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모든 것의 기원 : 예일대 최고의 과학 강의
데이비드 버코비치 지음, 박병철 옮김 / 책세상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장 우주와 은하 … 13


빅뱅이 일어나기 전에는 현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원자보다 훨씬 작은 영역에 똘똘 뭉쳐 있었으므로, 온도와 압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을 것이다. 이 상태는 10^-43초 동안 계속되었는데(참고로 10^-2는 0.01이며, 10^-43은 소수점 아래로 0이 42개 붙은 후 비로소 1이 등장한다), ‘시대’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아무튼 이 시간대를 ‘플랑크 시대Planck epoch’라 한다. 그후 우주는 10^-35초 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빠르게 팽창했다. 이 시간대를 인플레이션 시대Inflation epoch라 한다. 우주는 이 짧은 시간 동안 10^70배 가까이 커졌는데, 그래봐야 크기는 직경 몇 m에 불과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인플레이션 시대의 팽창 속도가 빛보다 훨씬 빨랐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은 하나의 역장力場, force field에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가 방출되면서 일어났으며, 이 에너지는 훗날 우주에 존재하게 될 모든 물질과 에너지의 원천이 되었다. 17-8)


인플레이션론이 우주배경복사CMB의 분포를 설명함으로써, 빅뱅이론은 우주 탄생의 정설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우주배경복사는 우주 전체에 걸쳐 온도가 거의 같다. 빅뱅이 일어나고 거의 140억 년이 지났는데 우주 반대편에 있는 두 지점의 온도가 아직도 같다는 것은 태초에 이 지점들이 꽤 긴 시간 동안 접촉 상태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만일 두 지점이 접촉 상태에 있지 않았다면 아무런 정보도 교환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오늘날 온도가 같은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과거의 빅뱅이론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한동안 위기에 처했다가 인플레이션이론 덕분에 극적으로 살아났다. 하나의 점에 가까웠던 우주가 급속도로 팽창하여 유한한 크기에 도달하면 모든 영역이 동일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후에도 우주는 이전보다 느린 속도로 계속 팽창했지만 공간의 모든 지점이 이미 정보를 교환했기 때문에 균일한 온도 분포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 18) 


인플레이션이 끝난 후 10^-5초 사이에 물질과 반물질이 거의 비슷한 양만큼 형성되었다. 모든 입자는 자신과 질량이 같고 전하의 부호가 반대인 파트너를 갖고 있는데, 이들을 반입자antiparticle라 한다. 예를 들어 전자의 반입자는 양전자positron이고, 뉴트리노의 반입자는 반뉴트리노anti-neutrino이다. 일반적인 입자로 이루어진 물질을 그냥 ‘물질’이라 하고, 반입자로 이루어진 물질을 ‘반물질antimatter’이라 한다. 물질과 반물질이 따로 존재할 때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만, 둘이 접촉하면 복사에너지를 방출하면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 과정을 쌍소멸pair-annihilation이라 하는데, 이때 방출된 복사에너지의 양은 E=mc2을 통해 결정된다(여기서 m은 물질과 반물질의 질량의 합이다). 빅뱅 후 10^-5초가 지났을 때 이들은 짧은 시간 동안 공존하다가 서로 만나면서 다량의 복사에너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물질이 반물질보다 조금 많았기 때문에 별과 은하, 행성 등 다양한 천체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18-9)


빅뱅 후 1초~10만 년 동안은 우주 전체가 광자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복사 시대Radiation epoch’라고 한다. 이 시대가 끝날 무렵에 질량과 광자의 밀도가 낮아져서 드디어 빛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즉 우주가 투명해진 것이다. 그리고 빅뱅 후 약 38만 년이 지났을 무렵에 온도가 충분히 낮아져서 드디어 완벽한 원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시작된 물질 시대Matter epoch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주배경복사는 이 시기에 마지막으로 방출된 에너지의 흔적이다. 암흑기가 끝날 무렵, 수소-헬륨 기체의 밀도에 약간의 요동이 일어났고 여기에 중력이 작용하여 밀도가 높은 지역으로 질량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특정 지역에 질량이 집중되면 그곳의 중력이 주변보다 강해져서 더욱 많은 질량이 모여든다. 그리고 중력의 세기는 거리에 관계하기 때문에(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기체가 집중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구형을 띠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별’이었다. 20)


