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 여성, 신령들 - 1970년대 한국 여성의 의례적 실천
로렐 켄달 지음, 김성례.김동규 옮김 / 일조각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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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1장 전씨 가족의 굿


"한달 전쯤 전씨 할아버지는 친구들과 함께 나들이를 갔다. 거기서 술을 마시고 배가 뒤틀리는 듯한 통증이 시작됐는데, 차츰 고질병으로 악화되었다. 전씨 할아버지는 마을 약국에서 지어온 조제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고, 병원에서 여러 번 비싼 주사를 맞아봐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자 전씨네 할머니가 몇 년 동안 단골로 다니던 떠벌이만신을 찾아 점을 치게 되었다. 전씨네 할머니의 짐작대로 대신大神할머니가 굿을 원하고 있었다. 전씨네 할머니는 조상 중에 무당이 있었는데, 그녀가 전씨 가정의 만신전萬神殿에 대신할머니로 자리잡고서 현재 전씨 집안의 가정사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적극적인 성격의 대신할머니는 가족을 보호하고 복을 주지만, 가족들은 그 신령을 위해 대략 3년에 한 번씩 굿을 해서 대접하고 놀려 주어야 한다. 전씨네 할머니 부부는 5~6년 동안 굿을 하지 않았다. 전씨 할아버지의 병은 의례를 할 시기가 늦어졌다는 경고다. 더 늦어지면 더 큰 불행이 따를지도 모를 일이다."(31-2)


"굿은 기본적인 구조에 따라 진행된다. 이 구조는 집에 거주하는 신령과 조상들이 각각 적절한 장소와 순서에 따라 등장하는 장소인 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집은 굿의 배경이자 동시에 핵심적인 은유로서, '집'에는 인간 구성원뿐 아니라 만신이 집 이곳저곳을 다니며 드러내보이는 신령들도 함께 거주한다. 만신은 떡시루, 신복神服, 돼지 다리를 마루와 방 쪽으로 식구들에게 건넨다. 신령들은 부채질을 통해서 주머니 안과 옷 속으로 복을 몰아다 준다. 또한 곡식, 밤, 여러 가지 씨앗으로 치마를 채워 준다. 가족은 좋은 운을 붙잡아 집 안에 간직한다. 만신은 부정, 잡귀귀신, 해로운 기운을 없애고 대수대명代壽代命을 위해 닭을 대문 밖으로 보낸다. 만신은 칼을 던져 칼끝이 대문 바깥쪽을 향하는지를 보고 부정한 기운이 집 밖으로 나갔는지를 확인한다. 그러나 굿의 체계적인 점에 치중해서 묘사하게 되면, 하나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굿 드라마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즉흥적이고 독특한 점들이 필연적으로 간과된다."(57-8)


"한 가족이 사회적으로 처한 상황 및 초자연적 존재들과 관련된 문제들은 바로 그 가족과 무당 사이의 모든 거래와 굿이라는 드라마를 형성하고 채색한다." "샤먼으로서 한국의 만신은 신령과 조상들을 눈으로 보고 불러들여 그들의 말을 대신 할 수 있다고 한다. 만신은 자신의 단골과 그 집안의 초자연적 존재들 사이에 있는 역동적인 관계를 확인시킨다. 만신은 점을 치는 동안 경험하는 환시체험을 통해서 신령과 조상들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결정한다. 떠벌이만신은 전씨네 대신할머니의 뜻과 바라는 것을 전씨 가족에게 전달해 주는 연결고리다. 굿에서 초자연적 존재들은 살아 있는 인물로서 인식되고 만신은 트랜스(드러내다, manifest)에 빠진 채 정형화된 인물의 역할과 완성되지 않은 대본에 따른 대화를 하면서 고객 가족의 전통을 환기시킨다. 만신들은 전씨 할아버지가 회복되고 아들은 성공할 것이며 손주들은 공부를 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확언하기 위해서 전씨 집안의 신령과 조상들의 권위를 사용했다."(58-9)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전씨 할아버지를 위해 거행된 행사에서 전씨 할아버지가 최소한만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굿은 여성들의 잔치였다. 전씨네 할머니가 굿을 처음부터 준비하고 신령 및 조상과의 농담을 주도했다. 신령들 또한 며느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는데, 아들의 가정 역시 그 굿을 통해 복과 운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씨 집안 사람이 아닌 여성들도 굿을 보러 왔다. 전씨네 할머니의 여동생, 즉 신나게 춤을 추던 이모는 열성적인 참여자이자 씀씀이가 후한 재정적 기부자였다. 전씨 할아버지의 여동생, 즉 이미 출가한 또 한 명의 전씨 집안 여성 역시 무감을 서고 공수를 받았다. 이 모든 여성들은 종종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면서도 자신들이 바친 만큼의 재수를 신령들에게 받았다. 굿의 혜택은 이웃과 친구들에게도 미친다. 이들 모두 조금씩 돈을 썼으며, 무감을 서고 굿의 유쾌한 열기를 맛보았다. 이 여성들은 결코 소극적인 구경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모두 애정을 가지고 하나의 코러스를 이루었다."(60-1)


