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작심하고 다시, 기자 - 권력의 비리를 감시하고, 추적하고, 고발하는 기자, 장인수의 취재 열전
장인수 지음 / 시월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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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김건희와 디올백 – 최초보도 : 2023년 11월 27일, 서울의소리


권력자, 특히 보수정당이나 검사의 비리와 관련한 특종 보도에 대해 국내 언론은 애써 외면해왔다. 하지만 사건이 크게 불거져 제도권으로 넘어오면 기성 언론들은 그제야 보도하기 시작한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무슨 정당의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전격 압수수색했다’, ‘누구를 소환했다’, ‘정부부처가 조사에 착수했다’와 같은 기사들이 전형적인 출입처 기사의 형태다. 디올백 사건으로 빚어진 윤·한 갈등은 국민의힘이라는 출입처에서 벌어지는 일이었고 기자들은 그제야 열심히 받아쓰기 시작했다. 단순 전달 보도이니 쓰기도 쉽고 나도 쓰고 너도 쓰고 다 같이 쓰기 때문에 리스크도 없다. 그래서 출입처 기사는 기자들과 언론사가 열심히 쓴다. 디올백 사건을 처음으로 보도하는 건 다르다. 취재가 어렵고 단독으로 써야 하니 리스크도 크다. 디올백 사건을 발표해줄 정부 기관도 없으니 출입처 기사가 아니고 따라서 취재 대상도 아니다. 그러니 나도 안 쓰고, 너도 안 쓰고, 다 같이 안 쓴다.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다. 50)


PART 2. MBC와 7시간 녹취록 보도의 진실 - 최초보도: 2022년 1월 16일, MBC


이명수 기자는 2021년 8월 30일 서초동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을 방문해 김건희를 만났다. 그 당시 이 기자는 코바나컨텐츠 직원들을 상대로 강의했다. 당시 코바나컨텐츠 직원 3명과 윤석열 캠프에서 왔다는 젊은 남녀 2명이 이 기자의 강의를 들었다. 부장은 이 젊은 남녀 2명이 누군지 알아내 현재 윤석열 캠프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부장이 제정신이 맞나 싶었다. 김건희가 한 문제적 발언들이 많은데 아무도 관심없는 20대 청년 2명이 누군지를 알아내서 그걸 주요 내용으로 기사를 쓰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부장의 정확한 의도를 몰라 답답해했다. 지금 생각하면 수법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 기사 아이템을 본인이 직접 킬하지 않고 의미도 없고 취재가 가능하지도 않은 내용을 알아보라고 지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기사가 못 나가도록 하는 전략이다. ‘내가 킬한 게 아니라 네가 취재를 못 해서 보도가 안 나간 거야’라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70)


부장은 작성된 기사를 회사 시스템을 통해 송고하지 못하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기자들은 기사를 쓰고 회사 기사작성·송고시스템(MBC는 MARS라고 한다)으로 전송한다. 그러면 데스크와 부장이 접속해 기사를 확인하고 수정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송고하는 대신 작성한 기사를 유에스비에 담아 데스크에게 전달했다. 데스크가 수정을 마치자 부장은 데스크 자리로 가서 데스크 컴퓨터에 있는 기사를 고쳤다. 자신의 컴퓨터에는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은 것이다. 부장은 7시간 녹취록 보도 준비 내내 카카오톡으로도 보고받지 않았다. 모든 보고와 지시는 구두로만 이뤄졌고 전자파일은 남기지 않았다. 처음부터 검찰 수사를 대비했던 것 같다. 작성된 기사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어디서 어긋났는지 명확히 알게 됐다. 보도를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문제가 안 되는 게 더 중요했다. 이러려면 진작에 킬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왜 상황을 이렇게까지 끌고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80-1)


