파티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애플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애플 스토어를 통해 판매할 수 있게 한다는 급진적 아이디어를 실현한 것이죠. 이렇게 애플은 무임금 노동자, 가신 자본가의 집단을 창출해냈습니다. 아이폰은 다른 어떤 스마트도 제공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즐거움과 기능을 누릴 수 있는 일종의 자유이용권이 되었죠. 서드파티 개발자들은 경쟁을 해서 살아남아야 했고, 애플로부터 한 푼도 받지 못하지만 애플 스토어에 등록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었죠. 오히려 애플에 돈을 내야 했습니다. 비용이 얼마냐고요? 전체 매출의 30%를 애플에, 말하자면 ‘바닥세’로 내야 하는 거였죠. 이렇게 최초의 클라우드 장원인 애플 스토어app store가 탄생했고, 그 비옥한 토지 위에 가신 자본가 계급이 성장했습니다. 107)
충분히 많은 서드파티 개발자를 확보하여 그들이 앱을 만들도록 하는 일, 그 과업에 성공한 거대 기업은 단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구글이었죠. 이미 클라우드 자본에서 지배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구글은 애플과는 다른 전략을 취했습니다. 아이폰과 경쟁할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대신 운영체계인 안드로이드를 만들었고, 소니, 블랙베리, 노키아 등 경쟁사조차 원한다면 무료로 마음껏 쓸 수 있도록 허락했어요. 서드파티 개발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개발자들이 어떻게 저항할 수 있었겠어요? 그 결과 세계 스마트폰 업계는 두 클라우드 영주 기업, 애플과 구글의 독점 체제가 되고 말았어요. 그들이 벌어들이는 부의 큰 부분은 서드파티 개발자들의 무임금 노동에서 나왔습니다. 개발자들은 앱이 팔리는 만큼 정해진 몫을 떼어 바쳐야 했죠. 애플과 구글이 이렇게 버는 돈은 이윤이 아닙니다. 지상의 농지에서 영주가 얻는 지대의 디지털 버전일 뿐인, 클라우드 지대죠. 107-8)
클라우드 영주들은 우리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 관심을 더 가져가는 게 진짜 목적이거든요. 이렇게 우리의 주의를 붙잡아놓고, 그 힘을 지렛대로 삼아서 그들은 가신 자본가들에게 클라우드 지대를 받죠. 그뿐 아니라 클라우드 영주들은 더 저렴한, 보다 나은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시장의 압력으로부터도 벗어나 있죠. 틱톡이 다른 소셜 미디어 사이트에서 사용자와 그들의 관심을 훔쳐갈 수 있었던 건 틱톡이 낮은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서가 아니었어요. 틱톡이 질적으로 더 우수한 ‘친구’나 끈끈한 관계망을 제공한 덕분은 더욱 아니었고요. 틱톡은 전혀 다른 온라인 경험을 제공하여 클라우드 농노들이 이주한 거죠. 디즈니플러스는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인 영화나 드라마를 더 낮은 가격에, 더 좋은 화질로 제공하는 사이트가 아니잖아요. 단지 넷플릭스에 없는 영화와 드라마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죠. 우리는 장원간의 경쟁을 시장 경제의 경쟁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111-2)
지대에 대한 이윤의 반란은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 그 거대한 전환을 예언하는 현상이었죠. 사회 경제 체제의 변화를 주는 원동력이 지대에서 이윤으로 변화한 것이었으니까요. 우리가 시장 봉건주의 같은 용어 대신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 더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건 그래서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대가 아닌 이윤에 의해 작동하는 사회 경제 체제로 접어들었잖아요. 그 근본적인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것을 묘사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게 되죠. 오늘날의 전환을 하이퍼 자본주의나 지대 과잉 자본주의 같은 식으로 본다면 그건 같은 오류를 범하는 일일 겁니다. 변화하는 세상의 본질, 핵심 원리를 놓치는 거죠. 지대가 사회 변화의 핵심 동력의 자리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저는 테크노퓨달리즘보다 더 나은 이름을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어요. 제대로 정의를 내리고 이름을 붙인 덕분에 우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체제 전환의 의미와 중요성을 보다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112)
6장. 테크노퓨달리즘의 전 지구적 여파: 새로운 냉전
