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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읽다 - 전쟁의 시대에서 끌어낸 생존의 지혜 ㅣ 유유 동양고전강의 4
양자오 지음, 정병윤 옮김 / 유유 / 2015년 7월
평점 :
1 노자와 장자는 다르다
노자와 장자는 둘 다 ‘도’道를 근본으로 삼아, 모든 현상과 변화의 이면에는 일체의 자연을 움직이는 법칙이 있다고 믿었고, ‘도’가 그 법칙의 주재자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도’의 존재를 명확히 이해하고 ‘도’의 규율을 탐색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믿었지요. 그들의 공통점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장자는 ‘도’를 명료하게 깨우치면 우리가 지키려는 여러 가치의 실제를 여실히 바라볼 수 있으며, 그러한 가치들이 사실은 편협한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 모든 동물이 다 ‘썩은 쥐[권력]’를 원하는 것은 아니며, ‘도’를 명료하게 이해하면 그러한 외부 기준 속에 자신을 함몰시키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노자가 ‘도’를 이해하는 목적은 이 ‘도’를 처세와 권력에 운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도’를 이해하는 사람은 ‘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권력을 사용하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13)
『장자』 「천하」天下에서는 전국 시대의 여러 학자를 논하면서 장자와 노자를 별개로 다룹니다. 〈그의 행위는 흐릿해서 자취가 없고 사물을 따라 변화해서 일정함이 없으니, 이는 죽은 것인가, 살아 있는 것인가? 천지와 함께하는 것인가, 신명과 함께 가는 것인가? 아득한데 어디로 가는 것이고, 총망한데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 만물이 일제히 나열돼 있지만 귀속시킬 방도가 없다. 이것도 옛날의 도술 가운데 있는 학설이다. 장주莊周(장자)는 이 주장을 듣고 못내 기뻐했다. 芴漠無形, 變化無常, 死與生與, 天地並與, 神明往與. 芒乎何之, 忽乎何適, 萬物畢羅, 莫足以歸. 古之道術有在於是者, 莊周聞其風而悅之.〉 장자의 학설은 대답보다 물음 자체가 더 중요하며, 일부 근원적인 물음은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지요. 왜냐하면 일단 대답이 되면 그 대답은 본래 ‘무형’無形인 것을 억지로 ‘유형’有形화하는 것이 되고, 본래 ‘무상’無常인 것을 ‘유상’有常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 되는 까닭이지요. 13-4)
노자는 이와 좀 다릅니다. 『장자』 「천하」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근본을 정수로 여기고 형체 있는 사물을 조잡한 것으로 여기며, 사물의 축적을 흡족하게 여기지 않고 담담히 홀로 신명神明과 더불어 거했다. 以本爲精, 以物爲粗, 以有積爲不足, 澹然獨與神明居.〉 이 말은 근본 도리는 깊고 미묘한 것이고, 만물의 실체는 이러한 근본 도리가 조잡하게 겉으로 드러난 것일 따름임을 주장합니다(따라서 사물 자체에 집착하지 말고 근본 도리에 따라 행동하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 ‘근본’의 법칙이라는 것이 매우 역설적입니다. 겉보기에 부유하면 부유할수록 내실은 더 가난해지며, 가장 강인하고 가장 성공한 사람은 다름 아닌 누구보다도 유약하고 겸손하여 아무런 힘도 고집하는 바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어떤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빔’이라고 합니다. 비어 있어야 만물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14-5)
전국 시대 말기, 장자의 제자들에게 장자와 노자는 같은 유파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한漢나라가 들어선 후, 한나라는 진秦나라의 잘못을 거울삼아 진나라와 상반되는 통치 철학을 채택하였고, 그 결과 ‘황로’黄老가 존숭되었습니다. 당시의 ‘도가’道家는 정치와 통치에서 ‘무위’無爲를 중시하며 백성과 함께 휴식한다는 사상에 중점을 두었고, ‘도가’의 대표 인물은 황제와 노자로 장자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황로’는 정치권력상의 원칙이었기에 일반 개인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권력을 장악한 자가 어떻게 “행함이 없으면서 행하지 않음이 없게”無爲而無不爲 하여 피지배층에게 자신을 낮추면서도 더욱더 큰 권력을 운용하고, 권력을 확실하게 쥐고,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더욱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낼 것인가를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한나라 전체에 걸쳐 유행했던 것은 이러한 ‘황로 도가’였으며, ‘황로 도가’는 (정치가 혼란에 빠지는) 한나라 말기에 이르러서야 ‘노장老莊 도가’로 바뀌었습니다. 15)
2 남방의 은자 문화
