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 - 원서 전면개정판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34
스티브 브루스 지음, 강동혁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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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학의 위상


"좋은 과학 이론은 내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이를 통해 일상적 추론과 과학적 이론이 즉시 구분된다." "좋은 과학 이론은 증거와 합치해야 한다. 뻔한 소리인 것 같지만, 이런 면에서 과학자들이 마땅히 요구하는 기준은 일반인들이 습관적으로 수용하는 수준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하다." "과학적 발견이 절대적·영구적으로 참인 경우는 결코 없다. 과학적 발견은 언제나 잠정적이며 늘 개선의 여지가 있다." "좋은 과학은 주제와 관련된 '광범위한' 자료의 수집을 어떤 설명을 다른 설명으로 대체할 때의 핵심 요건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런 구분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엽기적인 생각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믿어야 할 이유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훨씬 더 강력한 검증 방법은 믿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다. 좋은 과학에서 가장 설득력 있다고 여기는 개념들은 곧 틀렸음을 입증하려는 반복적인 시도에도 살아남는 개념들이다."(13-5)


"사회과학은 선택에 따라 행위하는, 지각 있는 존재들을 연구한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자유로운지에 대한 익숙한 논쟁에 발목 잡힐 필요가 없다. 인간 행위의 획일성이 어디에서 기인하든 그 근원들이 전면적인 구속력을 지니는 건 아니라는 점만 인정하면 된다. 아주 억압적인 체제는 우리가 가진 선택지를 순응 아니면 죽음 두 가지로 축소시킬 수 있겠지만 우리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이처럼 자연과학의 대상과 인간은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물은 가열되더라도 증발성을 높이지 않겠다고 거부할 수 없다. 압력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한, 물은 나흘 동안은 섭씨 100도에서 끓다가 닷새째에는 그러기를 거부할 수 없다. 인간은 그럴 수 있다. … 화학자는 실험을 통해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내면 탐색을 끝낼 수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자에게 그건 시작일 뿐이다. 특정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이 항상 특정한 뭔가를 한다는 걸 알아내더라도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할 것이다."(26-7)


"신념이나 가치관, 동기, 의도에 대한 사회학자의 관심에는 자연과학 분야에는 없는 우려가 딸려온다. 바로 인간을 이해하려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관한 그들 자신의 시각이나 진술을 어떤 식으로든 얻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이러한 주장은 한 단계 전에도 적용된다. 다시 말해, 사회학자는 어떤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해할 만한 사회적 행위를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동기에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액체가 기체로 변하는 순간을 규명하기 위해 액체의 정신 상태를 참고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행위는 관찰만으로는 알 수 없다. 즉, 물리적 활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자신과 같은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 보이는 단순한 행동들에 대해서는 종종 그 의미를 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행동의 의미를 단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떤 방법을 쓰든 간에) 그 사람에게 〈뭐하고 계십니까?〉라고 묻는 것뿐이다. 행위를 알아보는 데만도 의도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28-9)


"하지만 질문을 던지고 받는 행위는 그 자체로 사회적 상호작용의 일부다. 사람들이 내놓는 진술은 고의적 허위일 수 있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 "물론 사회학에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불순물에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정보를 걸러내는 간단한 마법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법원은 이따금씩 진실에 도달하고, 유능한 심문자들은 모호한 변론에서 구멍을 찾아내며, 연인들은 기만행위를 알아차리고, 여론조사원들은 소위 '순응효과'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낸다. 예컨대 〈다음 중 지난 주말에 한 행동은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스포츠, 쇼핑, 친지 방문, 영화 관람 등이 들어간 긴 목록 안에 종교 활동이라는 항목을 끼워넣으면 〈지난 주말에 종교 활동에 참여하셨습니까?〉라고 직접 물을 때마다 종교 활동을 했다는 응답이 적어진다. 사람들의 말에서 진실을 추출하는 단 하나의 확실한 기술이 없다고 해서 예상되는 문제들을 피할 창의적인 방법들을 고안하지 못한 채 늘 실패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29, 34-5)


