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8
벤체 나너이 지음, 박준영 옮김 / 교유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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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물관에서 길을 잃다


"미학을 지나치게 엘리트주의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술가와 음악가, 하물며 철학자들까지. 이것은 미학의 대상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며 그런 오해를 바로잡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미학의 영역은, 고급·저급에 관계없이 예술의 영역보다 훨씬 넓으며 우리가 살면서 관심을 기울이는 많은 것을 아우른다." "미학은 어느 예술품이 훌륭한지 말해주지 않는다. 어느 경험이 가치 있는지, 가령 거리에서 쇼팽을 듣는 경험이 가치 있는지 아니면 연주회에서 쇼팽을 듣는 경험이 가치 있는지 말해주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경험이 당신에게 가치 있다면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 경험은 미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미적 쾌감을 얻는 것은 당신에게 달렸다. 미학은 어느 경험이 용인되는지를 가르쳐주는 휴대용 도감이 아니다. 미적 쾌감을 찾도록 안내해주는 지도도 아니다. 미학은 가치 있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석하는 방편이다. 미학은 판단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10-11)


2 섹스와 마약, 로큰롤


"미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경험은 어찌 보면 각양각색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경험뿐 아니라 유튜브에서 '극장골' 장면 모음을 보거나 신고 나갈 구두를 고르는 경험, 커피 메이커를 조리대 어디에 둘지를 결정하는 경험도 미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 모든 경험의 공통점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서도 안 된다. 철학자들은 예술에 대한 경험을 마약을 통한 경험이나 성적 흥분의 경험과 (또 '로큰롤rock 'n' roll'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대로 광란의 파티를 벌이는 것과 같은 쾌락 경험 일반과도) 곧잘 구분한다. 이런 전통적 미학관에 따르면 우리는 미적인 것과 비非미적인 것 사이에 어떻게든 선을 그어 섹스와 마약은 배제하고 헤어스타일과 음악은 용인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할까?" "미학에 접근하는 기존 방법들을 우리가 살펴보면 미적인 것과 비非미적인 것을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18-9)


"미학에 대한 가장 뿌리 깊은 통념은 그것이 아름다움을 다룬다는 생각이다. 요컨대 어떤 것은 아름답고, 또 어떤 것은 아름답지 않다. 그렇다면 미학은 우리가 그것들을 구분하게 도와주고, 나아가 아름다운 것이 왜 아름다운지도 설명해줄 것이다. 나는 이것을 '미용실 접근법'이라고 부르는데, 미용 산업에서는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아름답지 않은지의 개념이 상당히 명확하기 때문이다." "미용실 접근법은 섹스와 마약, 로큰롤의 문제를 손쉽게 해결한다. 미적 경험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경험이다. 하지만 마약을 통한 경험이나 성적 경험, 로큰롤의 경험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경험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경험들은 미적으로 여겨질 수 없다." "미용실 접근법의 진짜 문제는 고상한 척 엘리트주의적인 태도로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그런 경계선을 긋는다는 사실 자체다. 아름다움은 시대와 맥락, 관찰자가 바뀌어도 늘 한결같은 대상의 특성이 아니라는 말이다."(20-1)


"미적인 것과 비미적인 것의 차이를 따질 때 자주 등장하는 또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즐거움이다. 요컨대 미학은 즐거움을 다룬다." "심리학자는 즐거움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중 첫째는 불쾌한 것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안도의 즐거움'이다. 안도의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불쾌한 상황이 끝났을 때의 즐거움은 안도의 순간을 나타낸다. 그리고 안도의 즐거움은 동기를 부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 즐거움은 우리가 하는 일의 결과가 될 수는 있어도 우리가 그 일을 더 하도록 북돋지는 않는다." "이에 반해 '북돋는 즐거움'은 지금 하는 일을 우리가 계속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이런 즐거움은 안도의 즐거움과 달리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다." "이것은 섹스와 마약, 로큰롤의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임을 시사한다. 어떤 성적 활동이나 마약을 통한 활동은 북돋는 즐거움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섹스와 마약을 무차별로 거부하고 그것들을 미적 활동이라는 엘리트 범주에서 몰아낼 수 없다."(25-7)


