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검찰의 심장부에서 - 대검찰청 감찰부장 한동수의 기록
한동수 지음 / 오마이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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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검찰의 심장부에서

—대검 감찰부장의 기록


검찰 출신은 검찰을 나가서도 검찰 내부의 일에 대해서는 일제히 침묵한다. 따라서 법무부나 청와대와 같은 조직에서도 검찰 내부 정보와 조직의 작동원리, 생리 같은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나는 그것이 검찰개혁의 지지부진함과 한계를 야기한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누군가 검찰의 심장부에 들어가 기록하고 증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검 감찰부는 검찰의 온갖 비위정보가 모이고 징계 감찰을 하는 곳이므로 검찰의 실상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데 적소(謫所)의 자리라고 생각했다. 검찰총장 윤석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나의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는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양승태 대법원장 직권남용 사건에 대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았고, 나도 그랬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적폐청산에 대한 의지와 추진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법연수원 23기이고, 나는 24기이니 기수 차이도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19)


2019년 10월 18일 대검찰청에 부임하던 첫날,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야기한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첫 번째는 감찰에 착수하기 전에 총장에게 보고하고 총장의 승인을 받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대검찰청 감찰본부 설치 및 운영 규정 제4조 제1항에 따르면, 감찰부장은 감찰개시 사실과 그 결과만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사전 보고와 승인은 규정과 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 및 재산등록과 관련해 감찰대상이 되어 정직처분을 받은 적이 있는 윤 총장이 이 규정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는데도 규정과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이다. 윤 총장은 또 매일 오전 열리는 대검 부장회의에 감찰부장은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역대 감찰부장은 대검 부장회의에 들어오지 않았고, 감찰부장 입장에서도 대검 부장회의에 들어오지 않으면 편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대검 부장회의에 참석하길 원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역대 대검 감찰부장은 대검 부장회의에 참석해왔다. 20)


2020년 3월 19일 회식 자리에서 나온 윤 총장의 발언을 기억나는 대로 기록으로 남긴다. 그가 한 말은 검찰조직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일제 때 태어났으면 마약판매상이나 독립운동을 하였을 것이다.〉, 〈만일 육사에 갔더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다. 쿠데타는 김종필처럼 중령이 하는 것인데 검찰에는 부장에 해당한다. 나는 부장 시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조선일보 사주를 만났다. 조선일보 일가는 평안도에서 내려온 사람들이고, 반공의식이 아주 투철하다.〉, 〈평안도 출신의 결속력은 아주 대단하다. 평안도 출신 사람들은 같은 평안도 출신인 리영희 기자에 대해 진실을 보도한 기자일 뿐 빨갱이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동아일보는 전북 출신인데 전라도 사람이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면 더욱 강하게 된다.〉, 〈검찰 역사는 빨갱이 색출의 역사다.〉 나는 윤석열 총장이 검찰에 있을 때나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섰을 때 자주 사용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반공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고 이해했다. 25-6)


2020년 3월 19일은 이른바 ‘제보자X’로 알려진 지현진 씨가 며칠 후 채널A 본사를 방문해 유시민 관련 제보를 하기로 약속한 날의 며칠 전이었다. 윤 총장은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으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고 있었을 것으로 추론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동훈은 점심 또는 저녁 식사 중에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페이스북이나 유시민 씨의 유럽 출국 정보를 수시로 총장에게 전할 정도로 많은 것을 보고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김유철 수사정보정책관과 고등학교, 대학교 선후배 사이였고, 청와대 행정관으로 함께 근무한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사정보정책관실(수정관실)로부터는 업무상 각종 정보를 보고받는 위치에 있었다. 수정관실은 그 무렵 총선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수시로 수집·정리하고 있었다. 외부에서는 잘 모르지만, 검찰은 업무와 관련된 사항이 있으면 정말 사소한 것까지 상급자에게 보고한다. 그래서 나는 윤석열 총장도 ‘제보자X’의 동태를 그때그때 잘 알고 있었으리라고 합리적으로 추론한다. 27)


