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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당신의 뇌, 미래의 뇌
김대식 지음 / 해나무 / 2019년 9월
평점 :
머리말
1장 보고 지각한다 : 시각과 인지
눈으로 어떤 물체를 보면 그 물체의 상이 망막에 맺히고, 망막에 있는 다양한 신경세포가 빛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꿔줍니다. 전기 에너지로 바뀐 다음에 관련 정보가 스파이크를 일으켜 축삭이라는 전깃줄을 타고 뇌로 전달됩니다. 뇌 영역의 3분의 1 정도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데 사용됩니다. 실제 시각 영역은 스물다섯 개로 나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보면 그게 한꺼번에 보이잖아요? 지금 여러분이 저를 보면 그냥 보이죠.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 정보가 망막을 통해서 첫 번째 시각 뇌로 들어온 다음에는 이 정보가 다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어느 영역에서는 형태만 분석해요. 다른 영역에서는 색깔만 분석하고, 또 다른 영역은 움직임만 분석합니다. 그 밖에 다른 영역들도 다 자기 고유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동일한 시각 정보가 뇌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스물다섯 개의 축axis, 즉 25차원으로 나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색깔 따로 보고, 형태 따로 보고, 입체감 따로 보고, 움직임 따로 보고 하는 거죠. 21-2)
뇌과학에서는 눈에 보이는 세상과 내 머리 안에 보이는 세상을 구별합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인식하는 과정을 감각sensation이라고 하죠. 그건 진짜 물리적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리고 다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를 인식하는 것을 지각perception이라고 부릅니다. 대개 퀄리아qualia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대상을 바라볼 때의 주관적 체험, 예컨대 빨간 장미를 지각할 때의 주관적 느낌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볼 때의 느낌처럼,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객관적으로 계량하기 어려운 주관적인 체험을 ‘퀄리아’라고 합니다. 감각은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지만, 지각 또는 퀄리아는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즉 우리는 타인이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없어요. 제 눈에는 제가 보는 세상만 들어옵니다. 여러분이 보인다고 하니까 그러려니 그냥 믿는 거예요. 의식이나 영혼,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은 내면적인 속성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만 느낄 수 있습니다. 24-5)
뇌를 연구하다 보면 가장 신기한 것은 뇌가 머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뇌가 머리 안에 있다는 것은, 사실 알고 보면 상당히 큰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뇌는 현실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뜻하죠. 뇌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아니에요. 눈·코·입·귀를 통해 세상을 받아들입니다. 진화의 관점으로 보면 그 이유가 있을 거 같습니다. 지금 이 강의실을 예로 들어보죠. 강의실은 분명히 뇌 바깥에 있습니다. 강의실 안의 이 모습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여러분의 뇌에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렇죠? 지금 머릿속에서 이 모습이 만들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을 보고 생각할 때 뇌가 심장처럼 뛰면 뇌가 혼돈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뭐가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뭐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인가?’ 이렇게 헷갈릴 수 있기 때문에, 뇌는 안에서 일어나는 건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게 바깥에서 일어난다고 믿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뇌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거예요. 43)