"미적 영역을 규정하는 셋째 방법은 감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요컨대 미적 경험은 곧 감정 경험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어떤 감정이 수반하는가? 미적 참여를 할 때 촉발하는 감정은 모두 늘 같은 종류인가? 아니면 우리가 무엇에 참여하고 어떻게 참여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인가?" "미적 참여의 한 가지 뚜렷한 특징은 그것이 다양하다는 데 있다. 가령 그랜드캐니언의 경치와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에 대한 미적 경험은 각기 매우 다른 감정을 수반할 것이다. 이런 모든 경우에 우리가 느끼는 단 하나의 두루뭉술한 감정을 찾겠다는 것은 결국 미학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은폐하는 것과 같다." "더구나 미적 참여가 꼭 감정적이기만 할까?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는 자신의 미적 경험을 〈사고나 감정 없이 표류하면서 내 감각에만 주목〉하는 것으로 묘사하는데, 이것은 감정이 뒤서는 친숙한 한 형태의 미적 참여를 가리키는 듯하다. 적어도 이떤 경우의 미적 경험에서는 감각이 감정에 앞선다."(29-33)


"수전 손택은 미적 경험을 초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감정뿐 아니라 분노와 찬동, 나아가 현실적 관심사로부터 초연함, 이것은 미적인 것과 비미적인 것을 구분해줄 마지막 유력 후보로, 미적 참여가 (단지 미적 쾌감) '그 자체를 목적'하는 참여임을 뜻한다."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이루려고 그 활동을 하는가, 아니면 오직 그 활동 자체를 위해 그 활동을 하는가? 문학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면 나는 다른 어떤 목적(시험 통과)을 이루려고 어떤 활동(소설 읽기)을 하는 것이다. 반면 단지 소설을 읽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면 이 활동은 미적 영역에 더 가깝다. 하지만 미적 경험은 문학 수업 때문에 소설을 읽기 시작했더라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 경우 나는 순전히 소설을 읽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닌데도 그 활동에 미적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참여가 덜 미적일 수밖에 없음을 뜻하지 않는다. 이런 중도의 사례들은 '그 자체를 목적하는 것'이 미학의 성배(聖杯)가 아님을 보여준다."(33-5)


3 경험과 주목


"미적인 모든 것의 공통성은 아주 단순한 데 있다. 바로 주목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마약을 통한 환각이나 성적 흥분을 경험할 때도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걸작을 응시할 때라고 해서 쉽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예술품을 감상할 때 으레 예술품의 일부 특성만 주목하고 나머지는 무시한다. 가령 그림을 볼 때 물감의 균열은 무시하고 그 밖의 표면적 특성에만 주목한다. 균열은 고려 대상에서 배제한다. 바로크 시대에 재건축한 로마네스크양식의 교회를 볼 때는 그 중세적 구조를 완상하기 위해 바로크적 요소는 무시하려고 할 것이다. 이 또한 예술품의 특성 일부를 도외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품의 어떤 특성을 주목해야 하고, 어떤 특성을 무시해도 되는지 혹은 적극적으로 배제해도 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정답이나 손쉬운 방법은 없다. 미적 향유의 성패는 주목에 달렸다." "우리는 자신이 미적 참여를 할 때 무엇에 주목하고 어떻게 주목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42, 50-1)


"단일 대상의 여러 특성에 주목한다고 해서 미적 경험을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좋은 출발점은 될 수 있다. 제임스 본드는 시한폭탄을 해체하지 못해 초조해한다. 폭탄의 어느 부분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이때 본드는 단일 대상의 여러 특성에 주목한다." "단일 대상의 여러 특성에 대한 주목은 자유롭고 제한이 없어야 한다. 궁지에 몰린 제임스 본드는 시한폭탄 해체 방법을 찾으려고 폭탄의 이쪽저쪽을 굉장히 집중해서 주목한다. 본드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전혀 모른다. 본드는 여러 특성에 주목하지만 그 모든 특성에 대한 그의 주목은 극도로 예민하다. 어떤 종류의 미적 경험을 할 때 우리는 이와 정반대 방식으로 주목한다. 특정한 어떤 것도 찾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이 마주한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풍경(화)의 다양한 특성에 주목하지만 어떤 개별적 특성이나 일단의 특성에도 집중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유롭고 제한 없이 주목하는 것이다."(58-9)


