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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에 대한 거의 모든 것 - 가장 유명하지만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힘
마커스 초운 지음, 김소정 옮김 / 현암사 / 2022년 6월
평점 :
# 당신이 모를 수도 있는 중력에 관한 여섯 가지 사실
1. 중력은 당신과 당신 주머니 속 동전이, 당신과 당신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다.
2. 중력은 아주 약하다. 지구의 전체 중력으로도 근육의 힘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손을 위로 뻗을 수 있다.
3. 중력은 약하지만 대규모로 작용하는 중력에는 저항할 수 없다. 중력은 전체 우주의 진화와 운명을 통제하는 힘이다.
4. 사람들은 중력이 빨아들이는 힘이라고 생각하지만 우주 대부분에서 중력은 날려보내는 힘이다.
5. 빅뱅 후에 중력 스위치가 켜지지 않았다면 시간은 방향성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6. 중력을 명확히 이해해야만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답할 수 있다.
1부 뉴턴
1장 · 달은 떨어지고 있다
달은 원 운동을 하면서 계속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다. 사과와 달은 둘 다 지구를 향해 떨어지는 상황에 놓여 있다. 두 물체의 운동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그저 사과는 지면과 평행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속력이 없기 때문에 지면을 향해 곧바로 떨어지지만, 달은 엄청난 속력으로 날아가는 포탄처럼 지면과 평행인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원을 그리며 떨어진다는 것뿐이다. 지구 중심에서 지표면까지의 거리는 6,370킬로미터이고, 지구 중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38만 4,400킬로미터이다. 다시 말해 달에서 지구 중심까지의 거리는 지표면에서 지구 중심까지의 거리의 60배이다. 60의 제곱은 3600이다. 즉 달에 미치는 지구의 중력이 지표면에 미치는 지구의 중력보다 정확히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 약해진 것이다. 뉴턴은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 약해지는 단일 힘이, 땅에 존재하는 사과와 하늘에 존재하는 달을 끌어당기고 있음을 입증했다. 정말로 중력은 보편 힘이었다. 26-7)
2장 · 마지막 마법사
똑바로 서 있는 원뿔을 상상해보자. 이 원뿔을 날카로운 칼로 깔끔하게 잘라보자. 칼로 원뿔의 한 옆면에서 다른 옆면을 완전히 통과하게 자르면 단면은 타원이 된다. 원뿔의 한 옆면으로 칼을 비스듬하게 집어넣고 밑면을 통과하게 자르면 한쪽 끝이 열린 ‘포물선’이 된다. 칼을 똑바로 세워 옆면과 밑면이 수직이 되게 자른 단면은 한쪽 끝이 열린 ‘쌍곡선’이 된다. 힘의 역제곱 법칙의 지배를 받는 천체의 이동 속력이 태양을 벗어날 만큼 충분히 빠르지 않으면(또는 에너지가 충분히 많지 않으면), 이 물체는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를 그리며 돈다. 태양을 탈출할 수 있을 정도로 이동 속력이 아주 빠른 천체는 쌍곡선 궤도를 그리며 저 멀리 우주로 날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두 물리 상태의 중간에 위치한 포물선 궤도를 그리는 천체는 태양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붙잡히지도 않는다. 공전 궤도가 포물선인 천체는 행성과 태양 사이의 거리가 무한히 멀 때만 태양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37-8)
3장 · 3월에는 조수를 조심하라
지구는 부피가 있는 볼록한 천체이기 때문에 당연히 달에 더 가까운 지역이 있다. 달은 가까운 지역을 먼 지역보다 더 강하게 끌어당긴다. 뉴턴은 달의 중력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력도 지역마다 다를 것임을 알았다. 물은 단단한 암석과 달리 자유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달의 중력은 암석보다는 물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사실도 알았다. 대양의 한 점 바로 위에 달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점에서 달이 대양의 해수면을 잡아당기는 힘은 좀 더 멀리 있는 대양의 바닥인 해저를 잡아당기는 힘보다 셀 것이다. 뉴턴은 중력의 이런 차이 때문에 해수면이 해저에서 멀어지고 대양은 달이 있는 방향으로 부풀어 오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달의 중력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결과는 또 있다. 달에서 보았을 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바다를 생각해보자. 이곳은 해저가 해수면보다 달에 더 가까이 있기 때문에 해수면보다 해저가 달의 중력을 더 강하게 받는다. 그 결과 해저의 물이 해수면으로 끌어당겨져 바다가 위로 볼록해진다. 48)
조수란 단순히 물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한 물체가 다른 물체에 중력을 가해 그 물체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실제로 중력은 바로 밑에 있는 대양의 물을 볼록하게 부풀리는 것처럼 바로 밑에 있는 암석도 볼록하게 부풀린다. 그러나 암석은 물보다 훨씬 단단하기 때문에 변형되는 정도가 크지 않다. 달 때문에 암석이 늘어났다가 줄어들기 때문에 지구를 구성하는 단단한 부분들도 25시간에 두 번씩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는다. 이제 물을 머금고 있는 다공성 암석이 우물을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우물을 둘러싸고 있는 암석은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라고 할 수 있다. 물을 빨아들인 스펀지가 그렇듯이 우물을 둘러싼 암석도 팽창하면 물을 빨아들이고 압축하면 물을 내보낼 것이다. 암석과 대양은 모두 만조 때는 팽창하고, 간조 때는 압축된다. 그 때문에 만조 때는 암석이 물을 빨아들여 우물 수면이 낮아지고 간조 때는 암석이 물을 내뱉어 우물 수면이 높아진다. 51)
달과 지구에 작용하는 조수는 단지 두 천체의 모양을 변형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구에서는 해수면을 높이거나 낮추고 달에서는 월진을 일으킨다. 달과 지구계의 전체 모습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는 달이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자전했다. 그러나 지구와의 조수 상호작용 때문에 달의 자전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달의 자전 속도가 빠를 때는 지구의 중력으로 볼록해진 부분이 달의 자전 속도 때문에 옆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달의 볼록한 부분은 지구를 정면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구의 중력은 옆으로 돌아가려는 볼록한 부분을 계속 잡아당기며 달의 자전에 제동을 걸었고, 결국 어느 시점이 되자 달의 자전 속도는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시간과 똑같아질 만큼 느려지고 말았다. 공전 주기와 자전 주기가 같은 달은 ‘동주기 자전synchronous rotation’을 하기 때문에 지구 중력에 끌려 볼록해진 부분이 계속해서 지구를 향한다. 이제는 달의 자전 속도가 '변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55)
