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회학 - 개정판
오경환 지음 / 서광사 / 199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1장 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관점


"우리는 종교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고 여타의 사회 현상들과 지속적이며 상호적인 관련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간주할 것이다. 종교의 본질이 사회적·경제적 현상의 부산물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종교에는 사회적인 측면이 있고, 그 사회적인 측면은 다른 사회 현상들과 지속적인 상호 관련성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취할 것이다." "종교 사회학은 종교를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종교는 어떤 것이나 가치가 있다거나 종교는 전부 거짓이라는 독단적이고 평가적인 주장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어떤 특정 종교는 진실한 종교이고 다른 종교는 거짓 종교라는 판결도 내리지 않을 것이다. 종교에 대한 이러한 논의가 전혀 중요하지 않거나 종교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애당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학은 그런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학은 어떤 종교이든지 사회적 사실 혹은 현상으로 간주하면서 종교와 여타의 사회 현상과의 관련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13-4)


제2장 종교의 사회학적 정의


"사회학에서 최근에 사용되는 종교 정의는 현상학적(phenomenological)인 접근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들은 종교를 어떤 다른 것의 표현으로 보려는 환원주의적 경향을 지양하고 종교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종교 안에서 발견되는 것 자체를 그대로 가지고 만들어지는 정의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의 사회학적 정의는 종교의 본질을 지적하는 것보다는 종교의 경계선을 지적하는 데 일차적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사회학은 종교를 포함하는 많은 사회현상들 가운데서 종교와 종교 아닌 것들을 구분하는 적당한 기준점이나 경계선을 지적하는 것이 종교 정의의 목표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의 사회학적 정의는 종교의 본질에 관한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고, 또한 연구에 필요하여 임의적으로 만들어지는 경계선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정의들은 연구 작업을 위한 임시적인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좋은 것도 아니고 영구적이고 절대적인 정의도 아니다."(41-2)


# 종교 사회학에서 사용되는 종교 정의

1. 실체적(substantive) 정의 : 〈성스러운 것the sacred〉(뒤르켐), 〈거룩한 것the holy〉(오토)에 대한 체험, 이러한 경험들이 외적으로 표현되어 세 가지 양식─이론적 표상인 교리, 실천적 표상인 의례, 사회적 표상인 공동체─으로 나타나는 것

2. 기능적(functional) 정의 : 종교적 믿음과 실천은 그 집단의 통합에 기여(뒤르켐), 종교 의식은 사회적 가치와 규범에 관한 생생한 느낌을 참여자의 정신 안에 재생산함으로써 사회 통합에 기여(래드클리프-브라운), 인간이 직면하는 궁극적 질문들─죽음, 고통, 악의 문제 등─에 대한 의미 부여·개념화(베버)


제3장 개인의 종교성의 형성


"사회학은 종교의 사회적 측면에 많은 관심을 두기 때문에, 종교 집단과 종교의 사회적 표상을 강조한다. 그러나 종교 단체에 속해 있는 개인들은 동시에 사회적 행동자, 즉 나름대로의 동기와 의미 체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각 신자들의 태도, 신념, 행동은 종교 단체에 의하여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고 보이지만, 종교 집단의 믿음과 신자 개인들의 믿음 사이에 언제나 뚜렷하고 결정적인 일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현대 사회에서 개인들은 다양한 종교 단체에 속해 있을 뿐 아니라, 동일한 종교에 속해 있다 해도 신자 개인들의 종교성(religiosity)은 상당한 편차를 보인다는 것이다." "종교는 어떤 집단의 소유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개인의 소유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종교가 사회 현상에 어떤 영향을 행사하는 경우에, 개인의 종교성은 중요한 변수로서 작용한다. 종교가 종교성이 약한 개인들을 통하여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73-4)


# 개인의 종교성의 형성 과정

1. 내재화 : 어린아이가 출생 이후로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종교적 개념과 실천을 배워서─비공식적으로는 개인적 접촉을 통해, 공식적으로는 강의나 설교를 통해─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 이때 기존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부모, 형제, 친구 같은)들과의 상호 관계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여부가 결정적 영향

