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과 기계문명
양동휴 외 / 서울대학교출판부 / 1997년 12월
평점 :
품절


1 머리말


2 산업혁명


# 산업혁명이 시작된 핵심 계기

1. 사회적 변화설(토인비) : 재화와 용역의 생산 및 분배, 생산요소들의 배분이 중세적 규제에서 벗어나 시장기구에 의해 운행되기 시작한 시점

2. 산업조직설(마르크스) : 기능공 중심의 선대제 생산이 공장제 대량생산으로 전환되고, 유동자본보다 고정자본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한 시점

3. 기술진보설(란데스) : 석탄을 비롯한 에너지원의 혁신, 각종 기계의 발달, 합성원자재의 등장 등 넓은 의미의 복잡한 기술진보가 시작된 시점

4. 거시경제설(쿠즈네츠, 로스토우) : 수량경제사가들의 관점으로 국민소득, 자본형성, 노동공급의 양적 성장이 급속히 가속되기 시작한 시점

※ 산업혁명의 '혁명성'은 변화의 속도보다는, 그 변화의 결과가 지역적·미시적 분야에서 (기존의 견해보다는 완만하지만) 가속적이고 불가역적으로, 그리고 누적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3 산업혁명의 재현


"본격적인 산업화와 이에 따른 도시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던 18세기에는 영국인의 대부분이 시골에서 살았지만, 가시적인 환경 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종획운동(Enclosure)으로 인한 농지의 전환, 공유지의 철폐 등과 함께 식량증산을 위한 농지개량, 대규모 관개 및 배수 시설의 확장, 도로건설 등이 이미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인이 과학적·기술적 발전의 결과를 피부로 감지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화가 본격화된 18세기 말 이후였고, 특히 19세기 초 증기기관의 등장에 이어 1840년대 이후 철도의 보편화는 당대인에게 역사의 변화를 추상적 경험에서 구체적 실체로 바꾸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값싼 수송수단의 출현은 도시의 인구유입을 원활하게 해서 거대도시의 출현을 촉발하였으며, 지리적 제약을 벗어나 전국을 하나의 영역으로 묶을 수 있어 공업 및 상업의 비약적 확대를 가져왔고, 동시에 런던의 신문이 전국으로 배달되는 등 정보 및 통신의 교류가 본격화되었다."(64-5)


"빅토리아조 영국인들에게 철도가 도시를 공간적으로 이분하며 질주하듯이 시간적으로도 과거와 현재를 이분하는 이미지로 인각되었다." "철도와 증기기관이 가진 흡입력과 거부감은 이미 낭만주의 작품에서부터 분명하게 나타난다.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의 정치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낭만주의 문학은 전자에 대해서는 치열한 대응을 하였으나 산업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도시화 및 기술적 발전 등의 당대적 사회현상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낭만주의 시인들이 현실정치에서 실망하고 자연 속에 내재하는 초월적 존재양식으로 관심을 돌렸을 때, 도시나 증기기관 등을 자연의 초월성과 평온함을 파괴하는 추상적 합리주의의 등가물로 인식하였다. 워즈워드는 도시를 시골과 대비시켜 정상적인 주거공간으로 보기를 거부했다. 즉, 근대기술문명의 도래를 변화의 이름으로 받아들일 때도, 진보에 대한 들뜬 찬양이 아니라 오히려 착잡한 심정이 주조음으로 배경에 깔려 있는 것이다."(65-7)


"낭만주의자들에 비해 빅토리아조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바로 철도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시대에 속한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었다." "구스타프 도레의 「러드게이트 언덕」에서 철도용 구름다리는 화면을 수평으로 이분하고 있는데, 다리 밑으로는 수많은 마차, 행인들, 행상들이 서로 뒤섞여 질주하고 있으며, 다리 위로는 평온한 풍경 속에 저멀리 르네상스 양식의 세인트 폴 대성당의 우아한 돔이 은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그 결과, 화폭은 흡사 단테의 작품에 나오는 지옥과 천국을 연상시키는 아비규환과 정온함의 대립으로 이분되는데, 화면을 지옥과 천국으로 이분하는 다리 위로 증기기관차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로 변화의 속도로 힘차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아놀드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아래쪽은 속도에 취한 당대의 〈구역질나는 성급함〉의 정서이고, 위쪽은 자본주의적 분업이 도래하기 이전 인간다움이 보장된 사회라고 믿었던 빅토리아 인들이 동경한 중세에 대한 향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68-9)