그런데 조수 상호작용 때문에 자전 속도가 느려지는 천체는 달만이 아니다. 지구의 자전 속도도 느려지고 있다. 지구는 달보다 훨씬 무거워서 힘에 대한 운동 저항력이 더 크기 때문에 자전 속도가 느려지는 정도는 훨씬 적다. 그 증거는 산호초에서 찾을 수 있다. 열대 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다 해양 동물인 산호는 탄산칼슘을 분비해 단단한 골격을 만든다. 산호는 나무가 나이테를 만들듯 날마다 계절마다 두께가 다른 골격을 만든다. 산호가 만든 이 골격 층의 수를 세어보면 한 해가 몇 날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3억 5,000만 년 전에 살았던 산호 화석은 1년이 385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공전 주기는 다르지 않았을 테니 3억 5,000만 년 전에는 하루가 23시간이 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현재 우리는 하루의 길이가 100년 전에 비해 1.7밀리초 가량 늘었음을 알고 있다. 실제로 지난 2,500년 동안 하루의 길이는 100년에 1.7밀리초씩 늘어나고 있다. 55-6)
달의 중력 때문에 지구에서 일어나는 조수운동은 지구의 자전 속도를 늦추고, 그 때문에 지구의 ‘각운동량angular momentum’*은 줄어든다. 그런데 물리학에는 ‘고립되었거나 닫힌’ 계(고립계) 안에서는 절대로 각운동량이 변할 수 없다는 기본 강령이 있다(각운동량 보존법칙). 따라서 지구의 각운동량이 줄어들면 이를 보상하기 위해 다른 무언가의 각운동량이 늘어나야 한다. 그 다른 무언가가 바로 달이다. 달이 직선 궤도를 벗어나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공전 궤도를 지금의 공전 속도로 움직이려면 지구와 달의 거리가 지금만큼 떨어져 있어야 한다. 달의 공전 속도가 빨라지면 달이 조금 더 먼 거리를 이동해야 직선 궤도가 원 궤도로 구부러질 수 있기 때문에 달의 공전 궤도는 지금 궤도보다 조금 더 바깥쪽으로 이동한다. 지구에서 달로 쏘아 보내는 전파의 이동 거리는 해마다 3.8센티미터씩 늘어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달은 열두 달을 주기로 엄지손가락만큼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58)
# 각운동량 : 회전 운동하는 물체의 운동량
분점의 세차, 즉 지구가 흔들리는 운동을 하는 이유는 지구의 자전축이 움직이기 때문이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뉴턴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뉴턴은 태양과 달의 중력뿐 아니라 지구의 자전 때문에도 지구의 형태가 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지구의 적도 위에 있는 물체는 시속 1,670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날아다녀야 한다. 지구의 중력은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붙잡아둘 강력한 구심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실제로 지구는 완벽한 원이 아니라 적도 부분이 23킬로미터 정도 볼록하게 부풀어 있다. 뉴턴은 지구의 ‘적도가 볼록하게 부풀어 있기’ 때문에 태양과 달의 중력을 받는 지구는 돌아가는 팽이처럼 흔들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지구의 자전축은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돈다. 뉴턴은 태양과 달의 중력이 적도 부근이 볼록한 지구에 작용하면 자전축은 2만 6,000년 만에 한 번씩 회전해야 한다는 계산 결과를 내놓았는데, 이는 관측 결과와 일치한다. 67-8)
4장 · 보이지 않는 세상을 그리는 지도
중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것이 보편적인 힘이라는 점이다. 즉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티끌 한 점이라도 다른 모든 물질의 티끌 한 점에 중력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가령, 목성(질량이 태양질량의 1000분의 1)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있을 때 지구에 미치는 중력은 태양 중력의 1만 6000분의 1이다. 태양계에 있는 행성들이 다른 행성에게 미치는 중력은 태양이 미치는 중력에 비해 너무도 작기 때문에 뉴턴은 행성의 경로를 계산할 때 행성이 다른 행성에 작용하는 중력은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지구 같은 행성은 수많은 천체의 영향을 받으며 움직인다. 그러기 때문에 태양 주위를 완벽한 타원 궤도로 공전할 수 없다. 케플러의 제1법칙은 완전한 진리가 아니라 진리에 가까울 뿐이다. 태양 말고도 다른 천체들이 잡아당기기 때문에 행성의 타원 궤도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점차 방향이 바뀌어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쪽의 궤도는 태양 가까이 가면 ‘변형’된다(세차가 생긴다). 73)
은하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항성에 작용하는 중력의 힘은 약해진다. 따라서 루빈과 포드는 태양계의 행성들이 그렇듯이 은하의 항성들도 중심에서 멀어지면 공전 속도도 느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관측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은하 중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항성들을 관찰한 두 천문학자는 항성들의 공전 속도가 거리에 상관없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은하 외곽에 있는 항성들도 아주 빠른 속도로 공전하고 있었다. 그 정도 속도라면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타다가 멀리 날아가는 아이들처럼 항성도 은하를 벗어나 우주 공간으로 멀리 날아가야 했다. 그렇게 빠르게 도는 항성을 붙잡을 수 있는 강력한 중력은 은하에 존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항성들은 빠른 속도로 공전하면서도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놀랍겠지만 나선은하는 '암흑물질'이라는 광대하고도 둥근 구름에 파묻혀 있다. 암흑물질의 양은 관측 가능한 항성을 모두 합친 것보다 10배는 많다. 79)
