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역설 - 근대 미학의 성립 근대 미학 3부작
오타베 다네히사 지음, 김일림 옮김 / 돌베개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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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예술의 탄생


"18세기 중엽 이전에는 오늘날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것을 포괄적이며 배타적으로 지시하는 개념 혹은 술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예술'이라는 개념은 다름 아닌 '근대'의 소산인 것이다. 더불어 '예술'이라는 개념이 확립되는 양상은 그와 밀접하게 관련된 여러 개념─즉, 근대적인 의미의 '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필요불가결한 '예술가', '예술작품', '예술 창조', '독창성' 등의 개념─의 확립, 그리고 이들 개념을 다루는 근대적인 학문인 '미학'의 성립 혹은 전개 양상과 어우러져 넓은 의미에서 '근대'의 본질적인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근대적인' 예술관을 가능케 한 다양한 이론적 조건을 개념사적 혹은 사상사적으로 논하고, 이를 통해 '근대적인' 예술관의 의의를 명확히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그러나 이는 간접적으로는 우리 자신이 지금도 여전히 그 내부에 머물러 있는 이론적 틀에 비추어보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우리가 '근대적인' 예술관에 대해 지니고 있는 표상 그 자체에 변용을 촉구하게 될 것이다."(17-8)


"전통적인 예술론은 예컨대 시학이 ars poetica[시작술]라고 불린 데서 알 수 있듯 '기술'에 속한다. 이러한 예술론(혹은 창작술)은 '변론술, 시작술, 음악술 등'과 같이 일찍이 개별 장르에 한정되어 있었다. 바움가르텐(1735)은 장르의 제한을 받지 않는 예술론 일반을 ars aesthetica라고 부르고, 더 나아가 종래의 '기술'로서의 예술론─즉, ars aesthetica─을 '학문 형식으로 정비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는다. 기술에서 학문으로까지 격상된 예술론 일반이야말로 그가 aesthetica(미학)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구상은 기술(나아가서는 학문)을 하비투스로서 파악하는 고전적 전통에 의거하고 있다. 바움가르텐이 예술 창작이라는 기술은 '질서 있게 배열된 여러 규칙의 총체complex regulaum'에 다름 아니며, 이러한 '여러 규칙'을 '명확하게, 그리고 지적 명료성을 갖추어 파악'함으로써 종래의 기술이 '학문 형식으로 격상'된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이러한 고전적 전통에 의거한 것이다."(22-4)


"달랑베르(1751)에 의하면 예술은 두 가지 점에서 다른 '자유로운 기술'과 구별된다. 첫째로 예술의 종차는 그것이 '자연의 모방'을 시도하고 '쾌'를 불러일으키는 점에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달랑베르가 예술을 여타 '자유로운 기술'과 구별한 두 번째 논거이다. 기술은 본래 '실정적positif이고 불변하는 법칙'에 기초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 점에서는 문법학, 논리학, 도덕학 등의 '자유로운 기술[자유학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예술에서 본질적인 부분은 기계적인 부분─구체적으로 말하면 선행한 '발견'을 손 혹은 신체를 통해 단순히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비非기계적 부분, 즉 실행에 앞서는 '발견'이며 거기에 '확정된 부동의 여러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달랑베르가 '발견'의 근간이 되는 법칙성이 존재한다고 말할 때의 법칙이란, 결코 다른 기술의 근간이 되는 '법칙'과 같이 그 기술을 배우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전달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천재성'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규정된다."(28-9)


"그러므로 '불변하는 각종 규칙'을 기술의 요건으로 한다면 예술은 기술이면서 기술을 능가하는 특징을 지니게 된다. 동시에 예술의 본질은 그것이 기술을 넘어서는 점에 있다. 예술에서 기술성은 단지 그 '기계적인 부분'에 결부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술은, 하비투스로서 배우고 익혀야 할 기술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것을 넘어선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고전적 예술 이론에서도 '타고난 천재성'의 중요성은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단지 자신의 좋은 자연 본성에 따르고자 하는 이는 실수하기 쉬울 것이다〉라고 했듯, 고전적 예술 이론은 '자연 본성'이 '여러 규칙' 아래 포섭되는 것을 추구한다. 그에 반해 달랑베르가 말한 예술의 탈하비투스화는, 시를 '시가 따라야 할 여러 규칙의 총체'에서 해방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와 같이 전통적인 ars의 체계는 18세기 중엽에 기술의 탈하비투스화의 경향과 함께 해체되었고, 그러한 해체를 배경으로 근대적인 예술관이 움트기 시작했다."(29-30)


제1장 창조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리스도교적 전통에서 '창조한다'creare라는 술어는 오직 신에게만 귀속되었으며, 인간에게는 창조하는 능력이 부정되고 단지 '제작하는'facere 능력만이 인정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컨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인간이 어떤 것을 제작할 경우 항상 '질료인'을 전제로 하지만, 창조란 이러한 질료인을 전제로 하지 않고, '무無에서 ex nihilo 무언가를 제작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피조물도 창조할 수 없〉으며 〈창조하는 것은 오직 신만의 고유한 활동이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전통이 18세기에도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점은 크리스티안 볼프가 저서 『형이상학』(1720)에서 〈우리 인간은 무언가를 창조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서술한 데서도 드러난다." "그렇다면 예술가가 창조의 주체라는 개념이 성립하려면, 예술가가 어떤 방식으로든 신과 유비類比적인 존재로서 파악될 필요가 있었다는 예상이 일단 성립할 것이다."(35-6)


"예술이란 그 자체에 의해 기초가 다져지는 자립적인 행위가 아니다. 자연만이 예술에 규칙을 부여하고 예술을 정당화한다. 그러므로 예술가가 만드는 것은 모두 '자연 속에 근거를 갖도록' 요청되며 '자연에서 일탈한 모상模像' 제작은 부정된다. 예술가가 자연을 '모방'해야 하는 까닭은 이러한 자연의 규범성, 범례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규범성은 무엇에 기초해 있을까? 〈자연은, 혹은 자연 속에서 또는 자연을 통해 활동하는 창조자는 모든 가능적 세계 속에서 현재의 세계를 골라서 그것을 현실성의 상태로 가져왔으나, 그것은 창조자가 자신의 어긋나는 법 없는 통찰로 현재의 이 세계를 모든 세계 가운데 최선의 것으로 간주하고, 또 자기 목적Absicht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볼프의 형이상학을 전제로 하여 이를 예술 이론으로 확장한 요한 보드머와 요한 브라이팅거는, 이러한 라이프니츠의 최선관(optimisme)을 계승하고, 바로 여기에 자연모방설의 기초를 세웠다."(39-40)