"동시대인들에게 산업혁명으로 인한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가장 총체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은 〈공장도시(factory town)〉들이었다." "공장도시는 지리하고 반복적인 노동규율에 지배받는 거대한 공장들과 그 주위에 널려 있는 피폐한 노동자들의 거주지역으로 양분되는 단순화된 사회공간이었다." "문제는 진보와 개량의 정신이 함축한 합리성의 성격이다. 산업자본주의 시대를 이끄는 합리적 개량의 정신이 작업장 내의 기계들에는 넘쳐 흐를지는 몰라도 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생활환경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이 모순적 합리성은 대표적인 공장도시인 맨체스터에 대한 토크빌의 다음과 같은 단평이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불결한 하수구에서 지극히 막대한 인간 근로의 물줄기가 흘러나와서 전세계를 비옥하게 한다. 이 더러운 하수구에서 순금이 흘러나온다. 여기서 인간은 가장 완벽한 발전 상태와 가장 야만적인 상태에 이른다. 여기서 문명은 기적을 이루나 문명인은 거의 야만인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72-7)


"산업혁명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재현은, 비유를 통해 대상을 변형시키거나 아니면 추상화된 형용어에 의존한 딱딱한 사무적 기술을 하는 양극단 사이에 놓여 있다. 노골적으로 산업자본주의를 옹호했던 유어처럼 특별히 산업혁명의 옹호자로 나서지 않는 한, 대부분이, 한편으로는 유기적 세계관을 견지한 입장에서 기계화의 비인간성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기술적 발전과 산업자본주의의 놀라운 생산력에 대해서는 경이로움이 섞인 찬탄을 보내는 이중적인 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숭고미는 엄청난 기계문명의 위세뿐만 아니라 거기에 따른 인간 노동자의 극한적 피폐함의 광경에서도 나온다. 산업혁명의 생산물들을 전세계로 실어 나르고 또 거대한 양의 원료를 수입해 들여오는 중심항구인 런던 부두 그 주변에서 매일 일을 따내어 일당으로 생계를 잇는 일용잡직 부두 노동자들의 거처를 방문한 헨리 메이휴의 『런던 노동자와 런던 빈민』에는 또다른 종류의 숭고미가 담겨 있다."(85-7)


"메이휴가 목도한 궁핍의 장엄미라는 극단적 미적 체험에 잠재되어 있는 사회적 가능성은, 감성이나 오성을 초월하는 이성을 동원하여 주체를 압도하는 대상을 파악하는 것, 즉 사회에 대한 총체적 시각이다. 이것이 눈앞에 놓인 〈바다만큼이나 무한한〉 대상의 총체적 의미를 감지한다는 점에서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총체적 대응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이 꼭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방향을 지향할 이유야 없겠으나 이러한 장엄미의 체험이 사회주의적 입장을 포함한 다양한 문명비판적 담론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나아가 장엄미의 체험이 이 경우 단순히 주체와 주체를 압도하는 객체간의 괴리가 아니라, 대상 자체에 내재해 있는 괴리, 즉 〈부를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장엄미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면, 분명히 그것과 동시에 존재하는 결핍도 그만큼 헤아릴 수 없고 그만큼 장엄하다〉는 모순이 문제된다는 점에서, 반역의 가능성, 즉 산업혁명의 정치혁명화의 가능성이 근접한 거리에 놓여 있다고 하겠다."(88)