『사기』에 기록된 노자의 가계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은 당연히 사마천의 시대와 가장 가까운 교서왕의 태부 이해일 것이고, 이해는 이이(노자)의 8대손이니 그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면 이이의 연대는 기원전 3세기 무렵, 즉 전국 시대 중후기에 해당합니다. 이는 『노자』 본문에서 얻은 증거와도 딱 들어맞습니다. 역사학자 첸무錢穆 선생은 노자의 생존 연대에 관한 글을 네 편 썼는데, 여기서 그는 『노자』의 문장에 나온 전국 시대의 사물 이름과 어휘를 구체적으로 예로 들어가며 『노자』가 춘추 시대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부정했습니다. 그리고 이치를 직접적으로 피력하는 『노자』의 서술 방식은 『논어』와는 크게 다르고 웅변적인 논조의 『맹자』나 『장자』와도 다르며, 차라리 『순자』나 『한비자』에 더 가깝습니다. 이러한 안팎의 증거를 총괄해 보면, 첫째, 『노자』의 저자는 전국 시대의 인물이고, 둘째, 『노자』의 제작 시기는 『장자』「내편」内篇보다 늦은 전국 시대 후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22)
고대 중국 남방에는 공자의 시대에 이미 주나라의 가치관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은자 문화’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공자는 철두철미하게 봉건 제도에서 비롯된 종법宗法 문화의 산물입니다. 종법 제도의 핵심 지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공자였기에, 그는 봉건 제도의 질서가 파괴되고 무너질 때 그 흐름을 막을 수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기존의 봉건 예법을 회복하고 유지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남방, 특히 초나라는 지리적으로 변방에 있어 봉건 제도의 토대가 중원처럼 그렇게 확고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서주西周가 세워지기 전에 이곳 남방에 이미 고유의 독특한 문화 전통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남방에서는 노魯나라의 공자와 같이 봉건 제도의 종법에 호감을 갖는다거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종법 질서만큼은 지켜 나가야 한다는 열정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은자들은 난세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여 상처받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평온하고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하고자 지혜를 모았습니다. 22-3)
이들 남방의 ‘은자’ 혹은 ‘지자’智者는 전부터 내려오던 ‘왕관학’王官學(지배 이데올로기)의 추종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 『예기』禮記, 『악경』樂經, 『춘추』春秋가 변경할 수도 없고 내던질 수도 없는 진리의 토대라고 생각했던 공자와 달랐습니다. 그들은 서주 ‘왕관학’의 경전에 따라 말하지 않았기에 어떠한 저작도 남기지 않았고, 그저 그들과 주류 가치관 사이의 충돌을 확실히 보여 주는 기록만을 단편적으로 남겼습니다. 이들 배후의 ‘은자 문화’는 ‘도가’의 먼 원류입니다. 그들은 동주東周의 핵심 지역에서 ‘왕관학’이 ‘제자학’諸子學으로 한창 변화하는 과정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이 변화 과정의 주인공은 공자를 비롯한 ‘유가’입니다. 유가는 자신들의 사상이 어떻게 전파되고 퍼졌는지 비교적 상세하고도 명확한 기록을 남겼지만, 변방에서 일어나고 ‘은자 문화’를 배경으로 한 도가는 그러한 기록을 남기지 않아 그들의 명확한 역사 배경과 변화의 맥락을 찾을 수 없습니다. 23)
3 도를 아는 것과 도를 행하는 것
진秦나라 이전의 모든 저서 가운데 『노자』는 가장 권위적인 문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표현 방식이 직접적이고 명확하여 논의의 여지가 없습니다. 『논어』와 비교하면, 묻고 답하는 대화는 없이 오직 답안만 제시되어 있을 뿐이지요. 또한 『노자』에는 그 이야기를 하게 되는 정황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이는 『노자』가 정황의 영향을 받지 않는 보편적인 기준을 제시함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맹자』나 『장자』와 달리 『노자』에는 ‘논쟁’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입장, 다른 견해를 지닌 인물의 등장도 없고, 그러한 인물과의 열띤 의견 공방 같은 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노자』에는 변론은 없고 설교만 있습니다. 이러한 글쓰기의 배후에는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본인에게 맡긴다는 태도가 깔려 있지요. ‘나는 그대들에게 이러한 이치를 내놓으니 이를 믿고 믿지 않고는 그대들에게 달려 있을 뿐’이라는 식입니다. 이러한 글쓰기는 진秦나라 이전의 글에서는 매우 보기 드뭅니다. 25)