"라이프니츠는 『변신론』辯神論(1710)에서, 볼프는 『형이상학』에서 각각 '가능적 세계'를 설명할 때 '소설'을 예로 들었다. 즉 소설은 현실적이지 않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제시하므로 '다른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로 규정된다. 그러나 소설은 단지 가능적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예로 든 것에 불과하며 라이프니츠도, 볼프도 가능적 세계론에 의해 예술작품을 논리적으로 규정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그에 반해 그들을 계승한 볼프학파의 이론가는 가능적 세계라는 개념을 예술 이론에 도입한다." "시인(그리고 일반적으로 예술가)의 존재 의의는 현실적 세계의 우연성을 앞에 두고, 이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 모방의 대상을 넓히는 데 있다. 예술가 고유의 창작력이 활동하는 장場은 가능적 세계에 있다." "브라이팅거(1740)는 시인은 신의 위치에서, 신이 실제로 창조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창조할 수는 있었던 가능적 세계를 예술작품이라는 가상假象 속에 이른바 현실화한다고 생각했다."(43-5)


"칸트는 『판단력 비판』(1790)에서 예술가의 창조성을 구상력構想力의 측면에서 논한다. 비록 예술가의 구상력이라도 전혀 재료가 없는 상태에서 표상을 생산할 수는 없으며, '현실의 자연에서 얻은 소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그것은 자연과의 연결고리를 잃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가의 구상력은 자신에게 고유한 방식으로 자연을 '가공'하고, 오성에 대해 '오성이 자신의 개념 속에 고려하지 않았을' 풍부한 '소재'를 '주고', 이 개념을 '미적[직감적]으로 확장'한다. 그 결과 오성과 구상력은 〈서로 생기를 북돋아주고〉 서로 〈자기 자신에 의해 자기 자신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그를 위한 힘을 스스로 강화하는 활동〉을 수행한다. 이 '연상의 법칙에서 자유로운' 활동에 의해 예술가는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소재를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즉 자연을 넘어선 것으로 가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서 예술가의 '구상력'에 창조성이 성립힌다. 이와 같이 논함으로써 칸트는 예술가의 행위를 자연의 규범성에서 해방한다."(60)


"A. W. 슐레겔의 자연모방설 비판(1801)의 요점은, 예술의 본질이 자연에서 얻은 소재를 형성하고 개조하는 그 자체에 있으며 결코 〈범례적 대상을 단순히 불완전한 방식으로 작품 속에 거두어들이는 데〉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슐레겔이 자연모방설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예술의 범례가 자연 속에 이미 있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슐레겔에 의하면 예술가가 모방해야 할 것은 '창조적 자연'의 창조 과정이다. 창조적 자연은 타자에 의해 움직이는 단순한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힘에 의해 스스로 움직이고 그 자체로 완결된 유기적 작품을 창조하는데, 예술가도 바로 이러한 창조적 자연을 모방해서 예술작품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가와 창조적 자연은 유비 관계에 놓인다." "슐레겔의 논의를 볼프학파의 이론과 구별하는 독자성은, 예술가가 창조적 자연을 찾는 방도와 결부된다. 즉 슐레겔은 예술가가 '외적 자연'만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도 창조적 자연을 찾아낼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62-4)


"프리드리히 슐레겔도 『문학에 대한 회화會話』(1800)에서 예술을 창조적 자연의 모방으로 간주했다." "여기서 떠올려야 할 것은 바움가르텐의 신화적 세계의 이론이다. 바움가르텐에게는 '미적인 사람들에 의해 이미 확증된 세계'인 전통적인 신화의 세계야말로 예술의 창작과 향수를 가능케 하는 전제였다. 그에 반해 슐레겔에 의하면 예술가에게 '중심점'을 이루어야 할 이러한 신화의 결여야말로 '우리 [근대] 문학'의 출발점을 이룬다. 신화에 관한 이러한 견해의 차이야말로 바움가르텐의 『미학』(제1권)이 간행된 1750년과 슐레겔의 『문학에 대한 회화』가 간행된 1800년을 가로막는 것이며, 이 간극이 우리에게 근대적인 예술관의 성립 지점을 보여준다. 슐레겔에 의하면, '근대의 시인'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모두 '내면에서 만들어내야 하고', '각각의 작품'은 '무無에서 시작된 새로운 창조'가 된다. 같은 시기의 단편 『이덴』(1800)의 문구를 빌리자면, 〈예술가란 자기 안에 중심Zentrum을 가진 자이다.〉"(66-8)


제2장 독창성


"예술과의 관계에서 original이라는 말은 먼저 복제copy나 번역과 대비해서 '원작'을 의미하며, 두 번째로 예술이 모방해야 할 대상을 의미했다. 두 경우 모두 original한 것은 예술가의 행위에 앞서 존재하며, 예술가의 행위에 있어서 일종의 규범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확실히 첫 번째 경우에서 original한 것은 예술가에 의해 생기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뒤따르는 예술가가 그것을 복제하거나 번역할 때 그 행위를 규제하는 모범의 위치에 있으며, 그 범위에서 두 번째 경우에 마찬가지로 규범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18세기 중엽 이후 예술가의 독창성originality이 강조된다는 것은 original한 것이, 예술가의 창작에 선행해 주어진 모범에서 예술가 자신으로 이행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독창성 개념의 성립 과정은 예술가가 자신에게 앞서는 규범에서 자기를 해방하면서 오히려 자기 자신 속에서 일종의 규범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79)


"18세기에 독창성을 강조하는 이론가들은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비유를 써서, 미지의 영역을 발견하고 세계를 화장하는 데서 독창성의 발로를 찾아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비유가 현실 세계에 한정되지 않고 '허구' 세계에서도 타당하다는 점이다. 윌리엄 더프(1767)에 의하면 〈진정으로 독창적인 천재성을 지닌 시인의 상상력은, 가시적인 피조 세계the visible creation의 그 어떠한 대상도 충분히 경이적이고 새로운 것으로 간주할 수 없기 때문에 ······ 한층 놀라움과 경탄으로 가득 찬 정경scenes을 탐구하면서 자연스레 관념적 세계ideal world로 돌진한다.〉" "지리상의 발견은 고대의 권위가 가능성의 한계라고 간주했던 것의 바깥으로 근대인을 해방했으나, 마찬가지로 그것은 비유로서도 또한 '고대인의 모방'이라는 명법Imperative에 의해 설정되었던 한계를 넘어서는 독창적 창작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때의 독창성은 무엇에서 유래할까?"(83-5)


# 명법Imperative : 의지 일반의 객관적 법칙이 인간 의지의 주관적 불안정성에 대해 지니는 관계를 표현하는 정식定式이다. 의지를 도덕법칙에 적합하도록 규정하는 것이 강제Zwang이며, 도덕법칙은 그것이 의지에 대해서 강제적인 한에서 이성의 명령Gebot이라 불린다. 이러한 명령의 정식이 '명법'이다. 칸트는 명법을 정언명법과 가언명법으로 나눈다. 