2020년 당시 차장급이었던 특별감찰단장 황병주는 대검 권순정 대변인과 연수원 29기 동기이고, 카카오톡으로 총장에게 감찰 업무를 수시로 보고하는 등 대검 내 위치가 상당한 편이었다. 그때 그는 감찰부장실에서 확신에 차서 화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할 것이다. 근무 중 자리를 비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법무부 차관 등을 만났다면 공무상 비밀 누설로 영장을 쳐야 하는 사안이다.” 윤 총장으로서는 이른바 ‘대호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사주와의 만남을 통해 대권에 대한 내심의 야망이 싹트고 있었을 때다. 결국 이날 총장의 호기어린 다수의 말들은 4월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해 검찰개혁 입법이 원점으로 돌아가고, 대권을 향한 자신의 입지에 무언가 생기기를 기대하던 차에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쿠데타’라는 단어까지 사용한 것을 보면, 군대에 의한 무력 쿠데타가 아니라 검찰 수사를 통한 쿠데타를 의식했던 것은 아닐까. 27-8)


충돌의 전초는 한동훈 관련 사건이었다. 내가 감찰부장으로 근무한 지 두 달여 만에 임은정 검사가 감찰제보시스템을 통해 한동훈 검사에 대해서 내부제보를 했다. 한동훈이 자신의 지위를 부정하게 이용해서 처남인 진동균 검사가 법무심의관실에 배치되도록 부당한 인사청탁을 했는지, 그리고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 구 모 판사의 소환 시기를 기자에게 알렸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일이었다. 사건의 경위와 검찰의 관행이 어떻든 자신의 처남 인사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고, 또한 언론에 수사상황을 알리는 행위 역시 부당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황 단장은 이런 나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처남 문제에 대해서는 “인사청탁 사실이 없다”, 수사정보 유출에 대해서는 “오보 대응” 차원의 일이라고 했다. 황 단장은 또 “(감찰을 계속하면) 임은정 검사의 정치행위에 이용된다. 별 사안이 아니다”라며 “지난 금요일(15일)에 한동훈 부장으로부터 어떻게 되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라고 전했다. 29)


충돌의 시작도 한동훈이 관련된 ‘채널A 사건’이었다. 2020년 3월 31일과 4월 1일 MBC는 신라젠 수사와 관련해 채널A 기자가 검사장과의 유착관계를 바탕으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위를 캐려고 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4월 2일 검찰총장(감찰3과장)을 수신자로 지정해 ‘최근 언론보도 관련, 진상확인 보고 지시’를 내렸다. 총장실로 들어가니 윤 총장은 책상에 다리를 올려놓은 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얼굴이 붉어져 있어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총장에게 사건을 매일 보고하면 감찰조사에 개입할 여지가 커지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총장실을 나와서 허정수 감찰3과장과 함께 대책을 논의하려고 7층 감찰부장실로 이동하는데, 구본선 대검 차장이 감찰3과장을 호출했다. 허 과장에 따르면, 총장실에서 총장, 차장, 자신(감찰3과장)이 함께 만났는데 윤 총장은 법무부 장관이 감찰부장에게 감찰을 지시하는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 검토할 것을 차장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30-1)


한동훈은 2021년 인사발령으로 대검을 떠나기 직전에 감찰부장인 내 방으로 찾아왔다. 내 방 탁자 유리 아래에는 모 작가의 판화인 개복치 인쇄 그림이 끼워져 있었다. 바다를 유유히 다니는 개복치는 최대로 성장하면 길이 4미터, 무게 2톤에 이르는 대형 어류다. 그 형상과 움직임이 묘한 평화를 주는 생물인데, 검찰의 바다를 유영하는 나 자신 같기도 했다. 그런데 한동훈이 자신도 개복치를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이상했다.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자리도 아니고, 이미 휴대전화번호도 알고 있는데, 왜 명함을 내밀었을까. 이상했지만 뭔가 앞으로 자신과 친하게 지내자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렇게 느낀 이유가 있다. 2010년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의 어느 특수부 검사가 참고인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는 일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회유수단이었다. 참고인은 그때부터 그 검사와 자신이 특별한 관계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32-3)


정진웅은 한동훈을 수사하다 역으로 기소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른바 2020년 7월 29일 발생한 ‘한동훈 독직폭행’ 사건이다. 기소 후 불과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나는 윤석열 총장으로부터 정진웅에 대한 직무집행정지를 법무부에 요청하는 공문을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나는 정진웅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다. 그러나 정진웅에 대한 직무정지는 채널A 사건의 수사와 공판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진실을 덮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실체적 진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검찰청법에 따라 검찰총장에게 이의제기서를 제출했다. 일신상의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정진웅 사건의 부당성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피의자인 한동훈이 검찰총장의 최측근이고,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배제하고 수사팀의 독립적 수사를 보장하는 취지의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해 대검 규정에 따라 대검 부장회의에서 이 건을 논의해달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나의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42-4)