우리가 뭔가를 보고 있으면 바깥에서 뇌로 그림이 하나씩 계속 들어오겠죠. 그렇게 한 장, 한 장 들어오는 그림을 있는 그대로 다 입력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보는 현실은 대부분 변화가 없거든요. 1초에 수백 장씩 천장, 천장, 천장, …… 이렇게 똑같은 정보가 계속 들어오는 건 뇌의 하드디스크를 낭비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은 그림이 뇌로 들어올 때 첫 번째 그림과 그다음 그림의 차이 값(미분)만 계산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책상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거기 앉은 사람이 움직였다면 그것만 입력하면 되는 거예요. 사람만 변화가 있었으니까요. 나머지는 어차피 이전 그림과 똑같아요. 그래서 뇌는 항상 정보 자체보다 정보의 차이에 반응합니다. 우리 일상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와 오늘은 확률적으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어제 빼기 오늘이 대부분 0이에요. 오늘 빼기 내일도 대부분 0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일상생활에 아무 변화가 없으면 뇌는 그냥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44-5)
망막 세포들이 빛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꾸고, 이제 스파이크를 축삭을 통해 뇌에 보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터널이 생겨요. 터널이 있다는 건 거기에 세포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우리 눈에는 안 보이는 영역이 하나 있습니다. 학교에서 맹점이라고 배웠을 거예요. 이 맹점이 꽤 큽니다. 엄청나게 큰 점이 보여야 하지만, 역시 뇌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뇌는 주변에 있는 정보들을 복사해서 맹점을 채워버립니다. 따라서 맹점 위치에 있는 정보는 주변의 복사판을 보고 있는 겁니다. 뇌는 눈·코·입·귀를 완전히 믿지 않으니까 늘 스파이크를 가지고 해석을 합니다. 즉 본다는 것 자체가 해석이라는 얘기입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은 의미가 없는 말입니다.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하고도 관련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프리오리a priori, 선험적 기계가 늘 현실을 해석하다 보니까 어차피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고, 항상 해석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겁니다. 46-7)
현대 뇌과학에서는 인간의 생각·기억·감정·인식의 대부분을 착시 현상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착시는 나쁘다, 안 좋다, 하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오감이 전달해준 정보에 뇌의 해석이 플러스알파로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겁니다. 사실, 그 해석 없이는 세상을 알아볼 수도 없습니다. 현대 뇌과학은 매일 아침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나’가 아니라고 합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의 망막을 관찰해보면, 망막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광자의 확률 분포밖에 없습니다. 색깔·형태·입체감 등은 대부분 뇌가 만들어낸 해석입니다. 어쨌든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대상이 눈을 통해서 들어오면 그 감각을 뇌가 해석하고, 우리는 그렇게 해석한 결과물을 보고 있는 겁니다. 결국 우리 눈에 보이는 건 인풋input이 아니라 아웃풋output입니다. 이미 뇌가 계산을 다 끝낸 결과물이라는 얘기죠. 고향이란, 뇌가 최적화된 환경입니다. 그래서 고향이 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54)
2장 느끼고 기억한다 : 감정과 기억
어떻게 보면 인생은 선택의 꼬리 물기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선택의 연속이죠. 뭘 먹을까? 어느 학교에 갈까? 누구랑 결혼할까? 어떤 자동차를 살까? 제가 지금 여기 서 있는 것도 선택이고,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선택이고, 노트에 필기하는 것도 선택입니다, 커피를 마시는 것도 선택이고, 이 모든 게 다 선택이죠. 인간에게는 선호도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고, 가능한 한 좋아하는 걸 선택하려고 합니다. 당연하겠죠. 어쨌든 결론은 선호도가 먼저 존재하고 그다음에 선택을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뇌과학자들은 이 과정이 반대일 거라고 주장합니다. 즉 선택을 먼저하고 그다음에 선호도가 만들어진다는 얘기입니다. 선택이라는 건 단선적인 인과관계가 작용하는 결정이 아니라 상당히 복잡한 프로세스를 포함하는 결정입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의 선택을 좌우하는 것에는 유전·교육·환경·책·TV에서 본 것 등등 수백, 수천 가지 요인이 있을 겁니다. 62-4)