"앨릭잰더 포프(1725)는 다름 아닌 자연모방설에 따라 셰익스피어의 originality를 칭송했다. 자연이라는 원천에서 직접 자신의 기술을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예술가가 이루어야 할 과제이며, 자연이야말로 바로 예술가의 originality의 origin이다. 그러나 자연의 원천에서 퍼 올리는 일은 결코 용이하지 않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다른 예술가를 모방해 버리고 자연의 근원을 직시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모방적 예술가가 낳은 등장인물은 서로 유사해져서 개성이 없어진다. 즉 모방적 예술가는 자연을 이른바 전통이라는 틀로 덮어씌워서 자연의 다양성과 개개인의 개성을 무시하고, 추상화, 일반화된 인물의 [재생산적] 창작에 만족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에 반해 original한 예술가인 셰익스피어는 그야말로 자연이라는 원천에서 직접 퍼올리기 때문에 자연의 다양성을 작품 내부에 그대로 반영한다. 이와 같이 개인을 묘사하는 것을 평가하는 관점은 고전적 전통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것이다."(86-7)


"그러나 '자연'이라는 개념은 단지 모방되는 자연일 뿐 아니라 동시에 모방하는 예술가의 자연 본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어느 예술가가 타자의 작품을 모방한다면, 그 작품은 그 예술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작품은 예술가의 '자연 본성'에서 생긴 경우에 한해서, 즉 그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낸 결과'에 한해서 original이라고 간주된다. 예술가는 타자에게 빌린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태어나면서 갖추고 있는 자질에 바탕을 두고 창작해야 하는 것이다." "레너드 웰스테드(1724)는 '신체의 타고난original 성향'이 무용에서 고상한 모습을 만들어내듯 예술가의 '자연 본성'이 originals[비非모방적 작품]를 만들어낸다는 비례 관계를 인정하는데, 여기부터는 예술가의 '타고난 성향'이 originals를 낳는다는 데 귀결한다. 예술가의 타고난 특질이야말로 originals의 원천이다. Originality의 원천은 대상적 자연이 아니라 예술가의 자연 본성에서 구해진다."(93-4)


"그렇다면 근대에 과연 개성과 규범성(혹은 범례성)은 어떻게 관련되어 있었을까?" "독창적인 예술가들의 상호 관계를 칸트는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즉 독창적 예술가들의 상호영향 관계란 후속 예술가가 선행하는 예술가를 모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선행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후속 예술가가 '자신의 고유한 독창성에 눈뜬다'는 점에 있다. 즉 어느 독창적인 천재가 그것과는 다른 별개의 독창적 천재를, 이른바 눈뜨게 하는 방식으로 예술은 계승된다. 그것은 뒤를 잇는 천재가 선행하는 천재의 작품에서, 일정한 규칙을 벗어난 자유로운 실천을 간파하고 이러한 자유의 가능성을 자각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바로 그 때문에 독창적 예술가들의 상호 관계는 비非연속성을 띤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타고난 생산능력'인 '타고난 재능' 속에 그 '원천'을 지닌 독창성은 범례적이면서도, 바로 그 때문에 매번 새로운 것이다. 역사의 흐름을 끊는 비연속성이야말로 예술가의 독창성을 나타내는 증표가 된다."(101-4)


"헤르더(1785)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 안에서 모든 것을 산출한다는 환상, 다시 말해 '[자신은] 오직 자기 자신에 의해 현재 혹은 자신이 되었다'는 환상을 품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는 '자발성의 감정'이 수반되어 있어서 타자에 대한 의존을 망각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타자에 대한 의존은 단지 우리의 '어린 시절'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평생 지속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전통을 필요로 하며 그 타고난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까지 배워야 한다. 그렇다고 전통이란 결코 단순히 수동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모방하는 이는 도대체 누구에게 무엇을 얼마만큼 수용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활용하고 적용하는가, 이것은 다만 그 사람, 즉 수용자의 힘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 헤르더에게는 영의 독창성 이론이 간과한 것─즉 전통의 움직임 혹은 수용자가 전통을 바꾸면서 계승한다는 동적인 과정─에서야말로 진정한 독창성이 성립한다."(121)


제3장 예술가


"18세기에 예술을 파악하는 지배적인 방법은 '원상-모상' 관계를 기초로 한 일루저니즘Illusionism이었다. 일루저니즘의 미학을 전형적으로 대표하는 뒤 보스에 의거해 그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술은 원상과 모상의 관계에서 성립하며, 원상과 모상은 모상(으로서의 예술작품)이 투명한 매체로서 원상을 '표상'하는 관계에 선다. 두 번째로 예술의 '매력'은 향수자에게 관심을 끌 만한 원상을 모방한 데 있으며, 원상과 비교하면 모방자의 기技나 예술가의 기량은 2차적인 의미를 지닐 뿐이다. 즉 〈시와 회화의 주요한 매력, 우리를 감동시키고 기쁘게 하는 두 장르의 힘은, 이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상을 모방한 데서 유래하기〉 때문이며 '모방자의 기技(Art)'나 '예술가의 기량(adresse)' 그 자체는 결코 우리를 감동시킬 수 없다. 더 나아가 세 번째로 모상 그 자체가 원상을 표상하는 것이지, 향수자가 모상을 매개로 해서, 예컨대 예술가의 의도나 개성을 거기서 찾는 것은 아니다."(126-7)


"모방은 예술가의 기량과 결부된다. 즉 원상 자체는 관심을 끌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탁월한 기량에 의해 모방될 경우 향수자는 모상에 주의를 기울이고 모방자의 기량에 찬탄한다. 향수자에게 원상은 이른바 배경으로 물러나고, 모상이 모방자의 기량 덕에 전면으로 부상한다. 버크가 예로 든 것은 '몹시 투박하고 흔해빠진 부엌의 기구'를 그린 정물화다." "그와 대조적으로 공감이란 향수자가 예술작품의 표상 혹은 모방한 대상 자체의 품질을 스스로 느끼는 것이며, 대상에 대한 공감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모상이 이른바 투명해지고 원상이 전면에 나온다. 이것이 바로 18세기에 '일루전'Illusion이라 불린 사태다. 예술이 향수자에게 부여하는 힘은 그것이 표상하는 '대상 그 자체의 자연본성에 의한' 것이며, 여기서 모상이 부여하는 효과는 원상이 부여하는 효과 속에 흡수된다. 그러므로 첫 번째 경우에는 예술가가 '어떻게' 모방했는가가 문제가 되고, 두 번째 경우에는 예술가가 '무엇을' 모방했는가가 중요해진다."(135-6)


"버크는 『숭고와 미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고찰』(1757) 제5편에서 이렇게 논한다. 언어는 회화처럼 어떤 사물과 유사한 상을 나타낼 수 없고, 단지 '습관'에 의해 그 사물의 '치환'이라 간주되는 '음향'을 낼 뿐이다. 그러므로 언어와 관념의 결합은 일반적으로 유사성이 아니라 단지 습관을 바탕으로 한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이 결합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자의적이고 약정적으로 성립한다. 그 때문에 언어에 관해서는 유사성에 바탕을 둔 모방이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 버크 자신이 서술했듯 〈엄밀히 말하자면 시를 모방의 예술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하여 원상-모상 이론으로 시를 논하는 것도 부정된다." "이러한 언어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버크는 제2편 제4장에 〈나는 [언어에 의한] 묘사에 의해, 최고의 회화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강한 정동情動(emotion)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라고 서술했다. 이는 버크가 언어의 '세 번째 효과'라 부른 것에 대응한다."(143-4)


