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시간의 기원 - 스티븐 호킹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이론
토마스 헤르토흐 지음, 박병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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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역설


우주의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로, “물리법칙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오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는 곧 물리법칙의 일부는 수학적 필연성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나타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우주가 빅뱅의 열기에서 태어난 후 식는 과정에 관여했던 법칙도 마찬가지다. 입자의 종류와 힘의 세기에서 암흑 에너지의 양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생명친화적 특성은 출생증명서처럼 기본 구조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빅뱅의 깊은 곳에서 은밀하게 진행된 태초 진화의 결과일 수도 있다. 여기에 잔뜩 고무된 끈이론학자들은 방대한 공간에 수많은 우주가 섬처럼 고립되어 있고, 우주마다 다른 물리법칙을 따른다는 다중우주 가설을 떠올렸다. 다중우주 지지자들은 궁극의 이론의 장례식을 치르는 대신, 우주론을 일종의 환경과학으로 전환하여 과거의 실패를 만회하려고 했다.(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긴 하지만, 어쨌거나 환경은 환경이다!) 42-3)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문제가 숨어 있다. 이것은 나중에 언급될 호킹의 최종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 문제란 “다중우주조차 플라톤식 논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다중우주론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우주에 적용되는 ‘메타법칙metalaw’을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메타법칙으로는 수많은 우주 중 우리가 어떤 우주에서 살고 있는지 알아낼 수 없다. 바로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다중우주의 메타법칙과 우리 우주의 법칙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없는 한, 다중우주론은 검증 가능한 결과를 단 하나도 내놓지 못한 채 역설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만다. 다중우주론은 근본적으로 불확실하고 모호한 이론이어서 우리 우주가 어디쯤 있는지 알 길이 없고, 앞으로 무엇을 보게 될지 예측할 수도 없다. 우주가 여러 개라면 우리 우주의 역할은 무엇이며, 그 방대한 공간에서 우리의 위치가 어디인지 당연히 궁금해지는데, 다중우주 가설은 여전히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45)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가 우주론에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인 1973년의 일이었다. 그해에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코페르니쿠스 기념학회가 개최되었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브랜든 카터Brandon Carter(그는 호킹과 케임브리지대학교 동문이다)는 쟁쟁한 물리학자들과 우주론학자들 앞에서 인류 원리를 처음으로 발표했다. 지동설이 알려지고 400년이 흐른 후, 카터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 새삼스럽게 동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전혀 특별하지 않다면, 자신이 관측한 우주를 잘못 해석할 여지가 있다. 우리가 생명친화적인 우주를 관측하게 된 진짜 이유는 자신이 ‘그런 우주’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말해서, 생명을 위한 최적의 조건은 다중우주 전체에 걸쳐 인간과 무관하게 적용되는 인류 원리에 이미 포함되어 있으며, 이로부터 수많은 다중우주 중 생명친화적 조건을 구현할 우주가 선택된다는 것이다. 45-6)


다중우주의 열혈 지지자들은 ‘설계된 우주’의 미스터리를 설명하는 두 번째 답을 찾았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답은 존재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수학적 원리가 “아주 운 좋게” 생명체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었는데, 인류 원리로부터 제시된 두 번째 답은 “우주가 미리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다중우주의 지역적 환경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무수히 흩어져 있는 우주 중에서 우리 우주가 인류 원리에 의해 생명친화적인 환경을 갖춘 우주로 선택되었고, 이 선택의 필연적 결과로 우리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인류 원리에 기반한 세계관은 오래전부터 과학계에 회자되어온 ‘이원론dualism’을 연상시킨다. 물리법칙이나 메타법칙은 인간에 의해 발견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여기에 더하여 물리계와 물리법칙(또는 메타법칙)을 연결하는 신비한 연결고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류 원리라는 주장이다. 47-8)


대부분의 이론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생명친화적 특성을 탐구하는 것이 자신의 연구 영역을 넘어선 문제라 생각한다. 그러나 호킹은 추상적인 수학법칙이나 메타법칙만으로는 설계된 우주의 비밀을 밝힐 수 없다고 믿었다. 호킹이 추구하는 새로운 우주론에서 수학은 주인이 아니라 번잡한 일을 거드는 하인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호킹은 생명친화적 우주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물리학과 우주를 연구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말 많고 탈 많은 인류 원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류 원리가 “우주론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 올 주인공”이라는 주장에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호킹은 인류 원리를 하나의 연구 수단으로 도입했을 뿐, 그 질적質的인 부분까지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생물학처럼 “과거를 들여다보는 과학”은 질적인 예측을 다량으로 내놓는다. 그러나 인류 원리는 ‘예측 능력’과 ‘반증 가능성’을 철길로 삼아 잘 달려온 과학 열차를 사정없이 탈선시킨다. 48-9)


사고실험은 물리학 레스토랑에서 호킹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 호킹이 이룩한 세 가지 획기적 업적은 정교하게 설계된 사고실험의 결과물이었다. 첫째는 고전 중력이론을 이용하여 빅뱅의 특이점singularity을 찾은 것, 둘째는 중력을 준고전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블랙홀의 복사를 예견한 것, 셋째는 우주의 기원에 또다시 준고전적 중력이론을 적용하여 ‘무경계 가설no-boundary proposal’을 제안한 것이다. 블랙홀 역설은 ‘단순한 학술적 관심사’에 머물 수도 있지만(호킹 복사는 영원히 관측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중우주 역설은 천문 관측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다. 이 역설의 중심에는 생명계와 관찰자, 물리적 우주의 복잡다단한 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호킹은 양자우주론을 통해 이들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려고 노력했고, 이 과정에서 다중우주 역설은 그의 길을 안내하는 등대 역할을 했다. 우주론의 지도를 바꾼 그의 마지막 양자우주론은 그가 물리학계에 남긴 네 번째 선물이었다. 52-3)


