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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물리학은 처음인데요 : 수식과 도표 없이 들여다보는 물리학의 세계 - 수식과 도표 없이 들여다보는 물리학의 세계
마쓰바라 다카히코 지음, 이인호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8년 1월
평점 :
제1장 물리학은 아름답다
물리학은 이 세계가 어떤 규칙으로 돌아가는지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를 위해 물리학 연구에서는 되도록 단순한 상황을 가정하고, 이 상황을 정확히 표현할 방법을 찾아낸다. 물리학에서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의 복잡한 현상을 단순한 요소로 분해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현상을 단순한 요소로 분해하고 관찰한 다음에 그 현상의 배후에 있는 질서를 밝혀낸다. 과학은 이런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가령 공기저항을 무시하고 중력만 작용하는 상황을 연구하면 중력의 성질을 알아낼 수 있다. 한편으로 중력을 무시하고 공기저항만 작용하는 상황을 연구하면 공기저항의 성질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두 가지 힘의 성질을 각각 알아낸 다음 이를 합치면 중력과 공기저항이 둘 다 작용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상적인 상태에서 각 요소를 개별적으로 알아낸 다음 이를 조합함으로써 현실적인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11-2)
제2장 천상 세계와 지상 세계는 똑같다
천동설에서 벗어나 지동설로 넘어가려면 먼저 원운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선입관을 버려야만 했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스승인 튀코 브라헤가 남긴 방대한 관측 자료에 태양 중심설을 적용함으로써 행성 궤도가 타원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케플러의 발견은 단순히 원을 타원으로 교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타원 운동을 하는 행성의 속도도 알아냈다. 비교적 태양과 거리가 가까운 행성은 속도가 빠르고, 반대로 거리가 먼 행성은 속도가 느리다. 또한, 행성 하나의 속도를 봐도 태양과 가까워질수록 빨라지고 멀어질수록 느려진다. 케플러는 이를 수치상으로 명확하게 밝혀냈다. 겉보기에 아름다운 원운동의 조합에서 벗어난 일은 근대 물리학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천동설은 완전함의 상징인 원에 집착한 결과 진실에 다가가지 못한 것이다. 이 일은 자연계의 올바른 법칙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이 완전한 아름다움을 지닐 것이다’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힌 결과 잘못된 결론에 이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7)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당시에 발명된 지 얼마 안 된 망원경을 직접 개량하여 천체를 관측하다가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 4개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목성 근처에 있는 별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목성 주위를 도는 천체였다. 천동설에서는 기본적으로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 하지만 갈릴레오의 발견은 지구가 아닌 천체가 운동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보인 것이었다. 즉 지구를 모든 것의 중심으로 설명하는 천동설에 반하는 사실이었다. 또한, 갈릴레오는 금성이 차고 이지러지는 동시에 크기가 변하는 것을 관찰했다. 금성도 지구와 마찬가지로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이며, 지구보다 안쪽 궤도를 돌고 있다. 그래서 지구와 거리가 가까워지면 크게 보임과 동시에 그늘 부분이 커져서 초승달 모양이 된다. 반대로 지구와 멀어지면 크기가 작아지고 그늘 부분도 줄어서 보름달처럼 전체가 빛나 보인다. 천동설로는 무척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지동설에서는 당연한 현상일 뿐이다. 29)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함으로써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천상과 지상의 구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천상 세계와 지상 세계는 서로 다른 법칙이 지배하는 개별적인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천상과 지상이 모두 우주라는 커다란 공간 속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뉴턴 역학의 등장과 함께 몇 가지 기본 법칙으로 세계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물리학의 기본 방침이 정착했다. 그러나 물체 사이에는 만유인력뿐만 아니라 다른 다양한 힘도 작용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힘이 만유인력뿐이면 정말 큰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물체는 다른 물체를 지탱할 수 있을까? 우리 눈에 보이는 물체는 모두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물체가 한 덩어리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이웃한 원자끼리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중력을 거스르며 의자 위에 앉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원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 덕분이라는 소리다. 왜냐하면 모든 물체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31, 34-5)