2. 개종(conversion) : 해당 종교의 사상적 성격, 개종자의 인격적 특성, 경제·사회적 또는 신체적 박탈감, 기성 신자와의 친밀한 상호 작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기존의 종교적 믿음 체계를 버리고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거나, 혹은 종교가 없는 상태에서 하나의 종교를 받아들여 그 단체에 대한 소속감을 발전시키는 경우


제4장 개인적 종교성의 측정과 사회 조사


# 글러크와 스타크의 종교성 측정

1. 이념적(ideological) 차원 : 신도들이 교리를 얼마나 깊게 수용하고 있는지 여부

2. 의례적(ritualistic) 차원 : 종교 예식에 얼마나 참여하고 실천하는지 여부

3. 경험적(experiential) 차원 : 신도들이 개인적 종교 경험을 얼마나 하는지 여부

4. 지성적(intellectual) 차원 : 자신의 종교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는지 여부

5. 결과적(consequential) 차원 : 종교적 믿음, 의례, 경험, 지식이 신도의 세속 생활에 미치는 정도


"로버트슨은 사회의 종교성이 그 구성원들의 종교성을 종합함으로써 측정될 수 있다는 글러크의 주장에 반대하며, 그러한 견해는 개인주의적 착각이라고 비난한다. 마치 사회의 민주주의성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민주주의적 성향의 종합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듯이, 사회의 종교성을 시민들의 종교성의 종합과 동일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종교 인구가 많다고 해서 사회적 종교성이 높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문화의 종교성을 개인적 종교성의 종합과 동일시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예술과 언어의 종교적 내용이 그것의 좋은 지표라고 본다. 그래서 로버트슨은 예술과 문학에 종교적 내용이 많을수록, 정치적 결정 과정에서 종교적 신념이나 가치가 많이 참작될수록 문화적 종교성은 높은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세속화는 종교성의 반대되는 현상이라고 볼 때, 종교성의 이러한 개념은 세속화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133-4)


제5장 종교 진화론 : 종교와 과학


"19세기에 이미 원시 사회의 여러 현상과 종교에 관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진화론적 사고의 경향을 갖기 시작하던 서구인들에게 1858년에 출판된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은 커다란 확신을 심어 주었다." "종교 진화론자들은 자료에 근거해서 종교란 원래부터 신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원시인(Primitive)의 여러 가지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서 발생한 것이라고 보았고, 종교는 그 본질상 〈미숙한 과학〉이며 과학의 초기 형태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종교는 다양한 경험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원시인의 노력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며, 그것도 훈련되지 않은 원시인의 사고와 이성의 산물이기 때문에, 대수롭게 생각할 가치가 없는 미숙한 과학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진실한 과학 지식이 발전하면, 종교는 필연적으로 약화되고 결국에는 소멸할 운명에 놓여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보면, 종교 진화론자들은 이전의 세속화 이론을 보강하고, 왜 종교가 과학에 의해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더욱 이론화했다고 보인다."(136-7)


# 19세기의 종교 진화론자들

1. 허버트 스펜서 : 조상 숭배가 가장 동질적이고 단순한 형태의 종교이며, 영(ghosts)에 대한 믿음이 영혼이나 신에 대한 믿음에 앞서 발생했다. 불가해한 자연 현상과 사회 현상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점차 신의 개념이 탄생했다.

2. 에드워드 타일러 : 문명 사회의 종교는 원시 사회에서 전수된 문화적 잔재로서, 습성 덕분에 유지되고 있는 문화적 습관에 불과하다. 따라서 현대의 종교는 별다른 의미나 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기능도 수행하지 않는다.

3. 제임스 프레이저 : 인간의 지적 발전은 주술(일종의 거짓 과학이며,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종교(탈주술화 과정을 거쳐 신과 같은 높은 존재에게 호소하고 기원)로, 다시 종교에서 과학으로 단계적으로 나아간다.