# 무감 : 굿의 각 거리 사이사이에 굿을 의뢰한 가정의 식구들이나 참여자들이 무당의 신복을 입고서 춤을 추는 행위


# 공수 : 무당이 신이 내린 채 신의 의지를 전하는 말


제2장 유교적 가장과 활기 넘치는 여성


"전씨 가족의 굿에서 여러 종류의 신복神服을 입은 신령들이 나타난 곳은 여성의 세계이다. 여성 만신들이 신령을 청하여 신의 말을 전하고, 만신이 아닌 일반 여성들은 신령에게 소원을 빌고 흥정을 하거나  때로는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 가정신령들household gods이 잠잠해지면, 일반 여성들은 만신의 옷을 입고 자신들의 몸주신에 실려 춤을 추면서 가벼운 희열 상태에 들어간다. 한국 여성들의 신들림에 대한 열광은 다른 수많은 민족지의 사례들과 부합하는데, I. M. 루이스는 이것을 〈신령의 성적性的 편향성〉이라고 부른다." "인류학자들은 여성이 초자연적인 것에 이끌리는 현상의 원천으로서 이른바 여성의 히스테리 성향이나 '음陰-암흑'의 성질이 가지는 신비로운 힘, 그 외의 주술-과학적 설명을 배제하는 대신에 사회적 관계들에 주목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담한 루이스에 따르면 신들림 컬트는 〈페미니스트 하위문화〉의 전위 조직으로서, 그 안에서 여성은 남성 세계에 완곡한 형태로 저항한다."(66-8)


"하위문화로서의 신들림 컬트라는 루이스의 정의는 〈지배적 도덕성의 종교〉와 〈주변적 컬트〉라는 이원론적 구분에 근거한다. 전자는 정치적 권위가 확연하게 구분되지 않는, 단순하고 동질적인 사회에서 나타난다. 여기서 샤먼은 지대한 영향력을 지니며 샤먼의 신령들은 도덕적 질서를 뒷받침한다. 반면 〈주변적 컬트〉는 복합 사회의 지배적인 도덕 종교 외부에 존재한다. 이 컬트의 신령들은 공식적으로는 폐기된 고대 신앙의 잔존물이며, 여성의 〈주변적인〉 사회적 위치에 대한 보상으로서 여성의 세계에 남아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시각은 뒤르켐의 연구에서 비롯되는데, 뒤르켐은 공동체가 가진 열망이 가장 잘 표현된 것으로서의 〈교회〉와 개인적 상황과 필요에 따른 주술의 구체적 적용들로서의 〈컬트〉를 구분한다. … 나는 이러한 의례와 이 의례를 주관하는 여성들이 주변적이라는 것과는 상반된 주장, 즉 전씨 가족의 굿에 등장한 신령과 혼령들이 한국의 가족과 마을 종교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밝히고자 한다."(68)


"15세기 초 건국된 조선왕조의 신유학 개혁가들은 한국 사회의 철저한 변화를 추구했는데, 이것은 매우 상이한 사회 질서를 위에서 아래로 강요하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가 '전통적인 한국'이라고 연상하는 사회 패턴은 불과 16세기 혹은 17세기까지도 확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했다. 상당히 최근까지도 한국의 친족은 부계에 제한된다기보다는 방계를 포함했을 가능성이 높다. 양반 계층의 딸들은 땅과 노비를 상속받았고, 가끔은 부친 조상의 신위神位에 제사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상속받았다. 조상숭배는 아직까지 엄격하게 유교적인 의례가 아니었다. 딸의 자식들은 출가한 집안의 족보뿐 아니라 친정의 족보에도 기록되었다. 남편은 부인의 친정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여성은 남편의 친족에 어머니와 부인으로서 합류하여 시어머니의 자리를 계승하거나 혹은 여성 자신의 가정을 형성했다." "한국 여성이 실천한 비유교적 의례들은, 유교와 한국인 사이에 이루어진 타협을 이해하는 데 유리한 점들을 제공한다."(70-1)