PART 3. 한동훈과 검언유착 - 최초보도: 2020년 3월 31일, MBC


첫날 보도 직후 KBS 법조팀이 자료를 공유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적극적으로 보도하겠다는 의지도 함께 전해왔다. KBS 같은 큰 언론에서 후속 보도를 해주면 MBC 보도는 더 큰 특종이 된다. 제보자X의 동의를 얻어 대부분의 취재 자료를 KBS에 넘겼다. 한 가지 찜찜한 게 있었다. KBS 법조 기자들이 자료를 친한 검사들에게 넘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KBS는 4월 1일 뉴스9에서 19번째(마지막)에 리포트 하나를 보도했다. 딱 봐도 면피용 보도였다. 아무 보도도 안 했다는 욕을 먹지 않기 위한 보도를 보고 찜찜함은 더 커졌다. 하지만 어쩌랴, 자료는 이미 넘긴 것을. 그나마 KBS가 나은 것이었다. 많은 언론이 MBC 보도를 외면했다. 하지만 뒤에선 그렇지 않았다. 기자들의 관심사는 이동재·한동훈·이철이었고, MBC 보도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세상은 온통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한데 지면에는 그 사건 보도가 한 줄도 나오지 않는 기현상. 대한민국에서 가끔 벌어진다. 보도 초반 채널A 사건이 딱 그랬다. 102-3)


검언유착 의혹 보도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사건에 연루된 두 명, 이동재와 한동훈 모두 처벌받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 기자로서 힘이 빠지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보도 이후 벌어진 사회적 파장과 논란은 누가 통제할 수도 없거니와 기자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그러니 분노할 필요도, 힘 빠질 일도 없다. ‘기자의 역할은 보도까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보도를 통해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면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보도가 곧바로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온다고 생각하면서 보도하는 경우는 드물다. 김건희의 디올백 수수 사건을 보도했지만, 검찰이 윤석열·김건희를 수사해서 그에 따른 처벌을 내릴 거라고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나. 기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하는 사람’이다. 만약 시청자들이 보도를 보고 분노하거나 집단행동을 해서 정치권이나 정부기관이 움직여 어떤 변화가 만들어진다면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이 역시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다. 112)


PART 4. 손준성과 고발사주 - 최초보도: 2021년 9월 6일, 뉴스버스


채널A 검언유착 사건에서 이동재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의 공조는, 드러난 것만 보면 개인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다. 채널A라는 언론사와 검찰 조직이 어떻게 유착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고발사주 사건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처음부터 검찰이 조직적으로 고발장을 작성해 미래통합당에 넘겼다. 보수언론은 그 내용을 약속한 것처럼 일제히 보도했다. 검찰과 보수언론 사이에 조직적인 검언유착이 이뤄진 것이다. 고발사주 사건을 통해 검찰과 언론이 어떻게 공생하는지 극명하게 드러났다. 가장 강력한 두 권력 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최소한의 윤리는 고사하고 법도 가볍게 깔아뭉갰다. 총선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미래통합당은 실제 고발을 하진 않았다. 대신 보수단체가 나중에 고발을 진행했다. 검찰은 내가 실제 권언유착을 했을 거라고 믿는 듯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공상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한동훈과 보수언론은 여전히 검언유착 보도를 권언유착의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119-20)


2021년 10월 6일, MBC는 김웅과 조성은의 통화 내용에 윤석열이 언급된다는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국민의힘은 ‘오보다. 윤석열 이름 없다’라며 난리 쳤다. 보수언론들도 윤석열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MBC는 궁지에 몰렸고 이후 공개될 녹음파일에 ‘윤석열’이 없으면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10월 19일 MBC PD수첩은 통화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김웅. 제가 가면 윤석열이 시켜서 나오게 되는 거예요.〉 보수언론 기자들은 실제로 ‘윤석열’이 언급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아닌 줄 알면서도 윤석열과 검찰이 원하니 그렇게 썼을 것이다. MBC 보도를 권언유착이라고 공격하던 기자들은 정말 그렇게 믿었을까? 대한민국 기자들이 그렇게 멍청할 리 없다. 오보를 낸 언론들은 어떠한 사과도 없었다. 마음에 안 드는 MBC 보도가 나오면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부어 대지만, MBC 보도가 맞는 걸로 드러나면 마치 없었던 일처럼 행동한다. 언론의 이런 행태는 여전하다. 122)