2장 어제 없는 오늘


르메트르는 우주의 팽창이 일반적인 ‘폭발’과 근본적으로 다른 과정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폭발에는 ‘시작점’이라는 곳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우주 공간에서 수명을 다한 별이 폭발했을 때, 그 지점을 향해 다가가는 관측자에게 보이는 광경과 도망가는 관측자에게 보이는 광경은 확연하게 다르다. 그러나 팽창하는 우주는 그렇지 않다. 팽창하는 우주에는 중심도, 가장자리도 없다. 공간 속에서 무언가가 팽창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팽창하기 때문이다. 즉, 팽창하는 우주에서 폭발하는 것은 공간 자체다. 르메트르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성운이나 은하는 풍선의 표면에 붙어 있는 미생물과 비슷하다. 풍선이 팽창하면 모든 미생물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미생물들이 일제히 자기를 중심으로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즉, 모든 미생물은 자신이 팽창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슬라이퍼와 허블이 관측했던 적색편이는 공간 자체가 팽창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71)


아이러니한 것은 우주팽창설을 주장했던 르메트르가 아인슈타인의 상수 λ에 각별한 애착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는 우주상수가 정적인 우주를 보장하는 항이 아니라,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운 에너지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에딩턴도 르메트르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우주상수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뉴턴의 고전이론으로 되돌아가겠다”고 했다. 르메트르가 우주상수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정적인 우주를 만들기 위해 도입했다가 철회한 λ가 1장에서 언급했던 “생명체의 거주 가능성”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λ의 값을 잘 조절하면 별과 은하, 행성이 탄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충분히 길어지도록 만들 수 있다. 이것은 르메트르의 그래프에서 거의 수평선을 따라 변하는 우주에 해당한다(르메트르가 계산을 끝까지 수행했다면, 이런 우주도 결국은 가속 팽창을 겪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73-5)


상대론적 우주론은 우주에 시작이 존재했음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었다. 시간이 0인 순간(르메트르의 “어제 없는 오늘”)은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시공간의 곡률이 무한대인 특이점을 낳는다.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도 이 지점에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빅뱅은 상대론적 우주론의 초석이면서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우주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개념이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 있다. 빅뱅이 일어나던 순간부터 비로소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면, 그 전에 일어난 일을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빅뱅을 일으킨 원인을 추적할 수도 없다. 상식적인 우주에서는 원인이 결과보다 시간적으로 앞서기 때문이다. 시간의 시작점에서는 인과율조차 적용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아인슈타인(그리고 에딩턴)과 르메트르가 벌인 논쟁의 핵심이었다.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은 “우주의 시작이라는 말 자체가 초자연적 존재를 연상시킨다”며 그와 관련된 논쟁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77)


우주의 시작에 대한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의 관점은 결정론적 우주관이 진하게 배어 있는 뉴턴의 고전물리학을 연상케 한다. 우주가 결정론을 따른다면 처음 탄생했을 때 향후 모든 진화 과정을 결정할 초기 조건이 존재해야 하며, 이 조건은 다사다난했던 진화 못지않게 복잡해야 한다. 특히 우주는 생명체의 등장을 허용했으므로, 동일한 수준의 생명친화적 조건이 처음부터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모든 변수가 처음부터 생명의 탄생에 유리한 쪽으로 세팅되었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신의 행위”가 개입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르메트르는 우주의 기원에 양자적 관점을 도입함으로써, 인과율로 대변되는 결정론의 사슬을 끊었다. 르메트르는 (내가 아는 한) 최초로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이론을 연결지었다. 우주의 시작은 물리법칙을 따라야 하지만, 이 법칙에는 양자이론과 중력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중력은 빅뱅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는데, 그 빅뱅은 양자이론으로 서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77-8)


3장 우주기원론


펜로즈의 논리에서 시간을 반대 방향으로 되돌리면 붕괴가 팽창으로 바뀐다. 호킹은 여기에 착안하여 팽창하는 우주는 과거에 특이점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예측했다. 호킹과 펜로즈는 “팽창하는 우주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려서 최초의 별과 은하, 우주배경복사가 탄생하기 전으로 거슬러 가면 시공간이 휘어지다 못해 하나의 점으로 수축되는 특이점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우주 초기에 특이점이 존재했다면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양변이 무한대가 되면서(시공간의 곡률이 무한대이면 물질의 밀도도 무한대라는 뜻이다) 이론의 기능을 상실한다. 물리학 이론이 제아무리 기이하다 해도, 무언가를 0으로 나누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계산기에서 임의의 숫자를 0으로 나누면 에러가 나는 것처럼, 임의의 물리량을 0으로 나누는 순간부터 모든 논리는 난센스가 된다. 그러므로 특이점은 일반상대성 이론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한계점에 해당한다. 특이점에서는 어떤 사건도 일어날 수 없다. 88-9)