# 암흑기 : 복사 시대가 끝난 후 3억 년 동안 온도가 충분히 내려가고 물질이 넓은 영역으로 충분히 퍼져 나갔기 때문에 광원光源, light source이 사라진 기간


2장 별과 원소 … 41


질량이 태양의 15배 이상인 별들은 중심 온도가 1,500만°C에 도달해도 계속 수축되면서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온도가 1억°C에 도달하면 헬륨이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탄소와 산소가 생성되고, 이보다 큰 초거성超巨星, supergiant들은 핵융합을 여러 번 반복하여 철까지 만들 수 있다. 무거운 원소를 생산하는 핵융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헬륨 원자핵인 알파 입자(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로 이루어져 있다)의 융합이다. 그중에서도 3개의 알파 입자가 두 차례의 반응을 거쳐 탄소로 변환되는 ‘3중 알파 입자 반응triple-alpha process’은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이어서, 탄소보다 무거운 원소가 생성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과정이자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단 탄소가 생성되기만 하면 알파 입자 연쇄 반응alpha chain process이 뒤를 이어받아 한 번에 알파 입자 한 개씩을 추가하여 탄소C→산소O→네온Ne→마그네슘Mg→실리콘Si→……→철Fe까지 연이어 만들어낸다. 29)


1869년,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Dmitri Mendeleev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원소를 특정 규칙에 따라 나열한 주기율표periodic table를 만들었다. 이 표에서 철의 원자번호는 26번이고 가장 무거운 천연 원소인 우라늄U은 92번이므로, 철을 기준으로 가벼운 원소는 25종이고 무거운 원소는 66종이다. 그러나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생성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극히 소량만 존재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별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느린 중성자 포획slow neutron capture’을 거쳐 생성되며, 이 과정은 철이 다른 융합 반응에서 생성된 중성자를 포획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철의 무거운 동위원소는 상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생성되는 즉시 전자를 방출하면서 중성자 한 개가 양성자로 변하여 코발트Co(원자번호 27)가 되고, 그후에도 이와 비슷한 과정이 계속되면서 점점 더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진다. 반면에 모든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는 ‘빠른 중성자 포획rapid neutron capture’은 거성이 최후를 맞이할 때 일어난다. 31)


거성이 수명을 다하여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면 대부분의 질량은 외부로 흩어지지만, 중심부는 계속 수축하여 초고밀도 상태로 남는다. 이 잔해의 질량이 태양의 2~3배 정도라면, 모든 원자의 부피를 유지시켜주는 전자구름이 잔해의 내부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원자핵이 있는 곳까지 압축되어 양성자를 중성자로 변환시킨다. 별이 폭발하고 남은 잔해의 질량이 태양의 3배가 넘으면 중성자들끼리 더욱 강하게 밀착되어 중성자별보다 밀도가 높아진다. 이런 천체에서는 중성자가 쿼크 단위로 분해되기 때문에 ‘쿼크별quark star’이라 부르는데, 아직 발견된 사례는 없다. 잔해의 질량이 태양의 5배가 넘으면 쿼크조차도 압력을 이기지 못하여 아주 작은 부피로 수축된다. 바로 이것이 그 유명한 블랙홀이다. 블랙홀에서는 중력이 하도 강해서 중심으로부터 유한한 거리에서 방출된 빛까지도 아래로 떨어진다. 이런 천체에서 가운데를 중심으로 빛의 탈출을 허용하지 않는 가장 큰 구면을 ‘사건지평선event horizon’이라 한다. 32)