2 사회적 구성


# 사회학의 기본 전제 : 현실이란 어디까지나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우리의 행동에는 숨겨진 사회적 원인이 있고, 사회적 삶의 많은 부분은 본래 모순적이다.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때) 생물학에서 출발하는 게 유용하다면, 그건 동물은 삶의 대부분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데 비해 인간은 그렇지 '않은' 정도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물학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개인 차원에서는 자기관리의 문제가, 집단 차원에서는 협동의 문제가 생긴다." "아르놀트 겔렌의 말마따나 인간은 '본능의 결핍' 때문에 생긴 틈을 메우기 위해 사회적 틀을 만들어낸다. 그런 틀 중 일부는 형식법으로 정해질 수 있지만 많은 부분은 관습으로 남는다. 그 어떤 법률도 관리직에 종사하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짙은 색 정장을 입어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위직 임원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옷 입는 방법을 알고 있다. 가장 효과적인 경우, 구속복은 외부의 신체만이 아니라 내면의 정신에까지 입혀진다. 우리는 문화 속에서 사회화되고, 이에 따라 문화의 중요한 요소들이 우리의 성격에 새겨진다."(42-6)


"세상을 실제적인 부분과 상상된 부분으로, 객관적인 외부의 현실과 주관적인 내면의 풍경으로 나누는 건 매력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 영역들은 상호주관적(intersubjective)이다. 상상에 참여하는 사람이 충분히 많다면 그 상상은 객관적 세계와 구분되지 않는 지속적이고 억압적이기까지 한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윌리엄 토머스는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현실이라고 정의하면 그 결과는 현실이 된다고 했다. 집에 불이 났다고 믿는 사람은 집에서 도망칠 것이다. 집이 불타 무너지지 않으면 그가 틀렸다는 사실이 입증되겠지만, 그의 행위를 이해할 때 중요한 건 그의 생각이지 진실이 아니다." "단,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은 공유되는 한에서만 사회적 구성도 효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어낸 것이든 아니든 모두가 그것을 믿는다면 그건 더이상 신념이 아니다. '세상의 이치'다. 소수만이 공유하는 세계관은 그런 견고함을 획득하지 못하고 믿음으로만 남아 있다."(53-5)


"인간은 자신이 속한 문화의 외적 윤곽을 자신의 정신과 성격 속에 복제할 때에 비로소 사회적 존재가 된다." "안정적인 사회에서는 배우들이 자기 배역을 그냥 대본대로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배우들은 실제로 그 배역에 몰입해 살아가는 '메소드 연기자'다. 대본과 무대 지시, 대사 일러주기 등 외부의 도움은 더이상 필수적이지 않다. 배우들은 등장인물 자체가 된다. 사회학은 이런 일이 일어나는 방식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상당 부분 관련되어 있다. 사회학의 핵심 원칙 중 하나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보는 방식은 타인이 그를 보는 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는 사회를 서로 맞물린 역할들의 체계라고 설명하면서, 먼저 이 현상을 거시적으로 살펴보았다. 아버지가 되려면 아들이나 딸이 필요하다. 교사가 되려면 학생이나 제자가 필요하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자녀들이 그를 좋은 아버지라고 여기고 다른 사람들(배우자, 자녀의 조부모, 친구, 이웃들)이 그런 관점을 공유해야 한다."(75-6)


"사회적 상호작용이 정체성 형성에 끼치는 중요한 영향 중 한 가지는 누군가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시도가 '자기충족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소녀가 방 정리, 약속시간 지키기, 과제 준비물 챙기기 등에 자주 실패하면 그때마다 아버지가 그녀를 '바보'라고 지적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이름표 붙이기가 일상적으로 반복되면, 소녀는 자신에 대한 그런 이미지를 내재화할 수 있다. 소녀는 자신을 무능하다고 여기고 그 배역을 점점 더 충실히 연기한다." "그렇지만 이름표가 붙게 되는 사람도 그저 수동적으로 반응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체성은 '협상'된다. 소녀는 아버지의 뇌리에 박힌 자신의 상을 그냥 받아들이고 거기에 함축된 예상에 부응하는 것 외에도 달리 반응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더구나 소녀와 상호작용하는 모든 사람이 그녀에게 동등한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아이에게는 부모(혹은 부모의 대리인)가 가장 중요한 타자가 되겠지만, 연상의 친구들이나 다른 친척들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77-8)