4 기계의 철학과 기계문명의 이상


"유어의 저작 『제조의 철학 또는 대브리튼 공장체제의 과학적·도덕적·상업적 경제의 해설』은 산업자본주의의 이해관계에 가장 충실한 입장을 보여준다." "그가 다루고자 하는 가장 완전한 〈제조(manufacture)〉는 〈손으로 하는 노동을 완전히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제조의 철학이란 따라서 생산활동이 스스로 행동하는 기계들에 의해 이끌리는 일반적 원리들을 해설하는 것이다.〉 생산의 인간적 주체의 자리를 빼앗은 스스로 행동하는 기계들은 사람으로 의인화되어 제시된다. 증기력은 인간 조무라기들을 주위에 거느린 거대한 거인으로 변신한다." "나아가, 이것은 하나의 신학적인 의의마저 갖는다. 〈노동자의 절대로 변함없는 친구, 증기기관〉은 〈'네 얼굴의 땀이 흘러야 네가 식물을 먹으리라'는 인간의 노동에 내려진 원초적 저주를 가볍게 하고 어느 정도 폐지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축복〉이라는 것이다. 기계에 의한 '노동의 종말'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유토피아적 가능성까지도 함축하게 된다."(91-3)


"그러나 산업혁명의 자비와 축복은 인간을 열등한 기계의 부품으로 변화시키는 비인간화를 수반한다. 그 전제가 되는 것은 바로 공장의 기계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 조직이라는 시각이다." "유어는 〈공장체제〉 자체를 〈다양한 기계적·지능적 기관들로 구성된 거대한 자동인형이 공통의 목적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 모든 기관들이 스스로 제어하는 동력에 복속된 채, 간단없이 조화롭게 행동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자동화된 기계 생산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인간들로 하여금 그들의 변덕스런 작업 습성을 포기하고, 복잡한 자동기계의 변함없는 규칙성과 자기를 동일시하도록 하는 일〉이고, 따라서 산업혁명의 선구자로 칭송되는 아크라이트의 〈헤라클레스적 과업이자 그의 고귀한 성취〉는 바로 〈공장의 근면의 필요에 맞춘 성공적인 공장 규율을 고안해 내고 관리했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제조의 철학이 약속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오히려 보다 강화된 노동의 속박을 그 실체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93-4)


"제조의 철학이 제시하는 기계화와 산업자본주의의 영웅적인 혁명성은 정반대 입장에서 〈자본의 부름에 응한 과학〉에 대항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온갖 재앙의 근원으로 비춰졌다." "〈증기의 자비로운 힘〉은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전혀 자비롭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힘 자체도 인간노동에 근거해 있고 거기에서 파생된 것으로 인식되었다." "〈제조의 철학〉의 〈제조〉란 말에 담긴 인간노동의 언어적 찬탈과 그 철학적 추상화의 근저에서는 여전히 노동자 대중에게 내려진 〈네 얼굴의 땀이 흘러야 네가 식물을 먹으리라〉는 〈원초적 저주〉가 지속되었다. 그만큼 그 저주에 근거한 정치적 잠재력이 견지되었던 것인데, 그것은 산업생산의 가장 근저에 깔린 노동의 힘이 언제나 산업자본주의의 질서를 뿌리부터 흔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노동의 힘이 강해질수록 제조의 철학은 보다 강하고 지능적인 〈철인〉 기계를 통해서 인간노동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데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96-7)


"쌩씨몽의 과학기술주의는 산업혁명의 사회적 변화, 특히 공장도시 등의 생활공간이나 생산관계의 변화를 배제한 채 그 생산력의 기술적 발전에만 주목한다는 면에서 유어의 〈제조의 철학〉과 일치한다. 다만 거기에 담겨 있는 진지한 이상주의는 산업자본주의의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합리화가 아닌 하나의 기계문명의 이상, 기계의 이상을 가장 포괄적으로 표현한 형태가 되도록 만드는 점이 특이하다." "유어의 시각에서 보면 산업혁명은 바로 노동자의 지적인 능력을 대치할 지각 있고 말 잘 듣는 기계의 도래가 중심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쌩씨몽의 과학기술 혁명의 대상은 〈임의적이고 신학적인 제도들〉로 이것들을 〈자유롭고 산업적인 관념들과 제도들〉로 대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필요성은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봉건질서가 붕괴되면서 와해된 사회의 유기적 관계에 맞서서, 오직 〈산업의 관념〉이 〈필수적이고 유기적인 사회적 유대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98-9)