"우리가 단일 대상의 여러 특성으로 주목을 분산할 때, 단 특정한 목적이나 목표를 염두에 두지 않을 때 나는 이런 주목 방식을 '제한 없는 주목'이라고 부르겠다. 고정된 주목은 결국 심신을 지치게 한다. 반면 제한 없는 주목은 정신을, 적어도 지각계(知覺界)를 이완하는 휴식과 같다. 몸이 근력 운동을 하지 않고 쉬어야 할 때가 있듯 지각계도 고정된 주목을 하지 않고 쉬어야 할 때가 있다." "미적 경험이 지각계의 휴식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지각계에 무리가 가면 미적 경험도 하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일 뿐이다. 제한 없는 주목은 특별하다. 제한 없이 주목할 때 우리는 한 그림 속의 무관해 보이는 두 형태를 비교할 수 있다. 그리고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독립된 두 멜로디가 한 곡에서 멋진 대비를 이루어나가는 방식도 추적할 수 있다. 또 한 요리에 들어간 재료들의 차이점이나 유사점을 발견하는 것도 가능하다. 적어도 어떤 종류의 미적 경험은 이런 주목 방식을 특징으로 한다."(60-1)


"미적 경험을 할 때 우리는 자신이 보는 대상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 질(質)에도 주목한다. 나아가 양자의 관계에도 주목하는데 이 점이 중요하다." "권위에 한번 호소해볼까 한다. 페르난두 페소아도 이와 매우 유사한 견지에서 미적 경험을 묘사했는데, 그에 따르면 〈참된 경험은 현실과의 접촉을 줄이는 동시에 그 접촉에 대한 분석을 심화하는 데 있다.〉 여기서 경험 대상과의 접촉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는 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경험 대상과 경험 질의 관계에 대한 주목이다." "제한 없고 통제받지 않는 주목이 중요한 이유 하나는 우리가 지각 대상의 특성뿐 아니라 자신의 경험 특성에도 자유롭게 주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힘들여 등산길에 오른 당신은 정상에 올라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발아래 펼쳐진 들판과 강 등 전망에 주목할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다. 전망에만 주목할 것 같았으면 아까운 시간을 들여 등산할 이유도 없었으리라. 당신은 성취감에 젖은 자신의 경험에도 주목할 것이다."(65-7)


"산스크리트 미학에서 예술에 대한 경험은 우리의 모든 감각 양상에 몰두하는 다중양상의 경험이다. 산스크리트 미학의 핵심 개념인 라사(Rasa)에서는 미적 주목을 예술 작품에 대한 우리 경험의 대단히 중요한 요소 가운데 꼽는다." "미적 경험을 미적으로 만들어주는 마지막 퍼즐 조각은 바로 주목 방식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아름답게 보는 것으로 묘사될 수 있는 특수한 형태의 주목이다. 그런데 주목은 감정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우리는 '그 자체를 주목함'에 초점을 맞춘 견해에서 초연함과 제한 없음이 미적 영역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배웠으며, 그 중요성을 금지 구역이 거의 없는 자유롭고 제한 없는 주목의 견지에서 정당화할 수 있다." "당신이 먹고 싶어서 토마토를 바라보는 경우라면, 토마토 자체에 주목할 것이다. 하지만 미적 경험을 하는 경우라면 당신은 토마토뿐 아니라 그 토마토에 대한 자신의 경험에도 주목한다. 나아가 양자의 관계에도 주목한다. 따라서 미적 경험은 투명하지 않다."(68-70)