함부르크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위르겐은 광저우에 사는 시우가 제공하는 원자재를 이용해 선박용 프로펠러를 만들어요. 그 프로펠러는 상하이 인근에서 조선소를 운영하는 아이에게 판매되죠. 시우에게 원자재값을 송금하기 위해 위르겐은 본인이 거래하는 독일 은행의 웹사이트에 접속해요. 서류에 필요한 항목을 기입하고 엔터를 누르죠. 위르겐이 거래하는 독일 은행은 독일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에 거래된 숫자를 보내고, 분데스방크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에 정보를 넘기죠. 이제 유럽중앙은행은 위르겐의 유로화를 달러로 환전한 후 미국이 통제하는 국제 금융망을 통해 중국인민은행으로 보냅니다. 중국인민은행은 그렇게 들어온 돈을 위안화로 바꿔서 시우가 거래하는 은행으로 보내고요. 최종적으로 시우의 거래은행은 시우의 계좌에 돈을 넣어줘요. 이렇게 덜컹거리고 정신없이 복잡하며 비효율적인 거래 시스템이야말로, 각각의 단계에 개입하는 시중은행들이 얻는 지대의 근원입니다. 133-4)
만약 위르겐, 시우, 아이가 중국인민은행이 제공하는 새로운 디지털 지갑을 사용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위르겐은 스마트폰을 들고 디지털 위안 앱을 켜서, 일정량의 디지털 위안을 시우에게 보내겠죠. 거래는 즉각 이루어지고 중간 수수료 같은 건 없어요. 거래 끝! 디지털 위안화는 위르겐이 거래하는 독일 은행, 분데스방크, 유럽중앙은행, 결정적으로 미국의 입김에 전적으로 지배당하고 있는 국제 송금 시스템 등, 그 모든 중간 거래인들이 설 자리를 없애 버리죠. 2022년 이전까지 중국의 클라우드 금융과 디지털 위안화는 마치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신작로 같은 모습이었어요. 비록 울퉁불퉁하지만 여전히 달러로 만든 초고속도로가 존재하고 그걸 사용하면 될 판에, 세계적인 엄청난 부호들이 중국인민은행의 감시를 받는 위안화 도로를 통해 돈을 움직일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키예프, 카르키프, 마리우풀에서 포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 후로는 중국의 돈길을 따라갈 좋은 이유가 생겼습니다. 134)
자본주의 시대를 통틀어 그랬습니다. 지대수익 추구자들이 자본가의 이윤에서 많은 몫을 빼먹을 때 좋은 일이 생기는 경우는 없었죠. 자본주의 자체의 역동성이 무뎌지고, 버블이 발생하고 곧 터져버리죠. 약자를 수탈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국가는 채무에 중독됩니다. 테크노퓨달리즘의 출현은 이런 위기 발생 과정을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어요. 경제사학자 애덤 투즈Adam Tooze가 그리스어 단어 두 개를 붙여 만든 신조어를 빌자면, ‘중층위기poly-crisis’ 상태를 불러오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 억 명의 클라우드 농노들의 노동은 극소수의 클라우드 영주를 위한 권력과 클라우드 지대를 추출해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돈은 그 자체가 소득이 아니기에, 더 많은 사람들의 소득이 되어 선순환하는 일 따위도 결코 벌어지지 않아요. 저는 이 현상을 글로벌 가치 기반의 위축the shrinking of the global value base이라고 묘사하고 싶습니다. 142)
기술의 발전은 클라우드 자본의 힘을 점점 더 키워줄 거예요. 대규모, 가변적, 진보한 3D 프린트 기술 및 AI로 강화된 산업 로봇과 결합한다면 클라우드 자본은 전통적인 자본으로 이루어진, 규모의 경제를 통해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기업 복합체들을 모든 면에서 능가할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워싱턴은 중국을 상대로 경제 전쟁을 시작했고 그 결과 물리적 자본의 탈세계화가 촉발됐죠. 이는 전통 자본의 상대적 쇠퇴를 더욱 가속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거대한 클라우드 장원은 희토류, 리튬, 그리고 당연하게도 우리가 만들어내는 데이터까지, 그 모든 원자재를 두고 전 세계에서 더 치열한 경쟁을 하도록 예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죠. 이러한 미래가 평화에 해로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거기에다 태평양 양쪽에서 한 줌도 안 되는 클라우드 영주들이 움켜쥐는 권력의 강도와 속성을 떠올려 보자고요.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말에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은 점점 더 붙잡을 수 없는 파랑새가 되어갑니다. 143-4)
7장. 테크노퓨달리즘에서 벗어나기
‘사람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라는 권리’는 오늘날 이 사회에서 완전히 실종되어 버렸죠.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누가 질식시켰냐는 겁니다. 갈색 군복을 입은 파시스트도 스탈린주의 수호대도 범인이 아니에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는 새로운 유형의 자본이 출현해 자본주의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자유주의적인 행동을 하라고 부추기기 시작한 순간 위기에 몰렸습니다. 뭐라고 부추겼을까요? ‘너 자신이 되어라!(아울러, 그걸 성공적으로 해내라!)’ 클라우드 자본은 지금까지 수많은 행태 조작을 시도하고 결과를 개선해가며 돈을 벌어왔지만, 바로 이것이야말로 목표를 초과달성해낸 최고의 성공작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소유적 개인주의Possessive individualism는 언제나 정신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쳐왔어요. 자유주의적 개인이라는 개념이 그나마 시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었죠. 테크노퓨달리즘이 그 울타리마저 없애버렸고, 사정은 끝도 없이 악화되기 시작했어요. 149)