"조상숭배의 영향력과 윤리적 중요성 때문에 한국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사회과학자들은 남성의례 영역의 형태와 그 사회적 의의를 탐구해 왔다." "남성들이 인류학자와 어린이들에게 조상숭배를 설명하면서 가지는 자부심과는 대조적으로, 마을 여성들은 자신들의 의례에 대한 민족지학자의 관심에 혼란스러워했다. 그들은 이렇게 묻곤 했다. 〈그게 왜 알고 싶은데?〉 〈그런 건 알아서 무슨 소용이 있다고?〉 비교 연구의 가치를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나는 미국 여자들이 한국 여자들의 생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해 보기도 했다. 결국 이 여성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내 연구를 이해하게 된 것은 내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였다. 〈한국의 제사를 연구할 때에는 남학생들을 보내요. 제가 여자라서, 여러분이 무엇을 하는지 연구하기 위해서 저를 보낸 거예요.〉 이 여성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내재된 사회적·의례적 노동분화를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내 연구 관심이 나의 성性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75-6)


제3장 영송리


"관아에서 사무원이나 병사 업무를 주로 담당했던 낮은 등급의 아전은 그 지역의 엘리트들이었다. 지역 노인들의 말에 따르면,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하고 〈마치 양반인 양 행세했던〉 아전들은 지역 유지로서 권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노인들은 〈그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양반'이라고 불렀다〉라고 말해 주었다. 이 서술이 피상적이긴 하지만, 한국의 역사 기술에 등장하는 하급관리로서 아전의 모습, 즉 부당한 착취와 부당 이득의 기회를 잘 이용했던 그들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실제로 대중의 상상 속 아전은 만신의 대감거리에서 어깨를 거들먹거리며 걷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지방관을 보좌하는 아전처럼, 대감신령들은 좀 더 위엄 있는 산신, 장군, 또는 대신Great Spirit에게 봉사한다. 위격이 높은 이 신들은 품격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제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부채를 펼쳐 자신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요구할 뿐이다. 위격이 낮은 대감신령들은 그런 제약에서 자유롭다. 그들의 욕심은 가히 전설적이라 할 만하다."(95)


"전통적인 엘리트의 시각에 의하면, '무속'과 '미신'은 교육수준이 낮고 심하게 억압받는 하급 계층에서만 발견된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의 몇몇 관찰자들처럼 나 역시 경기도 북부의 여러 마을들에서 양반 가문임을 공언한 몇몇 가정에서 열린 성대한 굿을 여러 차례 관찰했다." "만신은 양반 가정에서 굿을 할 때에도 여느 다른 가정의 신령들을 다루듯이 그 가정의 신령들, 조상들, 귀신들을 다룬다. 이러한 신앙은 공통적이다. 여느 가정들에서처럼 양반 가정의 특정한 초자연적 역사가 약간 변형된 상태로 그 가정의 만신전에서 드러난다. 용수 엄마의 손님들 중 몇몇 가정은 어떤 양반 종족의 지파에 속해 있었다. 그 종족의 시조와 후손들 중 높은 벼슬에 올랐던 먼 조상들이 배우자들과 함께 이들 가정에서 벌어지는 굿에 온다. 이들은 그 종족에 속한 가정들의 만신전에서 특별한 대왕신이다. 그 종족의 지파들 역시 대왕굿이라 불리는 주기적인 굿을 후원하여 왕들을 대접하고 친족들 간의 평화를 증진한다."(105-6)


제4장 신성한 관계: 만신과 단골


"만신의 신당은 '신당'혹은 불교 용어인 '법당'이라고 불린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용수 엄마는 자신의 신당을 '할아버지방'이라고 부른다. 내가 처음 용수 엄마를 방문했을 때 나는 할아버지라는 말을 단수형으로 오해하여 그녀가 어떤 노인에게 방을 임대해준 줄 알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존칭어이지만 극존칭에 해당하는 용어는 아니다. 한국에서는 모든 늙은 남성과 여성을 세월이 그들에게 부여한 지위를 감안하여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라고 공손하게 부른다. 신령들 역시 어렴풋하게 친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령들은 힘과 지위 면에서 모두 조상보다는 상위에 위치하지만, 전씨 가족의 대신할머니처럼 어떤 신령은 이름난 조상이기도 하다. 신령은 광범위한 의미의 할아버지, 할머니인 것이다." "용수 엄마는 신령들의 분노를 두려워하며 그들의 뜻이 무엇인지 걱정하기도 하지만, 마치 한국의 어린아이가 조부모의 너그러움을 기대하듯이 신령들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한다."(116-7)