중력은 단순히 이 우주에는 암흑물질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암흑물질이 어떤 식으로 분포하고 있는지도 알려준다. 아주 먼 은하에서 지구로 오는 빛은 지나가는 경로에 존재하는 암흑물질의 중력 때문에 ‘굴절’된다(중력 렌즈 효과). 먼 은하에서 오는 빛이 이동하면서 약한 중력 렌즈 때문에 상이 굴절되는 정도를 측정하면 암흑물질이 어떤 식으로 분포되어 있는지 유추할 수 있다. 현재 칠레 고산지대(루빈 천문대)에는 중력 효과를 관측할 수 있는 망원경이 있다. 암흑물질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나선은하 외에도 또 다른 중요한 곳에서도 발견되었다. 우주는 138억 2,000만 년 전에 엄청난 폭발(빅뱅)과 함께 탄생한 후 지금까지 팽창하면서 점점 식어왔다. 차갑게 식은 잔해들은 우리은하를 비롯해 1,000억 개에 달하는 은하로 응축되었다. 그런데 이 가설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가설로는 우주의 매우 중요한 특성을 예측할 수 없다. 이 가설이 예측하는 우주에서는 우리가 존재할 수 없다. 80)
은하는 빅뱅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불덩이 중 다른 지역보다 아주 조금 더 조밀했던 지역에서 형성되었다. 아주 조금 더 조밀해진 지역은 아주 조금 더 중력이 세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물질을 끌어당길 수 있고, 한번 끌어당기기 시작하면 중력은 더욱 커져서 다른 곳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주변 물질을 끌어당길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 과정이 너무도 천천히 진행된다는 것이다. 우주가 탄생한 시간부터 우리은하 같은 거대한 은하들이 탄생하기까지의 시간으로 138억 2,000만 년은 너무 짧다. 은하가 형성되려면 우리가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물질이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중력을 가해 은하의 생성 속도를 높여줄 물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주의 질량-에너지는 4.9퍼센트를 원자가, 26.8퍼센트를 암흑물질이 가지고 있다(나머지 68.3퍼센트는 1998년에 발견한, 역시 보이지 않는 ‘암흑 에너지’가 가지고 있다. 암흑 에너지는 우주를 가득 메운 반동 중력이다). 80-1)
2부 아인슈타인
5장 · 우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시간 지연 현상은 ‘뮤온muon’이라는 우주선cosmic ray을 관측할 때 훨씬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다. 뮤온은 지표면에서 12.5킬로미터 상공의 대기에서 생성된 뒤에 아원자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런데 뮤온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생성된 뒤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고 만다는 것이다. 뮤온의 소멸 시간은 150만분의 1초 정도 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뮤온은 생성된 뒤 500미터도 이동하지 못하고 소멸해야 한다. 상층부 대기에서 생성된 뮤온 가운데 12.5킬로미터 아래의 지표면에 도달하는 입자는 단 한 개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뮤온은 지표면에 도달한다. 생성되자마자 소멸하는 뮤온이 지표면에 도달할 수 있는 이유는 뮤온의 이동 속도가 빛의 속도의 99.92퍼센트에 달하기 때문이다. 우리 관점에서 보면 뮤온은 슬로모션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실제로 뮤온의 시간은 우리 시간보다 25배나 느리게 흐른다. 뮤온이 소멸되리라고 깨닫는 시간이 실제보다 25배 길어진다는 뜻이다. 98-9)
# 우주선 : 우주에서 끊임없이 지구로 내려오는 매우 높은 에너지의 입자선을 통틀어 이르는 말
빛의 속도가 우주의 주춧돌이라면 한 사람의 공간은 다른 사람의 공간과 시간이며, 한 사람의 시간은 다른 사람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모든 것이 천천히 흐르는 일상의 우주에서 이 같은 사실을 분명하게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하는 세상에서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공간과 시간은 탄력이 있어서 한계 없이 무한히 늘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서로 바뀔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은 시공간이라는 한 실재의 두 측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과 북, 동과 서, 위와 아래로 뻗어 있는 3차원 공간과 과거와 미래를 나타내는 시간이라는 1차원으로 이 세상이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간 차원과 시간 차원이 한데 뒤엉켜 시공간이라는 4차원 세계를 만든다. 우리는 4차원 실재가 우리 3차원 세상에 드리운 ‘그림자’만을 인지할 수 있을 뿐이다. 시간은 4차원의 한 그림자이며, 공간은 4차원의 다른 세 가지 그림자이다. 103)
이 세상에 시공간이 존재하는 것은, 즉 시간이 공간의 특성을 일부 공유한다는 것은, 평범한 2차원 지도 위에 지형을 그려 넣을 수 있듯 4차원 지도 위에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려 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관점으로는 4차원 지도 위에서 시간은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새의 눈으로 4차원 지도를 볼 수 있는 아인슈타인이 볼때 시간은 흘러가지 않는다. 4차원 시공간 지도 위에는 우주가 탄생한 빅뱅에서부터 우주의 소멸에 이르는 동안에 일어난 모든 사건이 동시에 펼쳐져 있다. 4차원 시공간의 지도 위에는 한 사람의 일생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사슬처럼 펼쳐져 있다. 뱀처럼 지도 위를 가로지르며 펼쳐진 이 사건의 사슬을 물리학자들은 ‘세계선world line’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시간을 흐르는 것으로 경험하는 우리의 감각은 물리학이 아니라 생물학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며, 사람의 뇌가 실재reality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108)
시간과 공간은 물리학의 거의 모든 개념을 떠받드는 초석이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이 단단한 바위가 아니라 움직이는 모래라면 다른 개념들도 역시 움직이는 모래일 수밖에 없다. 전기장과 자기장을 생각해보자. 공간과 시간이 시공간의 두 측면일 뿐이듯, 전기장과 자기장도 전자기장의 두 측면에 불과하다. 맥스웰은 관찰자가 전하를 띤 전자 같은 물체와 나란히 움직이면 전자는 관찰자에 대해 상대적인 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관찰자는 전기장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전하를 띤 물체가 관찰자에 대해 상대적인 운동을 하면 관찰자는 전기장과 자기장을 동시에 느낀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석과 나란히 움직이면 관찰자는 자기장을 느낀다. 그러나 자석이 관찰자에 대해 상대적인 운동을 한다면 관찰자는 자기장과 전기장을 느낀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전기장과 자기장, 공간과 시간이 각각 한 동전의 양면임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질량과 에너지도 같은 존재의 두 가지 다른 측면임을 깨달았다. 104-5)