원자 사이에서 작용해 물체의 형태를 유지하는 힘의 정체는 만유인력이 아니다. 만유인력은 서로 끌어당기기만 하는 힘인데, 실제로는 물체를 이용해 다른 물체를 밀어낼 수도 있고 끌어당길 수도 있다. 즉 끌어당기는 힘인 인력뿐만 아니라 밀어내는 힘인 척력도 작용한다는 뜻이다. 인력과 척력을 둘 다 지니는 힘이라고 하면 즉시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이다. 바로 전기력이다. 양전하와 음전하 사이에서는 인력이 작용하며, 양전하끼리와 음전하끼리는 척력이 작용한다. 원자는 양전하를 띤 원자핵과 음전하를 띤 전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기의 힘으로 제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원자와 원자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도 전기력이며, 원자가 모여서 분자를 이루는 것도 전기력에 의한 현상이다. 전기력과 유사한 힘으로 자기력이 있다. 실은 전기와 자기는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이 두 가지를 합쳐서 전자기력이라고 부른다. 중력을 제외하면 우리 주변에서 보이는 힘은 모두 전자기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36-7)
제3장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빛이란 파동의 한 종류다. 우리는 평소에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데, 이는 빛의 파장이 극단적으로 짧기 때문이다. 파동이란 어떤 규칙적인 변화가 퍼져 나가는 현상이다. 그 규칙적인 변화에는 기본 길이가 있으며, 이를 파장이라고 한다. 가령 바다에 이는 물결인 파도를 보면 물의 높이가 가장 높은 마루와 가장 낮은 골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된다. 이때 마루와 마루 사이의 거리, 혹은 골과 골 사이의 거리가 바로 파장이다. 빛의 파장은 극단적으로 짧다. 눈에 보이는 빛을 가시광선이라고 하는데, 가시광선의 파장은 거의 400nm에서 700nm 정도다(1nm는 0.000001mm이다). 파장이 길수록 빨갛게 보이고, 파장이 짧을수록 파랗게 보인다. 원자의 크기는 1nm보다 작은데, 이는 가시광선의 파장보다 훨씬 짧다. 따라서 광학 현미경의 배율이 아무리 높다 해도 원자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그 어떤 작은 물체라도 확대하면 잘 보일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경험을 확대 해석한 잘못된 추측일 뿐이다. 45-6)
화학 반응식을 배운 사람이라면 물질이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화학 반응식을 보면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수소 분자 H2와 산소 분자 O2가 결합하면 물 분자 H2O가 생기는데, 이때 수소 분자와 산소 분자와 물 분자의 개수비는 반드시 2:1:2가 된다. 그래야만 수소 원자 H와 산소 원자 O의 개수가 반응 전후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근대적인 원자론은 19세기 초에 제창되었다. 영국의 교사였던 존 돌턴은 화학 반응을 비교적 간단한 정수비로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원자가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돌턴은 원자의 상대적인 무게인 원자량을 밝혀냈다. 돌턴은 수소와 산소 등의 기체가 원자가 아닌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그의 이론은 정확하지 않았다. 돌턴의 이론을 수정해 수소와 산소 등은 원자가 2개씩 결합한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면 기체의 반응을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다. 47, 50)
기체 성질에 관한 연구에서도 간접적으로 원자의 존재를 암시하는 단서가 나타났다. 기체 분자운동론이란 기체가 미세한 입자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입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운동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기체의 기본 성질을 유도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기체의 압력은 기체가 들어 있는 용기 내벽에 입자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힘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기체에는 압력이 일정할 때 온도가 높을수록 부피가 커진다는 성질이 있는데, 이는 ‘샤를의 법칙’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어 열기구는 이 성질을 이용해서 하늘을 난다. 공기를 데워서 팽창시키면 열기구 안에 든 공기의 양이 줄어서 바깥 공기보다 가벼워지므로, 그 부력을 이용해 위로 뜨는 것이다. 이 샤를의 법칙은 기체 입자가 날아다니는 평균 속도에 따라 온도가 결정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설명할 수 있다. 입자의 속도가 빠를수록 기체가 담긴 용기 내부의 압력이 커진다. 이때 용기 외부의 압력이 일정하다면 내부 기체가 용기를 밀어내며 부피가 팽창하는 것이다. 51)
제4장 미시 세계로 들어가다