"남편이 없기 때문에 용수 엄마의 집은 마을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모임장소다. 그들은 틈날 때마다 용수 엄마의 집에 들러 학교 등록금, 허술한 마을 치안, 이웃마을의 계 모임에 대해 수다를 떨고 한담을 나눈다. 심지어 '미신'을 경멸하고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이장 부인조차 각자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고 수다스런 이 모임을 찾는다." "그러나 용수 엄마의 삶은 늘 잠재적인 모욕의 그늘 아래 놓여 있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얼마 전까지는 아이들조차 무당에게 반말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지만, 싸움이 날 때면 용수 엄마의 직업이 여전히 들먹여진다." "만신은 매혹적이지만 도덕적으로는 애매한 여성 주변인들, 즉 여배우, 여성 연예인, 창녀에게 주어진 불명확한 신분의 고통을 함께한다." "만신은 주부들을 위한 의례 전문가이기에 집안에 머무는 참한 여성들에게도 필요한 존재이다. 만신은 참한 여성들 가운데에서 나와 그들처럼 살아가며 그들이 가진 근심과 희망을 이야기한다."(126-8)


"무당은 사기꾼이며 탐욕스럽다는 오해로 고통받기도 한다. 만신은 신령의 뜻을 해석하고 그 존재를 드러내 보여 줌으로써 생계를 유지한다. 신령들이 보내는 최후통첩으로 인해 만신의 주머니는 현금으로 두둑해진다. 굿의 희극적인 부분은, 좀 더 많은 돈을 바라는 탐심 많고 욕심 많은 신령들과, 이에 고집스럽게 저항하고 반박하며 마지못해 항복하고 마는 주부 사이의 밀고 당기는 싸움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놀이이며, 이 놀이의 규칙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경기도 북부에서는 만신과 손님이 굿의 비용을 미리 정한다. 손님은 굿을 하기 며칠 전에 한 다발의 돈을 만신의 신당으로 가져온다. 굿을 하는 날 만신은 장구에 붙은 천 주머니에 기본 금액을 넣는다. 나머지 돈은 주부에게 돌려주는데, 주부는 굿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그 돈을 별비로 삼아 끊임없이 요구하는 신령과 조상들에게 조금씩 지불한다. 주부가 이런 놀이에 전투적인 자세로 참여하지 않으면, 만신은 그 굿 〈맛이 심심하다〉고 말한다."(129)


"굿하는 비용은 가족이 이웃과 친척들에게 아침식사와 술을 정성껏 대접하는 백일잔치나 돌잔치 비용과 맞먹는다. 만신은 신령의 권위로 그 가족에게 푸닥거리, 신당치성, 굿을 하는 데 돈을 쓰라고 충고한다. 또한 신령의 요구가 있으면 단골에게 신복, 방울, 신칼, 악기 등을 바치라고 이야기해 준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신령의 말을 전달하는 것과 사기를 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공존하는데, 특히 신령의 요구가 무당의 수입과 위신을 올려 주는 경우에 그렇다. 만신은 생계를 유지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단골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령들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 만신은 자신의 이미지를 염려한다. 용수 엄마는 자신이 모시고 있는 탐심 많은 신령들과 자신을 구분하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단골들이 신당에 가져온 과일과 사탕 일부를 되돌려 보낸다. 또한 굿 비용에 대해 있을 수 있는 잠재적인 불만을 억제하기 위해 굿하는 집 가장의 호주머니에 술값을 찔러 넣어 주기도 한다."(130)


"어떤 만신이 경험을 쌓아 가면서 굿을 잘한다는 명성이 알려지면 다른 만신들이 굿을 할 때 그 만신을 자신들의 팀에 끌어들인다." "만약 한 만신이 다른 만신을 초청했는데 그 호의 가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나중에 다른 사람을 부른다. 또한 초청을 받아 가게 된 굿에서 자기 노력을 적절히 보답받지 못했다고 느끼면, 자신이 당주 역할을 맡은 굿에서는 자신을 초청했던 만신을 부르지 않으며 추후에 있을 그 만신의 굿에도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굿에서 만신들이 이루는 조합은 개방적이고 유동적이다. 이 조합은 굿에 따라서 새롭게 형성되며, 한 명의 만신은 1년 동안 여러 다양한 만신들과 함께 일한다." "자주 협력하여 일하는 만신들은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그들은 서로의 점을 쳐주고 서로의 신령들을 불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관계는 임의적인 수고비 분배를 둘러싸고 형성되는, 잠재적으로 불안한 직업적 관계이기도 하다. 질투와 뒷담화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136-40)