"과학과 종교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고, 과학에 의하여 종교는 약화되고 나아가 소멸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응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신학과 사회학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이것은 전통적인 종교의 이론적 표상 혹은 믿음 체계가 자연과 역사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그 체계들이 현대인의 상황에도 적합성을 지니는 실존적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종교의 믿음 체계에 신화(myth)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과학이 사용하는 언어와 종교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것이며, 두 개의 언어는 실재(reality)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이지만 다른 실재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는 과학이 탐구하는 실재가 아니라 궁극적 실재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므로, 어떤 역사적 사건이 종교 이야기 안에 등장하여 묘사되고 있어도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고 과학적으로 다루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162)


"종교는 일종의 가짜 지질학이나 역사학이나 물리학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의 신앙 체계는 사람들이 가졌던 총제적 경험에 대한 진술이다. 종교는 경험된 총체(felt-whole), 즉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들을 포함하며 인생과 사건들의 의미를 제공하는 하나의 맥락의 구실을 하는 어떤 전체를 묘사하고 상기시키는 상징 체계(symbol system)라고 정의될 수 있다. 그렇다고 종교의 신앙 체계가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을 연결시키고 그것들에게 의미를 제공하는 궁극적 질서에 대한 종교의 내용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다. 종교는 인생의 여러 사건과 경험에 대하여 의미를 제공하는 보편적 질서를 표현하는 상징 체계인 까닭에, 종교는 과학적 방법에 의하여 다루어지고 발견되는 실재와는 판이한 특유의 실재(reality suigeneris)를 묘사하는 것이다. 종교의 실재와 과학의 실재는 다른 것이어서 서로 대치되거나 환원될 수 없는 것이지만, 두 가지 모두 진실이다."(165)


제6장 마르크스의 종교 이론


"마르크스는 신이란 인간의 (절대성을 향한) 열망이 투사(projection)된 것에 불과하다는 포이에르바하의 견해에 동의하면서도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다. 첫째로 포이에르바하는 아직도 인간의 본성을 다룰 때 개인 안에 있는 본성을 생각하는 반면에 인간의 사회적 맥락은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조건을 떠나서는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고 보고, 인간을 논의하자면 반드시 사회적 현실, 물질적 조건, 노동의 역할, 생산 조건 등을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두번째 비판은 포이에르바하가 아직도 인간을 역사와는 분리해서 고찰한다는 것이다. 헤겔과는 달리 그는 감각적이며 육체를 가진 구체적 인간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인간을 역사나 세계와는 동떨어진 보편적 종(species)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역사적 과정 안에서 그리고 특수한 역사적 시대 배경에 비추어서 이해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173)


"마르크스는 불의하고 비인간적이며 냉혹한 사회, 인간에게 사회적 소외와 고통을 안겨 주는 사회에서 종교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비인간적인 사회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소외 가운데서 고통스럽게 사는 인간들이 자신의 소망을 투사하고 종교를 만든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종교가 진정한 고통에 대한 반항적이고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라고 말하면서 소외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박탈에 대하여 말한다." "사회 계층에 따라서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에 대한 의미와 경험은 다르고 그들의 고통의 정도 또한 다르다. 마르크스는 그 점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자주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종교에 대한 경제적·사회적 박탈 이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즉 윤택하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보다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그리고 사회의 중심부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보다는 변두리로 밀려나서 힘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종교에 대한 관심이 더욱 많은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보는 것이다."(174-6)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종교가 발생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하여 설명한다. 분업의 결과로 인하여 생산 수단은 개인들의 사유 재산이 되는 까닭에, 노동자들은 노동 이외에 상품으로서 제공할 것은 아무 것도 갖지 못한다. 그들이 받는 것은 임금이지만, 그것은 완전한 임금이 되지 못한다. 생산 수단의 소유자들이 잉여 가치, 즉 임금과 상품의 교환 가치의 차액을 떼어먹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는 자본이 중추적 위치를 차지하는데, 노동자의 생산품은 노동자에게서 분리되어 소외된 상품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신비스럽게 가치가 상승하여 물신(物神, fetish)으로 변한다. 이러한 조건 아래서 인간의 손의 산물이 물신의 특성을 갖게 되듯이, 인간 정신의 산물, 종교와 하느님이 신비스러운 특성을 얻어서 숭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개인주의를 표방하는 개신교는 생산 수단의 개인 소유와 노동자의 고립을 초래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매우 부합하는 종교 형태라고 보았다."(178-9)