펜로즈는 상대성 이론에 기초하여 시간이 블랙홀에서 끝난다는 것을 증명했고, 호킹은 팽창하는 우주의 시간을 되돌려서 ‘시간의 시작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빅뱅이란 먼 옛날에 우주의 “씨앗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부화되기를 기다리다가 어느 순간 싹을 틔웠다는 뜻이 아니라, 대폭발이 일어난 순간부터 비로소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특이점은 시간의 탄생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인 셈이다. 호킹은 프리드만과 르메트르가 제안했던 완벽한 구형 우주가 단순한 이론적 모형이 아니라, 상대론적 우주론의 결과로 얻어지는 자연스러운 형태임을 입증했다. 지구에서 가장 단순한 형태의 박테리아는 약 35억 년 전에 출현했고, 지구의 나이는 이보다 조금 많은 46억 년 정도다. 빅뱅 특이점 정리에 의하면 136억 년 전에는 시간도, 공간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주의 나이가 지구 나이의 세 배에 불과하다니, 이 정도면 생각보다 꽤 젊은 편이다. 89)


오직 “실험으로 검증 가능한 자연의 법칙”을 찾고자 했던 파인만은 1940년대 말에 양자적 입자의 파동함수를 훨씬 직관적이고 실용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창안하여 양자역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 기본 아이디어는 고전물리학에서 그랬던 것처럼 입자를 파동이 아닌 알갱이로 간주하되, 그 입자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때 “두 지점 사이를 연결하는 모든 가능한 경로를 동시에 지나간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물론 고전역학에서 입자는 시공간에서 단 하나의 경로만 지나갈 수 있다. 즉, 고전적 물리계의 과거는 단 하나뿐이며, 아무런 모호함 없이 정확하게 정의된다. 그러나 파인먼에 의하면 양자적 입자는 훨씬 포괄적이어서 다양한 과거를 갖고 있으며, 시공간의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할 때 “모든 가능한 경로”를 동시에 지나간다. 단, 각 경로는 할당된 확률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입자가 A에서 B로 이동할 확률을 구할 때에는 그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가능한 경로의 확률을 더해야 한다. 103-4)


호킹은 양자역학에 대한 파인먼의 접근 방식에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아원자 세계에서 놀던 물리학자들은 파인먼의 새로운 이론 체계가 알려진 후 고향 땅을 벗어나 양자역학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의 접근 방식은 외관상 매우 낯설었지만,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사이에 존재했던 근본적 모순은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왜 그럴까? 파인먼의 경로합은 작은 물체와 큰 물체에 모두 적용된다. 그런데 큰 물체에 적용하면 다른 경로들보다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하나의 경로가 부각되고, 바로 이 경로가 뉴턴의 운동법칙으로 얻은 경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파인먼식 접근법을 수용하면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 다만 거시적 물체에서는 미시적 요동이 서로 상쇄된 후 끝까지 살아남은 단 하나의 경로가 고전적인 경로와 일치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미시 세계로 가면 극적인 상쇄가 일어나지 않아서 많은 경로가 최종 결과에 기여하게 된다. 105-6)


하틀과 호킹은 “초기 우주가 팽창하던 시기에는 시간 차원이 양자적 불확정성에 녹아든 상태였기 때문에 특이점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호킹은 “빅뱅 이전의 상황을 묻는 것은 남극의 남쪽에 무엇이 있는지 묻는 것과 같다”면서 자신이 제안한 양자우주론을 ‘무경계 가설no-boundary proposal’이라 불렀다. 호킹의 무경계 가설에는 양립하기 어려울 것 같은 두 가지 특성이 있다. 하나는 우주의 과거가 유한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순간”, 즉 우주의 시작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이 우주의 시작점을 찾겠다며  깔때기 표면을 개미처럼 아무리 기어 다녀도 절대로 찾을 수 없다. 깔때기의 둥그런 바닥은 과거가 끝나는 한계점일 뿐, 창조의 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경계 가설에서 우주의 시작을 찾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게 좋다. 그런 것은 양자적 불확정성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108)