"언어가 부여하는 세 번째 효과란 '혼의 정념情念'이다." "버크에 따르면, 명석한 표현clear expression이란 대상을 정확히 표상하는 것이 목표이며, 대상을 분석하는 지성을 일컫는 말이다. 그것은 언어의 두 번째 효과인 표상 환기 기능을 추구한다. 그에 반해 강력한 표현strong expression은 언어의 정념 환기 기능과 결부되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강력한 표현에는 말하는 주체가 관여한다는 점이다. 물론 명석한 표현에도 말하는 주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말하는 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을 지향한다." "반면 강력한 표현의 경우 어느 대상에 대해 말하는 이는 자신이 그것을 '느끼는' 대로, 그 대상이' 느껴지는' 경우에 한해 말한다." "그러므로 명석한 표현에서는 '말하는 이'(더 나아가서는 '듣는 이')가 무시되고, 그 표현의 초점이 기술된 '대상'에 있는 데 반해 강력한 표현의 초점은 '말하는 이'가 느끼는 방식에 있으며, 대상은 단지 '말하는 이'의 이러한 개별적인 시점을 통해서만 기술된다."(144-5)


"버크는 제1편에서는 원상-모상 관계를 바탕으로 한 쾌快의 하위 분류로 모방과 공감이라는 대對개념을 제기했지만, 제5편에서는 원상-모상 관계를 바탕으로 한 예술의 작용을 모방과 결부하고, 공감을 그에 대치한다. 제5편에 따르면 공감은, 예술가가 어느 대상을 자기가 느낀 대로 말하고, 또 향수자도 예술가에 의해 '느껴진 대로' 그 대상을 향수할 때 가능해진다." "버크는 원상-모상 이론의 타당한 범위를 예술 일반에서 회화로 한정한 데 그쳤고, 결코 이 이론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버크가 원상-모상의 투명한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를 명시함으로써, 모방과는 다른 새로운 예술 이념을 고했다는 의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원상-모상의 투명한 관계 해소와 함께 대상을 '느껴지는 대로' 말하는 화자가 나타난다. 표상 환기 기능의 측면에서는 '회화'에 뒤떨어진다는 시의 부정적 특질에서, 예술작품을 총괄하는 주체, 향수자가 자신의 시점을 대입할 주체인 예술가라는 이념이 탄생하는 것이다."(148-9)


"모제스 멘델스존은 『랩소디』(1771)에서, 종래의 이론이 '표상'과 '표상의 대상'과의 '객체적 관계'에만 주목한 채 '표상'과 '사고하는 주체'와의 '주체적 관계'를 무시한 점을 지적하고, 여기서 종래 이론의 오류를 찾는다. 확실히 표상은 그 대상의 '상Bild이거나 각인'이며 표상과 그 대상은 한없이 가까워진다. 그러나 '사고하는 주체'에게는 표상과 표상의 주체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나쁜 것의 표상도 표상으로서, 즉 혼의 인식이나 욕구의 여러 능력을 움직이도록 하는 우리 안에 있는 상이라고 본다면, 완전성의 어떤 요소이자 어떤 쾌를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래의 이론이 표상과 표상의 대상을 구별할 수 없었던 것은, 표상이 '사고하는 주체'와 관계하는 것을 시야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대응하여 종래의 이론이 '완전성'을 객체의 완전성에 한정했던 오류가 지적되어 표상에는 객체적인 완전성과 함께 주체적인 완전성이라는 두 종류의 완전성이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진다."(160-1)


"다음으로 예술가의 위치에 대해 고찰해보자. 멘델스존은 『여러 예술에서의 숭고한 것과 소박한 것』(1758)에서 숭고를 두 종류로 나눈다. 첫 번째 종류는 〈표상되어야 할 대상이 그 자체로 칭찬받을 가치가 있는 성질을 지니는〉 경우이며 이는 '객체적 숭고'라 불린다. 여기서는 〈기호 표시되는 사상事象이 기호보다 훨씬 위대하다.〉 즉 기호 표시되는 원상이 너무 숭고하므로 원상과 모상 사이에 균형이 성립하지 않는다." "두 번째 종류의 숭고, 즉 '주체적 숭고를 분별한 점에 멘델스존 논의의 독자성이 있다. 주체적 숭고란 멘델스존에 의하면 〈원상이 그 자체로는 결코 찬탄할 만한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그렇기는커녕 〈그 자체는 아주 하잘것없는 대상〉이라도─이 원상이 〈예술가의 천재성Genie의 힘에 의해 숭고하게 보이고, 찬탄할 만한 것이 될〉 때 생겨난다. 그렇기 때문에 〈찬탄은 원상보다는 모상으로 ······ 표상되는 것보다 오히려 표상하는 방식Kunst der Vorstellung으로 향해진다.〉"(165-6)


"즉 두 번째 종류의 숭고에서도 원상과 모상(기호 표시되는 것과 기호)의 균형은 결여되었지만, 그 관계는 첫 번째 종류의 숭고의 경우와 역전된다. 대상은 비범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예술가에 의해 숭고한 대상으로 변화된다. 향수자는 이 두 가지 대상을 비교하고, 양자의 격차는 원상을 모상으로 변환하는 예술가에게 의존한다고 판단하고, 이 예술가의 '천재성'을 찬탄한다. 즉 낯익은 대상을 숭고한 대상으로 변환하면서 표상하는 예술가의 방법 그 자체가 향수의 중심을 이룬다. 그러므로 두 번째 종류의 숭고를 성립시키는 것은 표상되는 대상으로는 환원될 수 없는 예술 고유의 차원이다. (1771년 판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나는) 이러한 견해가 일루저니즘 미학의 근본적인 전제에서 벗어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모상(표상)은 원상(표상되는 대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일종의 자립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이 모상(표상)은 자신의 자립성을 가능케 한 예술가를 가리키게 된다."(166-7)


"실러에게 '소박 문학'과 '정감 문학'이라는 대對개념은 일종의 유형 개념인 동시에 역사 철학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며, 그 점에서도 일종의 '고대인-근대인 논쟁'의 변주이다." "('자연의 은총'을 입었기에, '자연스러운') 소박 시인은 아직까지 〈감성과 이성······이 그 작업에 관해 구별되지 않은〉 시대(전형적으로는 고대 그리스로 대표되는 시대)에 있으며 '자연스럽기' 때문에 인간 본성의 조화라는 목표에 도달해 있다. 그리하여 소박 시인은 〈현실을 가능한 한 완전히 모방하는 것〉으로 인간 본성을 표현할 수 있다. 만일 묘사 대상을 내용, 그것을 다루는 방식을 형식이라고 부른다면 형식은 내용에 몰입해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묘사되는] 객체Objekt가 시인을 완전히 점유하고 있다.〉 그와 대응해 작품의 향수자는 작품에서 그것을 형성한 저자의 주체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향수자에게는 〈시인이 작품이며 작품이 시인〉이라는, 작품과 시인의 동일화가 성립한다."(171-4)