플랑크가 해명하려 한 열역학 문제는 물체가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복사 현상이었다. 물체는 온도에 따라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성질이 있다. 뉴턴 역학에서는 에너지를 1개, 2개로 셀 수 없는 연속적인 값으로 본다. 하지만 플랑크의 이론에 따르면 미시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물질에 의한 복사가 작은 입자(오늘날 말하는 원자)의 진동 때문에 발생한다고 했을 때, 그 진동을 통해 방출되는 에너지에는 진동수에 따른 최소 단위가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진동을 통해 방출되는 에너지에 최소 단위가 있다고 가정하면 플랑크의 수식이 유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플랑크의 수식은 모든 파장 영역에 걸친 실험 결과에 들어맞았다. 그러한 에너지의 최소 단위를 ‘양자’라고 부른다. 뉴턴 역학에 따르면 진동의 에너지는 연속적이므로, 진동을 통해 방출되는 에너지는 어떤 값이든 지닐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진동 에너지에는 최소 단위가 있다. 다시 말해 진동 에너지는 반드시 그 최소 단위의 정수배가 되어야 한다. 63-4)
플랑크의 발견은 미시 세계에서 뭔가 기묘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했다. 플랑크의 수식은 실험 결과를 잘 나타내는 유용한 공식이었지만, 수많은 물리학자가 ‘진동 에너지에 최소 단위가 있다’는 엉뚱한 가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플랑크 자신도 이를 임시로 도입한 기술적인 가정일 뿐이라 여겼으며, 그곳에 물리학의 근본에 관한 중대한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플랑크의 이론을 발전시킨 사람은 바로 천재 물리학자로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플랑크는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가 진동하면서 방출하는 에너지에 최솟값이 있다고 가정했는데, 아인슈타인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은 방출되는 전자기파 그 자체의 에너지에 최솟값이 있다고 보았다. 아인슈타인은 전자기파 자체가 양자화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광양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광양자 이론에 따라 물체에서 방출되는 전자기파를 계산해도 플랑크의 수식이 유도됨을 보였다. 65)
아인슈타인은 이 가설을 다른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도 응용해 성공을 거두었다. 바로 광전효과라 불리는 금속에 빛을 비추었을 때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다. 빛을 파동으로 본다면 이 현상은 파동의 에너지가 전자를 금속에서 떼어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빛의 세기가 셀수록 튀어나오는 전자의 에너지도 커질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리 센 빛을 비춰도 튀어나오는 전자의 개수가 늘어날 뿐이었다. 한편으로 빛의 파장이 짧을수록 튀어나오는 전자의 에너지가 커졌다. 광전효과의 이러한 현상은, ‘빛의 에너지는 연속적이지 않으며 광양자로 되어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가설로 설명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광양자라고 부른 것은 오늘날 ‘광자’라고 불린다. 파장이 짧아질수록 광자의 에너지가 커지므로 튀어나오는 전자의 에너지도 커진다. 한편으로 파장은 똑같은데 빛의 세기만 강하게 하면, 광자의 수가 늘어나서 튀어나오는 전자 수가 늘어나기는 하지만 전자 하나하나의 에너지는 커지지 않는다. 65-6)
고전물리학에 따라 원자 모형을 설명하면 전자는 금세 원자핵과 만나고 만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자의 운동 에너지가 줄다가 결국 0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자 가설에 따르면 원자 안에 있는 전자의 운동 에너지값은 연속적이지 않고 띄엄띄엄 떨어진 값이다. 또 전자의 운동 에너지에는 최솟값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자가 원자핵과 만나지 않는다는 말은 그 최솟값이 0이 아닐 것이며, 최소 에너지 상태에서 원자가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보어는 이러한 가설에 따라 원자 모형을 고안했다. 원자는 종류에 따라 정해진 파장의 빛을 방출한다. 양자 가설에 따르면 빛의 파장은 광자 하나의 에너지와 대응하므로, 바꿔 말해 원자가 일정한 에너지를 지닌 광자를 방출한다고 할 수 있다. 원자의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띄엄띄엄 떨어진 값밖에 지닐 수 없다면, 그 띄엄띄엄 떨어진 차이만큼의 에너지가 바로 방출되는 광자의 에너지일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 계단을 결정하는 원리는 무엇일까? 69)
드 브로이는 전자가 입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을 모두 지닌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광양자 가설의 반대 버전이다. 파동인 줄로만 알았던 빛이 사실은 입자의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면, 반대로 입자인 줄 알았던 전자도 파동의 성질을 지니고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입자가 지니는 파동의 성질을 ‘드 브로이파(물질파)’라고 한다. 드 브로이파의 파장은 매우 짧다. 그래서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원자 내부처럼 매우 작은 세계에서는 전자가 지니는 파동의 성질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보어의 양자조건은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돌면서 드 브로이파에 따라 안정하게 진동하는 조건과 똑같다. 그 조건이란 전자 궤도 한 바퀴의 길이가 드 브로이파 파장의 정수배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전자가 궤도를 한 바퀴 돌았을 때 드 브로이파의 진동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어의 양자조건을 만족했을 때 전자의 드 브로이파는 원자 안에서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70)