"로버트 오웬의 이상주의는 온정주의나 복고주의 또는 추상적인 휴머니즘과 구분되는 보다 구체적이고 기능주의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명백한 것은 노동자들을 중요하고도 섬세한 〈기계〉로 대우하자는 오웬의 제안은 단적으로 유어가 고전적으로 대변한 〈제조의 철학〉의 반노동자적 시각과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뉴 라나크 체험이 입증하는 바는 환경의 개선과 교육에 의한 인간 개조의 가능성이었다. 오웬은 보다 실질적으로 인간을 제조 및 개조가 가능한 하나의 섬세한 기계로 파악한다." "산업혁명의 진정한 혁명적 가능성은 따라서 얼마나 더욱 더 고도의 기계화된 생산을 성취할 것인가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산업혁명으로 마련된 새로운 공장체제를 인간 개조에 활용할 것인가, 즉 〈새로운 체제〉 속에서 〈자라나는 세대에 있어서는 우리와 우리의 조상들이 경험한 악과 불행들의 전부는 못 한다 해도 거의 모두를 예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108-9)


"맬서스가 보기에, 산업혁명이 인류역사에 기여하는 것은 기계적 발명에 의해 삶의 질을 높여 준다는 면이 아니라, 산업화에 수반되는 열악하고 유해한 생활조건을 지속시켜서 인구증가를 제약한다는 부정적인 면이다." "그의 문제제기는, 그 관념적인 단순함을 걷어내고 나면, 산업혁명이 인간번식의 기본단위로서 가족구조에 미친 변화라는 보다 실질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맬서스의 생각대로 단순히 공장이 시골의 직업보다 〈덜 건강하다〉는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면에서, 산업생산의 기계화에 의해 성인남자 노동력이 여성 노동력으로 대치되는 과정은 '인구'에 대한 하나의 '억제'로 볼 수 있다.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는 노동계급의 경우, 인구증가의 기본이 되는 여성의 모성적 기능과 그러한 '모성'에 근거한 가족구조가 급격히 도전을 받았다. 이 부분은 산업혁명의 폐해에 주목했던 중산층 지식인들, 가령 디즈레일리 같은 지식인들에게는 특히 중요한 문제였다."(116-7)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중산층의 입장에서 볼 때 산업혁명의 가장 부정적이고 위험한 결과인 노동운동도 전통적 가정의 붕괴가 야기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가정의 붕괴에서 산업자본주의의 노사갈등이 야기된다면, 마찬가지 논리로 사적인 가정생활은, 캐서린 갤라거의 말대로, 〈사회적 세계에서 해소될 수 없는 대립들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제쳐 둔 영역〉으로 남는 것이다. 이 모든 경우에 중심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여성과 가정, 특히 메리 푸비가 지적하듯이, 모성의 주체로서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통념이 흔들린다는 사실이다. 단적으로 『메리 바튼』에서는, 전통적인 어머니 겸 아내가 부재한 상황에서 아버지와 공장에 다니는 딸 메리 바튼의 '결손가정'이 중심이 되고, 더욱이 아버지의 정치활동으로 인해서 딸 메리의 직업이 가정의 주된 수입원이 되는 상황으로 변한다. 어느 면에서 산업혁명의 가장 혁명적인 효과는 바로 이처럼 여성을 전통적 모성으로부터 분리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118-9)