3 원인과 결과


"사회학이 상식과 다른 한 가지 측면은 우리가 하는 생각과 행위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만족스러운 자아상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행동을 설명하려면 그가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에도 규칙적 패턴이 있어야 하고, 그 패턴은─최소한 부분적으로─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난, 그가 인식하지 못하는 외부의 힘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어야 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유와 제약 사이에서 빚어지는 이런 역설을 〈우리는 운명을 만들어나가지만, 우리가 선택한 상황 속에서 만들어나가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깔끔하게 표현했다. 예컨대 나는 일요일 오후에 어디로 차를 타고 갈지 정할 수 있지만, 내가 운전하는 방식은 교통법규나 다른 운전자들의 행동에 따라 결정된다." "여기에 더해 우리의 정체성이나 행위의 상당 부분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회적 원인이 있다. 사회학자는 규칙적 패턴을 탐색하고 여러 세계를 체계적으로 비교하여 그러한 원인을 조명할 수 있다."(86-7)


"현대인들에게는 부와 교육, 직업을 근거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행위가 진정한 감정에 대한 배신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배우자의 여러 특성을 분석해보면, 사랑과 애정에 근거해 내렸다는 결정들이 정작 선명한 '선택 결혼'의 패턴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의식하거나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종교, 인종, 계급, 교육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결혼한다. 부분적으로는 기회의 차이에서 생기는 결과다. 우리는 우리와 유사한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묘한 세뇌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속한 사회집단은 우리를 사회화하여 특정한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태도, 말투, 억양, 어휘 등을 다른 것에 비해 더 매력적이라고 느끼게 한다. 선택은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지(혹은 어떤 사람을 멀리할지)를 결정하는 요소들은 성실한 중매인이 짝을 맺어줄 때 고려할 법한 요소들과 거의 같다."(88-9)


"사회학적 관점에서 중요한 또 한 가지 요소는 비의도적 결과다.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즈가 간결하게 표현했듯, 〈쥐들과 인간들이 최선을 다해 세운 계획은 자주 잘못된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겠다고 작정하지만, 작동 중인 힘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늘 예상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국 아주 다른 무언가를 달성하게 된다." "20세기의 첫 10년 동안 독일에서 좌파 정치운동을 활발히 펼쳤던 로베르트 미헬스는 좌파 노동조합과 정당들이 진화할 때 나타나는 공통적 패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런 조직들은 모두 세상을 재구성하겠다는 급진적 시도로서 시작되지만 점차 보수화되어 현실과 화해했다." "겉보기에는 다른 영역이지만, H. 리서츠 니버가 보수주의 개신교 분파들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발견했다. 18세기 후반의 감리교 운동은 급진적이었다. 초기에 이들은 세상의 재건을 설교했지만 점차 사회적으로 보수화됐다."(93-4)


"이런 사례들은 인간의 성찰적 사고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곤 한다는 사실을 깔끔하게 설명한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싶을 때, 혹은 변화가 불가능하거나 변화하고 싶지 않을 때 자신을 위로할 목적으로 사회학적 설명을 동원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실수나, 자신의 행위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을 통해서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미헬스의 결론은 흔히 과두제의 철칙이라 불리고 니버의 주장은 사회 진화의 기본 법칙을 미헬스와 비슷하게 발견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이것들은 자연과학적 법칙이 아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무정부주의자들은 타협과 사회적 존중을 향한 인력(引力)을 회피할 수 있다. 급진적 정치운동은, 결과적으로 그 운동의 파멸을 초래한다 하더라도 최초의 에토스에 계속 충실을 기할 수 있다. 분파들은 종파로서의 체면을 향한 인력에 저항할 수 있다." "브롬화물은 항상 부롬화물이 작용하는 방식대로 작용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엇을 할지 생각할 수 있다."(98-100)