4장 재와 연기


우주는 완벽하게 균일하지 않다.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인플라톤장inflaton field’이라 하는데, 인플라톤장은 양자장quantum field의 일종이다. 그리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예외를 허용하지 않으므로, 인플라톤장에도 양자적 모호함이 존재해야 한다. 즉, 특정 위치에서 장의 값을 정확하게 결정할수록 그 위치에서 장의 변화율은 불확실해지고, 장의 변화율이 불확실하면 미래의 장의 값도 불확실해진다. 그러므로 양자장은 다양한 변화율과 값이 혼재된 상태다. 이것은 입자의 다양한 경로가 더해져서 파동함수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와 같은 양자적 요동은 일반적으로 아주 작은 규모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느닷없이 일어나는 우주의 인플레이션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인플레이션 전문가들은 우주 초기에 일어났던 엄청난 팽창이 미세한 양자 요동을 증폭시켜서, 거시적 규모의 파동과 같은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123)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이 끝난 후 인플라톤의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었을 때, 뜨거운 가스로 가득 찬 우주에 인플라톤장의 요동이 발자국처럼 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우주가 인플레이션에서 탄생했다면, 복사 에너지의 온도와 물질의 분포에 작은 불규칙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후 우주가 서서히 팽창함에 따라 초기에 생겼던 잔물결이 우주 지평선 안으로 들어오면서 인간이 만든 관측 장비에 포착되었다. 멀리서 일어난 파도가 해변가에 도달하여 피서객의 시야에 들어온 것과 비슷하다. 우주배경복사의 온도에 나타난 작은 변화가 인플레이션 이론의 예측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주배경복사의 온도 분포를 여러 방향으로 추적해보면 뜨거운 지점과 차가운 지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위치에 따른 물질의 밀도 변화도 중요한데, 이로부터 ‘은하의 씨앗’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24)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초기에 인플라톤장은 어떻게 에너지 언덕의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었을까? 바로 이 대목에서 호킹의 무경계 가설이 해결사로 등장한다. 놀랍게도 무경계 가설은 우주가 인플레이션에서 시작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창조의 순간에 시공간의 밑바닥이 완만한 곡면이었다는 것은 인플레이션 이론의 주장대로 신비한 스칼라 물질이 음압을 발휘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수 시간에 기초한 고전 우주론에서 음압을 발휘하는 물질은 초고속 팽창(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허수 시간에 기초한 양자우주론에서 음압을 발휘하는 물질은 시공간의 바닥을 구의 표면처럼 매끄럽게 닫아놓는다. 따라서 창조의 순간에 적용되는 무경계 가설과 창조 직후의 상태를 설명하는 인플레이션 이론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 ‘쌍둥이 프로세스’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으며, 인플레이션을 양자적으로 완성한 버전이 바로 무경계 가설이다. 130)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무경계 가설에 의하면 인플레이션은 가능한 한 작은 규모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의 초기 강도는 인플라톤장의 초기값에 의해 결정된다. 인플라톤장의 초기값이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면, 인플레이션이 상상을 초월하는 강도로 진행되어 공간은 엄청나게 커지고, 물질의 양도 풍부해져서 수십억 개의 은하가 탄생할 수 있다. 우리의 우주가 바로 이런 경우다. 이와 반대로 인플라톤장의 초기값이 에너지 곡선의 깊게 팬 골짜기 근처에 있었다면, 인플레이션이 아주 얌전하게 시작되어 우주 공간은 은하가 생성되지 못한 채 거의 텅 비었을 것이고, 자체 중력으로 다시 수축되어 빅 크런치big crunch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우주는 우리와 거리가 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무경계 가설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면 우리의 우주는 전자가 아닌 후자의 길을 걸어왔어야 한다. 대부분의 물리학자가 무경계 가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약점 때문이었다. 131)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시간 화살arrow of time’(시간이 과거로 역행하지 않고 오직 미래로만 흐르는 특성을 강조하는 용어)이라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가 매일 겪는 일상적인 경험들은 명확한 방향을 향해 진행된다. 달걀은 깨질 수 있지만 깨진 달걀은 다시 붙지 않고,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늙지만 다시 젊어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리고 별은 자체 중력으로 붕괴되어 블랙홀이 될 수 있지만, 블랙홀이 다시 별로 환생하는 사건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은 있어도, 미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이 확고한 방향성, 즉 시간 화살은 물리적 세계의 배후에서 모든 것을 지배하는 강력한 원리 중 하나다. 고대인들은 시간의 방향성을 목적론적 관점에서 이해했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우리는 시간이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열역학 제2법칙2nd law of thermodynamics이다. 131-2)


지금으로부터 약 140억 년 전에 우주는 엔트로피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상태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후로 엔트로피가 커지는 쪽을 향해 꾸준히 변해왔다. 그러므로 과거와 미래를 구별하는 시간 화살의 기원은 엔트로피가 극도로 낮았던 원시우주에서 찾아야 한다. 아마도 이것은 우주가 생물친화적 특성을 갖게 된 이유 중 가장 미스터리한 수수께끼일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무경계 가설은 우주의 파동함수를 다루는 이론이므로, 인플레이션이 반드시 최소한의 규모로 일어날 필요는 없다. 양자우주의 기원은 하나의 값으로 떨어지지 않고 모호한 상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전자 한 개의 파동함수가 각기 다른 확률을 가진 여러 궤적의 합으로 표현되듯이, 무경계 가설에서 말하는 우주의 파동함수는 각기 다른 인플라톤장에서 시작된 다양한 인플레이션 우주의 혼합으로 표현된다. 즉, 양자우주는 단 하나의 팽창하는 공간이 아니라, 여러 개의 팽창 역사가 중첩되어 있다. 133-4)


5장 다중우주에서 길을 잃다


지금부터 양자중력 이론의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던 끈이론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고대 그리스어로 “보이지 않고, 쪼갤 수 없는 물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원자atom는 종류가 90여 가지나 되지만, 끈이론에서 말하는 끈은 단 하나뿐이다. 입자의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끈은 물리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다. 모든 종류의 입자에 똑같은 끈이 숨어 있는 것이다. 종류를 차별하지 않는 평등주의적 관점은 통일의 철학에 잘 부합되는 것 같다. 그런데 똑같은 끈이 어떻게 질량과 스핀, 전하 등이 제각각인 입자 무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인가? 답은 끈은 진동하는 모드에 따라 각기 다른 입자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끈이론에 의하면 전자와 쿼크는 물론이고 심지어 광자와 같은 매개입자(보손)도 끈이 고유한 모드로 진동한 결과다. 첼로의 줄이 진동수에 따라 각기 다른 음을 내는 것처럼, 끈은 다양한 모드로 진동하면서 입자 동물원에 입주한 모든 종류의 입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155-6)


끈이론의 가장 큰 단점은 이론 전체를 아우르는 운동 방정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상대성 이론에는 장 방정식이 있고 양자역학에는 슈뢰딩거 방정식, 상대론적 양자역학에는 디랙 방정식이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끈이론 방정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끈이론으로 자연의 법칙을 통일하려면 꽤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옛날부터 3차원이라고 하늘같이 믿어왔던 공간을 무려 9차원으로 확장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언뜻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끈이론의 배경 수학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이 황당한 제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공간이 4차원 이상이었다면, 인간의 공간 감각은 초과된 차원을 아득한 과거에 이미 인지하지 않았을까? 맞는 말이다. 그러나 9차원 중 우주적 규모로 길게 뻗어 있는 3차원을 제외한 나머지 6차원이 초미세 영역에 돌돌 말린 채 숨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차원의 규모가 인간의 인지 가능 한계보다 작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158)