『노자』의 또 다른 특색은 내용이 지극히 간단하다는 점입니다. 흔히 『노자』를 가리키는 ‘『노자』 5천 언言’ 또는 ‘『도덕경』 5천 언’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전체가 약 5천 자에 불과합니다. 글자 수로만 따지면 『장자』의 비교적 긴 장章 하나와 비슷한 분량입니다. 글자 수가 이렇게 적은 탓에 『노자』는 독자에게 문구가 압축적이고 정보가 농축되어 있다는 인상을 갖게 합니다. 그리하여 『노자』의 해설서들은 가능한 한 그 글의 뜻을 확장하여, 백 마디로 『노자』의 한 마디를 설명해야 옳다고 여겨 왔습니다. 이는 『노자』를 일종의 ‘요약문’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노자』는 정말로 그렇게 복잡하고 풍부한 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노자』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후세 사람들의 지레짐작으로 『노자』 본래의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의미가 덧붙여진 것은 아닐까요? 『노자』는 처음부터 곁가지가 무성한 거목巨木의 축소판이 아니라 그저 한 그루의 바싹 마른 등나무는 아닐까요? 25)
사실 『노자』가 말하는 핵심 도리는 매우 직접적이고 간단합니다. 『노자』에서 알리고자 하는 첫 번째 내용은 만물에 앞서는 ‘도’道의 존재입니다. 『노자』에서 말하는 ‘도’는 모든 사물을 관할하고 통솔하는 주재자입니다. ‘도’가 이처럼 만물을 관할 통솔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어떤 개별 원리로부터 도출된 것도 아니고 무엇에 의해 지배당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두 번째 내용은 ‘도’에 대한 이해입니다. 여기에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자세가 꼭 필요한데, 특히 분별이 생기기 전의 모습으로 물러서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분별이란 항상 상대적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긺長은 짧음이 있음으로 해서 생기고, 높음은 낮음이 있음으로 해서 생기며, 선은 악이 있음으로 해서 생깁니다. 분별에 맞닥뜨리면 우리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그러한 분별이 생기기 전의 ‘혼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노자는 주장합니다. 일체의 이러한 분별이 생기기 전의 ‘대혼돈’, 그것이 바로 ‘도’입니다. 26)
『장자』는 내편内篇과 외편外篇부터 잡편雜篇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우리에게 ‘혼돈’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계를 보여 주며, 이는 보통 사람들이 ‘분별’을 통해 바라본 세계와는 크게 다릅니다. 『장자』는 이 혼돈의 세계를 묘사함으로써 독자에게 세속의 시각을 버리고 ‘혼돈’으로 들어가 보라고 권합니다. 『노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혼돈’의 시각을 갖게 된 후 그것으로 속세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지도합니다. 그러므로 『노자』에서 말하고자 하는 세 번째 내용은 어떻게 하면 ‘도’에 따라 적확하고도 효과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노자』의 이 내용은 ‘주’主, 즉 군왕, 또는 지배층을 상대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권력을 쥔 사람에게 어떻게 권력을 운용할지,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더욱 큰 권력을 누릴지, 차지한 권력을 어떻게 하면 잃지 않을지를 가르쳐 줍니다. 『노자』 5천 자는 기본적으로 이 세 가지 내용을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26-7)
노자는 제3장에서 세상을 통치하는 데 도리를 어떻게 운용할지 이야기합니다. 〈현인을 받들지 않아야 백성을 다투지 않게 할 수 있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히 여기지 않아야 백성이 훔치지 않게 할 수 있으며, 욕심이 날 만한 것을 내보이지 않아야 백성의 마음을 어지럽지 않게 할 수 있다. 不尚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묵가는 봉건 제도의 귀천貴賤 구분을 없애고 오직 사람의 능력과 덕행만을 보아, 능력 있고 덕행이 높으면 그를 중용하여 높은 관직과 권력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노자는 ‘현인 숭상’이 높은 관직과 권력 쟁취로 사람을 내몰아 결과적으로 분쟁만 일으킨다고 보고 있습니다. “욕심이 날 만한 것을 내보이지 않는다”라는 문장에서 ‘내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은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통치술 측면에서 봤을 때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물건을 보여 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마음의 평정을 지킬 수 있고 기존의 질서도 유지될 수 있습니다. 31)
〈이러한 까닭에 성인의 다스림은 마음은 비우게 하나 배는 채우게 하며, 뜻은 약하게 하나 뼈는 강하게 한다. 항상 백성을 무지무욕無知無欲하게 하면, 지혜롭다는 자들은 감히 일을 벌이지 못하고 행할 바가 없게 되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強其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知者不敢爲也, 爲無爲, 則無不治.〉 노자의 ‘성인’에는 지극히 높은 ‘도’의 지혜를 지니고 있다는 뜻 외에도, 이 ‘도’의 지혜로 백성을 통치하여 최대의 효과를 얻는다는 뜻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성인’은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까요? 사람들의 배는 든든히 채워 주고 마음은 텅 비게 하며, 육체는 건강하게 하되 의지는 약하게 합니다. 사람들이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 현재에 늘 만족해한다면, 설령 지식인이 몇 있다 해도 어떠한 행동도 섣불리 할 수도 없고 할 방법도 없을 것이며, 또한 어떤 행위를 한다 해도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가겠지요. 32)