제5장 목신동법, 귀신, 해로운 기운


"만신은 병이 낫지도 않고 그 병이 해로운 기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괘가 나오면 손님들에게 푸닥거리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푸닥거리의 절차는 비교적 간단하다." "푸닥거리를 준비할 때 주부는 조粗 한 줌을 환자의 머리맡에 3일 동안 놓아둔다. 거친 곡물인 조는 그다지 맛 좋은 곡물이 아니기에 거렁뱅이 같은 귀신들에게 적당하다. 푸닥거리를 행하는 여성은 3일 동안 놓았던 조 한 줌을 환자의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고 나서 환자의 가슴을 누르면서 〈비나이다. 누구누구의 아픈 것을 멀리 가져가시오〉라고 빈다. 그러고 나서 환자를 향해 조를 세차게 뿌린다. 또한 환자에게 들린 귀신을 꾀어 몰아내기 위해 환자의 옷가지, 보통은 옷깃이 있는 셔츠 종류의 옷을 밖으로 던진다. 점괘에 환자가 〈죽을 운〉이 있다고 나오면 만신은 주부로 하여금 환자의 옷으로 닭을 묶게 한다. 만신은 환자의 몸 주위를 닭으로 둘러낸 다음, 대수대명을 위해 닭을 문 밖으로 던진다. 죽은 닭은 시체를 매장하듯이 산허리에 매장한다."(164-5)


"저승사자가 벌써 도착하여 혼령을 내놓으라고 할 정도로 상황이 긴박한 경우라면, 만신은 저승에서 온 특사를 속이는 데 필요한 작은 허수아비 인형을 손님 가족에게 준비하라고 한다. 이들은 인형에 환자의 이름, 나이, 생일이 적힌 종이를 집어넣고 환자가 입던 옷을 입힌 후, 마치 시체를 묶을 때처럼 일곱 번 묶어 준다. 이웃 사람들이 환자 주위에서 무덤 팔 때 부르는 노래를 부른다. 이때 환자는 인형을 꼭 쥐고 반듯하게 누워 있는다. 〈무덤 파는 사람들〉은 허수아비를 멀리 내가서 〈산 위에〉 묻는다." "이렇게 하여 병든 자아는 죽어서 지푸라기 인형과 함께 묻히고, 치료 과정에 들어선 새로운 자아가 다른 길을 통해 몰래 집으로 들어온다. 해를 입힌 귀신이 환자 가족의 혼령인 경우, 환자 집에서는 '영산다리'라고 불리는 긴 베를 제공한다. '영산'은 지옥에서 나와 극락으로 가기 위해 영산다리를 건너야 한다. 만신은 베로 환자의 몸을 휘감을 후 베를 세로로 찢는데, 이것은 혼령이 다리를 건너간다는 것을 뜻한다."(165)


"개인의 운세가 해마다 바뀌기 때문에 가족 중 누군가는 어떤 특정한 해에 초자연적인 문제들에 더욱 취약해진다. 희생자가 반드시 초자연적 존재의 분노를 일으킨 직접적인 대상일 필요는 없다." "개인의 운세와 초자연적 존재의 악의 사이에 놓인 상호작용에 대한 만신의 설명은 질병 접촉과 관련된 과학적 지식과 유사한 데가 있다.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감염에 똑같이 노출되어 있어도 어떤 사람들은 영향을 받고 또 어떤 사람들은 탈이 나지 않는다. 만신과 그녀의 단골들은 개인의 취약성을 설명하기 위해 운세 관념을 사용하지만, 전체적인 진단과정을 꽉막힌 운명론이라 할 수는 없다." "결국 개인적인 운세 때문에 특정한 개인이 고통받는 경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고통의 무대는 가정 전체이다. 개인의 질병은 지붕 아래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잘못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조상, 귀신, 해로운 기운 등이 약해진 방어막을 뚫고 침입하는 것이다."(177-8)


"동법으로 말미암은 재앙─목신동법 또는 지신동법의 침입─은 추상적인 우주론적 원리들과 두 가지 측면에서 관련된다. 첫째, 누군가 손損 있는 날 잠재적으로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잠재적으로 위험한 물건을 집안으로 들이는 것은 시간과 방향의 원리들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둘째, 가족 중 한 명이─불길한 행동을 한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불길한 운세 때문에 동법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만신은 잡귀귀신과 해로운 기운을 몰아낼 때 환자에게 붙어 있는 목신동법과 지신동법을 몰아낸다. 하지만 쑥을 태워 집 전체를 소독하고 끓는 가마솥 안에 동법들을 잡아넣기 전까지는 만신의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전히 그 기운이 집 안에 남아 가족 중 누군가가 동법에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만신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동법의 침입에 대한 예방조치로서 취약하다고 여겨지는 곳들에 부적을 붙인다. 만신은 이런 모든 활동을 통하여 그 집의 경계를 보호한다."(181-2)