"'반성적 지성'reflektieren der Verstand이 특징을 이루는 근대의 '정감적' 예술은 잃어버린 자연을 추구해야 하지만 추구되어야 할 자연은 결코 사실의 자연, 즉 여전히 유한성과 결합된 자연이 아니라 '이상'理想의 자연이다." "근대에는 더 이상 〈[묘사되는] 객체Objekt가 시인을 완전히 점유〉하는 일 없이, 오히려 거꾸로 시인의 '반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야말로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또 이와 대응해 향수자는 어느 작품에 그려진 내용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시인에 의해 매개된 경우에 한해서 수용하는 동시에 이 매개를 의식하고 있다. 즉 향수자는 〈작품 속에서 우선 시인을 탐구하여 시인의 심정Herz과 마주하고, 시인과 함께 시인이 그리는 대상에 대해 반성하는 것reflekieren, 즉 [시인에 의해 묘사되어 있는] 객체Objekt 속에서 [시인이라는] 주체Subjekt를 직관한다.〉 이리하여 소박 문학에서 확인되었던 '원상-모상'의 이항관계는 '예술가-예술작품-향수자'라는 삼자관계로 변용된다."(175-6)


제4장 예술작품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기술관은 다음 두 가지 논점으로 이루어진다. '기술은 자연을 모방한다'라는 명제에서 알 수 있듯, 먼저 자연과 기술 사이에 유비적 관계가 주장된다. 그 유비는 목적론적 세계관에 기초해 있으며, 기술은 자연을 모방한다는 점에서 자연과 마찬가지로 합목적적이다. 그러나 두 번째로 기술과 자연의 관계는 그야말로 모방적인 관계에 머무르는 까닭에 양자 사이에서는 공통성과 함께 상이함도 인정해야 한다. 확실히 어떤 소산을 합목적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기술과 자연은 공통적이다. 그러나 자연적인 것에 내재된 이 생산의 원리(형상인形相因)는, 인위적인 것에는 내재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제작하는 사람 안에 존재한다." "이와 같이 기술에서 질료와 형상은 서로 외적이며 또한 작용인作用因(제작자)은 질료의 외부에 존재한다. 그에 반해 자연의 경우에 질료와 형상은 동일한 실체를 이루고 작용인은 이 실체에 내재한다."(185-6)


"근세 초기의 기계적인 기술의 전개는 새로운 비非아리스토텔레스적 기술관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움직임을 대표하는 것이 베이컨과 데카르트다." "물론 베이컨도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자연의 소산과 기술의 소산에서는 그 '작용인=작용자'가 다르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베이컨은 자연과 기술, 혹은 자연의 소산과 기술의 소산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자연 법칙을 인식함으로써 자연에 작용하는 것이야말로 기술의 작업이라고 생각한 베이컨에게, 기술이란 결코 사물에 단순한 '외적 형상'을 부여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자연 법칙의 확인을 통해 직접 자연에 '작용하면서' 자신의 의도에 따라 자연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은 단순히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에 따라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이컨에 의하면 '각종 기술지'(historia artium)는 '자연지(historia naturalis)의 일부분' 간주되어야 한다."(187-8)


"기술을 자연의 일부로 간주하는 베이컨의 생각은 그가 자연 그 자체를 기계적으로 파악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자연지'가 자기 안에 '기계적인 기술의 시도'를 포함하려면 자연의 작업 자체가 기계적인 기술의 작업과 등질等質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계론적 자연관이야말로 기술과 자연의 동형성同型性이라는 생각을 가능케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데카르트이다." "데카르트 또한 기계학을 자연학의 일부 혹은 일종으로 규정하고 더 나아가 기계학의 이론은 모두 자연학에도 타당하다고 논한다. 기계론적 자연관을 표방하는 데카르트에게 자연적인 물체(생명체를 포함하는)와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것 사이의 본질적인 상이함은 인정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입장에서 벗어난 데카르트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기계적인 기술을 하나의 모델로 해서 생명체까지 포함하는 자연적인 세계 전체를 파악하고자 한다. 여기서 이른바 신체 기계론 혹은 동물 기계론이 등장한다."(188-90)


"라이프니츠는 한편으로는 근대적인 기계론적 자연관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의 차이를 강조한다.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자연의 기계'와 '우리의 기계' 사이에는 본질적인 상이함에 있다." "인간이 만드는 기계는, 일정한 부분 혹은 요소를 전제로 하여 거기서 형성된 복합물 혹은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자연적인 사물의 경우 언뜻 보면 그 최소의 요소라 여겨지는 것도, 실제로는 여러 부분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여러 부분 자체도 말하자면 프랙탈Fractal과 같은 상태로, 여러 부분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이리하여 라이프니츠는 〈자연의 여러 기계, 즉 살아 있는 신체는 가장 작은 부분에서도 기계이며 그것은 무한히 나아간다. 이것이야말로 자연과 기술, 즉 신의 기술과 우리 기술의 차이를 만들어낸다〉라고 결론짓는다. 즉 자연의 기계와 인간의 기계 혹은 양자를 만들어내는 신의 기술과 인간의 기술은, 무한성과 유한성이라는 점에서 구별되는 것이다."(192-4)


"버크가 자연의 소산과 기술의 소산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논의한 것은, 그가 기계론적 자연관에 기초해 기술과 자연의 동형성을 주장한 베이컨의 입장을 기본적으로 답습하고 있다. 자연의 소산은 바로 창조자에 의해 만들어진 매우 유능한 기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크는 동시에 기술의 소산이 본질적으로 유한한 것은 인정하면서 그것이 일정한 조건 아래서 자연의 소산에 적합한 '무한성'을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버크는 (암묵적으로) 기술의 소산과 자연의 소산이라는 대상 영역의 구분과 결부되는 논의를, 대상을 파악할 때의 관점의 상이점─즉 동일한 대상을 기술의 소산으로 파악하는가, 아니면 비非기술적인 것(혹은 자연적인 것)으로 파악하는가─과 결부되는 논의와 교차시키고 있다. 자연적인 소산이나 모두 기술(즉 신 혹은 인간의 기술)의 소산이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의 상상력에 '쾌'를 주는 경우에 한해서 양자는 기술의 소산으로 의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214-5)