4 미학과 나


"'서양' 미학 대부분은 박식한 미적 판단의 문제를 다루었다. 미적 판단은 (보통은 스스로, 때로는 타자에게) 특정 대상이 아름답다거나 우아하다, 흉하다, 역겹다고 언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미적 참여 대부분은 전혀 이와 같지 않다." "우리가 미적 판단을 내리는 데서 (가령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의 순위를 SNS에 게시하는 데서) 어떤 즐거움을 얻는다면, 이 즐거움은 판단을 공유하는 것과 더 관계있지 실제로 판단을 내리는 것과는 별로 관계없을 것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친구와 그 영화에 대해 길고 열띤 논쟁을 벌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에 반해 미적 상황에서 일어나는 경험의 시간적 펼쳐짐은 재미있고 가치 있으며 우리 각자가 모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런 펼쳐짐이 미적 판단의 형태에 이를 때도 있는데, 이 때문에 우리가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판단보다 경험에 초점을 맞출 때의 큰 이점은 미적인 모든 것이 우리에게 갖는 개인적 중요성과 절실함을 깨닫게 해준다는 데 있다."(76-7)


"더 박식한 미적 판단을 내린다고 해서 더 강렬하고 더 가치 있는 미적 경험을 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결론은, 강렬하고 가치 있으며 우리 개인에게 소중한 미적 경험을 미학에 대한 논의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리고 미적 판단에만 골몰하느라 그런 경험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판단에 앞서는 것은 오히려 경험이다." "많은 그림이 걸린 전시실에 들어가 주위를 쓱 한번 둘러보라. 전시작 일부는 마음에 들고 나머지는 그저 그럴 것이다. 당신은 어느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모르며, 따라서 아무런 미적 판단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이 어느 그림에 다가갈지, 어느 그림을 살펴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초기의 호감이다. 우리가 모든 사항을 고려해 박식한 미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우리가 일찍이 어떤 예술품에 호감을 느꼈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 특정 예술품에 참여하고 있는 이유다."(83)


5 미학과 타자


"우리는 사회적 존재며 사회적 측면을 완전히 결여한 미적 상황은 거의 없다. 안타깝게도 '서양' 미학사에서 이루어진 미학의 사회적 측면에 대한 논의는 미적 의견 일치와 미적 의견 충돌이라는 한 가지 사안에만 치중했다." "의견 충돌을 해결하는 데 주어진 선택 사항은 딱 두 가지다. 첫째는 서로가 의견 충돌을 인정하는 것이다. 당신은 이것을 좋아하고 나는 저것을 좋아한다. 누구도 옳지 않다. 아니 우리 둘 다 옳다. 둘째는 우리 가운데 한 명은 명백히 그르다고 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선택 사항의 적합성은 어느 사례를 고르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문제는 미적 의견 충돌이 (같은 그림을 보면서) '네모나냐 세모나냐'의 의견 충돌에 더 가까운가, 아니면 '각자의 할머니를 상기시키느냐 아니냐'의 의견 충돌에 더 가까운가다. 그런 까닭에 '서양' 미학의 주요 문헌들 일부는 순전히 '주관적인'(할머니와 관련된) 의견 충돌과 순전히 '객관적인'(모양과 관련된) 의견 충돌을 중재하는 위치에 서려고 시도했다."(92-5)


"이렇듯 미적 의견 충돌이 일어날 때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규범성(normativity)이다. 규범성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과 관계있다. 우리의 미적 삶도 어떤 점에서는 매우 규범적인 측면이 많다. 나는 지금까지 미학이 어째서 '서양'에 특권을 주어서는 안 되는지 꽤 규범적인 주장을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느 정도 규범적인 주장을 하지 않고서는, 가령 한 악곡의 연주가 일정한 악곡을 (정해진 음대로) 연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연주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규범적인 주장을 하지 않고서는 확립된 미적 관행을 이야기하기 곤란할 것이다. '해야' 한다는 표현은 우리가 미적 영역을 논하는 대목 곳곳에서 불쑥불쑥 등장한다. 하지만 미학은 규범적 학문이 아니며 이 점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윤리학의 하위 분야 일부는 실제로 규범적 주장을 다루는 듯하다. 하지만 미학은 다르다. 본래 미학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다루지 않는다. 우리가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하는가를 다룬다."(96-7)