4 현대


"사회학은 관찰 대상이 되는 세계와 거리를 둔 객관적 학문인 동시에, 자신이 설명하는 대상의 징후이기도 하다. 과학에 청교도들이 끼친 영향을 연구한 로버트 머튼은 처음에는 유대교가, 다음에는 기독교가 합리화를 이끈 힘이었다고 주장했다. 기독교는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게 행동할 때가 많은) 여러 신들 대신에 단 하나의 신만 상정하되 그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결국 종말로 이끌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는 별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제한을 둠으로써, 세상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고 가정하고 물질세계에 대한 과학적 태도를 허용했다. 더욱이 체계적인 연구를 저해하는 방식으로 물질세계 자체를 신성시하지도 않았다. 종교개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 권위가 거부된 이후, 과학자들은 종교적 의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학문을 추구할 수 있었다. 머튼에 따르면, 현대 과학이 가능해진 것은 기계사용에서의 기술적 진보보다(이 역시 중요하긴 하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덕분이었다."(102-3)


"사회학이 하필 이 시기에 등장한 이유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을 할 수 있다. 14세기 아랍 철학자 이븐 할둔과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 및 역사 관련 저술을 하면서 사회학적 관찰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을 통해 현대 사회학자들이 승인할 수 있는 학문적 업적이 확인된 것은 18세기 말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 애덤 퍼거슨에 이르러서야 일어난 일이다." "일관적·총괄적인 문화, 소수이지만 강력한 사회 제도, 그 제도들을 신의 권위로 떠받치는 종교가 있는 전통 사회에서는 세상을 사회적 구성물로 보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삶의 방식이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사람, 문화가 아주 다른 외국으로 여행을 간 사람들도 일부 있었지만, 이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사회적 세계가 너무 견고해서 상대주의적 사고는 억제되었다. 전통의 약화, 종교적으로 정당화되는 사회 질서의 쇠퇴, 사회적 다양성의 증대는 모두 사회학의 필수적 전제조건이었다."(103-4)


"로버트 머튼에 따르면, 사회에는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두 영역, 즉 문화와 사회 구조가 있다. 문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욕망해야 하는지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지시한다. 구조는 권력, 부, 지위를 배분한다. 전통 사회는 구조가 위계적이었다.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쪽은 소수였고 대부분은 무력하고 가난했으며, 문화는 그런 격차를 정당화했다. 서로 다른 계급의 사람들은 삶에서 아주 다른 것들을 기대하고 각자의 분수에 맞는 방식으로 행동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얻는 것은 균형을 이루었다." "현대 사회 체제의 핵심에 갈등이 뿌리내리게 되는 건 문화와 사회 구조가 더이상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화는 민주적이다. 물질적 성공이라는 목표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열망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과 어우러지지 않는다. 실력주의라는 수사는 모두에게 같은 것을 원하도록 장려하지만, 계급 구조의 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적법하게 목표를 이를 수 없음을 의미한다."(127-8)


"안정적인 사회들은 대부분의 일이 '마땅히 되어야' 하는 방식대로 돌아간다는 합의를 깔고 있다. 사회적 절차를 하나하나 세세하게 정당화하는 단일한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보편적이고 열정적으로 수용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응분의 보상을 정당하게 받는다는 전반적인 느낌은 어느 정도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 "현대 세계의 중심적 특징인 평등주의적 충동은 눈에 띄는 삶의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한다. 실력주의가 현실이라기보다 소망으로만 남아 있는 한, 어떤 해우이에 동참하라고 독려받았으되 받아야 할 몫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별다른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응당 자기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취하게 된다." "인간 욕망의 무한성을 감안하면, 모든 것을 가진 사람도 여전히 좀더 많은 것을 원할 수 있다. 세속적인 성공을 강조하는 동시에 개인의 권리를 공동체의 이득보다 우선시하는 문화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객관적 지위와는 별개로 박탈감을 느끼게 만든다."(132-3)