윤 총장은 마치 언론사와 약속된 것처럼 직무정지요청 공문 상신을 강행했고, 이는 언론에 일제히 보도되었다. 나는 이 건의 직무에서 배제되었고, 감찰부장 결재란이 빠진 상태로 공문이 작성되어 법무부에 제출되었다. 한동훈이 검찰총장, 서울고검장 등과 사전 교감을 한 상태에서 진정서를 제출할 대상으로 서울고검을 선택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당사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법원을 찾아다니는 포럼쇼핑(forum shopping)과 유사한 행위다. 원래 고검은 항고 사건과 관련된 보완수사를 하는 곳이지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하는 곳이 아니므로 진정 사건으로 시작해 수사로 전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이러한 방법을 찾아낸 것도 기술이고 실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검찰조직 내에 윤석열 검찰총장과 한동훈을 따르는 세력과 힘이 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문재인의 검찰’이 아니라 ‘윤석열의 검찰’이었던 것이다. 검찰은 어느 정부의 검찰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늘 검찰의 검찰이었을 뿐이다. 44-5)


심재철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는 2020년 1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부임했다. 대학 후배라는 이유인지 처음부터 “선배님” 하면서 붙임성 있게 나를 따랐다. 그런 그가 2월 26일 〈주요 사건 재판부 분석〉이라는 6쪽짜리 문서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약간 격앙된 상태였는데,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이런 것을 만들었다’, ‘전임 반부패·강력부장인 한동훈에게 주던 것을 나에게도 생각 없이 전달한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당시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중요 사건인 “청와대 및 조국 일가 관련 사건, 사법농단 사건, 국정농단 사건, 국회의원(손혜원) 사건, 세월호 수사팀 관련 사건”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도표 안에 그 사건을 다루는 재판부 판사들에 대한 정보가 기재되어 있었다. 수사정보정책관실은 총장의 귀와 눈이라는 점, 또 반부패·강력부장에게 교부될 정도의 문서라는 점에서 이 문건은 검찰총장 승인하에 작성된 것이 명백했다. 감찰부장 단독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조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47)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2020년 11월 법무부로부터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조사를 위해 출석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채널A 감찰방해 사건과 감찰개시 사실의 언론유출 등과 관련해 진술을 요청하는 취지였다. 출석 당일이었던 2020년 11월 6일 오전에 자료를 정리하고 출력했다. 오후에는 연가를 내고 친한 신부님, 임은정 검사와 서래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개인 차량을 이용해 법무부로 향했다. 조사를 담당한 이정화 검사는 대전지검에서 법무부 감찰담당관실로 파견돼 윤 총장 감찰사건을 맡은 인물이다. 조사실에서 만나 몇 마디를 나눴는데,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했던 이준호 감찰본부장을 평가하는 대목 등에서 그의 인식 수준과 역량이 느껴졌다. 그래서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을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이정화 검사, 박은정 감찰담당관이 동석한 자리에서 ‘판사사찰’ 문건을 제시했다. 박은정 담당관은 “이 문건은 조사대상이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49)


# 이정화 검사는 차후의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 국면에서 감찰조사 내용을 누설하고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을 비난하는 등 윤 총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윤석열 징계 국면에서 일부 언론은 심재철과 한동수가 사전에 짜고 ‘판사사찰’ 문제를 제기했다고 공격했다. 오로지 나만의 판단으로 제보한 일인데 언론의 이런 음모론적이고 일방적인 추측 보도는 너무도 부당하고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일부 검사들과 기자들은 사전에 짜고 무언가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이 잦은가 보다. 당시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은 판사사찰 문건을 내가 제보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 혼자 단독으로 결정하고 내부고발자의 심정으로 제보한 것이다. 법무부 징계기일에 출석했을 당시에 문건의 제공자와 제공받은 시기를 말하지 않은 것은 내가 오해를 받더라도 문건 제공자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것이 감찰부 업무를 하는 공무원으로서 내가 지켜야 할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제보하지 않았다면 판사사찰 문건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감찰부장이었지만 감찰을 할 수 없는 여건이었으니 내부고발자로서 공익신고를 한 것이다. 50)