"보통 기술자의 작업은 '미리 책정된 목적을 수행하는' 데 있다. 그러나 칸트(『판단력 비판』(1790))에 따르면 예술가는 미리 책정된 목적을 수행할 때 '합목적성'을 잃는 일 없이, 그러나 동시에 이 목적 그 자체에서는 연역적으로 도출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소재'를 주고, 그것을 '표현한다.' 예술가는 이 점에서 여타 기술자와 구별되므로, 예술가의 작업은 '규칙에 의한 교시에서 자유롭고' 예술가 자신도 자기의 행위를 미리 통찰할 수 없으며, 〈어떻게 해서 자신이 자기의 소산을 만들어내는지, 기술記述하거나 학문적으로 나타낼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의 의도를 넘어선 풍요로움을 만들어내는 천재란 더 이상 예술가의 의식적인 측면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에 속하는' 것, '[예술가라는] 주체의 자연'에서 유래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작품이 의미를 전부 퍼 올릴 수 없는 풍요로움과 충만함을 보여주는 까닭은, 예술 창작이 의도와 '주체의 자연'이 교차할 때 성립하기 때문이다."(218)


"예술이 예술의 이름에 걸맞은 때는, 그것이 예술가의 기계적인 기술이 빚어내는 유한한 의도에 의한 속박을 벗어나 '유한한 오성'에 의해서는 '전개'될 수 없을 법한 '무한성'을 제시할 때이다. 그것이 가능한 경우는 예술가의 활동이 단순히 '의식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고, 동시에 '몰의식적'일 때이다. 예술 창작 그 자체는 예술가 자신도 완전하게는 통찰할 수 없는 과정, 예술가 자신을 이른바 '본능적'으로 부추기는 과정이며, 이러한 창작 활동에서야말로 예술가는 〈스스로 의지하는 일 없이 자기 작품 속에 가늠하기 어려운 깊이를 넣어둘〉 수 있다. 그렇다면 무한성을 나타내는 예술작품─구체적으로 서술하면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갖는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의식, 고찰, 반성'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자유로운 은총'으로 귀결되어야 할 것이다. 셸링은 이와 같이 인위성과 자연성의 교차야말로 예술작품을 여타 기술의 소산과 구별하는 무한성을 가능케 한다고 논했다."(220-1)


제5장 형식


"루소에 따르면, 감각은 '단지 감각으로서 작용하는' 한, 감관이라는 '자연적인 것'에 속하고 자연과학적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감각은 동시에 정신적인 것을 지시하는 '기호' 혹은 '닮은 상'으로도 작용한다. 이 경우 감각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효과'인 정념을 일으키지만, 이러한' 정신적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은 결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정신적인 것'이어야 한다. 즉 그 원인은 감각 그 자체가 아니라 감각에 의해 표현, 표상 혹은 모방되는 것, 다시 말해 감각이 '기호'로서 지시하는 것 안에 있다." "그러므로 루소가 보기에 감각을 '기호'나 '모상'으로 변화시킬 때의 '선묘'야말로 회화의 본질을 이룬다. 물론 선묘라 해도 색채가 전혀 없어서는 안 된다. 루소 자신이 말하듯 〈선묘란 다름 아닌 색채의 배열이기〉 때문이다. 색채와 선묘는 이른바 그 소재(질료)에 입각하는 한 구별되지 않는다. 양자의 상이점은, 이 질료가 그 자체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정신적인 것을 지시하는 기로호서 기능하는 가에 있다."(226-7)


"루소가 비판하는 예술관이란 예술에서 감각적인 것을, 그것이 모방하는 대상에서 자립시켜서 탈기호화하고, 감각적인 여러 요소들의 '결합'combinaison이나 '관계'rapport 속에서 예술의 본질을 간파하려는 입장, 즉 형식주의적 예술관이다. 루소가 비판하는 형식주의적 미학─즉 비非모방적인 회화를 범례로 하는 예술관─은 형태에 대해 색채의 우위를 설명하는 입장과 결부되어 있다. 즉 형식주의란 회화의 형태(라는 '형식적인 것')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색채(라는 '질료적인 것')의 의의에 착목한다. 그렇다면 형식주의란 '형상-질료'라는 전통적인 질서를 이른바 변용 혹은 해체하면서 그것을 통해 '질료적인 것'을 예술에서 고유한 매체로서 (어떤 독자적인 방식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관점에서 칸트는 회화술에서 '색채술'Farbenkunst을 선별하고, 이를 '음악'과 함께 어떤 것도 '묘사=표상vorstellen'하지 않는 '감각이 유동하는 예술'에 포함시킨다."(230-1)


"애덤 스미스는 『모방적인 기술론』에서 예술적인 모방을 규정하면서 원상과 모상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논한다. 조각에서 모방 매체는 모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3차원적 입체이며, 양자 사이의 거리는 좁기 때문에 '모방하는 것' 자체가 달성하는 역할은 한정된다. 조각의 가치는 궁극적으로 '모방되는 대상의 가치'로 환원되기 때문에 '모방되는 것' 자체가 '매우 아름답거나 관심을 끄는 것'이어야 한다. 그에 반해 회화에서는 '모방하는 것'[예술작품, 모상]과 '모방되는 것'[원상] 사이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모방되는 것 그 자체가 달성하는 역할이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그에 따라 모방하는 것의 의의가 커진다. 즉 회화에서는 '모상의 가치'가 증대하므로 회화의 가치는 '모방되는 대상'으로 환원되지 않고, 모방하는 것은 모방되는 것에서 일종의 자립성을 획득한다. 이 가치는 모방되는 것 그 자체에는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모방되는 것은 '관심을 끌지 않는 것indifferent', 더 나아가 '불쾌한 것'offensive이어도 된다."(246-7)


# 원제는 『모방적인 기술이라 불리는 것에서 생기는 모방의 본성에 대해서』


"스미스에 의하면 조각과 회화는 모두 설사 그 모델이 자연에서는 발견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지라도, 자연에서 발견되는 '갖가지 미를 모아놓은' 것 이상은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조각과 회화에서 모상의 미가, 전체로서 자연의 미를 능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음악(성악)도 '감정이나 정념'을 표현 혹은 모방하지만, 음악은 그것을 모방할 때 모방 대상을 '자신의 박자에 맞춰 굴곡bend'시킨다." "음악 그 자체에 구비된 형식적 요소인 '박자'가, 대상을 자신의 형식적인 요소에 맞게 변환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회화에서는 아직 형태와 색채가 대상적 세계에 종속해 있으며, 그 독자적인 구성 원리를 구비하지 않은 데 반해 음악에서는 '선율과 화성'이 고유한 구성 원리를 지니고 있으므로, 모방 대상에서 벗어나 자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각에 대해 회화가 경향성으로 지니고 있던 모상의 자립성은, 음악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음악이 '그 자체에서 유래하는 가치'를 지니는 것은 이 때문이다."(250-1)