제5장 기묘한 양자의 세계
하이젠베르크는 원자 속에서 전자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내려 해 봤자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전자가 원자 속에서 어떤 궤도로 운동하느냐는 오직 머릿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며, 실제로 관측해서 확인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더는 관측할 수 없는 일에 관해 고민하지 말자.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관측 가능한 값에만 의미가 있다. 그리고 관측 가능한 값이 어떤 수치가 될지 이론적으로 예언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처럼 하이젠베르크는 전자 궤도 등 관측할 방법이 없는 문제는 이론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실천에 옮기기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하이젠베르크는 실제로 그러한 이론을 구축해 물리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은 직관적인 상상을 완전히 배제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이론이 되었다. 오직 관측할 수 있는 값에 주목해 그 사이에서 성립하는 수학적 관계를 알아내려 했다. 72)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이 성립하려면 곱셈의 순서를 바꿨을 때 결과가 달라진다는 기묘한 규칙이 필요했다. 2×3이나 3×2나 둘 다 6이 되는 것처럼, 보통 곱셈을 할 때는 순서를 바꿔도 결과가 똑같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에서는 순서를 바꾸면 결과가 달라지는 이상한 곱셈을 사용해야 했다. 당시 물리학자는 대부분 그런 이상한 곱셈에 관해 알지 못했다. 이는 하이젠베르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상한 곱셈을 써야만 하는 자신의 이론에 의미가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전해진다. 하이젠베르크는 새 이론에 관한 논문을 완성한 다음 자신의 스승이자 물리학자인 막스 보른에게 의견을 구했다. 얼마 후 보른은 그 이상한 곱셈이 수학자 사이에서 알려져 있던 행렬연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행렬이란 말 그대로 숫자를 행과 열로 나열한 것이다. 두 행렬을 곱하면 새로운 행렬이 나온다. 이 행렬끼리의 곱셈은 순서를 바꾸면 결과가 전혀 달라진다는 성질이 있다. 73)
당시 물리학자가 행렬역학을 보고 당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행렬역학이 발견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전혀 다른 형태의 양자역학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양자역학은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발견했다. 슈뢰딩거는 하이젠베르크와 달리 더 직관적인 방법으로 원자 내부를 이해하려 했는데,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드 브로이파를 이용했다. 슈뢰딩거는 처음으로 드 브로이파의 파동 방정식을 찾아냈다. 이를 ‘슈뢰딩거 방정식’이라고 한다. 즉 슈뢰딩거는 행렬역학과 다른 새로운 양자역학을 발견한 것이다. 슈뢰딩거의 양자역학을 ‘파동역학’이라고 한다. 행렬역학은 직관적인 이해를 배제한 채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하지만, 파동역학은 시각적인 이해가 가능한 데다 물리학자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계산할 수 있다. 둘 다 똑같은 결론에 이르는 이론이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자연히 행렬역학을 버리고 파동역학을 이용하게 되었다. 75)
슈뢰딩거는 파동역학의 파동이 실재한다고 보았으며, 전자 등의 입자를 그 파동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전자 등은 사실 입자가 아니며, 오직 겉으로만 입자처럼 보일 뿐이다. 파동의 파장이 너무나 짧아서 마치 파동이 아닌 입자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슈뢰딩거의 해석에는 문제가 많았다. 아무리 파동을 작은 영역에 가두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넓게 퍼져 나가 버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면에서 파문이 시간에 따라 넓게 퍼져 나갈 수밖에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벽으로 가로막히지 않은 수면에서는 물결을 좁은 공간에 가두어 둘 수 없다. 이래서는 전자가 언제나 입자처럼 관측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면 파동함수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그 해답을 내놓은 사람은 이론물리학자 막스 보른이었다. 보른이 내놓은 해석은 참으로 놀라운 내용이었다. 파동함수가 나타내는 파동은 물결이나 음파처럼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가 존재할 확률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78)