3장 태양계와 행성 … 63


우리의 태양계는 거의 50억 년 전에 거대한 먼지구름이 수축되면서 탄생했다(이 구름을 ‘모태구름’이라고 하자). 아마도 이 무렵에 근처에서 초신성이 폭발하여 구름의 수축을 유발했을 것이다. 이런 추측이 가능한 이유는 지구로 떨어진 운석에 초신성이 폭발할 때에만 생성될 수 있는 철의 무거운 동위원소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구름이 수축되어 태양과 비슷한 별이 되려면 그 규모가 최소 1~3광년은 되어야 하며, 거성이 되려면 무려 10광년에 걸쳐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은하수의 크기(약 10만 광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모태구름에서 중심부에 있는 일부만이 태양계가 되는데, 이 부분을 구름핵cloud core이라 한다. 수축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구름핵의 99.9%는 태양이 되고 남은 0.1%가 행성계를 이룬다. 태양계가 형성될 때 행성에 할당된 질량의 대부분은 목성에 돌아갔고, 목성은 태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태양계가 보유한 각운동량의 대부분은 목성이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38-9)


현재 태양계에는 8개의 행성과 160여 개의 위성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행성으로 자라지 못했으면서 태양에 흡수되지 않고 외계로 날아가지도 않은 채 태양계 주변을 떠도는 물체들도 많다. 해왕성과 명왕성 너머에는 오르트구름(Oort cloud, 20세기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얀 오르트Jan Oort가 발견했다)라는 거대한 구형球形 구름이 태양계를 에워싸고 있는데, 이 구름과 태양 사이의 거리는 지구와 태양 사이 거리의 5만 배, 태양과 해왕성 사이 거리의 2,000배에 달한다. 이 정도면 거의 1광년에 가까운 거리다. 오르트구름보다 가까운 곳에는 또 다른 얼음 혜성의 집합인 카이퍼 벨트(Kuiper belt, 20세기에 미국의 천문학자 제라드 카이퍼Gerard Kuiper가 발견했다)가 자리 잡고 있는데, 태양과의 거리는 약 30~50AU이다. 카이퍼 벨트는 핼리혜성Halley’s Comet(주기=76년)과 같은 단주기 혜성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오르트구름과 카이퍼 벨트는 행성이나 위성에 편입되지 못한 잔해들의 집합일 것으로 추정된다. 45-6)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 벨트도 행성에 편입되지 못한 잔해들의 집합이다. 이곳에는 TV나 자동차만 한 크기에서 베스타처럼 직경 500km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소행성들이 궤도운동을 하고 있으며, 개중에는 직경 950km짜리 세레스처럼 왜소행성으로 분류된 것도 있다. 소행성 벨트는 목성에 아주 가깝기 때문에, 작은 소행성들이 뭉쳐서 큰 덩어리가 되면 목성의 강력한 조력潮力이 작용하여 덩어리를 산산이 흩어놓는다. 마지막으로, 내태양계의 금성과 화성 사이에는 아모르Amor와 아폴로Apollo, 그리고 아텐Aten이라는 세 개의 소행성 집단이 존재한다.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 벨트보다는 밀도가 훨씬 낮지만 아폴로와 아텐에 속한 소행성 중에는 지구의 공전궤도와 교차하는 것들이 꽤 많아서 시도 때도 없이 지구로 떨어지고 있다. 6,500만 년 전에 유카탄반도에 떨어져서 공룡을 멸종시킨 주범도 바로 이곳에서 날아온 소행성이었다(이 소행성의 직경은 약 10km로, 웬만한 소도시 크기였다). 46-7)


4장 지구의 대륙과 내부 … 95


지구 내부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는 지진학적 분석을 통해 얻어진다. 지구의 내부는 크게 3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깥 표면은 가벼운 바위로 이루어진 얇은 지각地殼, crust(육지가 자라나면서 점차 두꺼워졌다)으로 덮여 있고, 그 밑으로 지구 반지름의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은 무거운 바위로 이루어진 맨틀mantle로 채워져 있으며, 가장 깊은 중심부에는 맨틀보다 무거운 철 코어iron core(중심핵이라고도 한다)가 자리 잡고 있다. 맨틀과 핵의 두께는 거의 같지만 맨틀이 핵을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부피는 맨틀이 압도적으로 크다. 지구 전체에서 맨틀이 차지하는 비율은 80%가 넘는다. 지진학자들은 다양한 파동을 분석한 끝에, 지구의 핵이 액체 상태이며 평균 밀도는 철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진 때 발생하여 지구 내부를 가로지르는 굽힘파bending wave가 중심부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코어는 액체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액체 코어의 가장 깊은 중심부는 고체 상태의 철로 이루어져 있다. 51-2)