처음에 끈이론의 창시자들은 강력한 수학 원리를 이용하여 여분 차원의 기하학적 형태를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이 야무진 꿈은 얼마 가지 않아 일장춘몽이 되어버렸다. 여분 차원이 취할 수 있는 기하학적 구조의 종류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끈이론학자들이 이론의 다양한 요소를 결합하여 찾아낸 “숨은 차원이 취할 수 있는 기하학적 형태의 개수”는 관측 가능한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보다 훨씬 많다. 그리고 개개의 형태는 각자 나름의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하나의 우주에 해당한다. 이것은 여분 차원의 가능한 형태를 분석하다가 “수학적으로 가능한 우주”로 가득 찬 다중우주 전망도landscape가 완성되면서 알려진 사실이다. 표준 모형과 달리 끈이론에는 이론으로 결정되지 않는 매개변수(자연의 상수)가 없다. 상수를 인위적으로 집어넣을 일이 없으니, 이만큼 순수한 이론도 드물다. 그러나 바로 이 순수함 때문에 끈이론에는 무수히 많은 유효법칙이 숨어 있다. 159-61)


끈이론은 우주의 역사에서 엄청나게 많은 분기점을 발견해냈다. 하나의 섬우주에 거주하는 생명체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물리법칙이 우주 어디서나 똑같이 적용된다며 경이감에 빠질 수도 있고, 그 법칙이 생명체에 유리한 쪽으로 세팅된 이유를 궁금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끈이론이 지배하는 변화무쌍한 다중우주에서 이런 생각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우리가 물리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의 우주에서만 통용되는 국지적 특징이며, 우리 우주가 빅뱅을 겪은 후 특별한 길을 따라 냉각되면서 남긴 독특한 흔적에 불과하다. 핀치새의 뾰족한 부리나 오른쪽으로 감긴 DNA처럼, 입자와 힘의 속성은 거대한 설계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 우주에서만 발견되는 국지적 특징일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의 유효법칙도 우리 우주가 탄생 초기에 다윈의 진화와 비슷한 과정을 겪으면서 나타난 결과이며, 그 진화적 특성은 이미 오래전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렸다. 162)


메타법칙과 무관하게, 또는 그보다 높은 수준에서 무작위 선택을 도입하는 것은 분명히 비인류학적인 발상이며,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신과 같은 위치에서 조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무작위 선택이란 우리가 다중우주를 느긋하게 내려다보면서, 비슷한 관찰자 중 ‘우리’를 선택한다는 뜻이다. 우리, 또는 다른 어떤 형이상학적 조직이 이 일을 수행하여 그 결과를 알고 있다면 여기서 내린 선택을 정당한 절차로 인정할 수 있겠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하나의 우주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임을 자각하는 것”과 “무작위 선택이라는 우주적 행위”를 동일시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생각이다. 누가 뭐라 해도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유효법칙과 별과 은하, 일부 지역에 생명체가 서식하는 우주가 적어도 하나는 존재하고 있다. 이것이 우주의 전부이건, 아니면 방대한 다중우주의 일부이건,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는 생명이 살아가기에 아주 적합한 물리적 특성을 갖추고 있다. 168)


6장 질문이 없으면 과거도 없다!


양자이론에서 무언가를 관측하는 행위는 우주의 역사가 두 갈래 이상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을 만들어낸다. 단, 관찰자는 자신이 속한 갈림길만 볼 수 있다. 즉, 개개의 갈림길을 따라가는 모든 관찰자(복사본)에게는 자신의 길만 살아남은 것처럼 보인다. 특정 관측자에게 할당되지 않은 다른 갈림길들은 그와 완전히 무관한 우주에서 각자 독립적으로 진행되어 거대한 “우주 나무”의 일부가 된다.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는 무한한 공간을 표류하게 되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서로 간섭할 수 없는 두 갈림길의 관계를 표현할 때 “분리되어 있다decouple”거나 “결어긋난 상태에 있다decohere”고 말한다. 그러나 개개의 경로(역사)가 모두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유명한 예인 이중 슬릿 실험에서 하나의 슬릿을 통과한 전자의 경로는 다른 슬릿을 통과한 전자의 경로와 얽히면서 스크린에 간섭무늬를 만들어낸다. 이는 곧 스크린에 형성된 무늬만으로는 전자가 둘 중 어떤 슬릿을 통과했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188)


이제 실험을 조금 바꿔서, 전자와 상호작용하는 기체로 슬릿 근처를 에워쌌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상태에서 전자가 슬릿을 통과하면 비록 기체 입자가 전자의 경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해도, 각 슬릿에서 발생한 두 개의 파동이 기체와 상호작용하면서 빠르게 약해지기 때문에, 서로 간섭을 일으키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스크린에는 간섭무늬 대신 두 슬릿과 거의 비슷한 방향으로 정렬된 두 개의 밝은 줄무늬가 나타날 것이다. 이 상황을 에버렛의 논리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슬릿을 에워싼 기체는 파동 조각이 두 개의 분리된 역사(두 개의 갈림길)를 갖도록 만드는 관찰자의 역할을 했다. 따라서 명확하게 분리된 두 파동은 더는 간섭을 일으키지 않은 채 자신만의 길을 갔고, 그 결과 스크린에는 원래 슬릿과 비슷한 두 개의 줄무늬가 형성되었다.” 또는 슬릿을 에워싼 기체가 “전자가 둘 중 어느 쪽 슬릿을 통과했는지 확인하는 도구”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188-9)