"마르크스는 종교란 인간 소망의 투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종교에서 얻는 행복은 환상적 행복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종교에서 어떤 행복을 얻는다 해도, 그들은 환상에 빠져서 속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종교는 실제로 있는 진정한 고통의 상징이고 표현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종교를 없애자는 것은 진정한 행복을 찾자는 것이나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종교와 함께 공존하는 그 현실은 틀림없이 사람들로 하여금 소망을 투사하도록 강요할 만큼 고통을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현실을 제거하면 종교는 필연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종교를 출현시키는 그 현실을 제거하지 않고는 의미없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종교 비판은 사회 비판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래서 종교 비판 다음에는 정치 비판이 따라야 하는 것이며 또한 혁명의 실천이 그 뒤를 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과업은, 진실이 아닌 세계가 사라지자마자 이 세계의 진실을 건설하는 것이다.〉"(180)


제7장 자본주의 발전과 종교에 대한 베버의 관점


"마르크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종교 연구가들이 원시 사회의 종교를 연구하던 시대에, 베버는 서양의 천주교와 개신교, 중동의 이슬람교와 고대 유태교, 그리고 인도의 불교와 힌두교, 중국의 유교와 도교에 주로 관심을 두었다. 마르크스를 포함해서 당시의 학자들이 종교의 본성이나 기원에 많은 관심을 둔 데 비하여, 베버는 종교의 기원보다는 그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관심을 두었다. 종교 사회학에서 베버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역사 발전에 있어 종교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그는 17세기 이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동서양의 상이한 역사 발전에 세계 종교들이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논제를 검토하기 위하여 역사적 분석을 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베버는 동양의 힌두교, 불교, 유교보다는 이슬람교, 유태교, 천주교, 특히 개신교, 다양한 개신교 종파 가운데서도 칼빈의 사상(Calvinism)이 사회, 경제, 그리고 정치 활동의 합리화를 가져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한 것이다."(201)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베버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이론에 대해 비판하면서 그가 사상의 요인을 무시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관념이 역사 안에서 효과적인 세력이 되는 양식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역사의 변천을 설명하면서 관념과 사상의 역할을 전혀 무시할 뿐 아니라 관념을 단지 사회경제적 조건들의 반영이나 부수 현상으로만 간주한다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관념과 사상의 역할을 철저하게 도외시하는 역사 해석은 잘못된 것이라는 베버의 견해를 말해 준다. 베버는 사회경제적 구조와 조건들이 종교를 포함해서 사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따라서 사회경제적 구조와 조건들의 변화에 의하여 종교 사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사상에 대한 물질적 조건의 영향만을 주장하고 물질적 조건에 대한 사상의 영향을 인정하지 않는 마르크스의 견해를 반대하는 것이다."(204)


"마르크스가 자본의 원시 축적과 혁명을 중요시한 것과 달리, 베버는 원시 축적에 관하여 별로 논의하지 않는다. 어느 사회에서나 충분한 자본의 축적은 있었으므로, 자본주의 발전과 산업화의 출발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특별한 방법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자본 축적이 아니고 오히려 합리적 경제 활동이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적 개혁이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베버는 자본가들이 주도하는 정치 혁명은 자본주의 발전에 필요한 것이었다고 보고 있다. 중세 도시들의 반란은 자본가들이 주도한 것이며, 이러한 혁명은 비합리적이고 약탈적인 귀족들의 법률을 자본주의 발전에 적합한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법률로 대치했다고 본다. 이러한 혁명은 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의 재산을 탈취하는 혁명이 아니라, 재산에 관련된 제도의 개혁을 가져오는 혁명이다. 그래서 베버는 경제 활동의 계산 가능성과 예측성을 높여 주는 법률 체제를 도입하는 정치 혁명은 자본주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필요했다고 보았다."(232-3)