# 목신동법 : 나무로 만든 제품이나 나무를 집안으로 들여오고 난 뒤에 식구 중에 누군가가 아프게 되면 '동티가 났다'라고 한다.


# 지신동법 : 지신은 토지신을 말한다. 이 신에게 고하지 않고 흙을 함부로 옮겨 건축한다거나 집수리를 하면 '지신이 발동한다'고 한다.


"죽은 자들─안식을 취하지 못하는 조상(조상말명)과 익명의 귀신(영산, 잡귀)─은 고통의 흔한 원인이 된다." "만족스럽지 못한 죽음 때문에 이들은 분노와 좌절 속에서 자신들의 비통함을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드러낸다. 조상은 영산이나 잡귀보다 훨씬 운이 좋은 존재로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았으며 살 만큼 살다가 가족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조상들조차 한恨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만신에 실려 자신들이 살아 있었을 때 이루지 못했던 모든 것으로 인해 통곡한다." "한국인의 사회 통념에 따르면 이러한 모든 욕망은 정당하지만 운명적으로 좌절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족의 영적靈的 방어수단이 약해지거나 가정신령들의 보호가 멈출 때면 이러한 조상들 중 누군가가 들썩거리게 되며 결과적으로 가족이 위험해질 수 있다. 만신은 〈조상손은 가시손이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조상이 산 사람들의 몸을 만질 때마다 상처가 생기게 된다."(182-3)


# 바깥에서 온 해로운 기운들

1. 홍액紅厄 : 각종 불행이 발생한 현장에서 비롯한다. 사람들을 둘러싼 불행이 응집된 것이며 질병이나 재앙을 악화시킨다.

2. 상문喪門 : 죽음 혹은 죽은 자를 위한 의례와 접촉한 사람이나 물건을 따라 집으로 들어오는 부정한 기운을 가리킨다.

3. 살煞 : 출산금기를 어겼을 때 발생한다. '보이지 않는 화살'처럼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양한 곤란함을 야기한다.


"집 담장은 최후의 방어선이다. 하지만 담장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가장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집의 물리적 구조를 바꾸면 가족은 의례적 위험에 놓이게 된다. 집 담장을 수선하거나 창고를 짓고 지붕을 손보거나 가구를 재배치하는 일 때문에 가족은 목신동법이나 지신동법의 침입이라는 위험을 맞닥뜨린다. 가정 전체가 이사하면서 살림살이를 다른 집으로 옮기는 것 역시 위험하다. 이 우주론이 약속하는 바는, 세상에는 질서가 존재하며 이 질서를 따르면 안전하다는 것이다. 잠재된 위험도 사람들이 손 없는 날의 순환에 맞추어 중요한 행동과 여행을 한다면 피할 수 있다. 건축과 재배치가 집이라는 물리적 몸체에 혼란을 준다면, 결혼이나 환갑 혹은 장례는 가정의 사회적 관계에 혼란을 준다." "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는 가정에서 여성들은 보호의 의무를 담당한다. 무당과 주부는 가정의 신령과 조상을 모시고 달래며 때로는 회유하면서, 집을 하나의 방어 보루로서 공고히 만든다."(196-8)


제6장 가정의 신령과 양가 친족의 신령 모시기


"한국 여성의 의례 영역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한국인의 집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야 한다. 집 안으로 들어가도 신령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가정신령들은 가옥 구조 안에 숨어 있다. 성주는 대청 위 대들보에, 삼신할머니는 안방에, 터줏대감은 뒷마당에, 본향산신과 칠성신은 집 뒤편 장독대에, 조왕신은 부엌에, 변소각시는 물론 화장실에 자리 잡고 있으며, 지신이 있고 수문은 대문 문턱에 자리한다. 오방터전은 집 담장 안에 있는 모든 방, 창고, 가축우리에 있으며, 도시의 집들에서는 개집에까지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신령은 개별 주거지와 주거지 주변의 특이성 때문에 모셔지기도 한다. 이런 신령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무당의 점괘가 나오면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집 앞 한쪽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 가정은 '가게대감'이나 '상업대감'을 모신다. 만신은 '살육대감'이 다니는 길이 집터를 관통하고 있는지도 판단해 준다. 어떤 가정에서 '도깨비대감'은 집 옆에 있는 수풀 속에 숨어 있다."(201-3)


"집과 집터의 신령들은 '고사'라고 불리는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고사 음식은 가족의 성찬sacrament이다. 쌀이 담긴 남성 가장의 밥그릇과 수저를 성주 상 위에 올려놓는다. 나중에 가장은 이 쌀로 지은 밥을 먹을 것이며, 성주에게 바쳤던 술은 아내와 함께 나눠 마실 것이다. 아이의 밥그릇과 수저는 삼신할머니 상에 올려놓는다. 아이는 이 그릇 안에 든 쌀로 지은 밥을 먹고 삼신할머니와 칠성신 상에서 내려진 옥수를 마신다." "가족에게 문제가 일어났지만 굿을 할 만큼 상황이 심각하지 않은 경우나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경우, 도시의 이웃이 무당의 장구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에도 고사를 추천한다. 만신의 고사는 주부가 지내는 조용한 고사와 화려한 굿 사이의 중간 정도에 해당한다. 신령들이 말을 하고 가족들에게 공수를 주지만, 굿에 필요한 신복, 장구, 춤, 대규모의 드라마, 무언극은 없다. 비교적 저렴한 방식으로 신령의 뜻을 알고 그들이 가정에 내리는 재수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이다."(203-7)