맨틀은 워낙 부피가 크고 움직임이 굼뜨기 때문에 불에 달궈진 커다란 돌멩이와 달리 식을 때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맨틀의 상부는 차갑고 무거워서 아래로 가라앉았고, 중심핵에 가까운 하부는 뜨겁게 달궈지면서 위로 떠올랐다. 뜨거운 것은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것은 아래로 내려가는 현상을 열대류熱對流, thermal convection, 또는 자유대류free convection라 하는데, 맨틀은 물론이고 바다와 대기, 행성과 별, 그리고 당신의 책상 위에 놓인 커피 잔에서도 항상 일어나는 범우주적 현상이다. 지구에서 대류는 태풍과 뇌우, 해류를 일으키고 태양의 대류는 흑점을 만든다. 단, 대류가 일어나려면 물질의 유동성이 높아야 한다. 그래야 뜨겁고 가벼운 물질과 차갑고 무거운 물질이 쉽게 자리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맨틀은 고체 상태였지만 긴 시간규모에서 볼 때 (압력, 즉 압착력이나 장력을 받으면) 유체처럼 행동했다. 빙하가 녹거나 흔들리지 않고 갈라지지도 않으면서 서서히 이동하는 것과 비슷하다. 53)


맨틀의 대류는 지각판을 움직이게 하고, 지진과 화산활동을 일으켜 대형 산맥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맨틀의 대류는 지구를 서서히 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구 자체가 식는 속도는 맨틀이 식는 속도보다 빠를 수 없기 때문이다. 대류는 유체의 열을 식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지표면 근처의 차가운 물질이 대류를 타고 가라앉아서 내부의 뜨거운 물질과 섞이면 전체적인 온도는 내려간다(뜨거운 물에 얼음을 담갔을 때 온도가 내려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중심부의 뜨거운 물질이 대류를 타고 위로 올라가서 표면의 차가운 물질과 섞일 때도 빠른 속도로 열이 손실된다. 그러므로 지구는 자신과 크기가 같은 거대한 돌덩어리보다 식는 속도가 빠르다. 그래도 맨틀의 대류 자체가 워낙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거의 정체 상태나 다름없다. 이런 식으로 맨틀은 지난 수십억 년 동안 지각판을 서서히 이동시켜왔고, 그 덕분에 지구는 안정적인 기후를 유지하면서 생명체를 잉태할 수 있다. 54-5)


우리는 대륙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지구의 내부 구조와 이동 패턴을 살펴보다가 두 가지 신기한 현상에 직면했다. 첫째, 맨틀의 대류는 모든 행성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오직 지구만이 지질구조판을 갖고 있으며, 지구의 맨틀대류는 지진 및 화산활동과 함께 마그마를 표면으로 밀어 올렸고 물과 이산화탄소를 맨틀에 유입시켰다. 우리가 아는 한 다른 행성에서는 마그마를 표면으로 밀어 올려 화산활동을 촉발했을 뿐, 물과 이산화탄소가 맨틀에 유입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둘째, 지구는 강한 자기장을 갖고 있는 유일한 행성이다. 지자기장은 대기권 밖까지 뻗어 있는데, 놀랍게도 자기장의 에너지원은 지구의 중심부에 있는 액체 상태의 철이다. 지구의 깊은 내부와 전체적인 크기는 금성과 거의 비슷하지만, 환경 차이(태양과의 거리와 달)가 두 행성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다행히도 지구에는 자기장과 지질구조판, 그리고 물이 존재했고 이들 덕분에 생명체가 번성하는 유일한 행성이 될 수 있었다. 62)*