거시적 세계에는 결어긋남을 초래하는 요인이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매 순간 수많은 관찰 행위를 수행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양자적 간섭이 모두 사라지고 무한한 가능성 중 단 몇 개만이 현실로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우리 주변 환경은 미시 세계의 유령 같은 중첩과 거시 세계의 명확한 경험을 연결하는 가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결어긋남 과정은 미시 세계의 끊임없는 양자 요동에도 불구하고 매우 견고한 고전적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구에 존재하는 개개의 사물은 수십 억 년 동안 무수히 많은 결과를 기록하고 쌓아오면서 우리 역사(무수히 많은 갈림길 중 하나)에 약간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에워싼 세상이 자신만의 특수성을 획득해온 방식이다. “우주를 양자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시간을 거슬러 가는 하향식 요소가 우주론에 추가될 것”이라는 호킹의 예측에는 바로 이런 뜻이 담겨 있었다. 189)


물리학자들이 에버렛의 가설에 회의적 반응을 보인 이유는 양자이론치고 지나칠 정도로 거창하고 황당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에버렛의 가설이 양자역학의 ‘다중세계 해석many-worlds interpretatio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사람들은 ‘다중세계’라는 말을 들으면 똑같은 우주 여러 개가 똑같은 현실감을 갖고 공존하는 상황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에버렛이 제안한 범용 파동함수universal wave function의 개념은 우주 전체를 양자적으로 생각하는 양자우주론의 초석이 되었다. 그가 생각한 우주는 복제되거나 더 큰 상자에 들어가는 우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물리계였다. 이로부터 탄생한 양자우주론의 전체적인 구조는 다음과 같다. 우주발생론 모형(무경계 가설 등)과 진화의 개념(끈이론이 낳은 우주 풍경에 적용된 파인먼의 경로합 등), 마지막으로 세 번째 핵심 요소인 관찰자가 모여서 트립티크triptych(교회 제단에 걸려 있는 세 폭짜리 그림) 모양의 구조가 완성된다. 191)


이 그림에서 관찰자의 역할이란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단순한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양자우주론에서 관측은 더욱 깊은 수준의 양자적 행위를 의미한다. 즉, 관측이란 역사가 갈라지는 분기점에서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현실로 구현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항상 모종의 상호작용이 개입되어 있지만 인간이 수행하는 관측에 국한되지 않으며, 현실 세계에 구현된 결과는 생명체와 무관할 수도 있다. 관찰자, 즉 관측을 행하는 주체는 정밀한 기계나 슈뢰딩거의 고양이, 또는 석영 조각일 수도 있고, 우주 초기에 붕괴된 대칭일 수도 있으며,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에서 방출된 광자일 수도 있다. 우주는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톰 리들의 백지 일기장과 비슷하다. 가능성의 영역에는 무수히 많은 질문의 답이 존재하지만, 질문을 통해서만 답을 알 수 있다. 양자우주(우리 우주)에서 유형有形의 물리적 실체는 끊임없는 질문과 관측을 통해 드넓은 가능성의 지평선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192)


이 얽힘은 양자우주론에 “과거로 진행하는” 미묘한 요소를 불어넣는다. 양자우주론에는 객관적 관찰자와 무관한 우주의 역사(명확한 시작점과 진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향식 접근법(시간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가는 접근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가장 깊은 수준에서 우주의 역사가 시간의 반대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반직관적인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마치 양자적 관측 행위가 시간을 거슬러 연속적으로 진행되면서 빅뱅의 결과(대형 차원의 수, 힘과 입자의 특성 등)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의 직관과 반대로 과거가 현재에 의존하게 되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인과적 연결고리는 보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약해진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은 과거의 한순간에 각인되어 있으므로, 역사를 연구할 때에는 회고적인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위 수준의 법칙에서는 그와 같은 정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정보는 오직 미래에 실행되는 실험과 관측을 통해 복원된다. 193)


생물학적 진화의 역사에서 모든 생명체의 공통 조상이 루카LUCA인 것처럼, 우주론의 기원은 무경계 가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루카의 생화학적 구성성분을 아무리 철저하게 분석해도 그로부터 자라날 계통수의 형태를 미리 짐작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루카가 없으면 계통수도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경계 기원은 우주가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로부터 파생될 물리법칙을 미리 예측할 수는 없다. 우주의 계보와 법칙은 하향식 관측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빅뱅의 잔해인 우주배경복사의 온도가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양상은 강력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을 때 예상되는 온도 분포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여기에 하향식 논리를 적용하면 지금의 우주가 “생성될 확률이 가장 높은” 우주다. 그러므로 하향식 이론은 망원경으로 확인된 우주배경복사의 온도 분포와 강력한 인플레이션에서 예측된 (온도 이외의) 다른 데이터 사이에도 강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204-5)