"스미스는 예술작품을 향수할 때 환기되는 감정은, 예술이 모방적인 장르인지 여부에 따라 구별된다고 말한다. 원상-모상 관계가 성립되는 모방적인 장르(성악, 회화, 무용)는 하나같이 어떤 인물을 모방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원상이 되어야 할 '타자'가 전제된다. '기쁨'이라는 감정을 예로 든다면, 기뻐하는 것은 원상인 타자이지 모상이 아니다. 이처럼 모상인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면 우리의 이 감정은 모방을 통해 원상인 타자에게 향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의 특징은 '공감적인 감정'이다. 그에 반해 기악에서는 이러한 원상-모상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어느 타자를 모방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기분 좋은 대상으로서 기악곡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기쁨'이라는 감정을 예로 든다면, 기악 그 자체가 즐거운 대상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어떤 원상과 결부된 '공감'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감정인 것이다."(255-6)


에필로그 예술의 종언


"서양의 예술 이론에서 '예술의 역사'를 처음 고찰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자연 본성'이야말로 '종극[목적]終極'(telos)이며, 〈생성이 그 종극[목적]에 도달했을 때 각 사물이 있는 것, 그것을 우리는 각 사물의 자연 본성이라고 부른다〉라는 것이므로, 어떤 사물이 그 '자연 본성을 가진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것이 그 생성의 '종극'에 도달하여 그 '형상을 취득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밝혀지듯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의 성장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목적론적 생성 과정을 '비극'의 전개 과정에 적용하여, 마치 생성이 그 성장을 통해서 종극에 이르듯 '비극' 또한 그 발전을 통해서 종극에 이른다고 논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비극의 '종언' 이후에 씌어진 저서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이미 '종언'을 맞이해 그 '자연 본성을 획득했다'고 간주함으로써 『시학』에서 말한 비극의 본질을 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285-6)


"그리스 로마 시대에 '예술 종언론'의 전형적인 예는 전傳롱기노스의 『숭고에 대해서』(기원후 1세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철학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민주제야말로 〈위대한 것을 키워낸 좋은 부모〉이며, 거기서만 담론에 유능한 사람들이 번영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노예인 것이 정당하다고 아이 때부터 배웠고〉,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가장 결실 풍부한 담론의 원천인 자유eleutheria를 맛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담론에 유능한 사람들도 사멸했다.〉" "이 철학자의 견해에 대해서 저자인 '나'는, 우리들을 노예로 한 것은 정치적 자유의 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금전욕과 향락욕'이라는 〈우리 모두가 이미 걸려 있는 병〉이고, 이 병에 의해서 〈정신적 위대함이 쇠퇴하고phthinein, 사멸한다katamarainesthai〉라고 응답한다." "'철학자'의 견해도, 저자인 '나'의 견해도 필시 플라톤의 『법률』에 나타난 논의에 입각한 것인데 정신적 악덕이 폴리테이아의 쇠퇴를 부른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기 때문이다."(286-8)


"이상의 검토를 통해 '예술 종언'의 이중적인 의미가 확실해졌다. 즉 예술의 '목적 달성' 혹은 '완성'이라는 의미의 종언Ende=Zweck, 그리고 예술의 '쇠퇴'라는 의미의 종언Ende=Untergang이다. 이 두 가지 의미의 종언론이, 조르조 바사리에서 빙켈만에 이르는 근대 예술사 기술記述의 근간이 된다. 예를 들어 바사리는 『열전』(1550) 제1부 서론의 끝부분에서 조각술과 회화술의 '자연 본성'을 〈인간의 신체처럼 탄생, 성장, 노쇠, 죽음을 지니는 여타 모든 것의 자연 본성〉이라고 유비적으로 파악하고, '최고의 정점'까지 도달한 예술은 〈그 고귀한 단계에서 극단적인 붕괴ruina estrema로 전락한다〉라고 논한다. 또한 빙켈만도 마찬가지로 『고대 미술사』(1764)에 〈예술의 역사는 예술의 기원, 성장, 변화, 몰락을 교시敎示해야 한다〉라고 서술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역사는 '재생' 혹은 '순환'하는 과정이고, 그로 인해 예술사는 예술이 탄생에서 완성을 거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의 반복으로 기술된다."(288)


"헤겔의 (근대적) '예술 종언론'은 첫째로, 고대 그리스에서 그리스도교 세계로 이행하면서 일어난 절대자의 변용이 절대자를 표현하는 예술을 '과거의 것'으로 했다는 의미이다. 고전적인 예술이 확실히 '미의 왕국의 완성', '미의 정점'이더라도 〈그리스 예술의 아름다운 나날은 ······ 지나가버렸다〉는 것이며, 그것을 현대에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술 종언론'을 구성하는 두 번째 논점은 근대에 있었던 '낭만적인 예술의 붕괴'와 결부되어 있다. 낭만적인 예술은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가 특색인데, 그것은 감성적인 세계에서 현상現象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적 절대자를 '암시'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낭만적인 예술이 진전함에 따라 예술가는 본래 표현해야 할 내용을 잊고 단지 자연적인 우연성을 묘사하는 데 전념하게 된다." "이처럼 종교에 봉사했던, 혹은 종교 그 자체였던 예술은, 무언가를 표현하는 '수단'이기를 그만둔다. 원래 수단이었던 것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는 일종의 자기목적성을 예술은 갖추게 된다."(290-1)


"'근대적인 예술 종언론'은 여러 가지로 형태를 바꾸면서, 헤겔 이후의 많은 이론가에 의해 반복되고 있다. 그 전형적인 예로 〈이야기하는 기술技術은 종언으로 향하고 있다〉라는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론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죄르지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1920)에서 고대의 서사시와 근대의 소설을 대비적으로 파악하고, 소설은 인간이 '바깥 세계에 소원疎遠'해지고, 또한 '인간을 서로 구별하는 요소가 서로 이어질 수 없이 멀어져버린' 시대에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고 논하고, 소설의 특질을 '초월론적 고향상실' 속에서 찾았다." "벤야민에 따르면, 사람들의 생활이 민중 혹은 공동체 속에 묻혀 있던 시대에 성립한 예술 형식이 '서사시' 혹은 '이야기'였다면, 이러한 민중에서 '개인=고독한 사람'이 분리되어 개개인이 타자와는 '통약 불가능함'을 자각한 시대의 고유한 예술 형식은 '소설'로 규정된다." "범례성의 결여는 서로 '통약 불가능한 것'이 다원적으로 존재하는 시대의 특징이다."(293-5)


"독창성 이념은 예술가에 대해서, 예술가가 항상 기존의 것과는 다른 것을 창조하고, 개개의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와는 다른 '개성'을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 "독창성 이념은 확실히 예술을 기존의 속박에서 해방하고, '예술로서의 예술'을 실현한다는 기능을 완수했다고 할 수 있으나, 또한 동시에 예술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기도 했다. 첫째로 자기의 독창적인 개성을 발휘하고자 하는 개개의 예술가는 모든 기존의 문맥을 의식적으로 부정하고 항상 '예술사'를 쇄신하고자 하는데, 그 때문에 예술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 불가능한 것이 된다. 그것은 개개의 예술가가 이른바 자기 고유의 '언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만들어내도록 강요당했다고 해도 좋다)." "두 번째로 신예술에 의해 기존의 것(구예술)이 부정된다는 사실은, 더 나아가 신예술 자체에도 마찬가지이므로, 예술은 항상 자기부정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부정의 변증법은 결국 자기 부정의 반복에 의해서 그 변증법적 힘을 잃고 만다."(297-9)