제8장 종교에 대한 뒤르켐의 시각


"뒤르켐은 당시에 혼란에 빠져 있던 프랑스 제3공화국의 정신과 이념을 옹호하며 그것의 학문적 토대를 건설하려는 데 정력을 쏟은 이론가였다고 파악할 수도 있다. 그 공화국은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수렴하여 그것을 제도화하려는 데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에, 뒤르켐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 정치적 자유, 그리고 사회주의는 아니더라도 사회적·경제적 질서의 중대한 개혁을 주장하는 편이었다. 뒤르켐의 주된 학문적 관심은 전통 사회들이 합리화, 산업화, 그리고 개인주의로 말미암아 혼란은 겪으며 비틀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회 질서의 진실된 토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인간들의 행동에 질서와 틀을 마련해 주는 사회적 요소들인 종교, 법률, 도덕, 그리고 교육이 뒤르켐의 가장 중요한 연구 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종교를 연구하는 과정에서도 뒤르켐의 중심적 질문은 자유와 권위, 합리적 선택과 전통의 준수, 개인의 자율과 사회적 연대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236)


"뒤르켐은 〈인간의 종교적 본성, 다시 말하면 인간성의 한 가지 본질적이고 영구적인 측면에 대한 이해〉를 종교 연구의 목표로 정하고 있다. 그는 이 말을 통해서 종교란 인간의 본질적이고 영구적인 특성이 아니라 오히려 단지 일시적인 측면에 불과하다고 보는 여러 사람들의 견해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종교 연구의 자세는 공정하고 동정적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사회학의 하나의 기본적 가정은 인간의 제도가 착오와 거짓의 토대 위에 세워질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뒤르켐은 원시 사회의 종교도 실재(reality)에 관련된 것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확신 아래 다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뒤르켐은 〈가장 야만적이고 가장 기이한 의례와 가장 이상한 신화라도, 인간의 어떤 요구와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삶의 어떤 측면을 표현한다〉고 보았다. 그는 거짓된 종교란 없고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 진실하며, 모든 종교가 그 방식은 다르다 하더라도 인간 실존의 주어진 조건에 응답한다고 보았다."(238)


"뒤르켐에 의하면 종교 현상은 두 개의 근본적 범주, 즉 믿음과 의례로 짜여져 있다. 전자는 신념과 견해, 표상(representation)들이고, 후자는 일정한 행동의 양식이다." "이전의 학자들, 특히 종교 진화론자들이나 마르크스, 아마도 베버까지도 종교란 어떤 믿음 체계라고 보면서 종교 의례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을 보였다. 오늘날 의례가 종교의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견해가 종교 연구자들 사이에 보편화된 것은 뒤르켐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울러 종교 정의에는 주술과 종교를 구분해 주는 종교의 다른 요소가 또하나 포함되어야 한다. 뒤르켐은 그것이 집단이라고 보았다. 종교적 신앙과 의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하나의 집단과 단체로 만드는 경향을 가진다." "뒤르켐의 정의에 따르면, 〈종교는 성스러운 것─따로 보관되고 금지된 것─에 대한 믿음과 실천의 통일된 체계이다. 그 믿음과 실천은 그것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교회라고도 불리는 하나의 도덕적 공동체로 규합시킨다.〉"(244-6)


"뒤르켐은 성스러움이 물체들의 내재적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외부에서 부여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성스러운 것들은 결국 모두 하나의 상징이라고 보았다. 종교 진화론의 문제는 성스러운 것들이 상징이라는 점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인간이나 자연은 그 자체로 성스러운 특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다른 원천에서 받아야 한다. 그래서 뒤르켐은 종교 경험, 즉 성스러움의 근원을 개인이나 물리적 세계가 아닌 어떤 다른 실재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의 원천으로는 〈개인과 물리적 세계를 떠나서, 틀림없이 어떤 다른 실재가 있다.〉 뒤르켐에게 그 실재는 바로 사회이다." "뒤르켐은 사회란 수많은 개인들, 그들이 점령하고 있는 토대, 그들이 사용하는 물건, 그들의 움직임들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사고와 관념이라고 보았다." "종교는 현실의 불의, 죄악, 고통, 죽음뿐 아니라 현실의 사회 안에서 실현되지 않은 이상과 가치들도 표현하는 것이다."(248-52)