클라우드 자본으로 인해 그다지 소유적이지 않았던 개인은 소유된 무언가로 전락했어요. 아니, 그보다는 스스로를 소유할 수 없는 존재로 격하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군요. 클라우드 자본은 우리의 관심사에 끼어들면서 우리의 주의 집중력을 위축시켰습니다. 이건 우리의 의지력이 약해진 게 아니에요. 우리의 ‘집중력이 도둑맞은’ 거죠. 그런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테크노퓨달리즘의 알고리즘은 가부장제, 편견, 기존의 억압을 강화하는 성향이 있다보니, 소녀들, 정신이상자들, 한계에 몰린 사람들, 그리고 물론 당연하게도 가난한 이들까지, 이 모든 약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체성과 집중의 문제에서 불만과 불안을 곧잘 느끼게 되는데, 그에 대한 테크노퓨달리즘의 감정적 보상이 바로 편협한 태도일 거예요. 댓글 관리자를 두거나 혐오 표현을 규제한다 해도 이러한 경향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건 클라우드 자본의 본성에 내재해 있는 문제니까요. 149-50)
진정 자유로운 개인의 이념을 되살리려면, 첫째,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한물갔다는 신화를 반드시 폐기해야 합니다. 둘째, 테크노퓨달리즘의 세계 속에서 좌파와 우파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재검토, 재설정해야만 합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마르크스주의는 위협적인 진실을 확신에 찬 어조로 제시했어요. 분노에 가득 찬 우파는 상대주의로 빠졌고 사회민주주의가 그 기회를 잡았죠. 1991년 마르크스주의가 역사적 패배를 당한 후 자유주의적 진리가 복귀하면서 사회민주주의는 종언을 맞이했어요. 2008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의 워털루 전투와도 같았고 테크노퓨달리즘이 부상하게 되었죠. 이제 자유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대안우파들은 클라우드 영주들이 허락해준 한 줌의 권력을 놓고 서로 싸우는 중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테크노퓨달리즘적 조건을 이루는 진실을 알아내고, 확신을 품는 것에 달려 있어요. 그것이 밝은 미래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인 것은 분명합니다. 155)
점점 더 클라우드 자본이 지배력을 넓혀나가는 세상 속에서, 테크노퓨달리즘을 무너뜨리고 민중을 민주주의의 중심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는 한 가닥 가능성이라도 쥐고 싶다면, 우리는 전통적인 프롤레타리아와 클라우드 프롤레타리아를 규합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클라우드 농노들, 더 나아가 전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가신 자본가의 일부까지 규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드시 이들 모두를 포섭한 이 거대한 연합이어야 해요. 테크노퓨달리즘은 민중의 조직화에 맞서 새로운 거대 장벽을 세우죠. 하지만 테크노퓨달리즘은 그것을 뒤엎기 위해 연대하는 꿈을 감히 꾸는 이들에게 새로운 큰 힘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 새로운 거대 장벽이란 클라우드 농노와 클라우드 프롤레타리아들 사이에 벌어져 있는 물리적 거리와 그로 인한 고립입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 클라우드 자본이 그 잠재적 반란군에게 부여하는 막대한 힘이 숨어 있어요. 우리에게는 클라우드틀 통해 연대하고, 조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요. 172)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상태를 일컬어 ‘소외’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우리의 노동으로 생산해내는 것에 대해 소유권을 갖지 못하고, 우리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일이 실제로 어떻게 되어 가는지 말할 수조차 없는 상태를 이르는 표현이었죠. 테크노퓨달리즘 하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신조차 소유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근무 시간동안 클라우드 프롤레타리아로 살아가고, 나머지 시간은 클라우드 농노로 살아가니까요. 그나마 먹고살 만한 자영업자들은 모두 클라우드 가신이 되어버렸고, 고군분투하는 자영업자들은 클라우드 농노가 되고 말았죠. 클라우드 자본은 민영화와 사모펀드가 알려준 자산 벗겨먹기 사업 모델을 우리의 두뇌까지 확장하고 있어요. 우리의 정신을 각자의 것으로 지키려면, 우리는 클라우드 자본의 집단 소유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구름 위에 떠 있는 그것을 행태 조작 수단에서 인간적 협력과 해방의 수단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뿐이니까요. 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