4 커다란 도에는 사사로움이 없다
제3장에서 ‘성인의 다스림’이라는 현실적인 측면을 이야기한 다음, 노자는 제4장에서 다시 ‘도’라는 추상적인 내용으로 돌아갑니다. 〈도는 비어 있으나 쓸 수 있으며 채워도 가득 차지 않는다. 도는 심원하여 만물의 근원인 것 같다. 道沖而用之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 여기서 “비어 있다”라는 말은 가운데가 텅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 구절을 풀이해 보면, 도는 가운데가 비어 있는 그릇과 같지만 보통의 그릇과는 달리 그 안에 물건을 아무리 담아도 가득 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처럼 말이지요. 도는 만물을 수용할 수 있어 마치 만물이 모두 ‘도’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깊은 물처럼 움직임 없는 고요한 상태, 더 나아가 도대체 ‘유’인지 ‘무’인지를 판별할 수 없이 극도로 적요한 상태가 ‘도’에 가깝다고 노자는 말합니다. ‘도’는 만물이 생성되기 전부터 존재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도’보다 앞서 존재할 수 없고 ‘도’를 만들어 낼 수도 없습니다. 34-5)
‘도’의 작용은 제5장에서도 이어집니다. 〈천지는 어질지 않아 모든 것을 풀로 만든 강아지처럼 다룬다. 성인은 어질지 않아 백성을 풀로 만든 강아지처럼 다룬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도’는 스스로 그러한 것이라 어떤 사물을 특별히 아끼는 바 없이 만물을 ‘일시동인’一視同仁합니다. 장자와 노자가 말하는 ‘인’仁과 ‘애’愛에는 모두 ‘편애’偏愛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인’은 위에서 아래로의 편애를 뜻하고, ‘애’는 평등한 관계에서 나타나는 편애를 뜻하지요. 그러니 ‘도’가 만물을 ‘일시동인’한다는 말은 ‘불인’不仁, 즉 어떤 편애도 없이 만물을 똑같이 대한다는 뜻입니다. 햇빛이 대지를 골고루 똑같이 비춰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난이 닥칠 때도 ‘도’는 무언가를 특별히 사랑하는 일이 없기에 모든 만물이 예외 없이 자연의 희생물이 됩니다. ‘성인’은 ‘도’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는 자연이 만물을 대하는 방식을 모방하여 자신이 통치하는 백성을 아무런 편애 없이 똑같이 대합니다. 35-6)
제13장입니다. 〈큰 걱정을 귀하게 여기기를 내 몸과 같이 하란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나에게 큰 걱정이 있는 까닭은 내가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몸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나에게 무슨 걱정이 생길 수 있겠는가? 何謂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아주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대합니다. 자신이 이해관계에 있을 때는 특히 더 그렇지요. 삶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에게 자아와 사리사욕이 있고, 신체의 감각 기관이 각종 자극을 받는 까닭에 정신적으로 평정심과 평상심을 유지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자기중심적이거나 자아확장의 생각을 갖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가능한 한 자아를 제거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배려와 관심과 우려를 내던져야 합니다. 자아와 자기 몸을 버릴 수만 있다면, ‘걱정거리’는 사라지고 이해득실을 염려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며 근심과 공포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44)
노자는 ‘상’常을 중시합니다. 이는 오래도록 변치 않는 안온하고 균형 잡힌 상태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몸을 천하만큼이나 귀하게 여긴다면 천하를 줄 수 있고, 자신의 몸을 천하만큼이나 아낀다면 천하를 맡길 수 있다.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노자는 (장자처럼) 인간은 장자가 상상한 것처럼 육신과 형체를 벗어던지고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며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어떤 신비로운 공간에서 살 수 있는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란 육신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몸을 천하만큼이나 소중히 여길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노자는 말합니다. 자신의 욕망과 좋고 싫음의 감정에서 개인적인 성분을 모조리 없애 천하 사람들과 하나가 되면 ‘자기 몸’은 곧 ‘천하 몸’이 됩니다. 그리되면 ‘자기 몸’은 더 이상 개인의 욕망과 좋고 싫음을 실현하는 곳이 아니라, 천하의 보편적인 욕망과 천하의 보편적인 좋고 싫음을 반영하고 맡기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44)