# 뒤르켐은 사회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분명하게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뒤르켐은 과학이 발전한 다음에라도 종교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두 가지의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종교의 신앙 체계가 쓸모없는 것이 되더라도 인간은 아직도 집합적 감정을 일으키고 행동을 향하여 밀어 줄 집회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에는 언제나 도덕, 즉 집합적 감정과 관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제의적 집회를 통해서만 지탱되고 강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있어서 과학이 결코 종교를 대신할 수는 없다. 따라서 종교 없이는 사회가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과학은 느리게 발전할 뿐 아니라 모든 문제를 풀지도 못하고 언제나 불완전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당장 행동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과학의 발전을 기다릴 수가 없다. 뒤르켐에 의하면 종교 사상은 과학이 미처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 그리고 나아가서 과학이 영영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해답을 제공할 것이다. 따라서 종교적 신앙 체계도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262)


제9장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적 종교 이론


"프로이트는 종교 역사에 관해서 진화론자들이 제시한 자료를 토대로 자신의 이론을 세웠다기보다는, 이미 설정되어 있었던 자신의 종교 이론을 보강하기 위하여 그들의 자료를 이용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1907년과 1910년의 논문에서 발견되듯이, 그는 벌써부터 에디푸스 컴플렉스와 그로 인한 노이로제가 종교의 토대라는 견해를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프로이트의 종교 이론은 그의 정신 분석학 이론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 분석학은 실제로 세 가지의 이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정신 분열증의 임상 치료법, 인성(人性) 이론, 그리고 도덕성, 집단 생활, 사회, 역사, 예술 및 종교를 포함하는 문화 이론이다. 종교에 관한 모든 설명은 정신 분석학적 방법에서 출발하며, 두 개의 개념, 즉 무의식과 어린 시절이 그 기초를 구성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의도적·의식적 생활은 언제나 무의식적 감정, 의도, 그리고 지향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279-80)


"종교 관념이 받아들여지고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까닭은 그것들이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하며 가장 긴급한 소망에 뿌리를 박고 있는 환상이기 때문이라고 프로이트는 주장한다. 종교 관념은 〈경험의 침전물이나 사색의 결정체가 아니라, 그것들은 환상이고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하며 가장 긴급한 소망의 충족이다. 그 힘의 비결은 그 소망의 힘 안에 들어 있다.〉 그 소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린 아이 같은 무력한 인간이 인생의 위험에서 보호받고, 이 불의한 세상에서 정의를 실현하며, 후세에서도 지상의 생활을 연장하고, 우주의 기원과 아울러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이해하고 싶은 소망이라고 프로이트는 보았다." "그렇지만 프로이트는 종교 관념들이 오류라고 단정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실증적 증거를 통해서 입증되는 것도 아니고 동시에 부정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즉 종교 관념이 사실에 부합하는 것인지 혹은 반대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289-91)


"보통 유아기의 신경성 질환의 대부분은 성장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극복되고, 나머지는 나중에 정신 분석학적 치료를 통해서 제거될 수 있다. 인류 전체가 그 발전 단계에서는 비슷한 신경성 질환에 처할 수 있고, 무지하고 지성이 약하기 때문에 본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종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종교에 의존하는 것은 자신의 성숙을 포기하고 미숙하고 유아기적인 상태에 머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무엇을 제안하는가? 개인이나 인류는 영원히 어린이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따라서 인간은 발전의 유아적 단계에 지나지 않는 종교를 떠나야 한다. 인간은 성장해야 하고, 자신의 자원과 과학의 도움을 받아서 자연의 현실을 지배해야 한다. 그리고 죽음의 운명에 대해서는 체념하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는 종교적 신앙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지성과 과학, 그리고 실증적 검증을 통해서 얻어진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 훨씬 장래성이 있다고 확신했다."(294-6)