5장 바다와 대기 … 147


‘내생기원설Endogenous Origin’은 바다와 대기가 외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지구 내부에 숨어 있었다는 가설이다. 물은 바위의 표면에서 수화된 미네랄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으며, 이산화탄소는 바위의 내부에서 탄산염(석회암, 백악白堊 등)으로 존재할 수 있다. 맨틀을 구성하는 바위에도 물과 이산화탄소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지만, 양은 그리 많지 않다(전체 무게의 몇 %밖에 안 된다). 그러나 지구에 바다가 생성되기 위해 맨틀이 다량의 수분을 보유할 필요는 없다. 현재 바닷물의 총무게는 맨틀 무게의 0.03%에 불과하기 때문에, 맨틀이 축축하게 젖지 않아도 바닷물을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에 의하면 지구의 대기는 내부의 바위에 숨어 있다가 마그마 바다가 응고되면서, 또는 화산활동을 통해 밖으로 분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최초의 대기는 지금과 완전 딴판이었을 것이다. 특히 화산을 통해 분출되었다면 대기의 주성분은 이산화탄소와 수증기였을 것이다. 80-2)


원래 지구와 금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로 가득 차 있었고 표면 온도와 압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다. 다행히도 지구는 태양과의 거리가 금성보다 멀었고 기압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었다. 대기의 압력이 1기압(1atm)일 때 물은 100°C에서 끓지만, 기압이 높으면 더 높은 온도에서 끓는다(부엌에서 쓰는 압력솥은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지구의 대기압이 60기압이었던 시절, 물은 200~300°C에서도 액체 상태로 존재했고(정확한 비등점은 270°C이다) 대기중 이산화탄소가 물과 바위에 스며들면서 기온이 서서히 내려갔다(온실효과가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기온이 내려가니 물의 양도 자연히 많아지고, 물이 많아지면 이산화탄소가 더 많이 녹아서 기온은 더 내려가고…… 마치 피드백 회로처럼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지각판의 운동이 활발해졌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함유량은 꾸준히 감소하여 아주 소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바위 속으로 흡수되었다. 83)


흔히 말하는 ‘날씨’란 대기의 가장 낮은 층인 대류권troposphere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대류권의 고도는 지표면에서 약 10km까지이며, 바로 이 영역에서 빠르고 변화무쌍한 열역학적 대류가 일어나고 있다. 대류권 위의 공기층을 성층권stratosphere이라 한다. 대류권과 달리 성층권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온도가 높아진다. 성층권의 꼭대기에 있는 공기는 따뜻하면서 안정하기 때문에 스프레이로 뿌린 연무제aerosol나 화산 먼지가 이 영역에 도달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갇히게 된다. 성층권은 고도 50km까지 계속되고, 성층권 위로 고도 100km까지를 중간권mesosphere이라 한다. 중간권에서는 열복사가 훨씬 효율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성층권보다 온도가 낮다. 중간권 위로는 온도가 훨씬 높으면서 밀도가 희박한 열권thermosphere(고도 600km 이하)이 있고, 열권 위로 1만km까지를 외기권exosphere이라 한다. 외기권 밖으로 나가야 비로소 우주(행성 간 공간)라 할 수 있다. 84-5)


# 연무제aerosol : 기체 속에 고체나 액체가 섞여 있는 상태


6장 기후와 서식 가능성 … 171


뭐니뭐니해도 지구의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태양 빛이다. 지표면에 도달한 햇빛은 표면의 특성에 따라 흡수되기도 하고 반사되기도 한다. 어두운 해수면은 다량의 빛을 흡수하고, 밝은 대륙은 빛의 일부를 반사하여 우주로 돌려보낸다. 또한 그린란드와 남극대륙을 덮고 있는 얼음은 대부분의 빛을 반사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지면의 평균 흡수율은 약 70%이며(반사된 30%는 달빛moonshine과 비슷한 지구광earthshine을 만든다), 어느 정도 데워진 후에는 열(또는 적외선)의 형태로 복사에너지가 방출된다. 지구에 대기가 없다면 복사에너지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우주로 날아가서 표면 온도는 -20°C까지 내려갈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대기에 섞여 있는 수증기와 이산화탄소가 지면에서 복사된 적외선을 흡수하여 열이 우주로 달아나는 것을 막아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지구의 기후는 ‘지면의 햇빛흡수율’과 ‘대기 중 온실가스함유량’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94-5)