"포스트모더니티는 새로운 것으로 보이는 두 가지 발전상을 가정한다. 즉, 경제적 이해관계의 중요성 하락과 개인적 선호 및 정체성의 중요성 증가다." "일부 사람들에게 개인적 선호는 객관적이고 상호주관적인 현실을 능가하는 카드로 여겨진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민족국가가 무력해졌다고도 가정한다. 무역과 금융이 세계화되면서, 경제를 통제하는 국가의 능력은 감소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세상에서는 고착되고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 중요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설명은 심각하게 과장되었다." "위성과 인터넷 덕분에 새로운 방식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보는 드라마는 디킨스의 소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사실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이 우리 시대의 디지털 콘텐츠를 상당 부분 제공한다." "민족국가는 여전히 건재하다. 국가가 무너지는 건 대체로 국가적 정체성이 약회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종교-민족적 소수자들이 그들만의 국가를 원하기 때문이다."(136-9)


5 사회학이 아닌 것


"사회학이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혹은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사회학을 비판하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으며, 사회학 분야에 속한 사람들도 이를 모르지는 않는다. 이해할 만하지만 그래도 잘못된 생각이다. 이해할 만한다고 말한 것은 사회학의 발전에 기여한 초기 학자들 중 다수가 사회적 세계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마음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들은 사회학에 필수적인 가치(정직성, 명확성, 성실성 등)와 제쳐두어야 하는 학문 외적 관심사를 구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에만 생산적인 대화를 제대로 할 수 있다. 사회학 강의를 하다보면 학생들이 사회적 문제와 사회학적 문제를 구별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이 흔히 보인다. 연구 프로젝트의 주제를 선택하라고 하면, 학생들은 거의 틀림없이 세계의 어떤 나쁜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노숙자나 알코올 중독이나 가정폭력에 대해 '뭔가 하고' 싶어한다. '한다'는 탄력 없는 동사야말로 설명과 개선을 혼동하는 뚜렷한 증상이다."(148-51)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는 원칙을 벗어나면 특히 쉽게 무너진다. 핵심적 원칙을 오해하면 틀림없이 당파성이 유발되기 때문이다. 현실이 인간의 산물, 즉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점을 인정하면 인지와 객관적 현실 사이의 확고한 연결이 약화되고 우리 자신이 하는 진술과 설명에 대해 취하는 입장도 의문시하게 된다. 더욱이 다른 사람들이 사태를 보는 방식도 그들의 공통적인 이해관계에 엄청나게 좌우된다는 점을 지적하게 된다. 이는 (밀접하게 연관될 수는 있겠지만) 정직성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거짓말보다 미묘한 뭔가에 관한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그 신봉자들이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점에서 시치미떼기와 구별된다. 청소년 임신율이 높아진 건 무신론자들이 공립학교에서의 기도를 금지한 결과라고 주장하는(일단 이런 주장이 오해라고 해보자) 미국의 보수주의 기독교도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들끼리 공유하는 신념에서 영향을 받아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 된 것이다."(157-8)


"자신의 시각을 정확한 것으로, 타인의 시각을 이데올로기로 여기고 싶은 충동이 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사회학은 이데올로기가 갈수록 많은 사회집단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밝혀냄으로써 그런 충동을 방해한다. 1960년대에는 의사나 변호사 등이 장기간의 훈련을 통해 전문성을 획득하고 외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우며(동료가 임무를 태만히 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의사뿐이다) 직업상의 신규 진입을 통제할 수 있고 높은 수준의 보상을 누린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전문직을 여타 직업과 구별하기 일쑤였다. 전문직과, 마찬가지로 접근을 제한하여 보상을 높이려는 다른 형태의 (기계공업 같은) 숙련노동 사이에는 명확한 선이 그어졌다. 전문직 종사자들은 어떤 높은 차원의 사회적 선(예컨대 보건이나 정의)에 봉사한다는 이유로 그런 행위를 해도 정당화되었다. 엔지니어들이 그런 행위를 하면 직업에 대한 부당한 제약으로 여겨졌고, 많은 국가에서는 그런 행위를 불법화했다."(158-9)