"프로이트는 종교 진화론자들, 마르크스, 그리고 뒤르켐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에 팽배했던 실증주의 철학의 신봉자였다. 그래서 그들은 실증적 증거를 통해서 입증되지 않는 종교의 가르침과 내용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종교의 진실성을 부인하고 종교가 말하는 초월적 세계나 존재를 부정하면서, 인간 사회 안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종교를 종교 아닌 다른 어떤 현실의 상징이나 표현으로 환원시키려는 이론을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적 생활 밑바닥에는 거대한 무의식이 있고, 이것이 의식적 정신 과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프로이트의 귀중한 공헌이다." "이 무의식은 겉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는 흔히 상징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상징들은 허황된 어떤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숨겨진 중대한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표출하는 상징들 중 특히 꿈과 종교 관념을 중요시한다."(309-10)


제10장 종교와 사회 변화 : 종교와 정치


"종교와 사회 변화와 관련해서 볼 때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 것은, 종교 조직체가 분화되어서 종교가 비교적 독립적인 조직체를 형성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종교의 분화는 종교가 사회의 다른 부분에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조직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제의와 신앙 체계에도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종교가 분화된 시대에 살고 있으나, 원시 사회에서는 종교 사상, 예식, 조직체가 다른 사회적 사상이나 예식, 조직체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채로 한데 엉켜서 존재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의 분화가 발생한 것은, 그것이 가장 먼저 이루어진 지역에서도 3000여 년을 거의 넘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불교, 이슬람교가 전파되지 않은 곳에서는 최근까지도 종교는 분화되지 못했었다. 그리고 종교 조직체가 분화되지 않고 다른 조직체와 혼합되어 존재하는 경우에 그것은 사회학에서 확산 종교라고 불리고, 분화된 종교는 흔히 제도 종교라고 불린다."(324-5)


"종교 조직체가 분화한다는 것은 우선 종교 지도자의 역할이 독립되고 신도의 역할도 따로 분리됨을 의미한다. 그러면 가장이나 추장이 더 이상 종교 지도자의 역할을 겸임하지 않고 대신에 종교 전문가가 출현하고, 동시에 더 이상 단순히 어떤 부족의 성원이라 해서 누구나 자동적으로 그 부족 종교의 신도가 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되면 지도자와 신도들은 종교 생활만을 목적으로 삼는 종교 조직체를 형성한다. 종교의 분화는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고, 그 다음이 불교와 이슬람교라고 말할 수 있다. 유교와 힌두교의 분화는 아직도 미약한 정도이다. 종교가 분화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가족이나 부족 혹은 국가와 같은 사회 조직들이 종교 조직체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다른 비종교적 조직체에 맡겨졌던 종교 기능을 분화된 종교 조직체가 전담하게 되기 때문에 종교적 기능이 좀더 적절하게 수행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종교의 분화는 종교의 진보나 발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325)


"그렇다면 종교가 사회의 기존 체제를 강화·유지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사회 제도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산물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정당성을 인정하며 협력해야만 유지되는 것이다. 제도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타당하고 정당하다고 말하는 해명과 설명을 필요로 하며,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 설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 제도의 정당화에는 격언, 속담, 현인의 말, 전설 등이 이용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역사적으로 종교는 제도의 정당화와 합법화를 위해서 가장 널리 사용된 수단이었다. 그것은 종교가 사회 제도를 매우 효과적으로 정당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종교가 여러 가지 제도를 영원 불멸의 빛 아래서 바라보며, 경험적 사회 제도를 궁극적 실재나 세계와 연결시키는 데에서 발생한다. 종교는 사회 제도를 성스럽고 우주적인 세계 안에 위치시킴으로써 그것을 정당화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역사 안에서 발생한 제도는 인간의 역사를 초월하는 것으로 인식된다."(330-1)


"한편, 세계 종교와 함께 비로소 진정한 분화된 종교 혹은 제도 종교가 출현하였다. 세계 종교의 출현, 그리고 종교의 조직상의 분화는 정치 권력을 정당화하는 문제에 새로운 국면을 가져오고, 사회적 갈등과 긴장의 가능성을 증가시키며, 따라서 종교가 사회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은 현저하게 증대한다. 이제 정치 엘리트는 종교의 지도권을 독점할 수가 없고, 기존 체제의 정당화는 보장된 것이기보다는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 사이의 힘의 미묘한 균형에 의해 좌우된다. 고대 종교의 유일한 사회적 기능은 기존 체제를 옹호하는 것이었던 반면에, 제도 종교의 사회적 역할은 상반된 두 가지로 나뉘어지는 것이 특색이다. 제도 종교는 위정자를 옹호할 수 있는가 하면, 비판하고 반대할 힘도 갖게 된다. 이것은 종교가 어떤 경우에는 사회 변화를 방해할 수도 있고, 또 다른 경우에는 사회 변화를 촉진할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분화된 종교의 출현은 언제나 위정자의 권력에 위협이 된다."(332-3)