어떤 위치에 대한 파동함수가 크면 클수록 그곳에서 입자를 발견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확률 해석이다. 파동함수는 시간과 공간으로 결정되는 함수이니, 바꿔 말하면 시간과 공간에 따라 입자를 발견할 확률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언제 어디서 입자가 발견되기 쉬운지 알려주는 셈이다. 이론의 근본 부분에 확률이 존재한다는 것은 전통적인 물리학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왜냐면 뉴턴 역학 이후의 물리학에서는 한 시점의 물리적인 상황을 완전히 알고 있다면, 그 후에 일어날 일을 완전히 예언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볼츠만의 통계역학에서 확률이 쓰이기는 했지만, 이는 단지 입자 개수가 너무 많아서 물리적인 상황을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는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확률은 더 근원적인 것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설사 물리적인 상황을 완전히 알고 있다 해도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확률적으로밖에 예언할 수 없다. 80)
가령 전자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에너지값 중 하나를 지니고 있다고 해보자. 전자의 에너지값은 지금보다 더 작은 다른 값으로 바뀔 수 있는데, 이때 원래 값과 나중 값의 차이만큼의 에너지를 지닌 광자를 방출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작은 값’의 후보가 여러 개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전자의 에너지는 다양한 값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최초의 물리적인 상황을 완전히 알고 있다 해도, 다음에 전자의 에너지값이 어떤 값으로 바뀔지는 확률적으로만 예상할 수 있다. 이 에너지값으로 변할 확률은 얼마이며, 저 에너지값으로 변할 확률은 얼마라는 식이다. 따라서 방출되는 광자의 에너지도 확률적으로만 예언할 수 있다. 게다가 광자가 어느 방향으로 방출될지도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다. 에너지 단계가 높은 원자가 하나 있을 때, 그 원자에서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지닌 광자가 방출될지 정확하게 예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직 가능성과 확률만을 예언할 수 있을 뿐이다. 81)
제6장 시간과 공간의 물리학
맥스웰 방정식은 전기장과 자기장에 관한 방정식이다. 맥스웰은 이 방정식을 통해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생겼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하는 파동의 형태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다가 이 파동은 물질이 전혀 없는 진공 속에서도 전달될 수 있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얽힌 채로 진행하는 이 파동을 ‘전자기파’라고 한다. 맥스웰 방정식을 이용하면 전자기파의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 맥스웰이 그 속도를 계산한 결과 빛의 속도와 거의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엄청난 발견이었다. 그동안 아무도 몰랐던 빛의 정체가 바로 전자기파였음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전자기파가 진공 속을 나아간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참으로 기묘하다. 일반적으로 파동은 물질을 흔들면서 나아간다. 즉 파동을 매개하는 물질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자기파는 물질이 없는 진공 속에서도 전파된다. 전자기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존재인 전기장과 자기장을 흔들면서 나아간다. 110)
진공 속에서 전달되는 파동이 기묘한 이유는 파동의 속도가 대체 무엇에 대한 속도냐는 점이다. 물결의 속도는 물에 대한 속도이며, 음파의 속도는 공기에 대한 속도이다. 즉, 파동의 속도란 파동을 전달하는 물질에 대한 속도인 셈이다. 그런데 진공 속에서 퍼져 나가는 파동에는 이를 매개할 물질이 없다. 그렇다면 전자기파, 즉 빛의 속도는 대체 무엇에 대한 속도일까? 기준이 없다면 속도는 상대적으로만 정할 수 있다. 즉 누가 측정하느냐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초속 30m로 움직이는 물체일지라도, 이를 초속 10m로 쫓아가고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초속 20m로 보일 것이다. 기준으로 삼을 만한 물체가 없다면, 속도는 결국 측정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맥스웰 방정식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라면, 빛이 진공 속을 나아가는 속도는 누가 측정해도 똑같아야 한다. 즉, 서로 움직이고 있는 관찰자 두 사람이 한 빛의 속도를 각각 측정했을 때 똑같은 속도가 나와야 한다. 110-2)
아인슈타인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애초에 속도(이동 거리를 걸린 시간으로 나눈 결과값)란 어떤 개념인지를 되짚어봤다. 빛이라면 1초에 30만km를 이동하므로 초속 30만km가 된다. 이때 빛을 초속 10만km로 쫓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멈춰 있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 사람은 1초 후에 10만km 앞에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빛은 1초 후에 30만km 앞에 있을 것이므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과 빛의 거리 차이는 1초 후에 20만km가 될 것이다. 즉 빛과 이를 쫓아가는 사람의 거리가 1초 만에 20만km 벌어졌다. 속도가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값인 이상,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때 빛을 쫓아가는 사람이 측정한 빛의 속도는 초속 20만km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이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어떤 사실이 있다. 바로 움직이는 사람과 멈춰 있는 사람이 똑같은 시간과 똑같은 거리를 측정하고 있다는 가정, 다시 말해 시간과 공간은 멈춰있는 사람에게도 움직이는 사람에게도 똑같다는 전제다. 115-6)