"당파주의자들을 변호하는 또 한 가지 방식은 민족 연구와 여성학 분야에서 인기를 얻었다. 이 분야에서 주장하는 것은 객관성의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다. 설령 그 일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객관성이 사회학적 기획을 방해한다는 얘기다. 그들은 설명하려면 일단 이해해야 하고 이해하려면 일단 경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흑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오직 흑인만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고, 오직 여성만이 다른 여성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의심하게 되는 타당한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주장이 공평하게 제기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사회학자들은 오직 귀족만이 귀족정을 유용하게 연구할 수 있다거나 파시스트만이 파시즘을 연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식의 특별한 주장은 연구자 자신에 의해서거나 연구자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만 제기된다. 많은 경우 이는 그저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방법일 뿐이다. 미덕을 과시하는 일이다."(161-2)


"이데올로기적 오염의 문제에 대한 한 가지 응답이 노골적인 당파성이라면 또다른 응답은 상대주의이다." "문화연구에서 상대주의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작가나 화가로서의 전문적 기술을 비교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제인 오스틴이 애거서 크리스티보다 좋은 작가이고 존 컨스터블이 잭 비트리아노보다 나은 화가인지는 대체로 취향에 달린 문제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사회적 위계가 취향의 위계를 만들어낸다. 특정 계급이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결정한다. 1950년대 영국에서는 〈예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안다〉는 표현이 교육 수준이 낮은 전형적인 하위 계급 사람들을 모욕하는 일종의 농담이었다. 1990년대에는 이것이 숭고한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표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사고와 사회과학의 가능성을 믿는다면, 모든 이에게 믿고 싶은 것을 믿을 권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어떤 믿음은 틀렸다고 주장할 권리도 주어야 한다."(168-70)


"상대주의에 대한 종합적 반박은 창조와 발견을 구별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다. 설명과 이론이 사회적 구성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설명이나 이론이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사실은 창조해낸 것들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뉴턴은 '중력'을 발견했지만, 그의 지적 활동 전에도 사람들은 지표면에 발을 붙이고 사는 데에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그는 중력을 발견한 것이다. 또다른 반격은 사회적 설명들이 한낱 내러티브일 뿐이라는(또한 모든 내러티브는 동등하다는) 상대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사회학자들은 증거에 대해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물론 합의 자체가 증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자들이 뭔가에 합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저 바깥에 진짜 세계가 우리의 믿음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아무리 못해도 개인적 선호를 표현하는 것 이상의 방식으로 그 세계를 탐사하고 싶은 열망을 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171)


"문화적·사회적 경계를 넘어서는 이해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중요하다. 그러나 상대주의에 대한 이런 반응이 어려운 것은 교전수칙 자체를 거부하는 상대주의자들이 이런 응답에도 별다른 감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전면적 거부를 넘어 합의에 이르는 최선의 응답은, 상대주의자들에게 그들 자신은 한결같이 그들이 공언한 철학적 입장에 걸맞게 행동하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분명 그들은 그렇지 않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책을 쓰고 강연을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주장을 전하려고 애쓴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옳고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그들 스스로 처방한 약을 약효가 발휘될 만큼 충분히 복용했다면, 그들은 장사를 집어치워야 한다. 어떤 책도 다른 책보다 낫지 않다면, 왜 그런 주장을 펴겠다고(그것도 누차) 나무를 베는가? 오류로부터 진실을 구별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그들의 시각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는가?"(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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