2021년 11월 9일 대검 출입기자 10여 명이 김오수 검찰총장실 앞에 몰려왔다. 감찰부장 면담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면서 김 총장을 몸으로 막았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대치했다. 대검 기자단은 같은 날 밤 9시경 대검 감찰부의 입장문을 보이콧하겠다고 결정하고, 관련 보도를 거부했다. 검찰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고 지나친 행동이었다. 윤석열 총장 시절 대검 대변인이었던 권순정 검사는 고발사주 사건과 관련하여 공수처에 입건된 피의자이자 감찰조사 대상자였다. 대검 감찰부는 2021년 10월 29일 권 검사가 사용하다가 대변인 직원이 보관 중이던 공용 휴대전화를 대변인실로부터 임의 제출받아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했다. KBS, 중앙일보, 헤럴드경제 등은 권순정 전 대변인의 입장을 기반으로 일방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영장없는 압수 과정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한 전직 대변인들에게 압수 사실을 알리지 않은 데다 해당 휴대전화에는 언론사 취재 문의 내용이 기록돼 있어 사실상 언론 검열이라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82-3)


# 수사가 아닌 감찰이므로 영장은 필요 없다. 압수가 아닌 임의 제출이다. 현직 대변인의 휴대폰을 압수하거나 임의 제출받은 것도 아니다. 전직 대변인이 사용하다가 수회 초기화되어 보관 중이던 휴대전화 한 대를 임의 제출받았을 뿐이다. 공영방송인 KBS가 명백히 사실과 다른 오보를 낸 것이다.


사실 언론매체의 이러한 태도는 판사사찰 문건 때와 패턴이 유사하다. 대검 감찰부는 이 행위가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뒤 범죄인지서를 작성하고 수사에 착수했으며 수사정보정책관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했다. 그런데 일부 언론들은 내가 심재철 검찰국장과 사전에 짜고 판사사찰 문건을 문제 삼았다고 보도했다. 조남관 대검 차장에게 범죄 인지와 압수수색영장 청구 등을 보고하지 않았다며 대검 감찰부를 공격했다. 피의자인 윤석열 총장 및 수사정보정책관실을 지휘 감독한 조남관 총장 직무대행에게 범죄인지 및 압수수색영장 청구를 사전 보고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조 대행은 그러한 언론보도를 등에 업고 2021년 12월 대검 감찰부장에 대해 직무이전 조치를 하고 사건을 서울고검 감찰부로 넘겼다. 내가 감찰 업무를 수행할 때 어떤 언론은 대검 감찰부장을 검찰총장의 ‘상왕’이라고 칭하면서 감찰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84)


2부 검찰의 도그마

—검찰개혁의 과제


감찰부의 독립을 보장받기 위해 내가 원했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검찰청법상 법률로서 감찰부장의 업무상 독립을 보장받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임은정 검사와 같이 내부의 관계망에 얽히지 않고 내·외부의 압박에 굽히지 않는 독립된 검사다. 나는 절차에 따라 이 두 가지 요청을 피력하고 전달했다. 2020년 6월 감찰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규정을 신설하자는 검찰청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국회 법사위에서 채택되지 않았다. 2000년 검찰의 기소권과 공소유지권을 감독하고 검찰 제반업무를 감찰하기 위한 검찰감찰청을 독립기관으로 설치한 영국의 사례를 참고해볼 만하다. 우리나라 역시 종래 대검 감찰부가 검찰조직 내에서 검사들의 비위를 축소하고 감싸는 역할에 그치는 부작용을 해소하고, 신속성과 엄정함이라는 감찰 고유의 특성과 강점을 통해 조직 내부의 기강을 유지하는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제자리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검찰조직은 여전히 감찰의 독립성에 대해 소극적이다. 96-7)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검찰 리더들은 수사를 ‘전쟁, 사냥 또는 게임’으로 보는 것 같다. 2013년 당시 윤석열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팀장(여주지청장)은 국정원 직원 체포영장 집행 등과 관련해 ‘표범이 사슴을 사냥하듯’ 신속한 수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사냥식 수사를 경험한 피의자는 여우몰이, 토끼몰이를 당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게임은 전략적이고 목표 지향적이다. 특수수사를 게임에 대비해보면, 군사가 대치한 상태에서 장수(지휘하는 검사)가 적군의 종심을 가르고 적장(피의자)을 베거나 포획하는 장면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한동훈 검사는 내가 감찰부장으로 부임하던 첫날 점심자리에서 ‘죄가 될 만한 것은 어떻게든 찾으면 나오게 마련이므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무능한 검사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판사는 자신이 영장을 발부했더라도 증명이 없거나 죄가 안 되면 무죄판결을 선고한다. 수사를 하다가 안 되면 수사를 그만둘 줄도 아는 것이 순리인데, 그와 배치되는 말이어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98)