7장 시간 없는 시간


플라톤은 이 세상을 동굴 벽에 드리운 그림자에 비유하면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완벽한 실체를 어설프게 투영한 그림자일 뿐이며, 수학적 형태의 완벽한 (그리고 우월한) 실체는 바깥세상(이데아)에 우리와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400년이 지난 지금, 플라톤이 상상했던 이데아는 홀로그램 혁명을 겪으면서 엄청나게 달라졌다. 가장 최근에 제기된 홀로그램 세계관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시공간의 얇은 조각에 숨겨진 현실이 4차원 시공간에 투영된 결과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원형原形이 이 세상에 투영되어 휘어진 시공간과 중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곧 현실을 서술하는 또 다른 방법이 존재한다는 뜻이며, 양자적 입자와 장으로 이루어진 3차원 그림자 세계에 우주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1세기의 홀로그램 물리학은 “어딘가에 숨겨진 홀로그램을 해독할 수만 있다면, 물리적 실체의 가장 깊은 속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13)


일반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블랙홀은 그야말로 “단순함의 전형”이다. 상대론적 블랙홀은 속내를 도저히 읽을 수 없는 포커페이스를 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의하면 블랙홀이 별로 만들어졌건,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졌건, 또는 반물질로 이루어졌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블랙홀이 가질 수 있는 물리적 특성은 단 두 가지, ‘질량’과 ‘각운동량’뿐이다. 모든 블랙홀은 오직 질량과 각운동량이라는 두 가지 물리량에 의해 구별된다. 일반상대성 이론에 등장하는 블랙홀은 외부로부터 정보를 무한정 빨아들여서 사정없이 파괴하는 궁극의 쓰레기통이다. 그러나 베켄슈타인과 호킹은 사뭇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의 준고전적 엔트로피 공식에 의하면 블랙홀은 자연에서 가장 복잡한 물체로서, 고전적인 이미지와 완전히 정반대다. 왜 그럴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양자역학과 불확정성 원리를 고려하지 않은 고전적 이론이어서, 블랙홀 내부의 미세구조에 저장된 엄청난 양의 정보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217)


그렇다면 블랙홀이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 안에 저장된 정보는 어떻게 되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가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정보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블랙홀을 “궁극의 지우개”라 할 만하다. 원래 블랙홀은 무엇이건 집어삼키는 천체였으니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는데, 문제는 양자역학이 이런 시나리오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기본 법칙에 의하면 모든 물리계의 파동함수는 정보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진화한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파동함수가 양자역학의 법칙에 따라 진화하면서 정보를 인식 불가능한 영역으로 옮겨놓을 수는 있지만, 정보 자체를 제거할 수는 없다. 이것은 파동함수의 모든 가능한 확률을 더했을 때 반드시 1(100퍼센트)이 되어야 한다는 필수 조건과 관련되어 있다. 양자역학의 법칙에 의하면 백과사전을 통째로 불에 태워도, 남은 재를 양자적 수준에서 분석하면 모든 정보를 복원할 수 있다. 218-9)


이제 두 번째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혹시 블랙홀의 정보가 호킹 복사에 암호로 저장되어 우주 공간으로 흩어지는 것은 아닐까? 블랙홀이 완전히 증발할 때까지는 거의 영겁의 시간이 소요되므로, 이것도 일견 그럴듯하게 들린다. 게다가 딱히 양자역학에 위배되는 구석도 없다. 그러나 이것은 호킹의 계산과 일치하지 않는다. 호킹 복사에는 블랙홀과 관련된 어떤 정보도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블랙홀이 호킹 복사의 형태로 자신의 질량을 방출할 때, 복사 스펙트럼에는 블랙홀의 미세구조나 역사에 관한 정보가 단 한 조각도 들어 있지 않다. 호킹의 복사 이론에 의하면 블랙홀이 최후의 질량을 방출하고 사라진 후에 남는 것은 무작위로 흩어진 열복사의 구름뿐이며, 이로부터 블랙홀의 정보는커녕, 과거에 블랙홀이 존재했다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물리학자들은 블랙홀의 정보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내기만 하면,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이론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19-20)


에드워드 위튼은 끈이론을 바라보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는데, 그의 논리에 의하면 다섯 개의 끈이론에 초중력을 포함한 여섯 개의 이론은 사실은 별개의 이론이 아니라 동일한 수학적 구조의 다른 얼굴일 뿐이었다. 위튼은 여러 개의 이론을 하나로 연결하는 복잡한 수학적 네트워크를 ‘M 이론’으로 명명했다. 물리학자들은 “외관상 다르게 보이는 이론들 사이에 존재하는 수학적 관계”를 칭할 때 “이중성duality”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중성(또는 이중적) 관계에 있는 두 이론은 어떤 면에서 보면 동일한 이론일 수도 있다. 두 이론이 이중적 관계라는 것은 “동일한 물리적 현상을 두 이론이 각기 다른 수학적 언어로 서술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태동기에 극심한 혼란을 야기했던 파동설과 입자설도 서로 이중적인 관계에 있다. M 이론의 이중성이 특히 돋보이는 이유는 하나의 이론에서 엄청나게 어려웠던 문제가 다른 이론으로 전환했을 때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222)


1997년, 하버드대학교의 젊은 조교수였던 아르헨티나 출신의 물리학자 후안 말다세나Juan Maldacena는 두 개의 끈이론이나 두 개의 입자이론을 연결하지 않는 새로운 이중성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이것은 “중력을 포함한 끈이론”과 “중력이 없는 입자이론”을 연결하는 이중성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말다세나의 이중성으로 연결되는 두 이론이 각기 다른 차원에서 펼쳐진다는 점이었다. 그의 눈에는 입자이론이 중력이론의 홀로그램처럼 보였다. 말다세나의 이중성을 ‘홀로그램 이중성’으로 부르는 이유는 입자 부분에 속한 양자장이 반-드지터 공간의 스노볼을 침투하지 않고 그 경계면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말다세나의 이중성에 등장하는 입자 이론이 지난 20세기 중반부터 물리학자들이 사력을 다해 개발해온 양자장 이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이다. 완벽하게 작동하는 “물질과 중력의 양자이론”이 홀로그램 이중성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다. 223-4)