아인슈타인의 E=mc2은 두 가지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질량은 에너지의 한 형태일 뿐 아니라 에너지에는 유효질량이 있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소리 에너지, 열 에너지, 화학 에너지, 무엇보다도 운동 에너지는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물체에는 내재된 질량(보편적으로는 ‘정지 질량’이라고 부른다)도 있지만 운동을 통해서도 질량이 생긴다. 즉 물체가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지면 그 물체의 질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질량 증가를 분명히 인지하려면 물체의 이동 속도가 빛의 속도에 가까워야 한다. 어쨌거나 물체의 이동 속도가 빨라지고 그 결과로 질량이 증가하면 그 물체는 쉽게 밀어 옮길 수가 없게 된다. 실제로 물체의 이동 속도가 빛의 속도에 도달하면 질량은 무한히 커진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우주에는 한 물체의 질량을 무한히 크게 바꿀 수 있을 만큼 많은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광선을 잡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106)
다음으로 아인슈타인은 동일한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다양하게 속도가 변하는(‘가속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공간과 시간을 측정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사람들에게 작용하는 물리 법칙은 언제나 같아야 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가속도 운동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문제 외에도 훨씬 더 심각한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뉴턴의 중력 이론과 본질적으로 부딪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뉴턴의 중력 법칙은 태양처럼 거대한 물체에서 나오는 중력의 힘이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든 영향을 미친다고 전제한다. 그것은 어느 장소에 머물든 거대한 물체의 중력은 그 즉시 느낄 수 있다는 뜻이며, 중력의 효과가 무한 속도로 퍼져 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는 이 세상 그 무엇도, 심지어 중력조차도 우주의 한계 속도인 빛의 속도를 능가해 퍼져 나갈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빛이 정한 우주 한계 속도와 중력 이론을 통합하는 방법은 ‘장field’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107)
역장force field과 역선line of force이 있는 중력장을 참고해 아인슈타인은 질량(물체)이 중력장을 만들고, 이 중력장이 다른 질량(물체)에 중력을 가한다는 이론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중력도 장이 있어야 특정한 속도로 이동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빛이 우주의 한계 속도라는 설정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수 상대성 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 중력장 이론을 구축하는 일은 아인슈타인에게 두 번째 문제일 뿐이었다. 그에게는 세 번째 문제도 있었다. 뉴턴의 중력 이론에서 중력을 생성하는 ‘근원’이 질량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다. 아인슈타인은 형태에 상관없이 에너지라면 모두 유효질량이 있기 때문에 중력을 발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서 중력의 근원은 궁극적으로 질량이 될 수 없었다. 중력을 만드는 것은 에너지였다.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한 1905년에도 이런 문제들을 인지하고 있었음이 거의 분명하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려면 그로부터 8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108)
6장 · 떨어지는 사람을 위한 시
떨어지는 사람은 자신의 몸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1907년, 아인슈타인에게 찾아온 이 깨달음이야말로 새롭고 혁명적인 중력 이론 체계의 초석이 되어주었다. 한 남자가 승강기 안에 있다. 갑자기 승강기 줄이 끊어진다. 승강기 줄이 끊어지기 전에 남자는 승강기 바닥에 놓여 있던 저울 위에 올라가 있었다. 승강기 줄이 끊어지는 순간, 70킬로그램을 가리키던 저울의 눈금은 0킬로그램을 가리켰다. 이것이 바로 떨어질 때는 몸무게를 느낄 수 없다는 말의 의미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법칙에서는 아주 쉽게 중력이 없는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저 자유낙하만 하면 된다. 자유낙하를 하는 순간 중력도 몸무게도 사라져버린다. 중력을 느끼지 못한 채 자유낙하하는 상황은 어떤 행성의 중력도 느끼지 못한 채 텅 빈 우주에 떠 있는 상황과 구별할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이 중력 법칙과 특수 상대성 이론에 다리를 놓아준다. 두 상황 모두 특수 상대성 이론의 법칙들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112-4)
중력을 받은 물체는 질량에 상관없이 모두 같은 속도로 낙하한다는 것은 정말 기이한 일이다. 냉장고처럼 무거운 물체와 나무 의자처럼 가벼운 물체가 동시에 같은 힘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하는 모든 실험에서는 냉장고처럼 무거운 물체의 속도를 높이려면(즉 가속도를 높이려면) 작은 물체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무거운 물체는 자신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크기 때문이다. 관성이라는 저항력이야말로 물체가 ‘질량’을 갖게 하는 근본 원인이다. 그런데 물체에 가하는 힘이 중력일 때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질량이 클수록 같은 속도로 움직이게 하려면 더 큰 힘이 필요한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중력은 마치 질량이 큰 물체에게는 더 큰 힘을 발휘하도록 자기 힘을 조절하는 것처럼 보인다. 관성 질량이 두 배 큰 물체는 움직이지 않으려는 저항력도 두 배 크다. 그러나 낙하할 때는 두 배 더 큰 중력을 받기 때문에 질량이 작은 물체와 똑같은 속력으로 떨어진다. 114-5)