5 산업사회에 대한 인문적 대응─〈문화와 사회〉 전통


"19세기 영국의 지성은 미증유의 사회적 분열과 위기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양적 가치 개념을 도입하여, 종교 및 윤리가 중심이었던 당시의 일반적 담화양식을 부인한 공리주의는 큰 영향을 발휘했으나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다. 공리주의적 정신에 맞선 지적 사조로 중요한 것만 열거한다면, 우선 공리주의적 인간관과 대척점에 서 있는 복음주의적 기독교 정신, 공화주의적 혁명정신과 함께 산업화의 인간성 파괴에 대한 분노를 담지한 낭만주의 정신, 그리고 19세기 초에 오웬에서 싹을 피워 차티스트운동을 거쳐 윌리엄 모리스에 이르러 하나의 뚜렷한 사회적 세력으로 성장한 사회주의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서로 결합 혹은 반목하면서 19세기의 특정한 정신세계를 구성해 나간다. 그 중에서도 '문화와 사회의 전통'은 합리주의적 이기심을 긍정하는 근대적 태도에 대한 낭만주의의 반발과 복음주의적 구원 의지 및 빅토리아 중기의 사회주의 운동이 접목한 당대의 대안적 지적 전통으로 거칠게 정의할 수 있다."(130)


"윌리엄즈에 따르면, 당대의 '문화와 사회의 전통'은 에드먼드 버크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버크의 보수적 정치관이 아니라 그가 산업주의의 폐해에 대항하여 〈유기적 공동체〉 및 〈완전한 인간의 대리인으로서의 국가〉라는 두 가지 대안적 개념을 제시한 부분에 주목한다. 전자는 인간 활동의 상호연관성 및 계속성을 강조함으로써 산업혁명으로 분열된 사회적 분열을 비판하는 준거점을 마련한 것이며, 후자는 분열된 사회에서 불평부당한 판단의 대법관 역할을 하는 사회적 기관을 이미 계급적 이해관계로 인해 찢겨진 사회 밖(버크에게는 국가)에 위치시키려는 노력을 말한다. 버크가 제시한 인간활동의 유기성 및 완전성은 모두 낭만주의에 기원을 둔 개념이다." "낭만주의는 계몽주의적 합리성을 '추상적·도구적 합리성'으로 격하시키고, 기계적 대 유기적, 알레고리 대 상징, 파편과 전체, 공상과 상상력, 오성과 이성 및 존재와 생성 같은 일련의 이항대립적 개념을 통해 산업문명에 대한 대안적 전망을 형성해 나간다."(131-2)


"콜리지는 『교회와 국가의 구성』에서 이 일련의 미학적 이항대립에 문명과 문화(〈civilization〉과 〈cultivation〉)의 이분법을 등치시켰다. 콜리지에 의하면, 당대의 산업사회에서 국가란 '영원불멸'과 '진보'의 두 대립적 이념의 균형에 의해 유지된다. 이때, '영원불멸'한 요소는 계급적으로는 토지귀족에 의해 대변되는 부분이고, 진보적 요소는 상업, 제조업 같은 전문직종 종사자, 즉 '시민계급'에 의해 구성된다. 콜리지는 국가가 결코 양자간에 균형을 취하지 못하고 토지귀족의 이해관계에 지배되고 있다는 점을 당대 국가의 문제점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콜리지에게 이보다 더 큰 국가의 본질적 문제점은 귀족과 시민계급에 대항할 수 있는 제3계급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진보는 오직 '돈버는 기계'와 가난의 극단적 대립을 초래했을 따름이며, 콜리지는 이와 맞서 '인류를 특징짓는 여러 특질과 능력의 조화로운 발전(즉, 〈cultivation〉)의 달성'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제3계급의 존재의 당위성을 주장한다."(133-4)


"콜리지에서 보이는 낭만주의적 문화 개념의 이중성─한편으로는 이기심을 부추기는 추상적 합리주의를 비판하는 진보적 측면을 가지면서 동시에 그 대안으로 현실에서 초연한 지식인집단의 창출을 제시하거나 혹은 이미 존재하는 국가가 사심 없는 판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상정하는 보수성의 결합─은 빅토리아 중기에 오면 매슈 아놀드의 문화 개념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아놀드는 자신의 시대는 변화의 시대이기에 모두 수심과 피곤에 노출되어 있고, 오랜 전통과 공동체적 윤리가 붕괴된 시대이기에 고립, 상실, 소외의 병적 정서에 탐닉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자신의 시대에 대한 아놀드의 자신감 상실은 고전 그리스시대에 개화한 가치들, 즉 '고요함과 활달함, 사심 없는 객관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진단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다름아닌 '문화'이며, 아놀드는 '문화'를, 관조하는 정신에 적대적인, 무질서한 시대에 대항할 수 있는 정신적 특질로 부각시킨다."(136)