"터줏대감은 현재의 가정, 즉 집 담장 안의 여러 장소를 순찰하며 그 자리에 거주하는 가족의 부와 재수를 통제한다. 터줏대감은 추상적인 풍수원리들이 인격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풍수에 따른 집터나 묏자리는 원래부터 좋거나 나쁜 것으로서, 가족의 재수를 통해 좋은지 나쁜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터줏대감을 다른 집 터의 대감과 비교하여 더 좋다거나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비록 특정한 집 대감이 다른 집 대감보다 더 세거나 활발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것은 좋고 나쁜 것이 뒤섞인 복福이다. 즉, 영향력이 강한 초자연적 대감은 주기적으로 바치는 재물에 만족했을 때에만 가족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돈을 많이 벌었는데 대감에게 고하지 않는다면 기분이 상한 대감이 벌을 내린다." "온전한 떡시루, 소 다리, 돼지머리, 또는 소의 육중한 머리는 대감신령들이 합당하게 여기는 제물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터줏대감도 술을 많이 마시고 돈을 요구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211-2)


"만신전 내에서 특별히 강력한 신령은 여성들이 적절한 옷을 바치면 좌정하며, 분노에 찬 적대적 존재에서 자비로운 보호자로 변화된다. 옷에는 단골의 이름을 새겨 만신의 신당에 보관한다. 여성이 신당에 옷을 바치고 난 후 굿에서 만신이 그 옷을 입고 춤을 추면 신령은 즐거워한다. 하지만 옷을 바친 여성의 의례적 책임은 늘어난다. 이렇게 바쳐진 옷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신령이 가정에 있음을 의미한다. 신령은 수년에 한 번씩 하는 굿으로는 점점 만족하지 못하게 되며, 만신의 신당에서 정기적으로 치성을 바칠 것을 요구한다. 신령은 옷이 낡아 해지면 새것을 요구한다. 전씨네 굿에서 대신할머니는 자신의 옷과 전씨네 할머니의 주름치마를 비교하고 억지를 쓰며 불평했다. 배씨 가정의 굿에서는 불사가 주부의 귀를 잡아 흔들며 그 여성이 수년 전 바쳤던 하얀 장삼이 이제는 온통 좀먹었다고 화를 냈다. 이 여성은 굿이 끝나고 3일째 되던 날, 새 장삼을 짓기 위해 흰색 옷감을 끊어 만신의 신당에 바쳤다."(234-5)


"만신전에서 특별히 강한 영향력을 가진 신령은 보다 넓은 가족 전통에서 나오므로 이러한 신령의 영향력은 개별 가정을 넘어서 확산된다." "이런 전통을 영속하는 데 주요한 인물은 여성이며, 신적 영향력은 부계로 구성된 집의 경계를 넘어선다. 동자별상과 호구는 출가한 누이나 언니를 따라가 새집에서 불길한 존재가 된다. 다른 신령들도 여성을 따라 남편의 집으로 가서 어떻게 대접받느냐에 따라 그 가족에게 이득이 되거나 해를 끼친다." "여성은 영향력이 강한 신령들을 보살피고 대접하는 방법을 시어머니와 만신에게 배워서 자신의 의례적 가족을 보호한다. 하지만 어떤 여성의 관심은 가끔 의례적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 친정과 출가한 딸의 가정에까지 미친다. 이런 여성의 신령들은 그 영향력이 여러 가족을 가로질러서 모든 가능한 방향들에까지 확산되는 친족의 신령들이다. 한국의 여성의례 영역에서는 신령이나 조상 그리고 귀신 어느 하나도 남성을 중심으로 정의된 친족의 경계선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237-41)