표적수사, 하명수사, 인권침해적 강압수사, 높은 무죄율 등으로 비판을 받던 대검 중수부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으로 그 인력과 수사기법이 그대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대검 중수부 검사들은 이제 대통령, 법무부 장관 등으로 중앙권력을 잡았다.

그런 의미에서 대검 중수부는 해체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커졌다. 2013년 12월 기준으로 한국법조인대관을 검색하면 대검 중수부 재직 경험이 있는 검사로는 대검 중수부장 안대희(전 대법관), 박영수(국정농단 수사 특검), 이인규(노무현 대통령 수사 지휘), 김홍일(현 방송통신위원장), 대검 중수2과장 윤석열(현 대통령), 검찰연구관 한동훈(전 법무부 장관), 이원석(현 검찰총장), 이복현(현 금융감독원장), 이정섭(현 대전고검 검사직무대리) 등이 나온다. 어느 특수부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동훈의 수사 스타일은 피의 사실을 박박 긁어서 중요 범죄는 무죄가 나더라도 사소한 범죄로 기어코 유죄를 받아낸다는 점에서 중수부 시절보다 더욱 잔인해졌다.” 99-100)


검찰에는 오만원짜리 현금이 많이 돈다. 특수활동비다. 기획재정부가 규정한 정부 예산집행지침에 따르면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국가정보원을 포함하여 검찰청, 법무부, 경찰청, 국방부 등이 쓰는 예산이다. 특활비를 쓰면 ‘집행내용확인서’라는 지출 증빙 자료를 남기게 되어 있다. 검찰총장이 특활비를 현금으로 지급하면 이를 받은 쪽에서 반드시 현금수령증을 작성하는데, 검찰 내부에서는 이를 ‘영수증’이라고 한다. ‘집행내용확인서’에는 특활비 집행 건별로 금액, 수령일자, 집행내용, 수령인의 성명을 기록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 ‘영수증’에는 검찰총장 비서관이 이미 날짜, 금액을 적은 것에 수령인의 이름을 적고 서명하는 것이 전부다. 집행내용이 무엇인지는 기록하지 않는 것이다. 특활비의 최종 지출자는 자유롭게 현금을 쓰면 되고, 그 지출 내역을 기록하거나 증빙서류를 첨부하는 등 보고의무가 없다. 109-10)


검찰이 사용하는 특활비 등은 매해 수백억 원에 달하는 상당한 액수다. 그런데 본래 목적과 용도대로 집행되지 않고 검찰총장의 전권에 맡겨져 있으며 감시통제가 전혀 없는 사각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활비에서 주된 목적으로 내세우는 정보수집 활동은 사실 대검 감찰부 정보팀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인데, 감찰부 정보팀 수사관에게 배분되는 액수는 특수부, 공안과,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 지급되는 액수에 비해 현저히 적다. 반면 언론의 관심을 받는 주요 사건의 수사팀에게는 상당한 액수의 특활비가 내려가는 것으로 안다. 검찰총장의 특활비는 수사에 영향을 미치고, 총장 개인의 ‘인맥관리비’로 쓰이고, ‘통치자금’으로 쓰인다. 일선 검사들에게 특활비를 지급하면 수사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특활비의 본래 취지와 달리 공정한 수사를 해치게 된다. 나 역시 고발사주 사건과 관련하여 수시집행된 특수활동비를 받고 나니 신속하게 성과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112-3)