갈릴레오 이후로 사람들은 움직임에 대한 물체의 저항력(관성 질량)과 중력 때문에 경험하는 힘(중력 질량)은 전적으로 다른 힘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그런 모든 사람의 믿음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떨어지는 사람은 몸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즉 중력을 받으며 떨어지는 모든 물체의 가속도는 동일하다는 것은 단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중력 질량과 관성 질량은 동일하다는 것, 다시 말해서 중력은 가속도라는 사실 말이다. 1907년에 아인슈타인은 서로에 대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들뿐 아니라 서로에 대해 가속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도 세상을 묘사하려면 상대성 원리를 일반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또한 뉴턴의 중력 법칙이 자신의 특수 상대성 이론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중력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놀랍게도 상대성 이론을 일반화하자 그 자체로 새로운 중력 이론이 되었다. 115)
지구 같은 행성의 중력에서 멀리 벗어난 우주선에서 한 우주비행사가 잠에서 깨어났다고 가정해보자. 우주선은 중력가속도 1g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주비행사는 지구 표면 위에서처럼 발을 선실 바닥에 붙인 채 움직일 수 있었다. 만약 우주선 창문이 온통 깜깜해서 밖을 볼 수 없다면 이 우주비행사는 자신이 지구에 있는 어느 방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우주비행사로서는 자신이 지구 표면에 있는 것이 아님을 입증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중력을 가속도와 구분할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망치와 깃털을 가져온 우주비행사는 두 물체를 어깨 높이까지 들어올렸다가 동시에 놓았다. 두 물체는 같은 속도로 떨어져 선실 바닥에 동시에 닿았다. 자신이 우주선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구 표면에 있다고 생각하는 우주비행사는 두 물체가 동시에 바닥에 닿은 이유는 모든 물체를 같은 속도로 떨어지게 하는 중력 때문이라고 믿었다. 116)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우주비행사가 지구 표면이 아니라 그 어떤 행성의 중력도 닿지 않는 우주 공간에 떠 있음을 알고 있다. 우주비행사가 망치와 깃털을 동시에 놓았을 때 이동한 것은 두 물체가 아니라 우주선의 선실 바닥이었다. 우주선의 선실 바닥이 중력가속도 1g의 속도로 위로 올라가 망치와 깃털에 동시에 부딪힌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다른 힘과 같지 않음을 깨달았다. 중력은 환상이다. 중력은 가속도 운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을 가속도와 구별할 수 없다’는 말로 등가원리Principle of Equivalence를 규정했다. 바로 이 등가원리가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을 떠받치는 초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가속도를 중력으로 착각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인슈타인이 깨달은 것처럼 사람의 인지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116-7)
밖을 볼 수 없는 우주선의 그 우주비행사는 다른 실험을 이번에는 레이저를 이용했다. 레이저를 가져와 바닥에서 1미터 높이에 있는 선반 위에 레이저를 올려놓았다. 우주비행사가 레이저를 켜자 레이저 빔이 선실을 수평으로 가로질렀고 선실 벽에 밝은 파란 점이 생겼다. 벽으로 걸어간 우주비행사는 파란 점이 선실 바닥에서 1미터 높이보다 낮은 곳에 맺혔음을 확인했다. 선실을 가로지르는 동안 레이저 광선은 아래쪽으로 구부러진 것만 같았다. 우리는 우주선이 중력가속도 1g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광선이 선실을 가로지르는 동안 바닥은 위쪽으로 가속도 운동을 했다. 그러니 우리는 광선이 선실 바닥에서 1미터가 채 되지 않는 곳에 닿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영문을 알 수 없는 우주비행사는 자신이 지구의 표면에서 중력을 받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중력이 있으면 빛은 경로가 휘어진다고 생각했다. 즉 중력이 빛을 휘어지게 만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117)
그렇다면 중력은 왜 빛을 휘게 하는 걸까? 빛이 갖는 뚜렷한 특성 가운데 하나는 두 점 사이를 통과할 때면 언제나 가장 짧은 경로를 택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짧은 경로는 직선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아인슈타인은 깨달았다. 언덕과 같은 지형에서는 두 지점을 잇는 가장 짧은 길이 직선이 아니다. 두 지점을 잇는 가장 짧은 길은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곡선이다. 두 지점을 잇는 가장 짧은 경로가 직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은 레이저 광선이 선실을 가로지르는 동안 아래쪽으로 구부러진 모습을 확인한 우주비행사에게도 의미가 있다. 도보 여행자가 지나는 언덕 지형처럼 우주선의 선실이 구부러진 공간이라면 두 지점을 잇는 가장 짧은 길은 곡선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력이 빛을 구부리는 이유는 중력이 뒤틀린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중력은 뒤틀린 공간이다. 뉴턴의 세계관으로는 이토록 크게 바뀌는 중력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117-8)
중력은 뒤틀린 시공간이기 때문에 공간을 가지고 놀 뿐 아니라(빛의 경로를 구부린다) 시간도 엉망으로 만든다. 마주 놓인 두 거울 사이로 레이저 광선이 수평으로 왔다갔다하면서 시간을 알려주는 가상의 ‘시계’가 있다고 해보자. 한 시계는 지표면에, 한 시계는 지표면에서 훨씬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지표면 가까이 있는 시계는 높이 있는 시계보다 육중한 지구에 더 가깝기 때문에 조금 더 강한 중력을 느낄 것이다. 그 말은 지표면 가까이 있는 시계의 거울 사이를 움직이는 광선이 높은 곳의 광선보다 좀 더 구부러진 곡선 경로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좀 더 구부러진 경로로 이동한다는 것은 좀 더 먼 길을 가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표면 가까이 있는 시계의 광선이 두 거울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시간은 높은 곳에서 왔다갔다하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다. 즉 지표면 가까이 있는 시계가 위쪽 시계보다 느리게 간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시간의 흐름은 중력이 강할수록 더 느려진다. 119)
7장 · 신은 0으로 나누었다!