몇 년 전에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팔기 시작할 때 실시했던 실험을 알아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들이 대상입니다. 똑같은 커피를 두 잔에 나눠놓고, 하나는 2,000원, 다른 하나는 4,000원이라고 써 붙였습니다. 똑같은 커피입니다. 마셔보고 어느 커피가 더 맛있는지 선택을 하라고 했습니다. 혀는 맛이 똑같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뇌는 우리 오감을 절대로 믿지 않거든요. 눈·코·입·귀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재해석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재해석 과정에 자기 경험에서 비롯된 지식을 투영시킨다는 것입니다. 실험 참가자들이 생각하는 진실은 비싼 게 좋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문제가 생깁니다. 분명히 혀는 똑같다고 신호를 보내요. 그런데 자기 경험에서 나오는 지식으로는 4,000원짜리가 더 좋아야 됩니다. 과학에서는 데이터와 모델이 일치하지 않으면 모델을 바꿉니다. 그런데 뇌는 절대로 그러지 않아요. 뇌는 모델과 데이터가 일치하지 않으면 데이터를 버려요. 65)
어떤 문제에 대응하는 뇌의 반응은 세 가지 이상입니다. 맨 밑에 있고 가장 오래된 ‘지금’ 위주의 뇌, 그 위로 ‘과거’와 ‘미래’ 위주의 뇌, 이 세 가지 뇌가 항상 싸우고 있습니다. 이 말은 세 가지 이상의 자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혹시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중간중간에 이상한 녀석들도 많이 있을 테니까요. 운전을 예로 한번 들어볼게요. 운전은 진짜 어려운 일입니다. 시속 100킬로미터를 달리며 거울 세 개 봐야지, 핸들 조절해야지, 전방 주시해야지, 라디오 들어야지, 동승자와 얘기 나눠야지…… 이런 상태라면 운전자의 뇌 피질 용량은 꽉 차버립니다. 이럴 때 다른 차가 갑자기 끼어들면, 밑에서 웅크리고 있던 과거의 뇌와 지금의 뇌가 튀어나와서, 막 욕하고 난리가 납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 고개를 치켜드는 거죠. 그 행동은 새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깊숙이 숨어 있던 것입니다. 인간의 행동에는 이처럼 ‘인지적 사투리’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런 인지적인 사투리를 연구하는 분야가 행동경제학입니다. 75)
1950년대만 해도 해마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병원은 환자 H. M.의 해마를 도려내는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H. M.은 수술하기 전까지의 기억은 다 가지고 있는데 새로운 기억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수술 뒤 55년 동안 H. M.은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면서 물어보았습니다. “내가 왜 병원에 있나요?” 거울을 보면 “난 열일곱 살인데 왜 이렇게 늙었나요?” 병원 측에서 설명을 해줬죠. 이러이러한 이유로 해마 제거 수술을 했다고. H. M.은 다 받아들이고 슬퍼했습니다. 지능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감정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5분 후에는 똑같은 내용을 다시 물어봐요. 화장실 위치도 매번 가르쳐줘야 했습니다. 담당 간호사도 H. M.을 만날 때마다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자기소개를 해야 했습니다. H. M.처럼 기억이 망가진 사람에게 자아라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기계로 치면 H. M.은 5분마다 새로 껐다 켜지는 거잖아요? 이 사람은 기억을 연결할 수 없었습니다. 84)
종과 음식을 계속 보여주면 이 종에 대한 정보와 음식에 대한 정보가 시냅스로 연결되겠죠. 그런데 정보가 동시에 도착하면 이 시냅스가 더 강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음식 없이 종에 관한 정보만 들어와도 머릿속에서는 음식이 만들어집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해마에서 일어납니다. 파블로프(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조건화가 이루어진다)나 스키너(조건화, 즉 적절한 자극들 간의 연결을 통해서 원하는 행동을 만들 수 있다)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중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시간적인 자극과 자극 간의 상호 관계가 반복되면 시냅스가 강해져서, 한 가지 자극만 들어와도 나머지 자극에 대한 반응이 자동으로 만들어집니다. 우리 뇌 안에 있는 모든 정보는 시냅스와 시냅스가 강화된 상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게 기억입니다. 기억은 하드디스크 어딘가에 쓰여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은 이미 존재하는 정보에 새 정보를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 87-8)
3장 뇌를 읽고 뇌에 쓴다 : 뇌과학의 미래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