"콜리지나 칼라일이 당대 자본주의 사회의 추동력인 시민계급의 공리주의의 한계를 목격하고 문화의 담당자로 각각 국가의 일부로 제도화된 승려집단과 중세적 귀족계급을 지목했듯이, 아놀드도 시민계급의 특징을 '속물근성'으로 규정하고 거부감을 표시하고, 또한 문화적 실천의 주체를 이들처럼 기존의 특정 사회적 계급에서 찾기를 포기한다. 당대 사회는 귀족계급, 중산계급, 노동계급으로 삼분되어 있는데, 귀족계급은 야만인들(Barbarians)로 물질화되어 있고, 중산계급은 속물들(Philistines)이라 천박한 정신상태로 전락했고, 노동계급은 야수처럼 폭력적 우중(Populace)이기에 이들은 당대의 혼란에 맞설 수 있는 '조요한 객관성'을 결코 달성할 수 업다. 아놀드는 대신 문화의 실천자로 국가를 내세운다. 아놀드는 인간의 완벽함을 현실화하기 위해 이처럼 각 계급 내에서 계급적 편견을 극복한 '국외자'로 구성된 국가를 제시하지만, 이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국가의 구체적 구성방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137-8)


"모리스도 애초에는 도피주의적 낭만주의에 침윤된 시인이었으며, 대중적 성공과 명성을 확보한 상태였다. 그러나 러스킨의 영향을 받아 예술활동은 단순한 미학적 실천이 아니라 인간의 전 존재가 참여하는 사회적 실천과정으로 파악하고, 특정 시대의 예술품은 바로 그 시대의 사회적 구조와 정신상태에 대한 증언이라고 주장한다." "모리스도 러스킨처럼 예술성과 반예술성의 기준을 노동과정에서 파악하고 노동을 두 가지, '유용한 노동'과 '쓸모없는 노고'로 양분한 다음 이를 미학과 연결한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예술가는 고급문화를 담당하고 장인은 상품생산에 투입되는 분업현상에 주목하고, 예술가는 부자들을 위해 존재하며 장인은 미숙련노동자로 전락함으로써 양자 모두 예술이 본질적으로 지향하는 인간 전 존재의 축복스런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이렇게 당대의 문명을 온통 부정한 극단주의의 결과 그는 부르주아 지식인 전통이 지니는 긍정적 요소까지 부정하게 된다."(146-9)


"그 결과, 그는 퇴폐주의적 낭만주의의 영향에서 쓴 초기시를 제외하면 그의 문학은 미학을 정치에 종속시킨 대중선동시이거나, 훗날 리얼리즘 전통을 완전히 부정한 상태에서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과 같은 유토피아적 장르로 나아간다. 엘리뜨적 고급예술에 대한 지독한 혐오, 그리고 예술을 일상적 노동에서 유래하는 기쁨과 연결시킨 민중성에 대한 강조는 '군소 예술들'의 가치를 강조하였고 복잡성과 장식적 요소에 맞서 단순성을 미래 예술의 근본원리로 제시한다. 그러나 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당대 인상주의나 표현주의의 비판적 맥락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영국 지성사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모리스는 칼라일, 아놀드와 비교해서는 물론이고 러스킨과 비교해서도 훨씬 주변적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 실제로 부르주아 지식인의 비판적 전통은 오히려 당대의 주도적 전통에 반발하는 중산층 출신의 모더니즘 계열 지식인인 T.S. 엘리엇 및 F.R. 리비스에게로 주도권이 넘어간다."(149-50)


6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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