놀랍게도 슈바르츠실트는 충분한 질량이 충분히 작은 부피로 응축되면 시공간은 바닥이 없는 우물처럼 아주 기이한 형태로 뒤틀린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런 시공간의 내벽은 너무도 가팔라서 광선조차도 시공간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가진 에너지를 모두 소비한 뒤에 소멸하고 만다. 이런 시공간은 빛도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밤보다 훨씬 어둡다. 슈바르츠실트는 자신이 발견한 것에 어떤 이름도 붙이지 않았다. 그런 뒤틀린 시공간에 이름을 붙인 것은 1967년, 미국 물리학자 존 휠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공간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슈바르츠실트의 해는 ‘블랙홀’을 기술하고 있었다. 슈바르츠실트의 블랙홀은 ‘사건 지평선’에 둘러싸여 있다. 이 사건 지평선을 넘어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면 빛도 물질도 절대로 다시 나올 수 없다. 사건 지평선을 측정하면 블랙홀의 ‘크기’를 알 수 있다. 태양이 블랙홀이 되려면 태양의 전체 질량이 반지름 3킬로미터인 구로 압축되어야 한다. 141-2)
백색 왜성의 질량이 클수록 중력은 내부 전자를 더욱 단단하게 압축하고, 전자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전자가 움직일 수 있는 최대 속도를 빛의 속도로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사실이었다. 전자의 속도가 우주의 한계 속도에 가까워지면 전자는 훨씬 무거워지고 속력은 증가하기 어려워진다. 이때 문제가 생긴다. 항성을 응축하려는 중력의 힘을 막는 것은 결국 양철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계속 부딪쳐 바깥쪽으로 힘을 가하는 전자들이었다. 이 전자들이 더욱 가까운 거리로 응축되면 속력 변화율이 작아지기 때문에 중력을 이기는 힘은 점차 소멸되고 말 것이다. 찬드라세카르는 거듭해서 계산하고 거듭해서 검토했다. 수명이 다할 때 항성의 질량이 태양 질량의 1.4배가 넘는다면 전자 축퇴압도 항성을 살리지 못한다. 중력은 무자비하게 항성을 으깨버릴 것이다. 우주에서 그토록 맹렬한 중력을 막을 힘은 없다. 145)
# 찬드라세카르 한계 : 태양보다 1.4배 큰 항성
수명이 다한 큰 질량의 항성은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해져서 가차없는 중력에 붙잡혀 점점 더 조그맣게 축소된다. 이제 극도로 압축된 항성 내부에서는 전자가 원자핵 안으로 들어가 양성자와 반응하면서 중성자를 만들어낸다. 중성자도 전자처럼 페르미온이다. 중성자 가스도 전자 가스처럼 항성을 단단하게 만들어 항성이 중력에 대항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중성자는 원자보다 훨씬 작다. 그 때문에 거대한 항성은 지구만 한 백색 왜성이 되지 않고 에베레스트산만 한 중성자 덩어리가 된다. 이런 ‘중성자별’은 각설탕만 한 부피라고 해도 인류 전체의 무게를 합친 것만큼 무겁다. ‘중성자 축퇴압’이 항성의 중력 붕괴를 막아 더는 붕괴하지 않게 해주지만 백색 왜성의 경우처럼 그런 항성에게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중성자별을 이루는 구성 입자들은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상대론적’ 입자들이다. 따라서 특정 질량 한계를 넘어가면 중성자별조차도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해진다. 146)
자연의 ‘강한 핵력strong nuclear force’으로 묶여 있는 중성자의 물리학은 전자기력으로 상호작용하는 전자의 물리학보다 복잡하다. 그 때문에 찬드라세카르 한계와 달리 중성자별의 한계 질량이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중성자별의 한계 질량은 1932년에 러시아 물리학자 레프 란다우Lev Landau가 처음 계산했고, 보통 태양 질량의 세 배 정도라고 믿고 있다. 태양 질량의 세 배가 넘는 항성은 특이점으로 수축하는 것을 막을 힘이 전혀 없다. 이 세상에 태양 질량의 세 배가 넘는 무거운 항성이 없다면 중성자별의 질량 한계는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런 별은 틀림없이 있다. 드물기는 해도 태양 질량의 100배가 넘는 항성도 있다. 이런 항성들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해서 생애 동안 엄청난 양의 질량을 소비하면서 격렬하게 타오른다. 하지만 많은 질량을 외부로 방출한다는 사실을 고려해도 마침내 죽을 때조차도 태양의 질량보다 세 배 이상 크다. 이런 항성은 결국 블랙홀로 압축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146-7)
1930년대 말에 매우 엉뚱한 이유로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물리학자 조지 가모브George Gamow가 팽창하는 우주가 의미하는 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가 팽창하는 우주를 고민하게 된 이유는 자연의 원소들을 만드는 용광로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가장 가벼운 수소를 시작으로 가장 무거운 우라늄까지 92개의 원소가 존재한다. 가모브는 우주는 수소부터 시작한다고 믿었다. 수소가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레고 블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른 원소들은 수소를 기반으로 차례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모브는 항성은 그런 용광로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잘못된 믿음이었다). 그래서 다른 용광로를 찾아 나섰다. 그러다 팽창하는 우주가 영화의 거꾸로 돌리기처럼 다시 수축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수십억 년(우리는 지금 그 시간이 138억 2,000만 년임을 알고 있다)을 뒤로 돌리면 우주를 이루는 모든 물질은 아주 작은 부피로 압축된다. 바로 그때가 우주의 탄생 순간, 빅뱅이다. 150)
3부 아인슈타인을 넘어서
8장 · 예측 불가능한 것을 예측하다
뜨거운 원자 가스 속에서는 빛 파장이 반복해서 방출되고 흡수되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흐르면 가능한 모든 빛 파장이 생성된다. 이런 ‘열적 평형thermal equilibrium’ 상태에서는 모든 가능한 파장을 가진 파동들이 에너지를 균등하게 나누어 갖는다. 그런데 빛 파동의 최대 파장은 크기에 한계가 있지만(빛이 담겨 있는 용기 크기만큼만 커질 수 있다), 빛 파동의 최소 파장은 한계가 없다. 즉 어떤 파장을 택하든 한 파장을 택하면 장파장의 수는 언제나 유한하지만, 단파장의 수는 무한이 된다는 뜻이다. 장파장보다 단파장을 가진 파동이 훨씬 많기 때문에 에너지는 대부분 단파장들이 운반한다. 그 때문에 필연적으로 뜨거운 원자 가스가 지닌 에너지는 가장 에너지가 큰 X선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 1895년에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기 전까지 가장 에너지가 높은 빛은 자외선이었다. 고에너지 X선에 에너지가 몰리는 현상을 ‘자외선 파탄ultraviolet catastrophe’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158)