"위정자들은 종교를 예속시키고 종교의 비판적 자세를 예방할 목적으로 매우 다양한 법률적 내지 정치적 전략을 사용하였다. 서양에서 흔히 사용된 것은 정교 협약(concordat)이었다. 이 협약의 내용은 경우에 따라 변했지만, 대체로 정부가 특정 종교를 지원하고 보호할 의무와 아울러 간섭할 권리를 포함할 뿐 아니라, 관련된 종교가 정부에 대하여 수행할 의무와 간여할 권리들을 담고 있었다. 위정자는 그것을 통해 종교 지도자의 선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동시에 정당화의 획득을 목표로 삼았던 반면에, 종교는 정치 체제를 정당화해 주는 대가로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였다. 중국 청나라에서는 정부는 특히 불교와 도교가 정치 질서를 위협하는 활동을 하거나 위험한 종교 사상을 퍼뜨리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많은 법률적 조치를 취했다. 예를 들면 정부는 상제(上帝)에게 제사드리는 일을 황제에게만 국한시키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했다."(336-7)


제11장 종교 조직체의 종류, 변화와 갈등


# 종교 조직체의 종류

1. 종파(sect) : 사회적 제도나 관습을 비판하는 예언자를 중심으로 모여든 열성적인 신도들로 구성된 집단

2. 교회(church) : 종파의 지도자가 가진 카리스마가 일상화(routinization)의 과정을 거쳐 발생하는 집단

3. 교단(denomination) : 교회보다 한층 더 나아가 사회의 기존 가치와 제도를 받아들이고 타협하는 집단

4. 제의 운동(cult) : 기성 종교의 전통뿐만 아니라 사회적 전통과도 극단적으로 단절한 이질적인 종파 운동


제12장 현대 사회와 세속화 과정


# 세속화와 세속주의(secularism)

1. 세속화 : 종교가 사회 여러 분야에 대한 통제를 상실해가는 과정, 세속적인 목표들이 성스러운 목표를 지향하는 의례와 행위들을 대치해 가는 과정들

2. 세속주의 : 모든 형태의 성스러운 세계를 부인하고 개인의 윤리와 사회 조직의 기반으로서 비종교적인 또는 반종교적인 원리를 주장하는 사상 체계


"피터 버거는 세속화에는 세 가지의 차원이 있다고 보았다. 사회 구조적·문화적·개인의 의식적 세속화가 그것이다. 사회 구조적 세속화에 대하여 그는, 〈교회의 통제와 영향 아래 있던 영역으로부터 그리스도교회가 퇴거하는 데서, 즉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고 교회령을 몰수하고, 교회의 권위로부터 교육이 해방되는 데서 세속화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문화와 상징 체계의 세속화는 사회 구조적 세속화 이상을 의미한다. 문화의 세속화는 〈예술, 철학, 문학의 영역에서 종교적 내용이 사라지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이 세계에 대한 자율적이고 철저하게 세속적인 시각으로서 나타나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고 본다. 이상의 두 가지 차원 외에 주관적이고 의식적인 세속화가 있다. 개인 의식 차원의 세속화는 개인들의 종교성이 약화되고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근대의 서구 사회가 종교적 해석을 빌리지 않고서도 세계와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개인들의 수를 증가시켜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397)


# 여기에 네 번째로 제도 종교의 세속화─내세적이고 초월적인 가치에서 현세적인 가치로 무게중심 이동, 신도수와 참여율의 감소, 종교의 신앙 진술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하는 개인적 자율성의 증가─를 추가하기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