PART 5. TV조선 방정오 대표와 그 딸의 ‘계급질’ - 최초보도: 2018년 11월 16일, MBC


저는 사실 이게 계급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남양유업과 비교해보면 거기는 이게 본사 영업사원이 대리점 사장한테 욕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영업사원과 대리점 사장이라는 관계에서 나오는 그 계약관계 갑을 관계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갑질이라고 하는 건데 이거는 그게 아니에요. 이 여자 아이가 기사한테 막 할 수 있는 그 근본적인 우월적 지위가 태생에서 나오는 겁니다. 태생에서. (···) 그리고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게 남양유업 같은 경우는 영업사원이 갑질을 하는 이유가 목적의식이 있습니다. 판매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이 폭언은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순수합니다. 나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멸시와 혐오가 깔려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갑질이 끝까지 가면 갑질이 극단화가 되면 결국 그 마지막 단계는 신분제 사회, 계급 사회가 있는 거고 이 사람들은 이미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 세계를 만들어놓고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겁니다. 137)


PART 6. 이시원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 최초보도: 2020년 6월 8일, MBC


군사정권 시절엔 정권 유지를 위해 간첩이 필요했다. 민주화 이후 이런 공포정치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국정원과 공안 검사들은 간첩을 원한다. 자신들의 승진을 위해서다. 문제는 진짜 간첩을 잡는 게 아니라 승진을 위해 간첩을 만들어낸다는 거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우성 씨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밴드 여간첩 사건’도 있다. 대법원은 그녀의 간첩죄를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우리는 잘 모르고 지나갔다. 검찰이 작성한 이 사건의 공소장은 가관이다. 간첩이 된 탈북자는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았다. “당신은 간첩이냐”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했고 진실 반응이 나왔다. 두 차례 조사가 이뤄졌는데 마찬가지였다. 국정원과 검찰은 북한 보위부 소속 과학자들이 간첩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신비의 약’을 개발했고 이 간첩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 직전에 이 약 성분이 든 패치를 몸에 붙여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통과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143-4)


국정원 합동신문센터는 통상 탈북자들이 처음 입소할 때 알몸 조사를 벌인다. 국정원은 이 여성이 ‘신비의 약’을 브래지어에 숨겨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면 브래지어는 왜 조사하지 않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검찰과 국정원은 답하지 않았다. 한편 국정원의 거짓말 탐지기 조사는 불시에 이뤄진다. 검찰 공소장대로라면 이 여성은 2번이나 거짓말 탐지기 조사 시점을 미리 알고 직전에 패치를 붙였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 여성의 남자 친구도 간첩이다. 둘이 함께 지령을 받고 내려왔다는 건데 검찰은 여성은 기소했지만 남자 친구는 기소하지 않았다. 여성은 나중에 자포자기한 나머지 간첩이라고 자백했지만 남자 친구는 끝까지 자백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코미디지만 어찌됐든 그녀는 간첩이 됐다. 검찰과 언론을 바꾸지 못하면 누군가는 제2의 유우성이 될 것이다. 검찰은 조작하고 억울하다고 외쳐도 언론은 외면할 테니까. 이보다 완벽한 빅브라더의 세계가 있을까? 144)


맺음말 저널리스트 그리고 다시 기자 284


12.3 내란 사태를 보며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윤석열-김건희의 비리와 문제점을 찾아내 나름 열심히 보도했다. 디올백 수수, 김건희 7시간 녹취록, 김대남 녹취록, 김건희 처가 문제 등등…. 그런데 윤석열-김건희는 애초에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놔두고 지엽적일 수도 있는 이들의 행태와 비리를 찾아내 폭로했던 것은 아닐까? 기자들은 총체적인 비판을 하지 않는다. 기자들은 팩트를 신봉한다. 팩트가 없으면 쓸 기사도 없다. 윤석열-김건희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기자는 그걸 찾아내야 비로소 보도할 거리가 생긴다. 하지만 이같은 방식의 견제와 감시는 애초에 제정신이 아니었던 윤석열-김건희 상대로는 부질없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윤석열 같은 자가 국가 지도자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기자가 하는 일이다. 건전한 언론이 살아있는 국가에서 윤석열 같은 사람이 최고지도자가 될 수 없다. 우리 언론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나는 예외라고 말할 수 있을까?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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