"역사를 부정하고자 하다가 오히려 역사에 구속되어버린 1970년대 신예술의 위기에 직면하여, 단토는 1980년대에 예술의 종언을 제창하는 이론을 제기한다." "단토의 예술 종언론에는 그의 고유한 '역사' 개념이 전제되어 있다. 단토에 의하면 예술사 기술記述에는 세 가지 모델이 존재한다. 첫 번째 모델은 바사리가 제기한 것으로, '재현'representation 즉 '[실제의] 지각적인 경험과 등가等價한 것의 생산'을 예술의 목표로 한다. 이 모델이 타당한 부분은 재현 예술, 특히 회화와 조각인데, 영화 기술의 전개와 함께 재현을 수행한다는 〈예술의 임무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서 회화와 조각의 활동에서 영화의 활동으로 이행했다.〉 그런 의미에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서 〈예술사, 적어도 [재현하는 것이라고] 간주되기만 했던 회화의 역사는 실제로 종언을 맞이했다.〉 재현의 예술이 종언을 맞이하면, 예술가는 〈자신들이 아직 이룰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300)


"여기에 새로운 예술사의 모델이 요청되는데, 단토에 의하면 두 가지 응답을 제시할 수 있다. 첫 번째 응답은 예술의 본질을 '표현'에서 찾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야수주의 시기의 앙리 마티스가 그린 〈초록 줄무늬〉(1905)에서, 이론적으로는 베네데토 크로체가 1902년에 출간한 『표현 및 일반 언어의 학문으로서의 미학』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델은 음악과 같은 비非재현적 예술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앞의 재현 모델보다도 포괄적이다. 그러나 '표현'이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이어서 서로 통약通約이 불가능하므로, 예술의 본질을 표현에서 추구하는 한 〈예술사는 진보의 패러다임에 의해 측정할 수 있는 종류의 장래를 가지지 않고 오히려 개개의 지속적인 작업의 연속으로 나뉜다.〉 그러므로 이 모델에 따르면 예술에는 '진보'도 '종언'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입장에서 예술사를 통약 불가능한 '여러 패러다임의 연속'으로 파악한 것이 어윈 파노프스키의 저서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1927)이다."(300-1)


"두 번째 응답은 '역사에 대한 헤겔식 모델'─즉 〈역사란 자기 의식과 함께, 더 적절하게 말하자면 자기 인식의 도래와 함께 종언한다〉라는 『정신현상학』에 나타나는 역사관─에 의거한다. 이 역사관은 '교양소설'에서 전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지닌다. 자기 동일성의 위기에 직면한 근대 예술은 〈그 위대한 철학적 단계, 즉 약 1905년부터 약 1964년까지의 단계에서 자기 자신의 본성과 본질에 대한 대규모의 탐구를 시도했던〉 것이며, 동시에 팝 아트가 이 〈예술의 본성을 둘러싼 철학적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 그것은 팝 아트가 〈왜 이것이 예술이며 그것과 꼭 닮은 것─보통의 브릴로 박스나 흔해빠진 스프 캔─은 예술이 아닌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바로 예술을 통해서 제기했기 때문이다." "즉 교양소설이 주인공의 자기 인식을 정점으로 하고 끝을 맞이하듯, 자기 정의 혹은 본질을 철학적으로 탐구한 20세기의 예술은 1960년대에 예술로서 임무를 다했다는 것이다."(301-2)


"단토의 1960년대의 '예술 종언론'에 대해, 1970년대 이후에도 예술은 존재하지 않느냐라는 반론이 있을 것이다. 이 반론에 대해서 단토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물론 예술 제작은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예술 제작자는 내가 예술의 역사 이후적post-historical이라고 부르고 싶은 단계에 살고 있으며, 그 제작자가 낳은 작품에는 우리가 [예술에 대해서] 오랫동안 기대해 온 듯한 역사적 중요성 혹은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 즉 예술의 종언이란 예술을 둘러싼 〈어느 한 이야기의 종언〉이며, 그러므로 예술이 종언 후에 존속하더라도 '예술의 종언' 이후의 예술은 더 이상 '역사적 중요성'을 띠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이야기'가 종언한 뒤에도 등장인물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지만, 그 자체는 이야기에서 어떤 중요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예술의 종언'이란 그러므로 역사적 의미를 담당한 '예술'의 종언, 즉 '예술사의 종언'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예술의 죽음'은 아니다."(302-3)


"단토에 의하면 '예술의 종언'이란 예술에 대한 '어떤 하나의 이야기의 종언'인데, 이 명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단토의 이 명제가 의미하는 것은 어떤 일정한 '역사적 발전의 목표'를 지향하는 예술 자체의 종언, 즉 어떤 일정한(동시에 단일한) '이야기'narrative를 역사 안에 체현하는 예술 그 자체의 종언이다." "그때 종언한 것은 어떤 일정한 목표 혹은 규범을 목표로 진보한 근대의 예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근대의 예술을 그와 같이 파악해온 규범주의적인 예술관 혹은 예술사관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면 예술을 '역사적' 단계와 '역사 이후적 단계'로 나누는 것 자체가 문제시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부여된 임무는 근대를 이미 지나가버린 하나의 시대로 확정하고 그와 같은 근대에 대비하여 '근대 이후'를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규범주의적인 예술(사)관에 얽매이는 일 없이 '근대'와 '예술세계'의 다양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내부에서 여러 가지 문맥을 더듬어 찾아내는 일일 것이다."(310-1)


"기존의 문맥 아래에 머무를 것인지 혹은 기존의 문맥을 부정할 것인지의 양자택일은 '문맥'을 너무 고정적으로 (일종의 사물로) 파악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문맥이 고정된 사물이자 일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아니면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맥이란 새로 해석하고, 더 나아가 재편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문맥의 가변적인 힘이야말로 예술 창조의 근간이다. 그리고 '독창성'이란 이 문맥이 지니는 잠재적인 힘을 파악하고, 그것에 응답하면서 문맥을 바꾸고 새로운 문맥을 만들어낼 때 성립한다. 동시에 문맥의 재편 가능성은 예술의 수용자에게도 열려 있다. 동일한 작품도 동시에 여러 개의 문맥 아래 놓여져 갖가지 시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문맥의 발견은 어떤 작품의 의미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어느 예술작품에 '공민권을 제공하는' 이론을 제기할 권리는 결코 그 예술작품을 창작한 예술가가 배타적으로 점유하지 않는다."(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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