대검에서 총장 주재 회의를 하면 총장의 보도자료, 메시지가 먼저 준비된 다음 그것을 확인하는 회의일 때가 많았다. 회의가 끝나면 대변인은 대검 기자단 간사에게 곧바로 카톡으로 보내준다. 그러면 그 내용이 각 언론에 보도된다. 자기가 한 수사·지휘, 자신의 언행이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면 우쭐해질 수밖에 없다. 칭찬과 비난에 초연하다면 그것은 도인의 경지다. 대검은 일선 청의 수사, 공판, 집행업무를 최정점에서 지휘하는 기관인데, 실제 대검에서 하는 업무의 절반은 언론 대응과 여론 관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변인은 정례적으로 기자들을 만나고, 적당한 정보를 제공한다. 과거에는 검사가 알아내기 힘든 정보를 기자를 통해 수집하도록 하는 등 검사와 기자가 수사를 함께하던 시절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채널A 사건과 관련해 과거와 달리 검사가 수용자를 마음대로 소환조사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 되자 중간 매개체로 채널A 이동재 기자를 이용하게 되었다는 견해를 들은 적도 있다. 115-6)


조직상으로 우리나라 검찰청의 원류는 ‘조선총독부 직속 검사국’이다. 검찰총장, 각급 검찰청의 기관장을 칭하는 검사장은 일본의 ‘검사총장’, ‘검사장’, ‘검사정’에 각각 대응되는 명칭이다. 우리나라 검사들과 일본 검사들의 교류관계는 매우 친밀하다. 감찰부장실 계장이 일본 ‘사쿠라(벚꽃)’ 사진이 있는 새해 일본 달력을 내게 주기도 했다. 무슨 달력이냐고 물었더니 주한 일본대사관 소속 일등서기관 오키무라 토시유키(奧村寿行) 검사의 명함을 건네준다. 그 후 2022년 오키무라 검사는 대검 공청회에 지정토론자로 초대받아 검찰개혁의 핵심 의제인 ‘검찰의 직접수사권 축소 입법’에 반대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일본은 영장청구권을 경찰도 가지고 있고, 검찰은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없으며 중대범죄만 수사하는 등 법제와 관습이 다른데 그러한 일본의 일개 검사가 왜 한국의 검찰청법 개정 논의에 토론자로 초대받아 왈가불가하고 나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121)


검사동일체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강요하던 것을 해방 후 이승만 정권과 ‘권위주의 정부’가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특히 대검 중수부에 근무하면서 권력과 선배의 말에 절대복종하고 검찰조직에 충성하며 검찰을 나간 선배들을 전관특혜로 ‘잘 모시는’ 검사동일체를 더욱 체질화하는 것 같다. 대검 중수부의 수사기법을 계승한 검사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사무라이’와 같은 ‘칼잡이’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밤이 되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잔인한' 속내를 숨기지 않고 과시하듯 드러낸다. 현행 형사소송법에 피의자 ‘출석요구’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일제강점기 조선형사령에 근거한 수사용어인 피의자 ‘소환’을 비롯해 검찰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증인 단도리’, 특수부 체질에 적합함을 뜻하는 ‘특수 무끼’, 사건의 얼개를 뜻하는 ‘와꾸’, 수사 실패 등 일이 끝났을 때 쓰는 ‘시마이’, 초보자를 말하는 ‘시로또’ 등 일본식 수사용어가 버젓이 검찰업무에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122)


고위직 검사일수록 무속과 친하다. 무속과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를 적어본다.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 건물 옆에 조성된 작은 공원 한편에 해치상 조형물이 놓여 있다. 원래는 1999년 5월 1일 법의 날을 맞아 대검 청사 1층 로비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법률신문 기사에 따르면, 1999년 발생한 옷로비 사건에 검찰총장이 연루되어 구속되자 “해치의 외뿔이 대검 간부들의 집무실을 들이받아 검찰이 수난을 겪는다”라는 검찰 내 여론이 일면서 건물 밖 외진 지금의 자리로 슬쩍 옮겨졌다고 한다. 마치 군대에서 빈총이라도 맞으면 불길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해치의 뿔이 가리키면 해(害)가 되므로, 해치의 뿔이 대법원 쪽으로 향하게 해치상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대검 감찰부의 한 검찰 서기관은 이러한 사연을 들려주면서 검찰 내부에는 그렇게 해치상을 옮기고 해치의 뿔을 대법원 중앙 쪽으로 향하게 하여 양승태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123)