"어떤 경험이 미적이게 되는 것은 그 경험이 아름다운 것에 대한 경험이어서가 아니다. 그 경험이 미적이게 되는 것은 당신이 주목하는 방식 때문이다. 주목 방식에는 정확하고 말고가 없다. 경험은 정확하거나 부정확할 수 있지만 그 경험을 미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정확성과 하등 관계 없다." "당신과 나는 같은 예술품이나 풍경을 보더라도 서로 아주 다른 경험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차이를 의견 충돌로 규정하는 것은 (미적 경험보다) 미적 판단을 은근슬쩍 우위에 두는 것이거나 우리에게 미용실 접근법만 강요하는 것과 같다. 당신과 내가 같은 예술품이나 풍경 앞에서 각자 다른 경험을 할 때 발생하는 차이는 중요하다. 그림의 모양에 대한 의견 충돌이나 그림이 누군가의 할머니를 상기시키는지에 대한 의견 충돌보다 훨씬 중요하다. 미적 참여의 사회적 측면을 미적 의견 충돌의 문제로 지나치게 단순화하면 미학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일상의 사회적 상호 작용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대로 깨닫기 힘들다."(99-101)


"비교적 겸허한, 그러나 결코 해가 없지 않은 규범성에의 호소는 미적 평가의 보편적 호소와 관계있다. 이것은 일정한 예술품이 당신에게 일정한 반응을 보일 것을 단순히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당신이 어떤 미적 반응을 보일 때 다른 사람들도 모두 당신과 같은 반응을 보이리라고, 혹은 어쨌든 그래야 한다고 암암리에 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임마누엘 칸트의 견해로, '서양' 미학에 오래도록 영향을 미쳤다. 칸트 철학의 지적 성취에 경외심을 갖고 공손히 말하려고 애쓰고는 있지만 이것은 미학의 역사상 가장 오만한 발상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처럼 반응해야 한다고 은연중에 가정하는 것은 인류의 다양성과 그들이 나고 자란 문화 배경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폄하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 일이 보편적 호소력 혹은 보편적 전달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싶은 유혹이 들라치면, 멈춰 서서 내가 '미적 겸손'이라고 부르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다."(102-3)


6 미학과 삶


"19세기에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삶'이라는 발상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은 많다. 예술 작품을 대하는 방법도 많으며, 그 방법 간에 애당초 우열은 없다. 따라서 자기 삶을 예술 작품으로 바꾸라고(혹은 예술 작품처럼 대하라고) 권고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도 안 되고 딱히 의미도 없다." "미학과 우리 삶을 관련짓는 또하나의 인기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자기 삶과 예술 작품을 대할 때 초연한 관객이 되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19, 20세기에 널리 유행했다." "이런 주목 방식은 역사적·지리적으로 매우 특정한 유형의 미적 경험을 설명해주며, 이런 미적 경험은 관조로 불리는 경험과 상당히 잘 부합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적 경험의 한 형태일 뿐이다. 그것이 유럽에서, 가령 20세기 전반기에 얼마나 영향력이 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미적 경험은 초연할 필요도, 관조적일 필요도, 제한 없는 주목을 수반할 필요도 없다."(119-21)


"예상은 우리가 예술에 참여할 때 중대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상에 주목할 때 우리가 놓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순수한 놀라움에 내맡기는 어느 정도의 개방성과 자발성이다." "예술품이나 풍경 앞에서 강렬한 경험을 할 때 우리는 보통 그것을 마치 처음 보듯 바라본다. 실제로, 적어도 어떤 종류의 미적 경험은 그 경험이 마치 처음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데 특징이 있다. 설령 이전에 여러 번 보았더라도 우리가 정말로 감동할 때 그것은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이전에 그것을 한 번도 제대로(really)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처음 본다'라는 이 말이 고리타분한 상투어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는 그 이상이다. 무언가를 처음 볼 때 당신은 그것을 관습적이고 판에 박은─자신과 관련된 특성들을 가려내고 나머지는 무시하는─방식으로 보지 않는다. 어떤 특성들도 유의미할 수 있으므로 두루 주목한다. 이렇듯 무언가를 처음 볼 때 당신은 제한 없이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128-31)