이렇게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관찰자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보인다는 비상식적인 이론을 펼쳤다. 이것이 바로 ‘특수상대성이론’이다. 시간과 공간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것이 아니며, 측정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즉 상대적인 것이라는 점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 이론이 상대성이론이라 불린다. 특수란 말이 붙은 이유는 훗날 아인슈타인이 중력까지 포함하여 일반화한 일반상대성이론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초속 30만km로 멀어지는 빛을 초속 10만km로 쫓아가는 사람은 멈춰 있는 사람과 다른 시간과 공간을 경험한다. 그래서 멈춰 있는 사람 눈에는 움직이는 사람이 빛과 초속 20만km로 멀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도, 움직이는 사람은 그와 다른 시간과 거리를 경험하므로 빛의 속도가 똑같이 초속 30만km로 측정되는 것이다. 그 결과 발견된 수식은 비교적 단순했으며 ‘로런츠 변환’이라 불린다. 로런츠 변환에 따르면 서로 움직이고 있는 관측자의 시간과 공간은 서로 뒤섞여 있다. 116)
요점은 멈춰 있는 사람과 움직이는 사람 사이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서로 얽혀 있고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이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어느 쪽 시간이 느린지 분명하지 않으므로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쪽이 느리고 어느 쪽이 빠르다는 생각 자체가 절대적인 시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삼을 만한 시간의 흐름이 있다면 이에 비해 빠른지 느린지를 논할 수 있겠지만, 그런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상대의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또한, 내가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서 자기 자신의 시간이 느려졌다는 자각은 할 수 없다. 상대가 보기에는 내 뇌를 포함한 내 주변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시간 감각에는 변화가 없다. 즉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보인다는 것뿐이지, 내가 느끼기에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 다른 사람이 없어도 내 시간은 잘 흐르므로 다른 사람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느냐로 내 시간이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118)
제7장 시공간이 낳는 중력
일반상대성이론의 중요한 특징은 중력이라는 힘을 시간과 공간의 성질로 설명해 냈다는 점이다. 전철에 탔을 때를 떠올려 보자. 멈춰 있는 상태에서 전철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이렇게 가속할 때는 진행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밀리는 느낌이 든다. 특히 서 있을 때는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넘어질 수도 있다. 이 힘은 ‘관성력’으로 알려져 있다. 전철이 움직이기 시작해도 나 자신은 계속 멈춰 있으려고 한다. 즉 전철만 먼저 앞으로 나가 버리다 보니, 전철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뒤로 미는 것처럼 보인다. 그 힘을 상쇄하기 위해 뒤에서 힘을 가하면 자신도 전철과 함께 움직이게 된다. 이처럼 관성력이란 가속하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힘이 작용하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이다. 이 힘은 무게를 지닌 모든 물체에 작용한다. 그리고 무거울수록 관성력도 커진다. 이처럼 관성력과 중력은 성질이 비슷한데, 실제로 이 두 가지 힘은 구별할 수 없다. 122-3)
중력과 관성력이 똑같다면 중력은 이제 물체끼리 서로 직접 끌어당기는 힘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가속하고 있는 관측자가 똑바로 움직이는 물체를 보면 물체가 똑바로 움직이지 않고 휘어져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던 전철이 멈추려고 감속할 때는 모든 물체가 앞으로 힘을 받는다. 따라서 진행 방향과 수직으로 공을 굴리면 앞으로 휘어지는데, 이것이 관성력이다. 하지만 전철 밖에서 관찰하면 공은 똑바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관성력은 관측자의 가속 때문에 생긴다. 가속이란 속도의 변화를 시간으로 나눈 것이므로 시간 · 공간과 관련되어 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속도가 서로 다른 관측자들 사이에서는 시간과 공간도 달라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속하는 관측자의 시간과 공간은 가속하지 않는 관측자의 시간과 공간과는 다르다. 따라서 가속하고 있는 관측자에게는 시공간이 휘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중력은 무언가에 끌리는 힘이 아니라 시공간이 휘어져서 생기는 힘이라는 것이다. 124-5)