3부 어둠 속에서 별은 빛이 난다

—한동수의 생각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 최은순 씨 사건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우선 약정서의 진정성립(문서의 작성과 내용이 명의자의 의사대로 이루어져 진정성이 인정됨)을 부인하는 민사판결이 있었다. 이어 서울동부지검, 서울동부지법, 고양지청 등에서 윤 총장 장모에 유리한 구속영장 청구와 판결, 불기소결정이 연쇄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약정서 작성이 강요된 행위라며 진정성립을 부인한 판결이 눈에 들어왔다. 처분문서는 그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처분문서에 기재된 내용대로 당사자의 의사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민사재판의 확고한 법리다. 나 역시 오래도록 민사재판을 했지만 법원에서 처분문서의 진정성립을 부인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극히 드물었다. 그 이유를 따져보니, 백 모 법무사의 증언과 서울동부지검의 수사가 있었다. 그러면서 구속영장 청구, 불기소결정, 공소제기, 형사판결 등의 수사결과가 민사재판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40)


이 사건을 통해 법기술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을 추론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선행 결정으로 재판을 비롯한 후행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재심 사유에 해당할 수 있는 위증죄를 적용하지 않는다. 민사재판 변론종결 후 (판사들에게 죄질이 아주 안 좋은 것으로 평가되는) 변호사법 위반죄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그 자료를 재판부에 추가 송부서류로 제출한다. 의뢰인은 일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검사와 증인을 매수한다. 서류를 위조한다.’ 예를 들어,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을 다루는 약식명령 사건을 대형로펌이 대리하고 있다면, 배후에 금액이 큰 민사사건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민사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검사의 무혐의결정이나 구속영장, 공소제기 결정을 받아내려고 노력할 것이고, 이것이 선행 결정으로 후행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고백하건대 나도 판사로 일하면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무언가 죄를 지은 나쁜 사람이라는 예단을 먼저 가졌다. 140)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의 1심과 2심 판결문을 보면 임관혁, 이정호, 신응석, 양석조, 김민아, 엄희준 검사 등이 수사와 기소, 공판에 관여했다. 전부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는 김우진, 김기수, 김대권 판사이고(서울중앙지방법원 2011. 10. 31), 전부 유죄를 선고한 2심 재판부는 정형식, 김관용, 윤정근 판사였다(서울고등법원 2013. 9. 16). 정형식 판사는 재판장으로 2008년 8월 20일 정연주 KBS 사장 해임처분의 집행정지신청 기각, 2008년 2월 5일 이재용 삼성 부회장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이력이 있다. 3심인 대법원 전원합의체 13인 대법관 중 8인(양승태, 권순일, 김신, 김창석, 민일영, 고영한, 박상옥, 조희대)은 9억 원 전부를 유죄로 봤고, 5인(이인복, 이상훈, 김용덕, 박보영, 김소영)은 1차 3억 원 외에 2, 3차 6억 원에 대해서는 범죄의 증명이 없어 무죄라는 취지의 반대의견을 냈다(대법원 2015. 8. 20). 대법원장은 보통 다수의견에 한 표를 더하는 것이 관행이므로 실질적으로 7대 5라고 할 수 있다. 144)


검찰 수사기록에서 증거서류가 사본 형태로 편철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대로 믿지 말고 원본의 존재 및 원본과의 동일성 및 발견 경위를 세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원본 자체가 없거나 원본과 다른 내용의 사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결정적인 물증으로 작용한, 경리 직원이 작성한 장부는 원본이 아닌 ‘사본’이다. 이 사건에서 신 모 검사는 ‘공소외 7’을 데려와 검사실에서 한만호 씨와 대면하게 했고, 한만호 씨는 ‘공소외 7’로부터 이 사건은 윗선에서 이미 방향이 정해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듣고 심적으로 무너졌다. 그 후 한명숙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는 자술서를 썼다. 그래서 형사소송법은 거듭되는 인권침해, 허위자백과 그로 인한 오판이라는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공판중심주의와 전문법칙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과도한 반복소환, 규정을 벗어난 사적 편의제공 등 수사비례의 원칙을 어긴 경우에는 더욱더 수사기관의 조서를 믿지 말고 법정에서의 증언을 더 믿으라는 것이다. 147)


# 전문법칙(hearsay rule)은 ‘전문증거는 원칙적으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증거는 경험자 자신이 법원에 직접 보고하지 않고 다른 형태[진술을 기재한 서류(조서, 진술서, 컴퓨터용 디스크 등 기타 정보저장매체)와 타인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진술 등]로 법원에 제출하는 증거를 말한다.