"무언가를 처음 본다고 느끼는 것은 당신이 그것을 바라보는 관습적이고 틀에 박힌 모든 방식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이것이 내 흥미를 끄는 차이, 즉 무언가를 바라보는 틀에 박히고 습관적인 방식과 그것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다." "십대 때 귀가 닳도록 들었던 노래를 기억하는가? 그 노래는 당신에게 언제나 감동을 주었다. 음, 그 감동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당신은 그 노래를 완전히 소진해버리고 그 노래에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것 같다.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 때마다 나는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그래도 다행히 이런 경험은 종종 다시 할 수 있다. 그 노래를 한동안 듣지 않다가 몇 달 뒤에 다시 들으면 이전보다 훨씬 벅찬 감동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이때 당신은 그 노래를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듣는다. 습관과 관성은 사라진다." "습관은 당신을 무뎌지게 한다. 하지만 당신은 예술의 도움으로 습관을 버리고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다."(132-3)


"미적인 것은 또다른 방식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미적 경험은 지속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이 효과는 아직 탐구가 덜 이루어진, 예술 항유의 한 가지 독특한 측면이다. 예술 향유는 지속한다. 온종일 미술관에 있다가 나중에 집으로 돌아갈 때 당신 눈에는 칙칙한 버스정류장이 그 미술관에서 본 어느 그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연주회나 극장에서 멋지 작품을 감상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흉하고 우중충하고 지저분한 거리 풍경이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미적 참여에서 주목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의 이점 하나는 이 수수께끼 같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예술은 당신이 주목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이 심적 주목 상태는 돌연 중단되지 않는다. 지속한다." "다시 말해 예술은 당신에게 본다는 것의 순수한 즐거움을 되찾아줄 수 있다. 무엇을 보는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당신이 무언가를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볼 수 있게 해준다."(134-6)


7 범세계 미학


"전통적 미학관에 따르면 학문으로서의 미학은 보편자를 다룬다. 다시 말해 미학은 우리가 예술품과 그 밖의 미적 대상에 참여하는 방식을 우리의 문화 배경과 무관하게 탐구한다는 것이다. 미학자들이 미술사가들에게 곧잘 비난받는 것은 바로 이런 문화 보편주의 때문이다. 신경 과학에 오염된 최신 유행의 미학 연구는 미학의 이런 보편주의를 한층 더 강력히 밀어붙이는데, 그 목적은 다양한 형태의 미적 감상 가운데서 신경 상관자(neural correlates)를 찾아내는 것이다. 단, 감상 주체의 문화 배경은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마음의 경험 과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이로부터 얻는 실질적 가르침은 문화 보편주의를 완전히 단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각에 미치는 풍부한 하향식 영향에 있다." "따라서 우리의 지식과 신념이 우리가 어떤 문화와 어떤 시대에서 성장했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의 지각도 우리가 어떤 문화와 어떤 시대에서 성장했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140)


"문제는 지각에 미치는 하향식 영향이 어떻게 작용하고 어떤 과정에 따라 매개되느냐다. 나는 그 매개 기제로 두 가지를 들 텐데, 하나는 주목이고 또 하나는 심상이다. 주목과 심상은 둘 다 신념이나 지식과 같은 우리의 고차적 정신 상태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편 양자는 모두 우리의 지각과 미적 참여에 영향을 준다. 달리 말해 주목과 심상에는 문화 간 편차가 있다. 따라서 미적 참여에서 주목과 심상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하면 이것은 미적 참여에도 틀림없이 문화 간 편차가 있으리라는 것을 뜻한다.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아는 한 우리는 보편주의 노선을 택할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의 미적 참여가 현지의 인공품 제작자가 의도한, 또 그 사용자가 행한 참여와 같으리라고 가정할 수 없다." "즉, 인공품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우리가 무엇을 주목하는지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인공품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 커다란 문화 간 편차가 있음을 뜻한다."(140-1)


"낯선 문화와 그 문화의 예술 제작 양식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낯선 문화를 열심히 공부함으로써 그 문화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금까지 몰랐던 미적 경험의 길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우리가 타 문화의 한갓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더 겸손한 미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 우리는 늘 자신이 견지하는 문화적 관점을 의식하고 자신의 미적 평가를 겸손하게 다루어야 한다. 다시 말해 나의 평가는 매우 특수한 문화적 관점에서 기인한 하나의 평가에 불과함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미학과 관련해 오만한 태도를 취하기 쉬운데 이것은 미학이 우리 개인에게 갖는 중요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까닭에 우리는 미적 평가를 내릴 때 한층 더 신중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더 많은 미적 겸손이 필요하다."(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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