# 등가 원리 : 관성력과 중력은 등가, 즉 똑같은 것이라는 개념
뉴턴이 제시한 만유인력의 법칙에서는 무게가 있는 물체에 직접 중력이 작용한다고 한다. 무게가 0인 물체에는 힘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러한 물체는 중력 때문에 진로가 휘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령 멀리서 날아온 입자가 별 근처를 스쳐 지나간다고 생각해 보자. 이 입자의 무게가 0이라면 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냥 똑바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별 주변에 있는 시공간이 휘어져 있으므로 무게가 0이라 해도 똑바로 나아갈 수는 없으며, 진로가 다소 별 쪽으로 휘어진다. 이를 관측할 방법이 있다. 태양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다른 별빛을 관찰하는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별빛은 태양 주변에서 약간 진로가 휘어진 다음 지구에 도착한다. 즉 태양 근처에서 빛이 굴절하므로, 별이 원래 보여야 할 위치보다 태양에서 약간 벗어난 위치에 보일 것이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태양 때문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아야 할 별빛도 태양 표면 아슬아슬한 곳에서 보일 수 있다. 128)
제8장 물리학이 나아갈 길
현대 물리학에 있는 수많은 이론은 양자론과 상대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초 물리학 분야에서는 양자론과 특수상대성이론을 기반으로 ‘양자장론’이 발전했다. 원래 양자장론은 전자기력을 양자론과 융합시키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양자역학은 본디 입자의 운동을 양자적으로 다루는 학문인데, 이를 전기장과 자기장 등 공간에 퍼져 있는 현상에도 적용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하여 양자론과 전자기학을 융합시킨 ‘양자 전기역학’이라는 이론이 만들어졌다. 이 이론은 특수상대성이론도 포함하며 실험 결과와도 매우 잘 맞아떨어지는 성공적인 이론으로 볼 수 있다. 양자 전기역학은 ‘양자장론’이라 불리는 이론 형식의 한 가지 사례다. 또한, 양자장론을 통해 원자핵 안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정체를 밝혀내기에 이르렀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각각 세 가지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 쿼크가 어떠한 물리 법칙을 따르는지도 알려져 있다. 이에 관한 물리 법칙도 양자장론의 형태로 정리되어 있다. 137)
우리가 양자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동시에 다뤄야 할 상황에 맞닥뜨릴 일은 없다. 양자론의 효과는 미시 세계에서 현저해지는 한편, 일반상대성이론의 효과는 거시 세계에서 현저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리적으로는 미시 세계에서도 일반상대성이론의 효과가 현저하게 나타날 때가 있다. 바로 매우 큰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을 때다. 에너지는 질량과 같은 것이라서 그 자체가 시공간을 휘어지게 만든다. 미시 세계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집중되면 시공간이 심하게 휘어지므로 기본 입자의 세계에서도 일반상대성이론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내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매우 작은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우주가 태어난 직후의 상태이며, 그 상태를 이해하려면 우주 자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즉, 우주의 기원을 밝혀내려면 양자론이나 일반상대성이론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기술할 수 있는 이론이 필요하지만, 그런 이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140-1)
모든 것의 이론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처럼 보이지만, 이는 모순을 품고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정말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라면, 자기 자신이 옳은 이유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옳음을 스스로 증명할 수는 없다. 외부에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빗대면 알기 쉬울 것이다. 한 사람이 자기가 옳다고 주장한다 해도, 증거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처럼 어떤 이론이 옳다는 사실을 그 이론 내에서 증명할 수는 없다. 이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라고 하는 수학적 사실이다. 모든 것의 이론이라 불릴 만한 것이 있더라도, 그 이론 안에는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한 가지 기본 법칙이 있을 것이다. 정말 그런 이론이 있다면 모든 것의 이론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 기본 법칙이 왜 성립하느냐는 의문은 남는다. 즉 모든 근본적인 의문이 풀리고 더는 탐구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이론은 존재할 수 없다. 1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