19세기 말에 전자 기술 분야의 킬러앱은 단연코 전구였다. 따라서 ‘전구의 가열된 필라멘트에서 최대한 많은 양의 가시광선을 방출하게 하는 방법’이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뜨거워진 필라멘트가 뜨거운 기체로 이루어진 태양처럼 그 즉시 X선을 방출하는 것이 빛을 설명하는 최상의 이론이라면 그 방법을 찾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대로라면 전자 같은 전하를 띤 진동 입자는 자신의 진동 ‘주파수’에 맞는 빛을 방출한다. 맥스웰의 이론은 가속한 전하가 전자기 복사를 방출한다고 기술하지만, 실제로 진동하는 전하는 그저 반복적으로 가속되고 있을 뿐이다. 플랑크는 진동하는 용수철이 마음대로 에너지를 방출하고 흡수하는 대신 정해진 기본량의 배수로만 에너지를 방출하고 흡수할 수 있다면 이런 재앙을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플랑크는 용수철이 방출하거나 흡수할 수 있는 에너지 기본량을 h에 진동수 f를 곱한 값이라고 했다. 158-9)
플랑크가 생각한 원자-용수철 가설에서 에너지가 hf의 배수로만 방출되거나 흡수되어야 하는 타당한 이유는 없었다. 그가 이런 상상을 한 이유는 오직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플랑크는 진동하는 입자(진동자)는 살짝 높은 에너지에서는 빛을 방출하거나 흡수할 수 없다고 했다. 빛을 방출하거나 흡수할 수 있게 허용된 다음 단계의 에너지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즉 모 아니면 도 전략을 쓴다는 것이다. 진동자가 빛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가 없다면 빛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빛 파동들이 에너지를 나누어 가질 때, 진동수가 가장 높은 파동은 에너지의 많은 몫을 차지하기는커녕 아예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에너지를 갖기에는 너무 비싼 입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에너지가 가장 많은 빛을 길들이면 자외선 파탄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빛의 속도를 속도의 한계로 정하자 무한infinite이 해결되었듯, 플랑크가 양자라는 개념을 도입하자 무한소infinitesimal가 해결되었다. 160)
아인슈타인은 맥스웰의 방정식과 플랑크의 방정식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빛도 행동하는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플랑크가 그저 수학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양자는 실제로 존재했다. 훗날 이 덩어리에는 ‘광자photon, 光子’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제 우리는 에너지, 물질, 전하, 그밖의 다른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 덩어리(양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안다. 자연의 가장 작은 단계는 고전물리학이 예상했던 것처럼 연속적이지 않다. 신문에 실린 사진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작은 점들이 보이는 것처럼, 자연의 가장 작은 단계도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물리 상수’ h는 플랑크 상수라고 불리게 되었다. 플랑크 상수가 극단적으로 작기 때문에 광자 한 개가 운반하는 에너지도 엄청나게 작다. 그 때문에 전구에서 나오는 빛이 사실은 급류처럼 쏟아지는 작은 총알들임을 절대 눈치채지 못한다. 쏟아져 나오는 작은 총알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연속적으로 보인다. 160-1)
두 전자나 두 산소 원자 같은 완벽하게 동일한 양자 물체들이 볼링공처럼 수백 번 부딪친다고 생각해보자. 양자 물체들은 수백 번을 부딪쳐도 절대로 가지 않는 방향이 생긴다. 왜일까? 그 이유는 한 입자의 확률 파동의 마루가 다른 입자의 확률 파동의 골과 만나 서로 간섭을 일으키면서 상쇄되어 입자를 찾을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즉 ‘간섭’은 양자 입자를 관측하기 전에 중첩된 두 양자 파동이 상호작용하게 해준다. 원자 주위를 도는 전자가 원자핵으로 떨어지지 않고 계속 돌 수 있는 이유도 간섭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전자가 원자핵을 향해 갈 수 있는 경로는 아주 많다. 전자는 나선을 그리며 원자핵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직선 경로나 파동처럼 요동치는 경로를 그리며 원자핵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당연히 이 모든 경로는 양자 파동과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이 양자 파동들은 원자핵 가까이 다가가면 모두 간섭을 일으켜 상쇄되기 때문에 원자핵 가까이에서 전자를 찾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165-6)
만약 중력을 양자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중력을 운반하는 매개자가 있어야 한다. 중력을 매개하는 가상 입자를 이론물리학자들은 ‘중력자graviton’라고 부른다. 중력자와 관련해서는 이론적으로 곤란한 문제가 아주 많으며, 그런 입자는 없을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그 힘을 전달하는 입자와 그 힘을 ‘느끼는’ 입자가 얼마나 많이 상호작용하는지가 힘의 세기를 결정한다. 그런데 중력의 세기는 다른 세 힘의 세기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다. 수소 원자를 이루는 전자와 양성자 사이의 중력은 전자기력보다 1만×10억×10억×10억×10억 배만큼 약하다. 그 말은 중력은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력자 문제는 별개로 치더라도,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과 양자 이론은 본질적으로 양립하기 힘들어 보이기 때문에 두 이론을 합치는 일은 아주 어려울 것 같다. 무엇보다 중력을 제외한 자연의 다른 힘들은 시공간 안에서 작동하지만 중력은 시공간 자체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171)
9장 · 미지의 세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진공 속에서는 입자와 반입자 쌍이 생성될 수 있다. 이런 ‘가상’ 입자들은 눈 깜짝할 순간보다도 더 짧은 순간에 생성되었다가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호킹은 블랙홀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양자 과정을 숙고하다 사건 지평선 외곽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사건 지평선 부근에서 이제 막 생성된 입자와 반입자 쌍 가운데 한 입자는 블랙홀의 중력을 피해 밖으로 빠져나오지만 다른 입자는 블랙홀의 중력에 잡혀 안으로 끌려 들어갈 수 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간 입자는 다시 블랙홀 밖으로 나와 함께 태어난 쌍입자를 소멸시킬 수 없다. 달아난 입자는 잠시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가상 입자가 아니라 실제 입자가 되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호킹은 이런 과정이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 주위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블랙홀 밖으로 끊임없이 튀어나오면서 빛을 내는 입자의 흐름을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라고 한다. 188)