호킹은 2004년 더블린 강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블랙홀이 슈바르츠실트의 기하학으로 서술된다고 믿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정보 유실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블랙홀의 정확한 상태에 대한 정보는 다른 기하학에 저장되어 있다. 아직도 혼란과 역설이 난무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 문제를 ‘단 하나의 객관적 시공간’이라는 고전적 관점에서 다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인먼의 ‘기하학 합sum over geometry’을 도입하면 두 개의 기하학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은 호킹의 새로운 하향식 연설이었다. 호킹은 자신의 논리가 지나치게 고전적이었음을 깨닫고 입장을 바꾸었다. 블랙홀이 탄생한 후 충분히 긴 시간이 지나면, 블랙홀의 과거와 현재 상태에 관한 정보는 블랙홀의 기하학적 구조에 저장되지 않고 새로운 시공간에 저장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향식으로 전향한 호킹은 자신이 젊었을 때 시공간을 이미 주어진 양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계산을 해보기도 전에 실수를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231)


호킹 복사는 사건 지평선 근처에서 일어나는 양자적 요동으로부터 발생한다. 진공 중에서 양자적 요동에 의해 입자-반입자 쌍이 생성되고, 반입자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때마다 파트너 입자가 우주 저편으로 도망가는데, 이 현상을 멀리서 보면 마치 블랙홀에서 입자가 방출되는 것처럼 보인다.(이것이 바로 호킹 복사였다!) 그러나 한 번 쌍으로 태어난 입자와 반입자는 둘 사이의 거리가 아무리 멀어져도 양자적으로 얽힌 관계가 단절되지 않는다. 물리학 용어로 표현하면 두 입자는 서로 “얽힌 관계entangled”에 있다. 외부에서 바라보면 우주로 도망가는 입자는 블랙홀에서 방출된 열복사처럼 보이지만, 두 입자를 모두 고려하면 둘을 연결하는 상호 관계 속에 어떤 형태로든 정보가 저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페닝턴과 현악사중주단은 블랙홀에서 증발하는 입자와 내부로 빨려 들어간 입자 사이의 얽힌 관계가 장구한 세월에 걸쳐 쌓이다 보면 사건 지평선을 가로지르는 웜홀로 발전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232-3)


8장 우주의 안식처


양자우주론에서 과거와 미래는 끊임없는 질문과 관찰을 통해 가능성의 안개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양자이론의 중심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을 “이미 일어난 일”로 변화시키는 관찰 행위(관측자와 관측 대상의 상호작용)는 우주를 점점 더 확고한 실체로 만들어가고 있다. (양자적 의미의) 관찰자는 우주에 주관적이고 섬세한 요소를 불어넣는 창조적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관찰자는 지금 실행한 관측이 빅뱅의 결과를 바꾸는 것처럼, 우주론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미묘한 요소를 도입한다. 호킹이 자신의 최종 이론을 하향식 이론이라 부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하향식 우주론은 “설계된 우주”의 수수께끼를 뒤집는 이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생명친화적 특성이 양자 수준에서 설계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생명과 우주가 궁합이 잘 맞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원래 깊은 수준에서 공존하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249-50)


우주의 기원에 대한 호킹의 무경계 모형은 물리학과 우주론에 대한 역사적 관점(법칙의 기원을 포함하는 관점)을 구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무경계 가설에 의하면 창조의 순간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구조적 특성이 점차 변하거나 사라지다가 결국에는 시간까지 사라진다. 태초에 시간은 공간과 융합되어 더 높은 차원의 구球를 형성하고, 이런 상태에서 우주는 완전한 무無로 존재했을 것이다. 그래서 호킹은 인과율에 입각한 상향식 접근법을 추구하던 시절에 “우주는 무에서 창조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최종 이론을 구축하면서 빅뱅 무렵의 시공간에 대해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태초의 무는 우주가 탄생할 수도, 탄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텅 빈 진공이 아니라, 시공간과 무관하고 심지어 물리법칙과도 무관한 인식론적 지평선에 가깝다”고 주장한 것이다. 호킹의 최종 이론에서 ‘시간의 기원’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시작점이 아니라,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과거의 한계점이다. 252)


연구 초기 단계에 호킹의 목적은 시간이 시작되던 순간에 주어진 물리적 조건으로부터 ‘설계된 우주’의 비밀을 푸는 것이었다. 그는 빅뱅 깊은 곳에 숨겨진 수학이 “우주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진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인과적으로 설명해준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호킹은 우주론을 거꾸로 뒤집은 후,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선택한 하향식 관점이 물리적 실체와 법칙 사이의 계층구조를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하향식 철학에 의하면 우주는 법칙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기계가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자기조직적self-organizing 실체이며, 그 안에서 온갖 패턴이 모습을 드러낸다(즉 ‘창발’한다). 이들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을 우리는 ‘물리법칙’이라 부르고 있다. 하향식 우주론에서는 법칙이 우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법칙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존재의 근원을 묻는 질문에 답이 존재한다면, 그 답은 바깥이 아니라 이 세상 안에서 찾아야 한다.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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