지질학적 탄소순환(신선한 광물의 침식과 풍화에 의해 양이 줄었다가 화산활동을 통해 보충되는 순환)은 아직 확증되지 않은 가설이지만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핵심은 단연 음성 피드백이다. 광물질의 풍화와 침식은 몇 가지 경로를 통해 온도의 영향을 받는다. 첫째, 온도가 높으면 물의 증발량이 많아져서 비가 자주 내리고, 그 결과 침식이 더 빠르게 진행된다. 둘째, 신선한 광물을 탄소와 결합시키는 탄화나 풍화 과정은 온도가 높을수록 빠르게 진행된다. 따라서 화산이 폭발하여 여분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유입되면 숲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거나 화석연료를 태우고, 온실효과로 기온이 높아져서 비가 내리면 광물의 침식과 풍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되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다시 낮아진다(수백만 년이 소요된다!). 간단히 말해서 지질구조판은 주기적 변화를 겪으면서 수억 년 동안 기후를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왔다. 여기서 ‘안정적’이라 함은 평균 기온이 수십 ℃ 이상 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97-8)


지질구조판 위에 놓인 바다와 대기, 그리고 얼음은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양성 피드백을 낳는다.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밀란코비치 주기Milankovitch cycle는 세 가지 주기운동을 결합한 결과인데, 그중 가장 짧은 주기는 지구 자전축의 세차운동歲差運動, precession이다. 지구의 자전축은 회전하는 팽이의 회전축처럼 가느다란 원뿔을 그리면서 26,000년을 주기로 서서히 돌고 있다. 두 번째 주기는 지구의 자전축이 공전면에 대하여 기울어진 정도가 변하는 주기이다. 현재 지구의 자전축은 공전면에 대하여 23.5°쯤 기울어져 있는데, 이 값이 40,000년을 주기로 변하고 있다(변화 폭은 22.5°~24.5°이다). 마지막으로 공전궤도의 이심률(원에서 벗어난 정도)도 약 10만 년을 주기로 변하고 있다. 이심률이 변하면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변하기 때문에 당연히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 밀란코비치 주기는 해양 퇴적물에 남아 있는 과거의 기후변화 패턴을 통해 거의 맞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98)


# 음성 피드백은 효과를 반감시키는 일련의 과정이고, 양성 피드백은 효과를 증폭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다.


7장 생명 … 207


생명이란 화학반응을 이용해서 주변 환경으로부터 물질과 에너지를 취하여 성장하고 번식하는 생물학적 개체를 의미한다.  생명체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결과물이 반응 자체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자가촉매적autocatalytic이다. 예를 들어 식물은 물과 이산화탄소, 그리고 태양에너지를 이용하여 길다란 사슬 구조의 포도당 분자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은 식물의 몸체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이다(세포벽의 주성분인 셀룰로스cellulose의 형태로 존재한다). 즉 광합성의 결과물이 더 많은 광합성을 촉진하는 것이다. 반면에 동물과 같은 호기성 생물好氣性은 음식과 태양에너지를 취하여 더 많은 세포를 만들어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음식을 취한다. 생명은 자원을 소모할 뿐만 아니라, 복잡한 분자를 만들어서 기존에 있는 분자의 생명 활동을 촉진하고 자신과 닮은 개체를 재생산한다. 또한 생명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통해 진화한다. 이 과정은 ‘생명체의 의지’가 아닌 ‘불완전한 복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106-7)


# 호기성 생물好氣性~, aerobic~ : 산소를 이용하여 신진대사를 하는 생물


대기 중 산소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생명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유기물(포도당, 지방, 메탄가스 등)이 산소와 반응하여 이산화탄소와 물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화학에서는 이런 경우를 정상상태定常~, steady state라 한다. 즉 광합성에서 생성된 산소가 역반응을 통해 소진되는 소모량과 균형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오늘날 대기에 섞여 있는 산소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백분율로는 약 20%이고, 무게로는 거의 10억×10억kg이나 된다. 그렇다면 이 많은 산소와 균형을 이루는 거대한 유기물 저장소(광합성의 산물인 포도당 저장소)가 지구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이 유기물의 대부분은 대기와 닿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산소와 반응하여 이산화탄소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유기물 저장소는 깊은 바다 속 해저면이나 산이 침식되면서 형성된 퇴적층 밑에 있다. 사실 생태계는 아주 작은 시스템으로, 산소의 생산량과 소비량이 거의 균형을 이룬 상태이다. 113)