블랙홀을 규정하는 특징은 내부에서 그 무엇도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호킹 복사를 이루는 입자들은 블랙홀 내부로 들어간 적이 없으니, 호킹 복사는 블랙홀 내부에서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지평선 가장자리 바로 너머에 있는 진공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호킹 복사를 하려면 어디선가 에너지가 와야 한다. 사건 지평선 부근에서 가져올 수 있는 에너지는 블랙홀의 중력 에너지뿐이다. 호킹 복사가 끊임없이 블랙홀의 중력 에너지를 가져오면, 블랙홀의 중력은 약해져서 블랙홀은 점차 수축할(증발할) 수밖에 없다. 블랙홀의 크기가 작을수록 호킹 복사는 더욱 격렬하게 일어난다. 따라서 아주 작은 블랙홀의 경우에는 아주 밝은 호킹 복사를 방출한다. 블랙홀은 쓸쓸하게 조용히 사라지지 않는다. 빛나는 존재는 당연히 열이 있다. 호킹 복사 때문에 빛이 나는 블랙홀도 마찬가지다. 그 열은 블랙홀이 내재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블랙홀을 둘러싸고 있는 진공 속에서 일어나는 양자 과정 때문에 발생한다. 188-9)
블랙홀을 증발시켜 결국에는 사라지게 하는 호킹 복사는 물리학에 심각한 역설을 불러온다. 정보는 새로 생성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것이 물리학의 기본 법칙이다. 달을 생각해보자. 뉴턴의 법칙을 적용하면 오늘 달의 위치를 가지고 내일 달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오늘 달의 위치는 내일 달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이 하늘길을 따라 움직이는 동안에도 정보는 새로 생겨나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보존’된다. 하지만 블랙홀이 증발하면 정보는 사라진다. 이 같은 상황을 간단히 말해 ‘블랙홀 정보 역설black hole information paradox’이라고 한다. 블랙홀에서 사라진 정보를 저장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호킹 복사다. 이런 ‘블랙홀 정보 역설’을 풀 수 있는 단서는 이스라엘 물리학자 야코브 베켄슈타인Jacob Bekenstein이 찾았다. 1972년, 그는 사건 지평선의 ‘표면적’이 블랙홀의 ‘엔트로피entropy’와 관계가 있다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189-90)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에 엔트로피가 있다는 것은 블랙홀의 지평선이 일반 상대성 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특색이 없는 매끈한 경계가 아니라 미시 구조를 갖춘 곳이라는 의미일 수 있다. 1993년, 노벨상 수상자인 유트레히트 대학교 헤라르뒤스 엇호프트Gerardus 't Hooft는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은 특색이 없는 매끈한 구조가 아니라 거칠고 불규칙한 미시 구조를 하고 있다는 의견을 제안했다. 이 작은 미시 세계에 존재하는 울퉁불퉁한 덩어리들이 블랙홀을 만든 항성의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고 했다. 엇호프트가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이 블랙홀의 사라진 정보를 저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발표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스탠퍼드 대학교의 레너드 서스킨드Leonard Susskind가 끈 이론으로 그 생각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진동하는 끈 덩어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결국 정보는 사라지지 않았다.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 가운데 하나가 지켜진 것이다. 190-1)
우주도 블랙홀처럼 지평선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주의 ‘빛 지평선light horizon’은 우주의 가장자리가 아니다. 우주는 아마도 끝없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우주의 빛 지평선은 ‘관측 가능한 우주’의 가장자리를 의미한다. 이 빛 지평선 안에 있는 항성과 은하의 빛은 모두 우주가 탄생한 138억 2,000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닿을 시간이 있었다. 빛 지평선 너머에 있는 항성과 은하의 빛이 우리에게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부족하다. 그 빛들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엇호프트와 서스킨드는 3차원인 항성의 정보가 2차원인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에 각인된 것처럼 3차원인 우주의 정보도 2차원인 우주의 지평선에 있는 홀로그램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이런 식으로 비유를 사용해 추론하는 것은 엄격한 물리학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1998년, 아르헨티나 물리학자 후안 말다세나Juan Maldacena는 우리가 ‘홀로그램 우주’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강화하는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 191-2)
양자 이론과 특수 상대성 이론을 양립하려고 시도하는 이론들을 ‘등각장론Conformal field theory’이라고 한다(표준 모형도 등각장론 가운데 하나다). 말다세나는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에 맞춰 춤을 추는 기본 입자들이 내부bulk에 가득한 5차원 우주를 상상했다. 그러고는 2차원인 풍선의 표면이 3차원인 공기 부피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4차원인 우주의 경계가 5차원인 우주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 4차원 우주의 경계 안에는 등각장론에 맞춰 춤을 추는 입자들이 들어 있다. 말다세나는 놀랍게도 4차원 우주 경계에 관한 방정식들은 내부를 기술하는 훨씬 복잡한 방정식과 동일한 정보를 담고 있고, 동일한 물리학을 설명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시 말해서 5차원 우주의 내부에 작용하는 중력 효과가 4차원 우주 경계에 작용하는 양자 이론과 수학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아르카니-하메드는 “양자 이론과 상대성 이론은 서로 싸우고 있는 것 같지만 뒤에서는 서로 협력하고 있다.”라고 했다.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