# 동자별상 : 홍역이나 마마에 걸려 단명한 어린아이이고 호구는 결혼하기 전이나 결혼 직후에 죽은 처녀이다. 


제7장 조상 모시기


"조상들은 만신의 입을 통해서 필수적인 혹은 바람직한 의례의 형식을 조율한다. 만신은 엄격한 조상숭배 구조에 필수적인 융통성이라는 요소를 삽입한다. 남성들이 의례적 지침과 정통적 관습에 따라 조상제사를 모신다면, 여성들은 조상들과 실랑이를 벌이거나 흥정을 하면서 기어코 그들과 화해하여 그들을 가족의 품 안으로 이끈다. 경계가 명확한 몇 분의 제한된 조상들만이 제사에서 모셔지는 것과 달리 만신의 점, 푸닥거리, 굿에서는 훨씬 더 광범위한 '조상'이 등장한다. 여성들은 제사에서 모실 수 있는 조상 집단을 구별해 주는 배타적인 부계 원리에 의문을 갖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신과 상담할 때 여성들은 가정의 제사상에서 대접받을 자격이 없는 온갖 종류의 조상들도 가족의 재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여성의 친정에서 따라온 조상과 귀신이 시댁 집안 구성원들의 건강과 재산, 행복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며, 출가한 딸의 혼령이 죽은 후 친정으로 돌아오기도 한다."(256-8)


"딸들은 결혼을 해서 나가지만 죽었든 혹은 살았든 이방인이 되지는 않는다. 역으로 부인의 친정집에서 비롯된 조상과 귀신의 영향이 남편 집 담장 안으로 들어온다. 여성의 친정 부모(혹은 조부모까지)가 굿의 조상거리에서 등장한다. 여성의 죽은 형제들도 자주 나타나는데, 그들의 결혼 여부는 상관 없다. 만신은 부부 간의 문제를 결혼하지 못하고 죽거나 혹은 아이 없이 죽은 형제의 영향 탓으로 돌린다." "결혼식 전날 신부의 집 조상과 귀신들을 대접하는 여탐은 제멋대로인 귀신들을 좌정시켜 결혼할 딸을 의례적으로 순수하고 부정적인 초자연의 기운이 정화된 상태로 만드는 의례이다. 여탐 의례는 신부를 자신의 집에서 분리하는 결혼식이라는 의례 과정의 일부로 해석될 수 있다. 선택적 의례로서 여탐이 의미하는 바는, 적절히 예방하지 않으면 가족의 조상과 귀신들이 신부를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결혼한 지 수년 후, 만신의 점괘에서 집안 갈등의 원인으로 나타나는 죽은 형제들을 발견한다."(270-1)


"아내의 친정으로부터 온 조상과 귀신들이 어디에서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가정한다면, 무속의례에서 이들의 등장은 남성 중심적 가치, 즉 결혼한 여성들은 자신의 친족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가치를 강화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해석에 의하면, 부인과 친정 사이의 지속적인 유대는 가족 이데올로기와 모순되기 때문에 의례상 위험한 것이 된다. 그러나 내가 받은 인상에 따르면, 부인 측에서 비롯된 조상과 귀신의 영향이 남편 측에서 비롯된 그러한 존재들의 영향보다 더 부정적이지는 않다. 실제로 신랑의 가족도 자기 가족의 조상과 귀신들을 위해서 여탐을 한다. 어떤 가족들은 환갑잔치 전에 여탐을 하기도 한다. 안정되지 못한 망자들과의 긴밀한 접촉이 위험하다는 이 원칙은 남편과 아내의 친족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남편과 아내 측 모두는 의례를 통해 살아있는 사람들로부터 죽은 자들을 분리하며, 죽은 자들은 잘 달래졌을 때 각각의 친족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271-2)


"조상에 대한 모순된 관념은 사회 조직의 상보적 원리를 드러낸다. 다시 말해, 남성 제사의 조상과 여성의 굿의 조상은 서로 대조적이지만 중요한 가족 관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부계 가족은 자원과 충성심을 가족 안으로 집중시킨다. 결혼을 통해 들어온 부인 그리고 결혼을 통해서 나가는 자매와 딸들은 그 가족에게 분산된 양측 친족을 연결하는 방사형의 바퀴살이라 할 수 있다. 여성들이 (후원자 역할을 하는) 친정 친족에게 빈번하게 의지한다면, 남성들은 다양한 이유로 자신들의 친인척에게 의존한다." "남편의 친족과 여성의 친족 모두는 잠재적인 도움의 저장소이지만, 동시에 이들은 서로의 자원을 고갈해 버릴 수도 있다. 친척과의 관계는 망자를 대하는 것처럼 양면적이며 잠재적으로 위험하다. 친척이나 망자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들 모두는 결속을 확인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모여야 한다. 또한 이들을 적절하게 대접해야 하며 도움을 구할 수도 있지만, 필요하다면 멀리해야 한다."(276-7)


제8장 여성의례


〈이 장에서 제시한 종류의 일반화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비교 측면에서나 한국 농촌의 다양성과 변화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순진한 기획이었다. 지금의 나는 이 장을 지금과는 다른 시기의 인류학이 만들어낸 가공품으로 보고자 한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부분을 생략하고 읽어도 좋을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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