5 고난과 난세 속에서 탄생한 철학
제31장에서 노자는 전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직접적이고도 강렬하게 표현합니다. 〈군자는 일상에서는 왼쪽을 귀하게 여기나, 병기를 쓸 때는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병기는 상서롭지 않은 기물이기 때문에 군자가 쓸 기물이 아니다. 부득이 이것을 쓸 때에는 담백한 마음으로 쓰는 것이 최선이다. 君子居則貴左, 用兵則貴右. 兵者不祥之器, 非君子之器, 不得已而用之, 恬淡爲上.〉 군자는 평상시 생활할 때는 왼쪽을 존귀하게 여기지만, 병기를 들고 싸워야 할 경우에는 오른쪽을 존귀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군자와 병기가 서로 대립되는 위치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주나라 예절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과 관련된 것은 왼쪽이 오른쪽보다 높고 중요하며, 상례喪禮와 제례祭禮 같은 죽은 사람과 관련된 것은 오른쪽이 왼쪽보다 높고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는 삶과 죽음의 영역을 구분하는 주나라 사람들의 원칙이었습니다. 전쟁이 ‘삶’이 아닌 ‘죽음’에 속하는 것임을 노자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49)
〈승리해도 불미스럽게 여겨야 하니, 그것을 찬미하는 자는 바로 사람 죽이는 것을 즐기는 자이다. 사람 죽이는 것을 즐기는 자는 천하에서 뜻을 얻지 못할 것이다. 勝而不美, 而美之者, 是樂殺人. 夫樂殺人者, 則不可以得志於天下矣.〉 이 점에서 노자의 견해는 맹자와 일치합니다. 『맹자』 「양혜왕」梁惠王에서 맹자는 양梁나라 양왕襄王에게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통일할 수 있다”不嗜殺人者能一之라고 했습니다. 맹자는 각국이 모두 적을 죽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살인을 좋아하지 않고, 살인을 낙으로 여기지 않고, 전쟁의 승리를 불미스럽게 여기는 사람이라야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노자와 맹자의 이러한 견해는 전국 시대 중후기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정을 반영한 것입니다. 당시 중국은 너무도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고, 그로 인해 백성의 생활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습니다. 전쟁을 혐오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50)
이 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노자』의 사상과 주장이 어떠한 배경에서 나왔는지 명확히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노자』의 핵심 개념인 ‘무위’는 전국 시대의 빈번한 전쟁에 대한 저항 의식에서 생긴 것입니다. 『노자』에서는 한 나라의 군주는 ‘무위’無爲를 행해야 하고 ‘무위’를 행할 수 있어야 ‘무불위’無不爲(행하지 못하는 바가 없음)하게 됨을 거듭 강조하는데, 이는 바로 ‘유위’有爲(인위적이고 작위적인 행위)에 급급한 당시의 군주들이 더 넓은 영토, 더 많은 재물을 차지하고자 무수한 백성을 전쟁터로 몰아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듭되는 전쟁에 지친 백성들은 쉬고 싶었습니다. 『노자』는 사람들의 이러한 심정을 인생철학과 처세법으로 전환해 ‘무위자연’을 주장했습니다. 그리하여 자연 상태를 회복하고 법의 사용을 줄이면, 오히려 더 많은 권력을 차지하고 권력 기반을 더욱 탄탄히 다질 수 있으며 차지한 권력을 더욱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역설逆說을 편 것입니다. 51)
사실 『노자』는 비일상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에 맞서는 일련의 지혜입니다. 그 시대 권력자들의 욕망은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었고, 그에 대항할 아무런 힘도 지니지 못한 백성은 권력자의 이러한 욕망 충족을 위해 끊임없이 강제 동원되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시대 흐름에 『노자』는 교묘히 브레이크를 걸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는 군주에게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어떻게 군주가 될 수 있는지를 실제 군주보다 더 잘 이해했고, 그 입장에서 노자는 그 군주들의 권력 사용 방식을 비판했던 것입니다. 노자는 “올바른 말은 반대처럼 들린다”正言若反는 역설의 수법을 사용하여 군주에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말고, 더 이상 야심을 확대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뒤로 물러서고 자기주장을 줄여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이러한 말투, 이러한 권위적인 태도가 아니고서는 욕망이 급팽창하는 전국 시대에 어느 군주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