진핵세포는 원핵세포와 달리 세포골격으로 지탱되는 막膜, membrane 안에 세포핵과 DNA가 갇혀 있고, 세포의 가능을 수행하는 다양한 세포기관을 갖고 있다. 진핵세포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그럴듯한 이론은 ‘세포내공생설細胞內共生說, endosymbiosis’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2개의 원핵세포가 한 몸이 되어 진핵세포로 진화했다(하나가 다른 하나를 잡아먹었을 수도 있고, 약한 상대를 침범했을 수도 있지만 굳이 구별할 필요는 없다). 아마도 이 과정은 고세균古細菌이 박테리아를 흡수하거나 그 반대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두 생명체 사이에 공생이 시작된 것이다. 예를 들어 산소로 포도당을 만들어서 에너지를 얻는 호기성 세균은 산소를 싫어하는 고세균에게 최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또는 광합성 세균이 큰 세포 안에서 포도당을 생산하면 세균과 숙주에게 모두 이득이 된다. 이와 같은 공생 조합은 진핵생물에게 커다란 이점으로 작용하여 생태계에서 더욱 확고한 입지를 굳히게 된다. 114)


8장 인류와 문명 … 239


메소포타미아와 서부 및 중앙유라시아 문명의 태동에는 7,000년 전에 일어났던 흑해의 범람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홍적세 말기에 유라시아를 덮고 있던 얼음이 녹아 지중해로 흘러들었고, 흑해는 더운 날씨 때문에 서서히 증발하여 지중해와 흑해의 수위 차가 140m까지 벌어졌다. 중력이 작용하는 한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지중해의 짠물은 보스포루스해협Bosporus Strait을 타고 흑해로 유입되었고, 담수淡水였던 흑해는 지금과 같은 염수鹽水로 변했다. 물론 이 과정은 서서히 진행되었지만 흑해의 가장자리가 살짝 경사져 있기 때문에 수위가 비교적 빠르게 상승하여 결국 해안의 농경지로 범람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농경민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중앙아시아와 서유럽으로 진출했는데, 특히 흑해 연안에 거주해왔던 인도-유럽어족과 셈족Semitic tribes, 우바이드족Ubaid 등 다양한 인종들이 메소포타미아로 모여들어 최초의 문명 도시인 수메르를 건설하게 된다. 125-6)


지질구조판 중 유라시아판은 지질학적으로 유리한 점이 많았다. 대륙의 축이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어서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으며, 다양한 농경민들이 모여들어 다양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반면에 다른 대륙들은 대부분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기 때문에 기후가 비슷한 동-서 방향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어려웠고, 남-북으로 진출하면 곡물과 가축들이 서식 가능 지역을 벗어나 큰 피해를 입었다(이들이 사냥에 의존했다면 남-북 방향 진출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유라시아 문명권이 확장됨에 따라 다양한 종의 가축들도 함께 퍼져나갔고, 점령지의 토착민들은 새로운 병원균에 노출되어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 면역력을 키워나갔다. 유리시아는 다른 대륙으로 진출할 때 수천 가지 군사 기술과 함께 토착민들이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병균도 가져갔다.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소규모의 원정대만으로 잉카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병균 덕분이었다. 126-7)


화석에너지는 환경을 파괴하고 기후를 변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누리는 편리함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생활습관을 바꾸려면 꽤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문명의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기술과 의학으로 무장한 인간은 지난 수십 억 년 동안 적용되어왔던 자연선택의 섭리를 교묘하게 피해왔다. 그러나 자원이 고갈되어 자연선택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면, 가장 하찮게 여겼던 미생물의 먹이로 전락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탐욕이나 나태함의 문제가 아니다. 주어진 자원을 무분별하게 낭비하는 것은 경쟁자가 없는 생명체에게 흔히 나타나는 성향이다. 그러나 인간은 언어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이용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이므로, 위기가 닥치기 전에 대비책을 세울 능력이 충분히 있다. 우리가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그것은 생명의 역사, 아니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업적이 될 것이다. 12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