형사법의 저명한 권위자인 미국의 리처드 레오(Richard A. Leo) 교수는 미국 수사관들은 결코 중립적이거나 불편부당하지 않고 오히려 대단히 편파적이고 전략적이며 목표 지향적이라고 결론지었다. 피의자 신문실에서는 통상적으로 ‘반복 추궁’과 ‘범행 부인에 대한 공격’(피의자의 말을 막아버리거나 손이나 팔을 들어 방해하거나 피의자를 무시한 채 이야기하는 등), ‘속임수 또는 역할 기만’(피의자의 대변자인 척하는 것), ‘기망’(피의자에게 불리하게 증거를 조작하거나 왜곡하는 것) 등의 방법이 사용된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훨씬 더 검찰 중심적이고 자백 증거에 의존한다. 수사 과정에서 ‘압박, 거래, 속임수’라는 세 단어로 요약될 수 있는 부당한 수사가 개입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통상의 법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허위자백일 가능성이 많다. 이처럼 수사기관에 의해 유도된 허위자백은 오판을 야기하는 가장 두드러지고 지속적인 원인이므로 재판 과정에서 각별한 경각심이 필요하다. 150-1)


수사검사가 공소제기 후 공판에 직접 관여하는 이른바 직관 제도는 과감히 폐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직관을 지지하는 견해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든다. 하나는 수사한 검사가 사건의 전 과정을 잘 알고 있으므로 유죄를 인정하는 데 필요한 주장과 증거자료를 효율적으로 제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공판관여 검사가 이미 사건을 잘 알고 있으므로, 불필요한 기일 공전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이유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에 반한다. “무고한 사람 한 명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것보다 열 명의 죄인을 풀어주는 것이 더 낫다”는 영국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William Blackstone)의 경구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공판관여 검사의 수를 대폭 늘림으로써 그 검사가 수사검사와 다른 시각에서 충분히 기록을 검토할 시간을 확보해주면 해결될 수 있다. 법률을 개정하여 검사로 하여금 수사권을 갖지 않고 기소 및 공소유지만 담당하도록 하면 공판관여 검사의 수를 확보할 수 있다. 153)


우리나라 검사는 수사와 기소, 영장청구권 등 세계에서 유례없을 정도로 아주 광범위한 권한과 재량을 가지고 있다. 반면 그 권한과 재량의 일탈, 남용 행위에 대한 실질적인 사전·사후 통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2021년 10월 14일 ‘간첩증거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 씨를 불법 대북송금 혐의로 뒤늦게 기소한 것이 공소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것이 검찰의 공소권남용을 인정한 첫 사례다. 대법원은 검사의 자의적인 공소권 행사의 의미에 대해 “미필적으로나마 어떤 의도가 있어야 한다”라고 판시해오고 있다. 따라서 검사는 백이면 백 그런 의도가 없다고 부인할 것이고, 검사의 의도를 추단할 수 있는 수사자료 등이 법정에 잘 제출되지도 않는 재판구조에서는 그 증명이 매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실체진실 발견을 위해 노력하는 판사라면 변호사가 검찰 또는 공범과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지, 피의자·피고인의 주장이나 입증계획을 부당하게 중단·변경시켰는지 등을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154)


나는 법원 판결이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지 깊이 실감한 적이 있다. 2020년 제주지검 사무감사를 갔다가 서울로 복귀하는 길에 비공식 일정으로 제주4·3평화공원을 방문했다. 이때 관계자 한 분이 “법원의 재심 판결이 유족들의 가슴에 맺힌 트라우마를 씻어준다”라고 말했다. 승용차 안에서 몇 분간 아주 짧게 나눈 대화인데도 그분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보이셨고, 내 마음에도 강한 울림을 남겼다. 영구 보존되는 공적인 문서인 판결문에 기재된 “피고인은 무죄”라는 선언은 참으로 목메고 복받치는 치유인 것이다. 그때 법원 판결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법원은 국민의 권리와 형벌을 정하고, 검찰은 형벌을 집행하는 막강한 권력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늘 위협을 받는 존재다. 강제력을 가진 국가권력은 언제라도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그러니 법조인은 최고 규범인 헌법 가치를 준수하고 각자 내면화해야 할 것이다.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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